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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흡의 종횡무진 세계사] 성경(聖經)과 역경(易經)으로 대립한 로마와 베이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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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말 베이징 자금성에서 청나라 강희제, 예수회 선교사 조아킴 부베, 독일 철학자 라이프니츠가 팔괘를 매개로 세계 질서를 논의한 장면이 펼쳐졌다. 이들은 서로 다른 문명과 종교적 배경을 가졌으나 주역을 중심으로 연결됐다.

강희제는 삼번의 난을 진압하고 대만을 편입했으며 몽골과 티베트를 통합한 뒤 제국 운영의 새로운 체계를 모색하던 시점이었다. 유교 경학과 서양 천문학·수학이 제공하는 틀만으로는 광대한 영토를 하나의 논리로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그는 주역에 주목했다. 강희제는 주역을 점술서가 아닌 천지인과 변화·순환·질서를 아우르는 제국의 운영체제로 인식했다.

루이 14세가 파견한 예수회 학자 집단의 일원이었던 부베는 베이징에 도착해 강희제의 개인 교사가 됐다. 수학과 기하학, 자연철학에 능통했던 그는 강희제로부터 주역을 전달받아 분석했다. 부베는 팔괘와 64괘의 구조에서 신의 창조 언어인 이진적 패턴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부베는 1711년 《易學總旨》와 1712년 라틴어 저작에서 팔괘와 64괘가 신의 창조에 사용된 0과 1의 수학적 언어이며, 복희는 홍수 이전 계시를 보존한 인물이라고 정리했다. 그는 주역이 창세기의 원형인 원시 성서이며 동서 경전이 동일한 신적 질서를 가리킨다고 해석했다. 이는 부베의 신학적 해석으로 역사적 사실과 동일시할 수 없지만, 그가 주역을 코드와 패턴의 언어로 읽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부베의 해석은 피규리스트라는 소집단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주역과 서경, 고대 문자와 신화를 하나의 암호문으로 보고 그 열쇠가 성서라고 믿었다. 예수회 내부에서도 이 시도는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도미니코회, 프란치스코회, 교황청은 이를 위험한 신학적 실험으로 규정했다. 피규리스트는 주류가 되지 못했으나 경전을 코드로 읽으려는 시도는 디지털 인문학의 전조로 평가된다.

이후 중국 의례 논쟁이 발생했다. 예수회는 유교 의례를 도덕적·사회적 예절로 보며 허용을 주장한 반면 도미니코회, 프란치스코회, 교황청은 이를 우상 숭배로 규정했다. 강희제에게 천자·조상·성인에 대한 의례는 중국 문명의 핵심 질서였으며 역경이 전제하는 순환·조화·질서의 세계관과 연결됐다. 이 사건은 역경과 성경, 다층 의례 체계와 단일 교리 체계가 충돌한 장면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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