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학루는 운주성에서 가장 오래된 객루였다. 삼 층짜리 목조 건물이 골목 안쪽에 자리 잡고 있었고, 간판의 학 그림은 세월에 바래 있었다. 윤세하가 먼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서진해는 그 뒤를 따랐고, 담소령과 막금산이 마지막이었다.
객루 안은 조용했다. 점심때가 지나서인지 손님은 몇 없었고, 주인으로 보이는 노인이 주판알을 튕기고 있었다. 윤세하가 그에게 다가가 몇 마디 나누자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뒤편을 가리켰다.
"이쪽입니다."
윤세하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서진해는 사형의 뒷모습을 따라 좁은 복도를 지났다. 나무 계단이 삐걱거렸고, 이 층 끝에 작은 방이 하나 있었다. 윤세하가 문을 열자 먼지 냄새가 밀려왔다.
"사부께서 마지막으로 머무신 곳입니다."
서진해는 문턱을 넘었다. 방은 좁았다. 창문 하나, 탁자 하나, 침상 하나. 그게 전부였다. 탁자 위에는 묵은 먼지가 쌓여 있었고, 침상의 요는 오래전 개진 채 그대로였다. 담소령이 방 안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이 방을 아무도 안 쓴 거야?"
"주인이 사부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두었다고 하더군요."
윤세하의 대답은 간결했다. 서진해는 탁자 앞에 섰다. 손을 뻗어 먼지를 쓸어내자 나무결이 드러났다. 탁자 모서리에 작은 흠집이 있었다. 검을 올려놓았을 때 생긴 자국이었다. 서진해는 그 흠집을 손끝으로 더듬었다.
막금산이 창가로 걸어가 창문을 열었다. 바람이 들어오며 방 안의 공기를 흔들었다. 담소령은 침상 옆 벽을 살폈다. 거기에 작은 선반이 하나 있었고, 선반 위에는 낡은 책 몇 권이 놓여 있었다.
"이것들은?"
담소령이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윤세하가 다가왔다.
"사부께서 읽으시던 책들입니다. 대부분 의서였지요."
서진해는 담소령이 든 책을 보았다. 표지가 낡았고, 제목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본초강목(本草綱目)'. 청문파에서도 자주 보던 책이었다. 담소령이 책장을 넘기자 여백에 작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필기가 있네."
담소령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서진해가 옆으로 다가가 들여다보았다. 필기는 약초의 효능과 배합에 관한 것이었다. 글씨는 단정했지만 급하게 쓴 듯 번진 곳이 있었다. 사부의 글씨였다.
윤세하가 선반 위 다른 책을 집어 들었다. 그는 책장을 넘기다가 멈췄다.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이건..."
서진해가 다가갔다. 윤세하가 든 책은 얇았다. 표지에 제목이 없었고, 책장 사이에 종이 몇 장이 끼워져 있었다. 윤세하가 그 종이를 꺼냈다. 접힌 종이를 펼치자 빽빽한 글씨가 드러났다.
담소령이 숨을 삼켰다.
"이 글씨..."
서진해도 알아봤다. 그것은 잔화심결의 필사본이었다. 그러나 서진해가 품에 지닌 것과는 달랐다. 이것은 후반부였다. 서진해가 아직 보지 못한 구절들이 거기 있었다.
"잔화심결 후반부입니다."
윤세하의 목소리가 떨렸다. 서진해는 사형의 얼굴을 보았다. 윤세하의 눈빛이 종이 위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시선 안에 무언가 타오르는 것이 있었다.
막금산이 다가와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담소령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근데 이상한 게 있어. 이 필기 말이야."
담소령이 종이 여백을 가리켰다. 거기에도 작은 글씨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본문과는 다른 필체였다. 더 가늘고, 더 조심스러운 글씨였다.
"이 필적...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담소령이 고개를 가웃했다. 서진해는 그 글씨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여백의 필기는 잔화심결의 해설이 아니었다. 그것은 의술에 관한 기록이었다. 환자를 살리기 위한 금기와 위험, 그리고 선택의 기록.
'이 법을 쓰면 환자는 살지만 시술자의 내공이 역류한다. 세 번 이상 쓰면 경맥이 끊어진다.'
'그러나 살릴 수 있다면 써야 한다. 이것이 의녀의 도리다.'
