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해가 처마 끝에 걸리기 전, 담소하는 두 번째 물동이를 부엌에 부었다. 어깨가 욱신거렸다. 잠을 설친 탓이 아니라 새벽부터 광에서 쌀가마를 옮긴 탓이었다. 묘장덕이 허리를 다친 뒤로 무거운 일은 전부 담소하의 몫이 되어 있었다. 물동이를 선반에 올리려는 순간, 부엌 안쪽에서 낯선 소리가 났다. 칼이 도마를 두드리는 소리였다. 빠르고 고르며, 쓸데없는 힘이 없었다.
노경천이 앞치마를 두르고 파를 썰고 있었다.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팔뚝에는 희미한 칼자국 몇 줄이 보였지만, 손놀림은 영락없는 살림꾼의 것이었다. 그가 고개를 돌리며 웃었다.
"소하야, 어제 저녁도 제대로 못 먹었잖아. 형이 국이라도 끓여야지."
담소하는 대꾸 없이 물동이를 올렸다. 삼 년 동안 이 부엌에서 칼을 잡은 사람은 묘련과 자신뿐이었다. 낯선 사람이 그 자리를 채운 풍경이 묘하게 거슬렸다. 그러나 거슬린다고 말할 근거는 없었다. 노경천은 사형이었다. 사형이 밥을 해 주겠다는데 싫다 할 이유도, 쉽게 찾을 말도 없었다.
"여기 오래 계실 겁니까."
확인에 가까운 어조였다. 노경천은 썬 파를 물에 헹구며 대답했다.
"당분간은. 형이 밖에서 떠돌아봤자 네 걱정만 늘더라. 차라리 여기서 일손이라도 보태는 게 낫지 않겠냐."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묘련이 부엌 문을 열고 들어왔다. 맨발이었고, 머리카락은 한쪽으로 흐트러져 있었다. 아직 잠이 덜 깬 얼굴이었지만 눈만은 또렷했다. 노경천을 보자 걸음이 한 박자 멈췄다.
"……벌써 일어났네."
그를 향한 말이었지만 끝이 평소보다 짧았다. 노경천은 도마에서 손을 떼고 고개를 숙였다.
"묘련 낭자, 부엌을 마음대로 써서 죄송합니다. 어제 허락을 구했어야 했는데."
묘련은 대답 대신 아궁이 쪽으로 가서 불씨를 확인했다. 담소하가 이미 피워 둔 불이 고르게 타고 있었다. 등을 돌린 채 그녀가 말했다.
"국은 내가 끓일게. 손님이 부엌에 서 있으면 아버지가 싫어해."
노경천은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그러십시오. 그럼 저는 마당이나 쓸겠습니다."
그가 앞치마를 벗으며 담소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손이 어깨에서 등 쪽으로 자연스럽게 미끄러졌다가 떨어졌다. 찰나였다. 그러나 담소하는 그 손의 궤적을 놓치지 않았다. 등 왼쪽, 화상 자국이 있는 부위를 스치듯 짚은 손가락이었다. 묘련도 그것을 봤다.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은 자세 그대로, 그녀의 시선이 노경천의 손끝을 따라갔다가 담소하에게 닿았다. 잠깐 마주친 눈빛 속에는 말보다 빠른 경계가 있었다. 담소하가 먼저 시선을 돌리자, 묘련은 입을 열었다가 부지깽이를 집어 재를 헤집었다.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전 내내 노경천은 정말로 마당을 쓸고, 장작을 패고, 손님상을 날랐다. 솜씨가 좋았다. 무인의 몸이라 힘이 남아돌았고, 웃는 얼굴에 거부감이 없어 손님들도 곧잘 말을 붙였다. 점심 무렵 들른 약재상 마노인이 노경천에게 술을 한 잔 따르며 물었다.
"자네 같은 젊은이가 이런 시골 객잔에서 뭘 하나?"
노경천이 술잔을 받으며 웃었다.
"사제가 여기 있으니 형도 있는 겁니다."
마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목소리를 낮췄다.
"그런데 말이야, 요즘 이 길로 다니기 영 껄끄럽지 않은가. 청석관 쪽 관도에 흑풍채 놈들이 검문을 세웠어. 약재 수레를 세 번이나 뒤졌다네. 뭘 찾는 건지 원."
담소하는 부엌 안에서 그릇을 씻다 손을 멈췄다. 물소리가 잠시 끊겼다가 다시 이어졌다. 흑풍채. 그 이름이 귓속에서 낮게 울렸다. 마노인의 말이 이어졌다.
