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진혁 수석이 떠난 자리에는 잠깐, 말 대신 수저 부딪히는 소리만 남았다. 지하 1층 구내식당 입구였다. 점심 줄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시간. 국 냄새와 튀김 냄새가 한데 섞여 복도까지 밀려 나왔다. 누군가 쟁반을 세게 내려놓는 소리, 계산대 쪽에서 카드 단말기가 삑 하고 울리는 소리. 평범한 점심시간의 소음이었는데, 오늘은 그 소리들이 전부 한 박자씩 늦게 들렸다.
서하는 트레이 손잡이를 쥔 채 오승우를 봤다. 그는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마치 차진혁 수석이 빠져나가는 장면까지 포함해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트레이 위에는 돼지국밥 한 그릇과 깍두기 두 조각이 놓여 있었다. 젓가락은 아직 봉지 안에 들어 있었다.
"뭐 드실 거예요? 오늘 돼지국밥 괜찮아 보이던데요."
오승우의 목소리는 늘 그랬다. 낮고 부드럽고, 그래서 더 미끄러웠다. 서하는 국밥 대신 제육볶음 쪽으로 손을 뻗었다. 이유가 대단한 건 아니었다. 그냥 차진혁 수석이 서 있던 방향의 반대편이었다.
두 사람은 마주 앉았다. 서하는 숟가락을 들었다가 잠깐 멈췄다.
'받지 마.'
도윤의 말이 아직 귀 안쪽에 걸려 있었다. 짧고 단호한 세 글자. 문제는 받지 않으려면, 대체 뭘 받게 될지부터 알아야 한다는 거였다.
오승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수석님이 왜 직접 내려오셨는지는 알고 계시죠?"
서하는 대답 대신 밥을 한 숟갈 떴다. 씹는 동안만큼은 말하지 않아도 됐다. 오승우는 서두르지 않았다. 국밥 국물을 한 번 떠서 맛을 보고, 깍두기를 집고, 그러고 나서야 다시 말했다.
"TF 명단에 보상팀 전원이 들어간 거요. 그냥 행정 절차라고 보기엔 타이밍이 너무 촘촘해요."
그는 물컵을 한 번 돌리더니, 별일 아니라는 듯 덧붙였다.
"도윤 씨 면담이랑 민주 씨 건 기한이 같은 날인 것도 알고 있고요."
서하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민주의 이름이 나오자 밥그릇이 갑자기 무거워졌다. 오승우는 그 변화를 봤을 것이다. 보고도 모른 척하는 얼굴이었다. 서하는 입안의 밥을 천천히 넘기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래서요."
짧게 잘라 말했는데도 목이 조금 말랐다.
"배당 이력 건, 저도 이상한 거 봤어요. 해당 구간 로그가 통째로 비어 있더라고요. 시스템 장애로 처리돼 있는데, 장애 시점이 딱 접수 직후예요."
서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도윤이 먼저 확인했고, 지우가 메모를 건넸고, 서하도 숫자를 맞춰 봤다. 그런데 문제는 정보가 아니라 방향이었다. 오승우가 왜 이걸 자기한테 말하느냐. 팀장이 신입 앞에서 내부 기록 이상을 꺼내는 건, 보통 친절이 아니었다.
"자료가 있어요."
오승우가 말했다.
"제가 따로 정리해 둔 건데.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요. 한 번 보고 판단하시면 되죠."
서하는 그제야 그를 똑바로 봤다. 오승우는 웃지도 않았고, 굳이 진지한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래서 더 읽히지 않았다. 친절한 사람의 얼굴은 가끔 제일 불친절했다.
"생각해 볼게요."
"보통 그 말은 반쯤 거절인데."
"보통은요."
오승우가 피식 웃었다.
"그럼 아직 반은 살았네요. 다행이다. 오늘 제육이 생각보다 맵던데, 완전 거절까지 당하면 위장에 안 좋거든요."
서하는 웃지 않으려다가 입꼬리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이런 타이밍에 위장 타령이라니. 이상하게 더 경계가 갔다. 웃기는 사람이 더 무서운 건, 방심하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그때 식당 안쪽에서 쟁반 하나가 철컥 미끄러졌다.
"아, 진짜."
누군가 짜증 섞인 소리를 냈고, 줄 끝에서는 된장국 떨어졌냐는 말이 들렸다. 시끄러운 소음이 잠깐 반가웠다. 둘만 있는 테이블이 아니라는 증거 같아서.
사무실로 돌아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서하는 휴대폰을 꺼냈다. 지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잠깐 얘기 가능해요?'
답은 바로 왔다.
'지금 외근.'
