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보험산업이 1100조원 규모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지만 국공채 위주로 운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해외 사례처럼 인공지능(AI)이나 에너지 같은 혁신 분야에 장기 자금을 공급하려면 정부 차원의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박지원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10일 금융브리프 포커스 보고서를 통해 해외 보험사들이 제도적 인센티브나 시장 자율 접근을 통해 장기자금을 혁신 분야에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선진국의 혁신 분야 투자 형태를 정부 주도형과 시장 자율형으로 구분했다.
유럽의 경우 정부가 적극적인 인센티브를 제시해 보험사 투자를 유도하는 사례가 있다. 프랑스의 티비(Tibi) 이니셔티브는 정부가 우량 벤처 펀드를 인증하면 보험사가 출자하는 구조로, 1단계 기간 목표를 초과한 64억 유로가 투자됐다.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 솔벤시 UK(Solvency UK)를 도입해 위험마진을 축소하고 매칭조정 요건을 완화했다. 영국 보험협회(ABI)는 향후 10년간 1000억 파운드 투자를 약속했다.
미국과 일본은 시장 자율 방식을 택했다. 미국 보험사는 별도 프로그램 없이 사모신용과 인프라 시장을 통해 자산의 10~30%를 운용하고 있다. 일본은 금융청(FSA) 가이드라인 아래 보험사들이 자율적으로 임팩트 투자를 늘리는 추세다.
박 연구위원은 국내 상황에 대해 지급여력제도(K-ICS)와 새 보험회계 국제기준(IFRS17) 도입 후 자본 규제 부담과 손익 민감도가 커져 국공채 위주 운용에 치중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금융당국이 규제 개선에 나섰지만 부족하다는 평가다. 보험사들이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설립 등 스타트업 투자에 나섰으나 대부분 본업 연계 소규모 투자에 그치고 있다.
보고서는 보험사가 모험자본 공급자로 기능하기 위한 정책 설계를 제언했다. 박 연구위원은 영국 사례를 참고해 매칭조정 제도를 인프라 등 장기 자산까지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투자 인프라로는 국민성장펀드 활용을 주문했다. 펀드가 모펀드로서 위험을 분담하면 보험사들이 후행 투자자로 참여해 심사 부담 없이 모험자본 공급에 나설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 연구위원은 보수적 관행을 고려해 시범사업이나 공동 펀드부터 시작해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단계적 전략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