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점심, 서하는 편의점 삼각김밥 포장을 뜯다가 손가락에 밥풀을 묻혔다. 참치마요. 두 개에 천오백 원. 이번 달 셋째 주인데 벌써 점심값을 편의점으로 줄인 건 네 번째였다.
"윤서하, 민주 씨 건 수정서류 수진 씨한테 팩스 보냈다며."
지우가 자기 자리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서하는 밥풀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토요일에요. 확인 문자는 아직 안 왔는데."
"토요일에 출근까지 했으면 카톡이라도 한 번 더 보내. 수진 씨 스타일이 그래. 팩스는 확인 전화 안 하면 안 본 걸로 치거든." 지우가 손가락으로 전화기를 흉내 내며 말했다. 서하가 수진에게 문자를 보내려 핸드폰을 집어 드는데, 먼저 수신함에 알림이 떠 있었다. 수진이 아니라 민주였다.
'윤 담당자님, 오늘 가게 못 열었어요. 죄송한데 내일 통화 가능할까요.'
시간을 보니 오전 열 시. 세 시간 전이었다. 서하는 삼각김밥을 내려놓았다. 세탁소는 보통 아홉 시면 문을 여는 곳이었다. 민주가 쉬는 날은 격주 일요일뿐이라고, 첫 통화 때 직접 말했었다.
서하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 두 번 울리고 민주가 받았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한 톤 낮았다.
"아, 담당자님. 죄송해요, 별일 아닌데 문자 보내놓고 보니까 좀 그렇죠."
"아니에요. 무슨 일이세요, 민주 씨?"
짧은 침묵이 흘렀다. 수화기 너머로 무언가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제습기 같았다.
"누수 잡는다고 배관 공사를 했는데, 어제 밤에 또 샜어요." 민주의 목소리가 거기서 끊겼다.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숨을 삼키는 것 같기도 했다. "세탁물이 또 젖었거든요. 고객 옷이에요. 코트 세 벌에 이불 두 채. 다 물어줘야 해요, 아마."
서하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민주가 먼저 말을 이었다. "보험이고 뭐고 지금 그거 따질 상황이 아닌 건 아는데, 그냥. 오늘 문 열 수가 없더라고요."
전화를 끊은 뒤 서하는 수진에게 먼저 연락했다. 상황을 설명하자 수진의 반응은 예상보다 빨랐다.
"지금 어디야? 내가 거기로 갈게. 현장 한 번 봐야 하니까."
서하와 수진이 민주의 세탁소에 도착한 것은 오후 두 시 반이었다. 골목 안쪽, 간판의 형광등이 꺼져 있었다. 유리문에 'CLOSED' 대신 A4 용지가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매직으로 '금일 휴무'라고만 적혀 있었다. 글씨가 삐뚤어져 있었다.
수진이 유리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슬리퍼 끄는 소리가 나고, 민주가 문을 열었다.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지만 앞치마 아래 옷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세탁소 안은 제습기 두 대가 돌아가고 있었고, 바닥에 깔린 수건이 군데군데 물을 머금고 있었다. 행거에 걸린 비닐 포장 안쪽에 물방울이 맺혀 있는 게 보였다.
"아이고, 이렇게까지 오실 일이." 민주가 손을 휘휘 저었다. "커피라도 드릴게요. 아, 전기포트도 콘센트 빼놨다. 누전 무서워서."
수진이 바닥 상태를 살피며 말했다. "배관 공사 업체 어디 쓰셨어요?"
"건물주가 부른 데요. 내가 고를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민주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날이 섰다가, 금방 스러졌다. "미안해요. 짜증나서 그래."
수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배관 쪽을 촬영했다. 서하는 행거 사이를 지나며 젖은 세탁물 목록을 민주에게 물었다. 민주가 카운터 서랍에서 접수증 뭉치를 꺼냈다. 손으로 쓴 접수증이었다. 고객 이름, 의류 종류, 접수 날짜.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민주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 코트 고객이 제일 무서워요." 민주가 접수증 한 장을 짚었다. "캐시미어 롱코트. 클리닝비 삼만 원 받았는데, 코트 가격은 백이 넘어요. 물어달라고 하면 나는 뭘로 물어줘."
서하는 접수증의 날짜를 봤다. 누수 전날 접수. 하루 차이였다. 민주가 그 코트를 받지 않았으면, 적어도 그 한 벌만큼의 걱정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탁소는 손님이 옷을 맡기면 받는 곳이니까.