이 초 뒤, 한 줄이 더 붙었다.
'근데 왜. 뭔 일 있어?'
서하는 답장을 쓰다가 지웠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보상팀 복도에는 늘 맡던 냄새가 걸려 있었다. 오래된 서류철의 종이 냄새, 복사기 열기, 식지 않은 커피 냄새. 형광등 하나는 또 반쯤 죽은 얼굴로 깜빡이고 있었다. 서하는 그 아래를 지나치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반사적인 동작이었다. 언제부터 저 등을 피해 다녔는지도 몰랐다.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켜자마자 민주 건 현황이 떴다. 추가 서류 접수 기한, 이틀. 숫자는 건조한데 사람을 조급하게 만드는 데는 늘 재주가 있었다. 서하는 파일을 열고 접수 일시와 배관 파열 사고 날짜를 다시 나란히 놓았다. 지우가 적어 준 숫자들이 자꾸 다른 숫자 옆으로 달라붙었다. 우연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가지런했다. 그렇다고 연결이라고 말하기엔 한 조각이 모자랐다. 그 아래 탭에는 장기보험 미지급 소송 건 진행 현황이 걸려 있었다. 도윤이 직접 잠가 둔 열람 권한 표시. 서하는 열 수 없는 파일을 잠깐 바라보다가 창을 닫았다. 닫힌 창이 오히려 더 신경 쓰였다.
오후 세 시쯤, 회의실 문이 열렸다. 도윤이 나왔다. 서하와 눈이 한 번 마주쳤다. 그런데 도윤은 멈추지 않았다. 자기 자리로 돌아가 마우스를 잡고 화면을 봤다. 평소와 같은 동작인데 어딘가 한 칸씩 늦었다. 어깨가 조금 내려가 있었다. 피곤해서인지, 화가 나서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서하는 묻지 못했다.
'무슨 말 들었어요.'
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거기서 멈췄다. 대신 서류를 넘겼다.
네 시가 넘어서 도윤이 자리를 비웠다. 화장실 방향이 아니었다. 계단 쪽이었다. 서하는 그 뒷모습을 보다가 시선을 거뒀다. 따라가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냥 혼자 있고 싶은 사람의 걸음이었다. 그 걸음을 알아볼 수 있다는 게, 서하는 조금 불편했다.
퇴근 시간이 지나자 사무실은 조금씩 비었다. 누군가 의자를 밀어 넣는 소리, 프린터가 마지막으로 종이를 뱉는 소리, 멀리서 자동 소등 직전의 기계음이 낮게 울렸다. 늦은 밤 사무실은 늘 비슷했지만, 오늘은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서하는 민주 건 서류를 한 번 더 펼쳤다. 손끝에 닿는 종이가 약간 눅눅했다. 누가 급하게 들고 다녔는지 모서리가 미세하게 울어 있었다. 젖은 서류는 아니었지만, 마른 척하는 종이의 촉감이 꼭 그랬다.
휴대폰이 진동했다. 서하는 반사적으로 화면을 봤다. 문자가 아니었다. 부재중 전화. 윤태훈. 아버지였다. 오후 여섯 시 삼 분. 서하가 구내식당에서 트레이를 붙잡고 오승우를 보고 있던 그 시간이었다. 서하는 휴대폰을 뒤집어 책상 위에 엎어 놓았다가, 다시 집어 들었다. 열여덟 번째 날이었다. 그동안 먼저 건 적은 없었다.
콜백 버튼 위에 엄지가 올라갔다가 멈췄다. 무슨 일이지. 안부일 수도 있었다. 안부가 아닌 일일 수도 있었다. 이상하게 그 둘 중 어느 쪽이든 더 겁이 났다. 안부라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이렇게 오래 망설인 자신이 우스워질 테고, 안부가 아니라면 여섯 시 삼 분에 받지 못한 게 두고두고 남을 테니까.
서하는 결국 전화를 걸지 못했다. 대신 창밖을 봤다. 어두워진 유리창에 자기 얼굴이 흐리게 비쳤다. 도윤이 아직 말하지 않은 것, 오승우가 건네려는 자료, 이틀 남은 기한, 그리고 여섯 시 삼 분에 찍힌 이름 세 글자. 손을 뻗어야 할 곳이 너무 많았다.
그때 옆자리에서 의자가 아주 작게 끌리는 소리가 났다. 서하는 고개를 돌렸다. 아직 안 간 사람이 있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도윤이었다. 화면을 보고 있었는데, 서하 쪽을 보고 있지 않은 것치고는 어딘가 의식하는 각도였다. 두 사람 사이에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런데 어젯밤과는 달랐다. 침묵의 무게가 조금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