"듣자니 사람을 찾는다더군. 왼손잡이 소년이라나 뭐라나. 삼 년 전 어디선가 도망친 놈이래."
마노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술을 들이켰지만, 담소하의 왼손은 그릇 가장자리에서 미세하게 떨렸다. 노경천은 술잔을 내려놓으며 태연하게 받았다.
"왼손잡이 소년이라, 강호에 그런 아이가 한둘이겠습니까. 산적들이 괜히 행패를 부리는 거겠지요."
마노인이 킬킬 웃었다.
"그렇겠지. 산적이 무슨 대의가 있다고."
마노인이 떠난 뒤, 담소하는 뒷마당 우물가에서 손을 씻었다. 노경천이 다가왔다. 형의 그림자가 담소하의 발치에 길게 드리웠다.
"들었지?"
담소하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손에 묻은 물을 털고 허벅지에 문질렀다. 노경천이 한 걸음 더 가까이 왔다. 목소리가 낮아졌다.
"소하야. 그놈들이 여기까지 온다. 이 객잔에 네가 있다는 걸 아직 모를 뿐이지, 시간문제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 검을 잡아야지."
노경천의 말은 부드러웠으나 물러설 틈이 없었다.
"형이 가르쳐 줄 수 있다. 네가 잊어버린 것들, 형은 아직 다 기억하고 있어."
담소하는 우물 안을 내려다보았다. 어둡고 깊었다. 수면 위로 자신의 얼굴이 일렁였다. 그 아래에서 삼 년 전의 밤이 문득 떠올랐다. 사부의 손이 등을 짓누르던 감촉, 살이 타는 냄새, 뒤돌아보지 말라던 목소리. 한 번 밀려온 기억은 내공이 흐트러질 때처럼 숨을 얕게 만들었다. 담소하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아직은."
그것이 대답의 전부였다. 노경천은 더 재촉하지 않았다. 다만 돌아서는 걸음이 느렸고, 뒷모습에서는 이미 미소가 지워져 있었다. 담소하는 그 등을 보며 이상하게도 안도보다 피로를 먼저 느꼈다. 반가움이 남아 있는데도, 그 반가움 위로 얇은 얼음장이 덮이는 기분이었다.
오후에 묘련이 담소하를 장터에 보냈다. 약재가 필요하다는 핑계였지만 건넨 목록은 세 줄뿐이었다. 뒷문을 나서려는 담소하의 소매를 묘련이 잡았다.
"그 사람."
묘련이 말했다.
"네 사형이라고 했지."
"예."
"그 사람이 네 등을 만진 거, 알지?"
담소하가 멈췄다. 묘련의 눈이 똑바로 그를 보고 있었다. 퉁명스럽지도, 노골적으로 다정하지도 않은 눈이었다. 다만 확인하려는 눈이었다.
"사형은 원래 그런 사람입니다. 걱정이 많으니까요."
묘련의 손이 소매에서 떨어졌다.
"……그래. 걱정이 많은 사람이겠지."
그녀는 등을 돌렸다. 담소하는 그 등을 잠시 보다가 장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걷는 내내 묘련의 마지막 말투가 머릿속에 남았다. 믿지 않는 사람의 어조였다. 그 말이 괜히 마음에 걸린 것은, 자신도 완전히 믿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터에서 약재를 사는 동안 담소하는 습관대로 주위를 살폈다. 황주 장터는 작고 한가로웠다. 두부를 파는 노인, 천을 재단하는 아낙, 술에 취해 처마 밑에 누운 떠돌이 하나. 겉으로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 객잔 뒷골목에서 담소하는 발을 멈췄다. 길가에 버려진 짚신 한 짝이 보였다. 짚신 코가 안쪽으로 꺾여 있었다. 급히 벗은 것이다. 그 옆 흙바닥에는 발자국이 세 개 찍혀 있었다. 맨발이었고, 크고, 깊었다. 무거운 사람이 보법을 죽인 채 뛰어간 흔적이었다. 담소하는 허리를 낮춰 자국의 깊이를 살폈다. 담을 넘기 전 잠시 힘을 실은 발이었다. 시선이 자연스레 자국의 방향을 따라갔다. 객잔 뒤편, 묘련이 약초를 말리는 마당 쪽이었다.
