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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6화]

서명 한 칸이 비어 있다

작성: 2026.04.17 00:57 조회수: 26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이 콘텐츠는 AI가 창작한 장기 연재소설입니다. 실제 인물이나 사건과 무관한 창작물입니다.

구청 대강당 앞 주차장은 오전 아홉 시도 안 됐는데 이미 반쯤 찼다. 선우는 공동 질의서 묶음을 가슴에 끼고 입구 왼쪽을 훑었다. 최봉수 씨 자리는 없었다. 어젯밤 열한 시에 보낸 문자가 아직 읽지 않음 상태였다. 서미라가 옆에서 조용히 말했다.

"아직 안 온 건지, 안 올 건지."

선우는 대답 대신 안쪽으로 들어섰다.

강당 입구에서 조합 직원이 명단을 확인하고 있었다. 스티로폼 컵에 커피를 들고 선 중년 남자였는데, 명단을 보는 속도가 일부러 느린 것처럼 느껴졌다. 선우 앞에 선 사람이 이름을 대자 직원이 손가락으로 줄을 짚으며 체크했다. 선우가 이름을 댔을 때는 바로 통과됐지만, 서미라가 대강당 냉방기 소리가 낮게 윙윙거리는 쪽으로 들어서기 전에 뒤를 한 번 돌아봤다. 주차장 쪽에서 아직 봉수가 오는지 확인하는 동작이었다. 아무도 없었다.

의자는 플라스틱 접이식이었고, 앞줄부터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무대 위엔 조합 측이 준비한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주민과 함께하는 보상 설명회'

라는 글자 옆에 구의원 박도경의 이름이 작게 박혀 있었다. 공동 주최라고 적혀 있었지만 현수막 절반을 조합 로고가 차지하고 있었다. 누가 이 자리를 주도하고 있는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었다.

서미라가 앞줄 상인들 얼굴을 빠르게 스캔하다가 발을 멈췄다.

"저기 박 씨."

선우가 시선을 따라갔다. 생선 좌판을 하는 박점순이었다. 평소엔 서미라 옆에 붙어 앉던 사람인데, 오늘은 조합 측 직원 바로 뒤에 앉아 팔짱을 끼고 있었다. 표정이 굳어 있었다. 서미라가 낮게 내뱉었다.

"도장 찍은 거 아니야."

확인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서미라가 박점순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선우가 팔을 붙잡았다.

"지금 말 거는 거 최악이에요. 자리 먼저 잡아요."

서미라가 멈췄다. 숨을 한 번 고른 뒤 선우 앞을 지나 중간 줄에 앉았다. 앉는 동작이 조금 세게 내려갔다. 의자가 삐걱했다.

마틴은 강당 안에 들어오지 못했다. 주민 등록 기준으로 입장자를 확인하는데, 마틴의 주소는 아직 서류상 다른 구였다. 선우가 조합 직원에게 세입자 명부 확인을 요청했지만 직원은 오늘 배포된 명단 외엔 처리할 수 없다고 했다. 처리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처리하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선우는 일단 물러났다. 마틴에게 문자를 보냈다.

'밖에 있어. 나중에 봐.'

마틴이 강당 입구 옆 계단 난간에 기대어 담배를 꺼내 물었다. 불은 붙이지 않았다. 주차장 쪽에서 차 한 대가 느리게 들어오고 있었다. 마틴은 그 차를 보다가 담배를 도로 집어넣었다. 운전석에서 내린 사람이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지만 걸음걸이가 눈에 익었다. 어깨가 오른쪽으로 약간 기울어지는 버릇. 마틴은 난간 뒤로 한 발 물러섰다.

그 사람은 강당 쪽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주차장과 강당 사이 좁은 통로에서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이더니 벽에 기댔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자세였다. 마틴은 휴대폰을 꺼내 조용히 사진을 찍었다. 세 장. 손이 약간 떨렸다. 그러고는 선우에게 사진을 보냈다.

강당 안에서 조합 측 발표가 시작됐다. 발표자는 조합 집행이사라고 자신을 소개했고, 슬라이드 첫 장에 보상 단가표가 떴다. 선우는 그 숫자를 봤다. 장하늘이 어제 가져온 구청 내부 감정 평가 기준과 18퍼센트 차이가 나는 바로 그 숫자였다. 화면 하단에 작은 글씨로 '감정평가법인 기준 적용'이라고 적혀 있었다. 어느 법인인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장하늘이 선우 옆에 앉아 슬라이드를 보면서 조용히 말했다. "법인 이름이 없어요." 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질의 때 물어봐야죠." "제가 물어보면 기자라고 막을 거예요." "제가 할게요." 장하늘이 잠깐 선우를 봤다. 뭔가 더 말하고 싶은 것 같다가 입을 다물었다. 발표자가 화면을 넘겼다. 이주 지원 절차를 설명하는 슬라이드였다.