"민주 씨, 잠깐 앉으세요." 서하가 말했다. 민주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가, 의자가 젖어 있는 걸 뒤늦게 느끼고 일어서려 했다. 서하가 카운터 위에 있던 마른 수건을 집어 의자를 닦았다. 민주가 멍하니 그걸 바라보다가 다시 앉았다.
"우리 큰애가 이번 달 학원비 내야 하는데." 민주가 조용히 말했다. 세탁소를 둘러보는 눈이 이 공간 전체의 무게를 재는 것 같았다. "이틀만 쉬면 괜찮아요. 이틀이면. 근데 이틀 매출이 없으면 이번 달 관리비가 밀려. 관리비 밀리면 건물주가 또 뭐라 하고." 말이 꼬리를 물었다. 민주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깨달은 듯 입을 다물었다. "아, 왜 이러지. 담당자한테 이런 얘기를."
서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괜찮을 거예요'라고 하면 거짓말이고, '도와드릴게요'라고 하면 약속할 수 없는 것을 약속하는 꼴이었다. 서하는 그냥 거기 앉아 있었다. 제습기가 웅웅거리는 소리, 바닥의 수건에서 올라오는 눅눅한 냄새, 형광등 대신 비상등 하나만 켜진 세탁소의 푸르스름한 공기 속에서.
수진이 배관 사진을 찍고 돌아왔다. 민주에게 말했다. "배관 공사 업체 연락처하고 건물주 이름 좀 주세요. 누수 원인이 건물 공용 배관이면 책임 소재가 달라져요." 사무적이지만 틀린 말은 없었다. 민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뒤적였다.
세탁소를 나서는 길, 서하와 수진은 골목을 나란히 걸었다. 삼월 바람이 차가웠다. 서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수진 씨, 저 안에서 아무 말도 못 했어요."
수진이 반 박자 늦게 대답했다. "그게 맞아." 서하가 고개를 돌려 수진을 봤다. 수진의 표정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았다. "할 수 없는 말은 안 하는 게 맞아. 근데." 수진이 걸음을 멈추지 않고 말을 이었다. "거기 앉아 있었잖아. 그건 했어."
서하는 그 말을 곱씹었다. 사무실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핸드폰을 꺼내 아버지에게 카톡을 보냈다. '아빠, 이번 주 괜찮아?' 보내고 나서 화면을 껐다. 지난 금요일 밤에 보낸 '밥 먹었어?'는 아직도 읽씹 상태였다.
사무실에 돌아오니 도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서하가 자리에 앉는 걸 흘끔 보더니 물었다.
"민주 씨 건, 현장 갔다 왔어?"
"네. 수진 씨랑 같이요."
도윤이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배관 업체 정보 확보했으면 내일 아침까지 정리해. 건물주 측 과실 비율 잡으려면 초기 자료가 빨라야 해." 그러고는 덧붙였다. "수진 씨가 같이 갔으면 잘 된 거야."
칭찬인지 업무 지시인지 모를 한마디였다. 서하는 "네" 하고 대답한 뒤,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그런데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민주가 접수증을 넘기던 떨리는 손가락이 자꾸 겹쳐 보였다.
퇴근 시간이 지나고 사무실이 비기 시작했다. 서하는 배관 업체 정보를 정리하다가 도윤의 자리를 한 번 돌아봤다. 이미 퇴근한 뒤였다. 도윤의 책상 위에 토요일에 봤던 포스트잇은 보이지 않았다. 치운 건지, 가져간 건지. 서하는 그 노란 종이 위에 적혀 있던 '2019 건'이라는 글자를 떠올렸다. 수진의 필체. 수진은 오늘 세탁소에서도 사무적이면서 정확했다. 그런 사람이 디지털이 아니라 종이로, 그것도 다른 사람의 책상 위에 메모를 남긴다는 건.
서하는 생각을 접었다. 오늘은 민주의 하루만으로 충분히 무거웠다. 모니터를 끄고 가방을 챙기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아버지가 아니라 은별이었다.
'야, 살아 있어? 주말에 연락도 없고.'
서하는 '세탁소에서 사람이 울 뻔한 걸 봤어'라고 치다가 지웠다. 대신 '살아 있어. 내일 점심 같이 먹자'라고 보냈다. 보내고 나서 사무실 불을 껐다. 복도에 서하의 구두 소리만 울렸다. 민주의 세탁소 비상등 아래에서 본 그 눅눅한 공기가 아직 코끝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