서진해의 손끝이 떨렸다. 이것은 단순한 의서가 아니었다. 이것은 누군가의 고백이었다.
담소령이 갑자기 품에서 약첩을 꺼냈다. 그녀는 약첩을 펼쳐 종이 옆에 나란히 놓았다. 그리고 두 필적을 비교했다. 서진해도 그것을 보았다.
똑같았다.
담소령의 손이 떨렸다.
"이건... 엄마 글씨야."
방 안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윤세하가 담소령을 보았다. 막금산은 창가에서 고개를 돌렸다. 서진해는 종이와 약첩을 번갈아 보았다.
담소령의 어머니 담소린이 이 필기를 남긴 것이었다. 그렇다면 담소린은 사부 녹담자와 함께 이곳에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잔화심결 후반부를 보았고, 그것을 의술과 연결시켰다는 뜻이었다.
"사부께서 담소린 선배와 함께 계셨습니까?"
서진해가 윤세하를 보며 물었다. 윤세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멸문 직전, 사부께서는 담소린 의녀와 함께 이곳에 머무셨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사부께서 잔화심결의 의술 편을 완성하기 위해 그녀의 도움을 받으셨던 것으로 압니다."
담소령이 종이를 움켜쥐었다.
"그럼 엄마는... 잔화심결을 알고 있었던 거야?"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완성하는 데 함께했을 겁니다."
윤세하의 대답은 조용했다. 담소령의 눈빛이 흔들렸다. 서진해는 담소령의 어깨를 보았다. 그녀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막금산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담소린은 청문파 멸문과도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군."
"그렇습니다."
윤세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이 서진해에게로 향했다.
"사제, 사부께서 당신에게 남기신 것이 잔화심결 전반부라면, 이 후반부는 제가 찾아야 할 몫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여기서 발견되었군요."
서진해는 사형의 눈을 마주쳤다. 윤세하의 눈빛 안에 무언가 계산하는 빛이 스쳤다. 서진해는 품속의 잔화심결을 의식했다. 사형은 아직 서진해가 그것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하는 듯했다.
"사형, 이 후반부를 가져가시겠습니까?"
서진해의 질문에 윤세하가 잠시 멈췄다. 그는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아니요. 이것은 이곳에 두어야 합니다. 사부께서 이곳에 두신 데에는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윤세하가 종이를 다시 책 사이에 끼웠다. 서진해는 그 손놀림을 지켜보았다. 사형의 손이 종이를 놓는 순간, 손끝이 잠깐 멈칫했다. 그것은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서진해는 놓치지 않았다.
담소령이 약첩을 도로 품에 넣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서진해는 그녀에게 다가가 낮게 물었다.
"괜찮습니까?"
"...모르겠어. 엄마가 이런 일에 연루되어 있었다는 게, 나는..."
담소령의 목소리가 끊겼다. 서진해는 더 묻지 않았다.
막금산이 창문을 닫았다.
"이제 나가자. 여기 더 있어봐야 먼지만 마실 뿐이다."
윤세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열었다. 서진해는 마지막으로 탁자를 돌아보았다. 사부가 앉아 있었을 자리, 사부가 검을 올려놓았을 흠집, 사부가 남긴 필기. 그리고 담소린이 함께 남긴 금기의 기록.
서진해는 문을 나섰다.
복도를 지나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 윤세하가 앞서 걸으며 말했다.
"오늘 저녁은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오 년 만의 재회인데, 이 정도는 해야지요."
담소령이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막금산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서진해는 윤세하의 뒷모습을 보며 걸었다. 사형의 걸음걸이는 변함없이 단정했다. 그러나 백학루 이 층 방에서 종이를 볼 때의 눈빛, 그리고 종이를 놓을 때의 손끝 멈칫거림.
서진해는 그것을 기억 속에 새겼다.
객루를 나서자 해가 기울고 있었다. 운주성의 저녁 거리가 붐비기 시작했다. 윤세하가 앞장서서 골목을 빠져나갔고, 세 사람은 그 뒤를 따랐다.
서진해는 품속 잔화심결을 다시 한 번 의식했다. 전반부와 후반부.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담소린의 필기. 사부가 완성하려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멸문의 빌미가 되었는지.
이제 조각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서진해는 아직 한 가지를 확신할 수 없었다. 윤세하가 그 조각들을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그리고 사형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