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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8화]

도윤의 침묵

작성: 2026.03.13 13:07 조회수: 39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이 콘텐츠는 보험을 소재로 한 창작물이며 실제 상품 추천이나 보장 판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화요일 아침, 보상팀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어제 팀 전체 메일함에 꽂힌 민원 한 통이 밤새 사라지기는커녕 사람들 어깨 위에 그대로 얹힌 채 출근한 것 같았다. 팀 채팅방에 주간 일정표가 올라왔는데도 아무도 ‘확인했습니다’ 이모지 하나 달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제일 먼저 장난을 치던 지우도 잠잠했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시끄러웠다.

서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자판기로 갔다. 종이컵이 덜컹 떨어지고 믹스커피가 쏟아지는 소리가 괜히 크게 들렸다. 설탕 두 스틱. 아침부터 단맛이 당기는 날은 대개 좋은 날이 아니었다. 컵을 들고 자리로 돌아와 앉자 모니터 옆 포스트잇이 눈에 들어왔다. 지우 글씨였다.

‘서하야, 어제 말한 파일 공유폴더에 올려놨어. 2019년 건. 시간 나면 봐. 비번은 평소 그거.’

서하는 포스트잇 끝을 손톱으로 몇 번 눌렀다. 어제 민원 이후 지우가 평소처럼 굴수록 오히려 더 신경이 쓰였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사람은 둘 중 하나였다. 진짜 아무렇지 않거나, 아무렇지 않아야만 버틸 수 있거나.

공유폴더를 열자 파일 하나가 떠 있었다.

‘참고_과거유사사례_2019_비공개’. A4 여섯 장 분량이었다. 서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첫 장을 넘겼다가 그대로 멈췄다. 담당자 이름은 이니셜 처리. 강○○.

강.

팀 안에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물론 회사 전체로 치면 강 씨가 한둘은 아니겠지만, 처리 일자가 2019년 하반기였다. 도윤이 보상팀으로 온 시기와 정확히 겹쳤다. 서하는 괜히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았다. 사고 유형은 상해 보상 건. 민원인 측 주장은 담당자의 현장 판단 오류. 결과란에는 짧게 적혀 있었다.

‘내부 종결, 재발 방지 조치 완료.’

그 뒤 설명은 비어 있었다.

빈칸이 이상했다. 보상팀 문서는 대개 친절할 만큼 장황했다. 누가, 언제, 무엇을, 왜. 책임을 나누기 위해서라도 기록은 길어지는 법인데, 이 파일은 꼭 누군가가 중요한 문장만 도려내고 남은 껍데기 같았다.

“뭐 그렇게 얼굴까지 굳어 가면서 봐?”

뒤에서 목소리가 들리자 서하가 화들짝 놀랐다. 지우였다. 한 손에는 편의점 샌드위치, 다른 손에는 우유를 들고 있었다. 어제 민원의 당사자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평소 같은 얼굴이었다. 그래서 더 수상했다.

“선배, 인기척 좀 내고 오시면 안 돼요?”

“보상팀에서 인기척 내고 다니면 일 못 배운 거야.”

지우는 능청스럽게 말하며 서하 옆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어때, 도움 되지?”

서하는 모니터를 반쯤 가린 채 물었다.

“이 파일… 왜 저한테 보내준 거예요?”

“담당자 과실 분류 민원 들어오면 절차가 어디까지 가는지 감 잡으라고.”

지우가 샌드위치 포장을 뜯었다.

“어제 일도 있었고. 이런 건 미리 봐 두는 게 나아.”

“그런데 이 담당자 이니셜이…”

서하가 말을 흐리자 지우의 손이 아주 잠깐 멈췄다. 정말 잠깐이었다. 포장 비닐이 바스락거리다 멎는 정도. 하지만 서하는 봤다.

“혹시 누구인지 알아요?”

지우는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고 천천히 씹었다. 시간을 버는 사람처럼. 그러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알 필요 없는 부분은 안 찾아봐. 괜히 알아서 좋은 것도 없고.”

말은 가벼웠는데 속도만 이상하게 빨랐다. 서하는 그 미묘한 어긋남을 놓치지 못했다. 지우는 곧바로 화제를 틀었다.

“그보다 민주 씨 세탁소 건 서류 정리 다 했어? 오늘 수진 선배한테 넘겨야 하잖아.”

“거의요.”

