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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9화]

축하한다고 말했는데

작성: 2026.03.13 14:06 조회수: 41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이 콘텐츠는 보험을 소재로 한 창작물이며 실제 상품 추천이나 보장 판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금요일 저녁 일곱 시, 을지로 골목 안쪽 이자카야. 은별이 생맥주 두 잔을 양손에 들고 와 테이블에 털썩 내려놨다. 서하는 코트를 벗다 말고 친구 얼굴을 올려다봤다. 평소보다 볼이 발갛고 눈이 반짝였다. 술기운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표정이었다.

"야, 나 할 말 있어."

은별이 맥주잔을 서하 쪽으로 밀었다.

"먼저 한 모금 마셔. 안 그러면 네가 먼저 울어."

서하는 웃으며 잔을 받았다.

"뭔데, 퇴사야? 로또야?"

"결혼."

맥주 거품이 입술에 닿기 직전, 서하의 손이 멈췄다. 은별 얼굴에서 장난기가 빠지고 진심만 남는 게 보였다. 서하는 잔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빨리 뭐라도 말해야 할 것 같았는데, 목구멍에서 나온 건 짧은 두 글자뿐이었다.

"……진짜?"

"진짜. 5월쯤 할 것 같아. 스드메는 아직 하나도 못 정했고, 식장은 엄마가 벌써 세 군데나 봐뒀어. 나는 그냥 끌려다니는 중."

은별은 웃었지만 손가락 끝으로 맥주잔을 계속 돌리고 있었다. 서하는 그 버릇을 알았다. 은별이 긴장할 때마다 저랬다.

"축하해."

서하가 말했다.

"진심으로."

생각보다 담담한 목소리가 나왔다.

"……고마워."

은별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가 다시 들었다. 그러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서하를 봤다.

"근데 너 표정이 왜 그래. 장례식장 잘못 들어온 사람 같아."

"아니, 진짜 좋은데."

서하가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그냥 갑자기, 우리도 진짜 어른이 되어 가는구나 싶어서."

은별이 한참 서하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과장되게 한숨을 쉬었다.

"야, 나 카피라이터야. 감정 포장하는 게 직업인 사람한테 그 연기가 통할 것 같아? 솔직히 말해. 뭐가 그렇게 복잡해?"

그 말에 서하는 결국 웃었다. 이 사람 앞에서는 숨기는 게 오히려 더 어색했다. 에다마메를 하나 집어 까며 말했다.

"복잡한 건 아니야. 그냥…… 나는 요즘 세탁소 사장님 서류 수정하고, 사수 눈치 보고, 아버지한테 전화도 제대로 못 하고 살거든. 근데 너는 웨딩홀을 보러 다녀. 같은 시간인데 사는 모양이 너무 다른 거 아니야?"

"뭘 그렇게 로맨틱하게 포장해. 나도 이번 달 카드값 230이야. 웨딩홀이 무슨 디즈니랜드인 줄 알아? 나 예식장 주차장에서 울었어."

"왜?"

"견적서 보고."

은별이 진지하게 답하자 둘은 동시에 터졌다. 서하가 테이블을 치며 웃는 사이, 은별이 휴대폰을 꺼내 사진 하나를 보여줬다. 청첩장 시안이었다. 부드러운 아이보리색 바탕에 작은 문장이 들어가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가장 시시한 하루를 고른 사람들입니다.'

"이거 네가 쓴 거야?"

"응. 대표님이 이걸 왜 광고 카피가 아니라 청첩장에 쓰냐고 하더라."

서하는 그 문장을 한참 들여다봤다. 시시한 하루. 별거 아닌 날들. 그 말이 이상하게 목에 걸렸다. 자기에게도 그런 하루를 같이 보낼 사람이 있는지 묻는 것 같았다. 지금 서하의 시시한 하루에는 접수 번호, 수정 요청, 그리고 3초짜리 통화 기록만 있었다.

"……예쁘다."

서하가 말했다. 이번에는 억지로 짜낸 말이 아니었다.

은별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목소리를 낮췄다.

"서하야, 나 사실 좀 무서워. 결혼이 무서운 건 아닌데, 이제 진짜 어른인 척을 계속해야 하잖아. 회사에서도, 시댁에서도, 남편 앞에서도."

잠깐 말을 멈춘 뒤, 작게 덧붙였다.

"카피는 잘 쓰면서 내 인생에는 맞는 문장이 없는 것 같아, 가끔."