담소하는 곧장 발걸음을 재촉했다. 약초 마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빨랫줄에 널린 약초 다발이 바람에 흔들릴 뿐이었다. 그러나 마당 구석의 흙은 파헤쳐져 있었다. 누군가 담 밑을 파고 안을 들여다본 흔적이었다. 담소하는 무릎을 꿇고 손가락으로 흙을 짚었다. 아직 마르지 않은 흙이 손끝에 묻었다. 파인 자리 안쪽에서 납작한 것이 만져졌다. 철편이었다. 뒤집어 보니 한쪽 면에 바람 풍(風) 자가 거칠게 새겨져 있었다. 흑풍채의 표식이었다.
담소하의 손이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철편의 모서리가 손바닥에 파고들었다. 이미 여기까지 온 것이다. 아직 객잔 안으로 들이닥치지는 않았지만, 담 밑을 판 흔적은 분명했다. 누군가 이곳을 살폈고, 다시 올 수 있었다. 더는 모른 척 버틸 수 없었다. 객잔에 남아 숨을 것인가, 아니면 검을 다시 잡을 것인가. 선택은 미뤄 둔다고 사라지지 않았다. 담소하는 철편을 품 안에 넣고 일어섰다. 부엌 쪽에서 노경천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손님에게 술을 따르며 농담을 건네는 소리였다. 그 웃음이 평소와 다를 바 없었기에, 오히려 더 기이했다. 담소하는 그 순간 처음으로 생각했다. 형이 자신을 지키려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에게서 무언가를 꺼내려는 것인지.
그날 밤, 담소하는 뒷마당에 나오지 않았다. 매일 밤 나뭇가지를 들고 나와 검초식을 그리던 습관을 깨뜨린 것은 삼 년 만에 처음이었다. 방 안에 누운 채 천장을 보았다. 등의 화상 자국이 욱신거렸다. 아프다기보다 뜨거웠다. 그 밤의 불이 아직 꺼지지 않은 듯했다. 손에는 낮에 주운 철편이 쥐어져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누워 있던 담소하는 끝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망치듯 검초식을 되풀이하는 것으로는 더 버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결심이라면 결심이었다.
달이 반쯤 걸려 있었다. 평소 쓰던 나뭇가지가 담 아래 세워져 있었다. 담소하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손에 익은 무게였다. 삼 년 동안 검 대신 쥐어 온 것이었다. 잠시 쥔 채 서 있던 그는, 이내 양손에 힘을 주어 나뭇가지를 분질렀다.
"뚝."
마른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고요한 마당에 울렸다. 담소하는 부러진 나뭇가지를 내려다보며 오래 서 있었다. 나뭇가지가 아니라, 스스로를 속이던 버릇 하나를 부러뜨린 기분이었다.
"못 자?"
어둠 속에서 묘련의 목소리가 났다. 부엌 뒷문 앞에 서 있었다. 손에는 물 사발이 들려 있었다.
"여기, 물."
담소하는 부러진 나뭇가지를 발치에 내려놓고 물을 받았다. 한 모금 마시고 사발을 돌려주었다. 묘련은 사발을 받으면서 그의 손바닥을 보았다. 철편이 파고든 자국이 선명했다. 그녀는 묻지 않았다. 다만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
"내일 아침엔 손부터 씻어. 상처에 흙 들어가면 곪아."
담소하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고개를 아주 조금 숙였다. 그 짧은 침묵 속에서 마음이 이상하게 가라앉았다. 형을 향한 경계가 날카로워질수록, 묘련의 무심한 한마디는 더 무겁게 남았다. 불안이 가시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혼자는 아니라는 감각이 잠깐 그의 발을 붙들었다.
묘련이 부엌 안으로 사라진 뒤에도 담소하는 한참 서 있었다. 부러진 나뭇가지 반쪽이 발 옆에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처마 아래 등불이 흔들렸고, 담소하의 그림자가 마당 위에서 길게 일렁였다. 그 그림자 너머, 객잔 이층 창문에서 노경천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둠 속의 눈이 달빛을 받아 차갑게 빛났다. 담소하가 나뭇가지를 꺾는 순간부터 지켜본 눈이었다. 노경천의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입 모양은 읽을 수 있었다.
'됐다.'
그리고 창문 아래, 그의 손에는 접힌 종이 한 장이 들려 있었다. 바람이 스치자 종이 끝이 살짝 들렸다. 먹선으로 그린 사람의 등이 언뜻 드러났다. 화상 자국의 자리까지, 지나치게 정확한 그림이었다. 담소하가 그 창문을 올려다보지 않은 것이 차라리 다행이었다. 만약 봤다면, 형의 눈에서 걱정 대신 계산을 읽어 버렸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