“거의가 제일 무서운 말인 거 알지? 보상팀에서 ‘거의’는 나중에 꼭 전화 온다.”

평소 같으면 웃었을 농담인데, 오늘은 웃음이 잘 나지 않았다. 서하는 파일을 닫았지만 ‘내부 종결, 재발 방지 조치 완료’라는 문장은 화면이 꺼진 뒤에도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오전 열한 시쯤, 서하는 민주 씨 세탁소 건 최종 접수 서류를 들고 수진 자리로 갔다. 수진은 서류를 받아 한 장씩 넘기더니 빨간 펜으로 두 군데를 동그랗게 표시했다.

“여기, 건물 관리 주체 확인란 비어 있고. 여기는 피해 물품 목록 수량이 안 맞아.”

서하가 바로 사과하려는데 수진이 먼저 말을 이었다.

“급하게 한 건 알겠는데, 빈칸 하나가 나중에 민주 씨한테 불리하게 돌아갈 수 있어. 고객은 우리 실수까지 감당해 주지 않아. 고쳐서 오후에 다시 가져와.”

혼나는 말인데도 이상하게 덜 서러웠다. 서하가 놓친 게 정확히 뭔지 짚어 주는 혼남은, 적어도 다음에는 덜 틀리게 해 줬다.

“네. 바로 수정할게요.”

서류를 받아 들고 돌아서려다, 서하는 또 멈췄다. 오늘은 이상하게 질문이 자꾸 목까지 올라왔다. 안 하면 편한데, 안 하면 더 신경 쓰였다.

“수진 선배.”

“왜.”

“혹시 2019년에 보상팀에서 담당자 과실로 분류된 건 기억나는 거 있으세요?”

수진의 시선이 서류에서 서하 얼굴로 천천히 올라왔다. 그 짧은 몇 초가 길었다. 사무실 소음이 멀어지는 느낌까지 들었다.

“왜 그걸 묻는데?”

딱 한 문장이었는데, ‘지금 네가 그걸 왜 궁금해하지’가 통째로 들어 있었다. 서하는 얼른 둘러댔다.

“참고 파일 보다가요. 절차가 궁금해서…”

수진은 펜 뚜껑을 딸깍 닫았다.

“그런 건 파일로 봐. 사람한테 묻지 말고.”

단호했다. 그런데 그 뒤에 아주 짧게, 정말 짧게 눈빛이 흔들렸다. 서하는 그걸 본 척하지 않았다.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네. 수정해서 다시 가져올게요.”

자리로 돌아와 서류를 고치는데 손이 평소보다 느렸다. 건물 관리 주체, 피해 물품 수량, 접수 시간. 하나씩 채워 넣으면서도 머릿속은 자꾸 다른 데로 샜다. 파일로 보라는 말은 맞았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파일보다 사람들 표정이 더 많은 걸 말해 주고 있었다. 지우는 모른 척했고, 수진은 묻지 말라고 했다. 그러니 더 궁금해지는 게 사람 마음이었다.

점심시간, 지우가 서하를 구내식당으로 끌고 갔다. 메뉴는 김치찌개였다. 줄 서 있는 동안에도 지우는 앞사람 트레이를 보며 “오늘 두부 비율 괜찮네” 같은 소리를 했지만, 그 가벼움이 어쩐지 힘줘 만든 것처럼 들렸다.

자리에 앉자 지우가 먼저 어제 민원 이야기를 꺼냈다.

“민원은 민원이지. 내가 잘못한 부분 있으면 정리하면 되고, 아니면 소명하면 되고.”

“그래도 기분 나쁘지 않아요?”

“기분이야 당연히 나쁘지.”

지우가 국물에 밥을 말며 피식 웃었다.

“근데 이 일 하다 보면 기분 나쁜 걸 오래 붙들고 있으면 손해 보는 건 나더라. 민원인은 전화 끊으면 끝인데, 우리는 그 뒤에 서류랑 같이 살아야 하잖아.”

서하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도윤 선배가 어제 유난히 예민해 보이던데요. 원래 민원에 민감하세요?”

지우의 젓가락이 김치를 집다 말고 허공에서 멈췄다. 이번에는 아침보다 더 분명했다.

“예민하다기보다는…”

지우가 말을 고르더니 국물을 한 숟가락 떴다.

