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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4화]

서명 한 줄의 무게

작성: 2026.03.12 18:19 조회수: 47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이 콘텐츠는 보험을 소재로 한 창작물이며 실제 상품 추천이나 보장 판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월요일 아침은 늘 커피 한 잔의 온도로 시작됐다. 서하는 자판기 앞에서 종이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주말 내내 머릿속을 맴돌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겨우 밀어내고 있었다. 금요일 저녁, 예고 없이 사무실 앞까지 왔다가 돌아간 아버지. 주말 내내 전화 한 통 없었고, 서하도 끝내 걸지 못했다. 서로의 침묵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것도 같았지만, 확인하는 건 더 무서웠다.

“윤서하 씨, 지난주 금요일에 접수한 거 있잖아. 강민주 씨 건.”

등 뒤에서 들린 도윤의 목소리에 서하는 반사적으로 허리를 폈다. 강도윤은 서류 파일 하나를 서하 책상 위에 툭 내려놓고, 모니터를 한 번 훑은 뒤 시선을 고정했다.

“접수 서류 확인했어요?”

“네, 금요일에 다 봤습니다. 민주 씨 남편분이 피보험자고, 민주 씨가 계약자로 돼 있는 건이요. 입원 보험금 청구라서 진단서, 입퇴원 확인서 다 붙어 있고, 동의서도—”

“동의서 필적 확인했어?”

서하의 말이 뚝 멈췄다. 금요일 오후, 퇴근 시간에 쫓기듯 접수를 마감하면서 서류 순서만 확인하고 넘겼던 그 한 장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도윤의 질문이 단순한 확인이 아니라는 건, 그의 눈이 서류가 아니라 서하를 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한 번 더 확인하겠습니다.”

서하는 파일을 펼쳤다. 동의서 하단, 피보험자 서명란.

‘김정호’

라는 이름이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글씨체가 깔끔했다. 너무 깔끔했다. 접수 당시 민주가 건네준 서류 묶음이 떠올랐다. 민주는 남편 대신 왔다고 했다. 남편이 아직 퇴원하지 못했고 거동도 불편해서 자기가 대신 가져왔다고. 그때 서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접수 도장을 찍었다.

“필적이 계약자 서명이랑 비슷하지 않아?”

도윤이 계약서 원본 사본을 나란히 놓았다. 왼쪽은 계약 당시 민주가 쓴 계약자 서명, 오른쪽은 동의서의 피보험자 서명. 획의 기울기, 받침의 모양, 심지어 끝을 살짝 올려 마무리하는 버릇까지 닮아 있었다. 서하의 손끝이 차가워졌다.

“이걸로 바로 문제가 되는 건가요?”

“될 수 있어. 피보험자 본인이 해야 하는 확인을 가족이 대신하면 지급 판단 자체가 멈출 수도 있어. 선의였는지보다 먼저 봐야 하는 건 사실관계야.”

도윤은 그 이상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의자를 돌려 자기 자리로 돌아가며 한마디만 덧붙였다.

“오늘 중으로 민주 씨한테 확인 전화해. 사실관계부터.”

서하는 고개를 숙인 채 서류를 다시 들여다봤다. 심장이 목까지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금요일에 한 번만 더 봤으면 됐다. 한 번만 더 물었으면 됐다.

‘혹시 이 서명, 남편분이 직접 하신 거 맞으시죠?’

그 말을 왜 삼켰을까.

점심시간, 구내식당 대신 편의점 삼각김밥을 뜯고 있는 서하 옆에 지우가 슬쩍 앉았다. 플라스틱 의자가 삐걱거렸다.

“얼굴이 왜 그래. 주말에 소개팅이라도 망했어?”

“……아뇨.”

“아, 강민주 씨 건? 도윤 선배가 아까 뭐라 했지?”

