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2022년 하반기부터 운영해온 시장안정프로그램을 내년에도 유지하기로 했다. 이 프로그램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채권·단기자금시장 안정 관련 37조6000억원, 부동산 PF 연착륙 관련 60조9000억원 등 총 100조원+α 규모로 확대 운영된다.
금융위원회는 15일 정부서울청사 대회의실에서 이억원 금융위원장 주재로 금융시장 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회의에는 금융감독원 등 유관기관과 거시경제·금융시장 전문가들이 참석해 올해 국내외 경제·금융시장을 평가하고 전망과 리스크 요인을 논의했다.
이억원 위원장은 금융기관의 건전성, 세계 9위 수준의 외환보유고, 낮은 신용부도스왑(CDS) 프리미엄 등을 고려할 때 우리 경제가 대내외 불확실성에 대응할 충분한 복원력과 위기대응 정책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향후 시장 변동성 확대 가능성에 대비해 필요시 시장안정조치를 과감하고 선제적으로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내년에는 생산적 금융, 포용적 금융, 신뢰받는 금융을 중심으로 한 3대 금융 대전환 속도를 높인다. 이 위원장은 금융시장 안정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금리·환율뿐 아니라 세계 역학구조 전환, 지정학적 리스크,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 등 거대한 조류 변화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시장전문가·관계기관과 다양한 리스크 요인을 점검하고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의 참석자들은 내년도 우리 경제가 수출 호조와 내수 회복 등에 힘입어 1% 후반대 성장률을 보이고, 금융시장은 신용경색 등 심각한 금융불안 발생 가능성이 과거보다 낮아져 전반적으로 안정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미국·일본 등 주요국 간 통화정책 차별화 가능성, 글로벌 인공지능(AI) 과열 경계감, 주요국 재정건전성 우려에 따른 장기국채 상승 우려, 지정학적 리스크 재확대 가능성, 국내 취약업종 업황 우려, 가계부채 관리 문제 등 다양한 리스크 요인이 잠재돼 있다고 진단했다.
참석자들은 이러한 요인들이 일시적으로 금융시장 변동성을 확대시킬 수 있으므로 충분하고 선제적인 대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특히 글로벌 통화정책 완화 기조에 나타난 변화 조짐에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당분간 기준금리 인하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이나, 일본·호주·캐나다 등 주요국 중앙은행은 최근 금리인하 종료 또는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통화정책 방향이 엇갈리고 있어 글로벌 자금흐름 변동성 확대와 위험자산 가격 조정압력 증가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내년도 채권시장 내 급격한 유동성 경색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데 의견이 모였다. 참석자들은 내년 4월 예정된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으로 외국인 자금 약 75~90조원이 채권시장으로 유입될 것으로 예상되며, 우리 경제의 양호한 재정건전성과 대외신인도, 증권사의 종합투자계좌(IMA) 운용 등으로 인한 채권 수요 확대 등을 고려할 때 안정적인 수급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상승한 달러-원 환율 안정을 위해서는 시장 기대심리 관리와 외화수급 불균형 해소 노력, 경제 체질 개선이 중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억원 위원장은 올해 시장안정프로그램이 비우량 회사채·기업어음(CP)을 중심으로 약 11조8000억원을 신규 매입하며 시장 안전판 역할을 수행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금융시장 내 변동성 확대 가능성에 대비해 시장 안전판 역할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며 현재 운영 중인 시장안정프로그램을 2026년에도 연장해 지속 운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금융위원회와 정책금융기관(산업은행, 기업은행, 신용보증기금) 등은 2026년에도 채권 및 단기자금시장 안정을 위해 최대 37조6000억원의 유동성을 공급할 계획이다. 부동산 PF 연착륙을 위해 정부, 유관기관(주택금융공사, 주택도시기금, 건설공제조합), 금융업권 등이 운영 중인 최대 60조9000억원 규모의 지원 프로그램들도 차질 없이 지속 운영할 예정이다. 부동산 PF 연착륙 관련 은행·보험권에서는 최대 1조원 규모의 신디케이트론(공동대출자금)을 조성한다.
이 위원장은 채권시장과 단기자금시장의 경우 과거 경험상 작은 일에도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변동성이 빠르게 전이되는 만큼 사전에 다양한 리스크 요인을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내년 중 회사채·은행채·여전채 등의 만기구조를 점검하고, 금융권이 보유한 채권 규모, 금리상승에 따른 건전성 현황 등을 점검할 것을 지시했다. 그는 위기는 매번 반복되나 늘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발생한다는 경험칙을 언급하며 확고한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예상하기 힘든 리스크 요인도 예측하고 사전에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향후 금융위원회는 유관기관 및 시장 전문가와 주기적으로 금융시장 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미시적 리스크뿐만 아니라 시스템(거시건전성) 리스크, 리스크 간 상호연결성, 테일 리스크(tail risk) 등에 대해서도 철저한 점검과 대비를 강화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