앞으로 금융기관이 채무자에게 알리지 않은 채 지급명령을 통해 빚의 소멸시효를 연장하는 관행이 사라진다. 정부는 금융기관에만 유리했던 공시송달 특례를 전면 폐지하기로 하고,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한다.
지급명령(독촉)절차는 채권자가 법원에 신청하면 법정에 나가지 않고도 강제집행 권리를 얻을 수 있는 간이한 절차다. 원칙적으로 이 절차에서는 공시송달(채무자 주소를 모를 때 법원 게시판 등에 통지하는 방식)이 허용되지 않지만, 2014년 개정된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은 은행, 여신전문금융회사, 유동화전문회사 등 26개 금융기관과 공공기관에 대해 예외를 허용해왔다.
그러나 이 특례가 상환 능력이 부족한 취약계층 채무자에게까지 기계적으로 적용되면서, 채무자가 모르는 사이에 빚의 소멸시효가 연장되고 장기간 추심에 시달리는 문제가 지적돼 왔다. 이에 이재명 대통령은 "금융기관의 업무 편의를 위한 간소화된 공시송달 요건이 채무자에게 가혹하다"며 제도 개선을 지시했다.
법무부는 이번 특례 폐지로 금융기관이 소멸시효 연장을 위해 무분별하게 지급명령을 신청하는 관행이 개선되고, 채무자 보호가 강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정성호 법무부장관은 "장기 연체의 늪에 빠진 채무자의 재기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는 무분별한 시효 연장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국회에서 법률 개정이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금융위원회는 소멸시효가 '원칙적으로 완성되고, 예외적으로만 연장'되는 원칙을 확립하기 위해 추가 정책을 추진한다. 우선 금융기관이 세법상 손실로 인정받은 상각채권에 대해 시효를 계속 연장하며 장기간 회수를 시도하는 관행을 막기 위해 '금융기관채권 대손인정업무세칙'을 개정해 9월 중 시행할 예정이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금융기관은 개인금융채권의 소멸시효가 처음 돌아오는 시점에 시효를 완성하는 조건으로만 대손인정과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다.
또한 금융기관별 개인금융채권 소멸시효 완성 실적을 보고·공시하는 시스템을 마련해 2026년 상반기 실적부터 공개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금융기관이 소멸시효를 완성하도록 유인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금융기관이 개인금융채권의 회수 가능성을 합리적으로 판단해 시효 연장 여부를 결정하도록 금융회사별 내규에 반영하게 함으로써, 오는 9월부터 반복적·기계적 시효 연장 관행을 막고 연체채권의 적극적 정리를 유도할 방침이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이번 제도 개선으로 상환 능력이 희박한 채무자에게까지 기계적으로 소멸시효 연장을 위한 지급명령을 신청해 장기간 추심하는 잘못된 관행이 개선될 것"이라며 "법무부와 함께 상환 능력을 고려한 추심 관행이 현장에 정착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