서하는 삼각김밥 포장을 벗기다 김이 찢어지는 걸 멍하니 내려다봤다. 지우가 말없이 그걸 빼앗아 능숙하게 다시 벗긴 뒤 돌려줬다.

“고마워요.”

“고마워하지 말고 얘기해 봐. 나 현장 조사 5년 차야. 대충 감은 온다.”

서하가 상황을 설명하자 지우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눈빛의 결이 달라졌다. 장난기에서 계산으로.

“가족이 대신 서명한 거, 현장에서 꽤 봐. 설계사가 ‘그냥 대신 써 주셔도 돼요’ 하는 경우도 있고, 가족이 알아서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경우도 있고. 근데 문제는, 나중에 이게 터지면 진짜 필요한 사람이 보상을 못 받게 될 수도 있다는 거야.”

“민주 씨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거예요.”

“당연하지. 근데 의도가 아니라 절차가 문제인 거잖아.”

지우는 캔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서하를 똑바로 봤다.

“서하야, 지금 네 잘못부터 찾으려고 하지 마. 그건 나중이야. 지금은 사실 확인이 먼저고, 민주 씨한테 상황을 설명하는 게 순서야.”

잠깐 뜸을 들인 지우가 덧붙였다.

“그리고 한 가지만 기억해. 전화할 때 네가 너무 미안한 목소리를 내면, 상대는 자기가 큰일을 저질렀다고 먼저 겁먹어.”

그 말이 이상할 만큼 정확하게 꽂혔다. 서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로 돌아왔다. 겁먹은 사람처럼 전화를 걸면, 전화기 너머 사람도 같이 무너질 거라는 뜻이었다. 적어도 그건 피해야 했다.

오후 두 시. 서하는 수화기를 들었다가 내려놓기를 세 번 반복했다. 네 번째에야 겨우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세 번 울린 뒤 민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뒤에서는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웅웅거렸다.

“아, 윤 사원. 무슨 일이에요?”

“민주 씨, 지난번 접수해 주신 서류 중에 확인드릴 게 있어서요. 동의서에 있는 피보험자 서명, 혹시 남편분이 직접 하신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전화기 너머로 세탁기 소리만 두어 초 흘렀다.

“……그게요, 정호 씨가 손을 잘 못 써서요. 제가 대신 써도 된다고 하길래. 설계사 분이, 예전에 가입할 때도 그렇게 하셨다고 해서요.”

서하는 숨을 참았다. 민주의 목소리는 변명이 아니었다. 당연한 일을 했다고 믿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남편이 아프고, 서류는 급하고, 누군가는 괜찮다고 했으니까. 그 말을 믿은 것뿐이었다.

“그러시군요. 민주 씨, 이 부분 때문에 서류 보완이 필요할 수 있어요. 정확한 내용은 확인한 뒤에 다시 안내드릴게요.”

“보완이요? 보험금이 안 나오는 건 아니죠?”

민주의 목소리가 반음 올라갔다. 세탁기 소리가 멈춘 건지, 아니면 서하의 귀가 그 목소리만 골라 듣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서하는 순간 미안하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걸 삼켰다. 지금 필요한 건 사과가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안내였다.

“지금 단계에서 확정된 건 없습니다. 확인되는 대로 바로 연락드릴게요.”

전화를 끊고 서하는 메모장에 통화 내용을 적었다. 손이 떨려 글씨가 비뚤어졌다.

‘보험금이 안 나오는 건 아니죠?’

민주가 마지막에 남긴 그 한 문장 안에 세탁소 월세와 남편의 병원비, 아마 오늘 저녁 반찬값까지 들어 있다는 걸 서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숨이 막혔다. 선의로 대신 쓴 이름 석 자가, 누군가의 생활 전체를 흔들 수도 있다는 사실이.

다섯 시 반. 퇴근 준비를 하던 서하의 메신저에 도윤의 메시지가 떴다.

[강도윤: 통화 내용 보고서 내일 아침까지. 그리고 하나만 물어볼게. 접수할 때 대면 확인 절차 건너뛴 거, 네가 판단한 거야?]