“옛날에 한 번 크게 데인 적이 있어. 그 뒤로 민원 들어오면 자기 일이 아니어도 서류부터 확인해. 습관이지.”

“그게 2019년 건이에요?”

서하가 바로 찔러 묻자 지우가 눈을 들었다. 잠깐, 둘 사이에 김치찌개 냄새 말고 다른 긴장이 섞였다.

“너 오늘 진짜 끝까지 가네.”

농담처럼 말했지만 웃지는 않았다. 서하는 괜히 물컵을 만지작거렸다.

“그냥… 알고 싶어서요.”

“알고 싶은 거랑 알아도 되는 거는 다를 때가 있어.”

지우가 낮게 말했다. 그러고는 다시 평소 톤으로 돌아가려는 듯 덧붙였다.

“아무튼 밥부터 먹어. 궁금증으로 배 안 차.”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서하는 그때 확실히 느꼈다. 이건 단순한 호기심으로 넘길 일이 아니었다. 팀 안에서 다들 같은 파일을 다른 방식으로 피하고 있었다. 그걸 확인한 순간, 서하 마음속 갈등도 더 선명해졌다. 그냥 모른 척하고 지나가면 편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이미 너무 많이 봐 버렸다.

오후 두 시, 수정한 서류를 들고 복도를 걷던 서하는 회의실 앞에서 발을 멈췄다. 유리문 너머로 도윤이 보였다. 혼자 앉아 노트북을 보고 있었는데, 손은 키보드 위에 올려둔 채 아무것도 치지 않고 있었다. 화면은 켜져 있는데 사람만 멈춘 것 같은 자세였다.

그냥 지나가면 됐다. 수진에게 서류를 넘기면 끝이었다. 그런데 오늘 하루 종일 쌓인 표정들이 등을 밀었다. 묻지 말라는 눈빛, 모른 척하는 말투, 그리고 어제 민원 메일을 보던 도윤의 얼굴. 서하는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묻자.

도망치듯 지나가면 오늘 밤에도 계속 생각날 것 같았다.

노크 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났다.

도윤이 고개를 들었다. 평소의 날카로운 눈이 아니었다. 먼 데를 보다가 겨우 초점을 맞춘 사람의 눈. 그게 더 낯설었다.

“뭐야.”

말투는 늘 같았다. 서하는 서류를 내밀었다.

“민주 씨 건 수정본이요. 수진 선배한테 넘기기 전에 혹시 확인해 주실 부분 있으시면…”

도윤은 서류를 받아 빠르게 훑었다. 늘 그렇듯 빨간 펜 한 번 들지 않고 바로 돌려줬다.

“됐어. 가져가.”

여기서 끝내면 됐다. 진짜로. 서하는 서류를 받으며 한 발 물러섰다. 그런데 손이 문고리를 잡기도 전에 입이 먼저 열렸다.

“선배, 한 가지만 물어봐도 돼요?”

도윤의 시선이 서하에게 고정됐다.

“뭔데.”

“2019년에 처리된 건 중에 담당자 과실로 분류된 사례가 있던데, 그거…”

끝까지 말하지도 못했다. 도윤의 손가락이 노트북 가장자리를 꽉 쥐었다. 손등 힘줄이 얇게 도드라졌다. 표정은 거의 변하지 않았는데, 그 손 하나가 다 말해 줬다.

“그 파일 어디서 봤어.”

질문이라기보다 확인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서하는 순간 거짓말을 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그런 건 더 이상해질 뿐이었다.

“지우 선배가 참고하라고…”

도윤의 얼굴이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 화를 내는 얼굴은 아니었다. 오히려 화를 내면 쉬울 텐데, 그걸 못 해서 더 단단히 닫혀 버린 얼굴에 가까웠다.

“그 건은 네가 알 필요 없어.”

낮고 단정한 목소리였다.

“담당자 과실 분류 절차가 궁금하면 매뉴얼 봐. 옛날 파일 뒤지지 말고.”

회의실 공기가 한꺼번에 식는 느낌이 들었다. 서하는 “네” 하고 대답한 뒤 문을 닫고 나왔다. 복도를 걷는 동안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혼난 건 아니었다. 그런데 그래서 더 이상했다. 도윤은 서하에게 화낸 게 아니었다. 그 파일에 반응한 거였다. 아니, 그 파일 속 자기 과거에.

