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근 무렵 창밖 하늘이 주홍빛으로 물드는 모습을 보며 곽재구 시인의 문장이 떠올랐다. 오래전에 적어둔 그 구절은 시간이 지나도 마음에 남아 다시 꺼내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한다.
여의도 불빛은 밥벌이의 지겨움을 이겨낸 하루의 마지막 응원처럼 느껴져 더 아름답게 보였다. 삶의 순간을 눈으로 담고 손으로 기억하기 위해 매일 조금씩 글을 쓰고 있다.
읽은 책은 씨앗이 되고, 스쳐 지나간 풍경은 흙이 되며, 어제 나눈 대화는 거름이 된다. 그렇게 글밭의 지력은 조금씩 비옥해진다.
농부가 흙을 손바닥으로 들어 올려 바람의 흔적을 살피고 이랑 사이로 햇빛이 드나들 길을 열어주듯, 단단한 생각을 뒤집고 빛을 들이며 하루를 채워간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마음에 피어난 생각을 낱말이라는 씨앗으로, 문장이란 땅에 심는 일이며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늦가을 장모님의 텃밭에서 고구마와 대추, 단감을 땄다. 갓 캔 고구마를 삶아 김치와 함께 막걸리를 마시는 순간, 그것은 신화 속 신들이 먹고 마셨다는 암브로시아와 넥타르 같았다. 단감을 한입 베어 물자 달콤함이 입안을 가득 채웠고, “단감처럼 늙고 싶다”는 문장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직 글을 자유롭게 다루지 못하고 모니터 앞에서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지만, 매일 농부의 마음으로 글밭을 갈고 있다. 시간이 흘러 지난날의 나를 잊지 않기 위해 오늘도 용기 내어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