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중해는 길이 4000㎞에 달하며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세 대륙이 만나는 지점이다. 지중해성 기후는 밀, 올리브, 포도의 안정적인 생산을 뒷받침했고, 계절풍과 해안선은 항로 안전과 교역 확장에 기여했다.
로마는 기원전 2세기 카르타고를 무너뜨린 뒤 육상 군사력과 해상 네트워크를 결합해 지중해를 통합한 최초의 제국이 됐다. 이집트와 북아프리카의 곡물을 수도로 운반하기 위해 오스티아 항만을 중심으로 물류·교통망을 구축했고, 도로·수도교·하수도 체계를 연결해 행정·군사·경제를 통합했다. 로마의 운영 중심에는 안노나 제도가 있었다. 이 제도는 속주에서 조달한 곡물을 수도 시민에게 무상 또는 저가로 배급하는 국가적 식량 관리 체계로, 약 100만명의 시민 중 30만명이 혜택을 받았다.
3세기 이후 기온 하강과 강수 패턴 불안정으로 곡창지대 생산이 흔들렸다. 세입 감소와 병참 불안이 누적된 가운데 북아프리카에서 발생한 ‘키프리안의 역병’이 지중해 전역으로 퍼졌다. 약 10년간 지속된 이 전염병은 고열·설사·구토를 동반하며 하루 수천명의 사망자를 냈다. 농업 생산력과 세입, 군역, 노동력이 붕괴하면서 행정체계가 마비됐고, 서기 476년 게르만의 오도아케르에 의해 로마는 종말을 맞았다.
1453년 오스만 제국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하고 보스포루스와 다르다넬스 해협을 장악했다. 오스만의 통치는 티마르 제도, 이아셰 제도, 나르흐 제도, 와끄프 제도 등에 기반했다. 티마르 제도는 국유지를 지방 기병에게 분배해 세금 징수와 병역을 함께 맡겼고, 이아셰 제도는 수도 이스탄불의 식량과 연료를 특정 산지에서 우선 확보했다. 나르흐 제도는 생필품 가격 상한을 설정했으며, 와끄프 제도는 개인이나 가문이 사유재산을 기부해 그 수익으로 학교·병원·교량·수도시설을 운영하도록 했다.
17세기 이후 소빙기의 한랭화와 기후 불안정으로 오스만 제국의 농업 생산이 위축됐다. 세입 기반이 흔들리고 식량 가격이 폭등하면서 아나톨리아와 발칸에서 반란이 발생했다. 서쪽에서는 합스부르크 제국과, 동쪽에서는 사파비 왕조와의 전쟁이 이어지며 막대한 군비가 소모됐고, 중앙 재정은 한계에 이르렀다. 오스만 제국은 대항해시대와 산업혁명으로 무장한 서유럽의 군사·기술 혁신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