서하는 대답 대신 은별 잔에 맥주를 따라 줬다. 두 사람은 잠깐 말없이 마셨다. 가게 안쪽 어디선가 생일 축하 노래가 흘러나왔고, 누군가 박수를 쳤다. 은별은 웃고 있었지만 손가락 끝은 여전히 잔을 돌리고 있었다. 서하는 축하한다고 말하면서도 자기 삶의 빈칸을 세고 있었다. 오래된 친구 사이에는 그런 순간이 있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의 공허함이 테이블 위로 조용히 올라오는 순간.

가게를 나온 건 열 시가 넘어서였다. 서하는 을지로 골목을 걸으며 휴대폰을 꺼냈다. 발신 기록 맨 위에 '아빠'가 있었다. 마지막 통화 시간은 3초. 오늘따라 그 숫자가 유난히 작아 보였다. 엄지손가락이 통화 버튼 위에서 잠깐 멈췄다. 은별의 청첩장 문구가 떠올랐다. 시시한 하루를 고른 사람. 서하는 아버지와 그런 하루를 보낸 게 언제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망설이던 끝에 그냥 눌렀다. 신호음이 다섯 번 울렸다. 여섯 번, 일곱 번. 끝내 받지 않았다. 서하는 전화를 끊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3월 밤바람이 생각보다 차가웠다. 늦은 시간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넘기려 했는데, 발걸음이 자꾸 느려졌다.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가며 카카오톡을 열었다. 아버지와의 대화창 마지막 메시지는 서하가 보낸 것이었다.

'아빠 밥 먹었어?'

읽음 표시만 있고 답장은 없었다. 몇 줄을 썼다 지웠지만 끝내 보내지 못했다. 서하는 화면을 껐다. 조금 전까지 웃고 있던 기분이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토요일 오전, 서하는 결국 사무실에 나왔다. 민주 건 수정본을 수진에게 다시 보내야 했다. 팩스 수신만 확인하면 되는 일이었지만, 금요일 퇴근 전에 끝내지 못한 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 형광등 절반이 꺼진 보상팀은 평일과 전혀 다른 장소처럼 보였다. 사람 없는 사무실 특유의 정적이 더 크게 들렸다.

서하는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민주 접수 서류를 다시 열어 항목을 확인하고, 수정본을 정리해 팩스를 보냈다. 기계가 종이를 삼키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수신 확인 표시가 뜨는 걸 보고서야 겨우 숨을 돌렸다.

그때 무심코 돌린 시선이 도윤의 책상에서 멈췄다.

도윤은 늘 책상을 비우고 퇴근하는 사람이었다. 모니터 옆에 펜 한 자루, 메모지 한 권 정도만 남겨 두는 식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키보드 옆에 포스트잇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서하는 처음엔 못 본 척하려 했다. 굳이 볼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가까이 가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글씨는 도윤의 것이 아니었다. 둥글고 작은 필체. 서하는 그 글씨를 알고 있었다. 수진의 글씨였다.

'2019 건 — 원무과 기록 남아 있음. 확인 요망.'

서하의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었다. 2019. 며칠 전 도윤이 더 묻지 말라는 듯 선을 그었던 바로 그 해였다. 서하는 시선을 떼고 자기 자리로 돌아왔지만, 노트북 화면 속 글자는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수진이 굳이 포스트잇으로 메모를 남겼다는 건 전화나 메신저로 남기기 어려운 이야기라는 뜻 같았다. 기록이 남으면 곤란한 말이거나, 누군가 보면 안 되는 말이거나.

잠깐만 더 확인해 볼까.

그 생각이 스쳤다. 원무과 기록이 남아 있다면 사내 시스템 어딘가에도 흔적이 있을지 몰랐다. 손은 이미 마우스 위에 올라가 있었다. 하지만 서하는 손가락에 힘을 주지 않았다. 지금 열면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선을 넘는 일이 될 것 같았다.

결국 서하는 마우스에서 손을 뗐다. 노트북을 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르는 척 나가는 쪽을 택했는데도 마음은 전혀 가벼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확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오래 남을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휴대폰을 확인했다. 아버지에게서 온 메시지는 여전히 없었다. 대신 은별에게 사진 한 장이 와 있었다. 어젯밤 둘이 찍은 셀카 아래에 짧은 문장이 붙어 있었다.

'네 축하가 제일 좋았어. 고마워, 진짜로.'

서하는 그걸 보고 잠깐 웃었다. 그런데 문이 닫히기 직전, 다시 도윤 책상 위 포스트잇이 떠올랐다. 원무과 기록. 수진. 2019. 그리고 확인 요망. 누가 뭘 확인하려는 건지, 왜 이제 와서 그 기록이 다시 올라온 건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아직 묻지 말아야 할 것들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서하가 그걸 알아차리는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는 것. 그 사실이 이상하게 불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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