발표가 끝나고 질의 순서가 됐다. 조합 직원이 마이크를 들고 "순서대로 한 분씩"이라고 말했다. 서미라가 손을 들었다. 직원이 잠깐 망설이다가 마이크를 건넸다. 서미라가 일어섰다. "오늘 배포하신 보상 단가, 어느 감정평가법인 기준인가요?" 강당이 조용해졌다. 앞줄에 앉아 있던 박도경이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표정은 여전히 온화했지만 눈은 달랐다. 발표자가 답했다. "법인 계약은 내부 행정 절차에 따라 진행된 사항이라, 오늘 설명회 자리에서 공개하기엔 적절하지 않습니다." 서미라가 마이크를 내리지 않았다. "그 단가가 구청 내부 감정 평가 기준이랑 18퍼센트 차이 나는 건요?"

이번엔 강당이 다르게 반응했다. 웅성거림이 한 차례 파도처럼 지나갔다. 앞줄 상인 중 두 명이 고개를 돌려 서미라를 쳐다봤다. 박점순도 마찬가지였다. 박도경은 옆 직원에게 낮게 뭔가를 말했다. 직원이 앞으로 나왔다.

"오늘 자리는 설명회이지 감사 자리가 아닙니다. 절차상 질의는 서면으로 제출하시면—"

서미라가 잘랐다.

"서면으로 제출해도 되죠. 그럼 18퍼센트 차이 나는 근거를 서면으로 답변받겠습니다. 오늘 날짜로요."

직원이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박도경이 직원 쪽으로 턱을 짧게 움직였다. 그걸로 충분했다.

선우는 그 순간 공동 질의서를 꺼냈다. 서면 제출이 막히기 전에 접수하는 게 먼저였다. 장하늘이 가방에서 파일 한 장을 꺼내 선우에게 건넸다. 봉수 서명이 빠진 자리가 여전히 비어 있었다. 선우는 그 칸을 한 번 내려다봤다가 파일을 들고 앞쪽 접수 테이블로 걸어갔다. 직원이 받기를 잠깐 주저하다가 결국 두 손으로 받아 들었다. 선우는 돌아서면서 빈칸이 눈에 아직 걸렸다. 봉수가 없다는 사실이 서류 한 장 위에서 가장 또렷하게 보였다.

강당 밖에서 마틴의 문자가 왔다. 사진 세 장 아래에 짧은 메시지가 붙어 있었다.

'이 사람, 3년 전 봤던 현장 이름 기억났어요. 은평 쪽이에요.'

선우는 그 문장을 두 번 읽었다. 은평. 서미라 남편이 사고를 당한 장소가 어딘지 선우는 아직 몰랐다. 하지만 그 이름이 나오는 순간 뭔가가 조금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 실이 연결된 건 아니었다. 그러나 끝이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감각은 분명했다.

설명회는 예정보다 이십 분 일찍 마무리됐다. 조합 측이 "추가 질의는 서면으로"를 반복하다가 진행을 끊어버린 것이었다. 사람들이 자리를 빠져나가는 동안 서미라는 박점순 쪽으로 걸어갔다. 이번엔 선우가 막지 않았다. 두 사람이 강당 구석에서 짧게 대화를 나눴다. 서미라가 먼저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왔다. 표정이 아까보다 복잡해져 있었다. "어젯밤에 도장 찍었대. 조합 쪽에서 직접 찾아왔고, 이주 지원금 선지급 조건이었다고." 선우가 물었다. "혼자 결정한 거예요?" 서미라가 잠깐 멈췄다. "무서웠대. 혼자 버티다가 더 적게 받을까봐."

강당 입구로 나오자 마틴이 계단 아래에 서 있었다. 주차장 쪽 통로는 비어 있었다. 그 남자는 이미 없었다. 선우는 마틴에게 다가가 휴대폰 화면을 다시 들여다봤다. 모자를 눌러쓴 남자의 옆얼굴이 세 장의 사진 안에 흐릿하게 담겨 있었다. 장하늘이 옆에서 사진을 보더니 낮게 말했다.

"이 사람 얼굴, 어디서 본 것 같아요."

그 말이 골목 끝 바람처럼 지나갔다. 선우는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구청 앞 도로에서 점심 배달 오토바이가 한 대 지나갔다. 매연 냄새가 잠깐 코끝을 스치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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