서하는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린 채 한참 멈춰 있었다. 변명할 수는 있었다. 금요일 마감 시간이었고, 민주 씨는 급해 보였고, 서류도 얼핏 다 갖춰져 있었다. 누구 하나 재촉하지 않았더라도, 그날의 분위기는 빨리 끝내라고 등을 밀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적는 순간, 실수는 상황 탓이 되어 버린다.

서하는 입술을 깨물고 천천히 답을 쳤다.

[윤서하: 네. 제가 한 번 더 확인했어야 했습니다.]

보내기 버튼을 누르는 순간, 이상하게도 숨이 조금 트였다. 혼날 건 분명했지만, 적어도 도망치지는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답은 바로 오지 않았다. 1분, 2분. 서하는 화면을 끄고 가방을 챙겼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수진과 마주쳤다. 수진은 서하의 얼굴을 한 번 보더니 아무 말 없이 같이 내려갔다. 로비에 나서서야 입을 열었다.

“강민주 씨 건이지?”

“……어떻게 아셨어요?”

“도윤 씨가 오후에 원무과 쪽 확인 요청 넣었어. 나한테 직접은 아니고, 예전 루트로.”

수진은 핸드백 끈을 고쳐 잡으며 말을 이었다.

“서하 씨, 이런 건 처음이지? 가족이 선의로 한 일이 절차상 문제가 되는 거. 솔직히 현장에서는 드물지 않아. 근데 그걸 처음 마주한 사람은 꼭 자기 탓부터 해.”

“제 탓이 맞잖아요. 확인을 안 했으니까.”

“확인을 안 한 건 네 실수 맞아. 근데 그 실수가 강민주 씨 인생을 망가뜨리는 건 아니야. 지금부터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지.”

수진은 서하의 어깨를 가볍게 한 번 두드리고 주차장 쪽으로 걸어갔다. 서하는 로비에 혼자 서서 유리문 너머 저녁 하늘을 봤다. 해가 지는 건지, 구름이 내려앉는 건지 구분되지 않는 색이었다. 아침부터 목을 조르던 죄책감이 조금 다른 모양으로 바뀌고 있었다. 무섭긴 했지만, 내일 뭘 해야 하는지는 분명해졌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서하는 이어폰도 꽂지 않은 채 창밖만 봤다. 서명 한 줄, 이름 석 자. 누군가는 아무 생각 없이 쓰고, 누군가는 쓸 수 없어서 대신 부탁하고, 누군가는 그걸 확인하지 못해 잠을 못 잔다. 오늘, 서하는 그 가장 작은 단위를 놓쳤다.

휴대폰이 울렸다. 아버지였다. 서하는 화면을 보다가, 이번에는 받았다.

“……여보세요.”

“밥은 먹었냐.”

“아직이요.”

“그래.”

그리고 끊겼다. 세 마디뿐이었다. 서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웃었다. 웃음인지 한숨인지, 자기도 모를 소리였다. 그래도 아침과는 달랐다. 받지 못한 전화가 아니라, 받은 전화가 하나 남았다. 별것 아닌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풀렸다.

버스가 정류장에 멈추고 문이 열렸다. 서하는 내리면서 도윤의 메신저를 다시 열었다. 답이 와 있었다.

[강도윤: 내일 아침 강민주 씨 건 같이 본다. 8시 반.]

서하는 메시지를 두 번 읽었다. 질책도, 위로도 아니었다. 그냥 다음 순서였다. 그런데 화면을 닫으려다 손이 멈췄다. 도윤의 메시지 위로, 오후에 들어온 원무과 확인 메일 한 통이 눈에 걸렸다. 수신자 목록에 강도윤 이름 옆으로 낯선 이름 하나가 더 있었다. 서하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이름이 강민주 씨 건보다 더 늦게까지 머릿속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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