오후 내내 팀 분위기는 묘하게 더 조용해졌다. 도윤은 평소보다 말수가 적었고, 수진은 필요한 말만 했다. 지우는 중간중간 농담을 던졌지만 아무도 크게 받지 않았다. 서하는 모니터를 보고 있으면서도 자꾸 회의실 장면이 떠올랐다. 노트북 가장자리를 쥔 손. 낮아진 목소리.

‘알 필요 없어.’

정말 알 필요가 없는 걸까.

아니면, 알면 안 되는 걸까.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서하가 코트를 꺼내는데 옆자리 지우가 모니터를 끄며 말했다.

“도윤이 형한테 물어봤구나.”

서하가 놀라 돌아보자 지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형이 나한테 전화했어. 누구한테 그 파일 줬냐고. 목소리가 되게 차분하더라.”

“차분하면 좋은 거 아니에요?”

“아니. 형은 차분할 때가 제일 무서워. 진짜 화난 사람은 오히려 조용해지거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지우가 덧붙였다.

“너 잘못한 건 아니야. 근데 그 사건이 형한테는 좀… 그래. 나도 전부 아는 건 아니고, 그때 형이 꽤 오래 힘들었다는 것만 알아. 그래서 그 유형 민원만 나오면 남 일인데도 먼저 움직이는 거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지우가 먼저 타고는, 닫히기 직전 다시 서하를 봤다.

“서하야. 그 파일 더 볼 거면 나한테 먼저 말해. 혼자 파지 말고.”

말투는 가벼운 척했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그 순간 서하는 아침부터 마음 한구석에 걸려 있던 의문이 조금 다른 모양으로 바뀌는 걸 느꼈다. 알고 싶은 마음은 그대로였다. 그런데 감정은 조금 달라졌다.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괜히 건드려 누군가를 더 아프게 한 건 아닐까 하는 미안함이 먼저 올라왔다. 그래도 이미 물어버린 이상, 이제는 무턱대고 캐는 대신 제대로 봐야 했다. 그게 서하가 오늘 내린 두 번째 결심이었다.

지하철에 앉은 서하는 이어폰을 꽂고도 음악은 틀지 않았다. 창문에 비친 자기 얼굴이 피곤해 보였다. 도윤의 손가락, 수진의 짧은 시선, 지우의 ‘크게 데인 적’이라는 말. 퍼즐 조각은 세 개나 손에 들어왔는데 그림은 여전히 흐렸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아버지였다. 서하는 잠깐 화면만 보다가 전화를 받았다.

“밥은.”

“먹었어요.”

“그래.”

통화는 금방 끊겼다. 어제보다도 짧았다. 서하는 검은 화면에 비친 자기 얼굴을 가만히 봤다. 아버지에게도, 도윤에게도 묻고 싶은 말은 많은데 정작 입 밖으로 나오는 건 늘 제일 짧은 문장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조금 전까지 답답하기만 하던 마음이 아주 조금 누그러졌다. 말이 짧다고 해서 마음까지 없는 건 아니라는 걸, 오늘 하루 내내 남의 표정으로 배웠으니까.

지하철이 터널로 들어가자 창밖이 통째로 어두워졌다. 그 어둠 속에서 서하는 오늘 하루를 다시 더듬었다. 지우는 정말 참고용으로만 파일을 보낸 걸까. 수진은 왜 그 질문 하나에 그렇게 단호해졌을까. 그리고 도윤은 왜 그 사건 얘기만 나오면, 화도 아니고 변명도 아닌 침묵부터 꺼내 드는 걸까.

그 순간, 휴대폰 상단에 공유폴더 알림이 새로 떴다. 발신자는 지우였다. 파일 하나가 추가되어 있었다.

제목은 짧았다.

‘2019_현장통화기록_삭제전_백업’

서하는 손끝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없던 파일이었다. 더 이상한 건, 알림이 뜨자마자 곧바로 뒤따라온 지우의 메시지였다.

- 지금 열지 마. 집 가서 혼자 봐.

지하철 문 위 전광판이 다음 역을 알렸지만, 서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삭제 전 백업.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누가 뭘 지우기 전에, 왜 따로 남겨 둔 걸까. 그리고 지우는 왜 하필 지금, 이걸 서하에게 보내는 걸까. 더 불길한 건, 파일명 아래 찍힌 수정 시간이 오늘 오후 세 시 십이 분이라는 점이었다. 서하가 도윤에게 그 일을 물어본 바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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