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명보험업계에서 종신보험의 역할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과거 사망 시 보장에 집중하던 상품이 이제는 생전에도 활용 가능한 다목적 보험으로 진화하면서 업계 전략의 중심축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고령화와 저출산, 1인 가구 증가로 전통적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생보사들은 건강·간병·암보험 등 보장성 상품군을 강화하며 종신보험 의존도를 낮추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종신보험은 여전히 핵심 전략상품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최근 들어 상품 구조가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사망보험금 유동화 제도가 새 변수로 떠올랐다.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관련 제도 도입에 긍정적인 입장을 밝히면서 속도가 붙고 있다. 금융당국은 55세 이상 가입자가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사망보험금의 일부를 생전에 연금 방식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남욱현 인카금융서비스 상품금융연구소장은 "금리확정형 상품, 보험료 완납, 약관대출 미이용 등 조건이 까다로워 해당 요건을 충족하는 종신보험이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 생보사 관계자는 "평균 사망보험금이 3000만원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유동화로 매월 받을 수 있는 금액은 10만원 내외로 연금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새로운 상품 라인업도 주목할 만하다. 기존 종신보험보다 보험료 부담을 줄인 저해지환급형 상품이 늘고 있으며, 특히 표준 해약환급금의 30%만 지급하는 일부환급형이 인기를 끌고 있다. 단기납 종신보험은 5년, 7년, 10년 등 짧은 납입 기간을 설정해 은퇴 전 납입을 마치려는 중장년층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간편가입형과 고지 항목을 간소화한 상품이 확대되면서 고령자의 접근성도 높아졌다. 이에 따라 요양·간병 서비스나 실버타운과 연계한 서비스형 종신보험도 등장했다. 교보생명의 '3밸런스보장보험'은 7년납 10년 환급률 113.8%를 보장하며, 암·뇌·심장 3대 질환 발생 시 납입면제 기능을 강화했다. 한화생명의 '하나로H종신보험'은 체증형 구조로 사망보험금이 최대 3배까지 늘어나고, 연금전환특약을 통해 생존 시에도 보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진 만큼 꼼꼼한 비교가 필요하다. 단기납·체증형·저해지환급형 상품은 중도 해지 시 환급금이 적을 수 있어 구조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간편가입형은 보험료나 보장한도에 제약이 따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종신보험이 노후소득 보완 수단으로 진화하고 있지만 보험료 대비 현금흐름, 수수료, 물가 변동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생보업계는 이 같은 변화를 바탕으로 종신보험 시장의 재편을 이끌어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