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a
← 메인 홈 목록 ☰
[S1-6화]

세탁소의 젖은 밤

작성: 2026.03.12 21:10 조회수: 6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이 콘텐츠는 보험을 소재로 한 창작물이며 실제 상품 추천이나 보장 판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퇴근 버스에서 이어폰을 꽂는 게 서하의 유일한 의식이었다. 오른쪽은 노래, 왼쪽은 세상 소리. 반반씩 듣는 게 습관이 된 건 입사 후부터였다. 혹시 모를 전화를 놓칠까 봐. 오늘도 왼쪽 귀에는 버스 에어컨 소리가 웅웅거렸고, 오른쪽 귀에서는 잔잔한 피아노곡이 흘렀다. 창밖으로 삼월의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화요일 저녁 일곱 시. 평범한 하루의 끝이 될 뻔했다.

전화가 울린 건 종로3가를 막 지날 때였다. 화면에 뜬 이름은 '강민주 고객'. 서하는 이어폰을 빼다가 왼손에 걸려 엉키는 줄을 한 번 잡아당기고 나서야 통화 버튼을 눌렀다.

"윤서하 씨죠? 저 강민주예요, 세탁소."

목소리가 평소와 달랐다. 민주의 말투는 원래 투박하지만 단단한 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문장 끝이 흔들리고 있었다. 무언가 물이 흐르는 소리가 배경에 깔렸다. 서하는 버스 손잡이를 꽉 잡았다.

"무슨 일이세요?"

"가게가 물에 잠겼어. 위층 배관이 터졌나 봐. 세탁물이랑 다 — 아, 잠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전화가 잠시 끊겼다가 돌아왔다. "미안, 대야 옮기느라. 서하 씨, 나 이거 어디다 먼저 연락해야 해?"

서하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머릿속에서 여러 문장이 동시에 떠올랐다. 건물 관리실에 먼저 연락하셔야 해요. 사진 찍어두세요. 피해 범위를 확인하셔야. 하지만 그 모든 문장보다 먼저 나온 건 엉뚱한 말이었다.

"지금 혼자세요?"

전화 너머로 물 튀기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민주가 짧게 웃었다. 웃음인지 한숨인지 분간이 안 가는 소리였다. "아들은 학원이고, 나 혼자 가게 닫는 중이었어. 물이 천장에서 뚝뚝 떨어지다가 갑자기 콸콸 쏟아졌어. 드럼세탁기 위로."

서하는 다음 정류장에서 내렸다. 원래 집까지 세 정거장이 남아 있었다. 발이 먼저 움직인 건 아니었다. 손가락이 먼저 움직였다. 카카오톡을 열어 수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민수진 언니, 세탁소 강민주 고객님 가게에 누수 발생했대요. 위층 배관 문제인 것 같은데, 제가 뭐 안내해드릴 수 있는 게 있을까요?'

답장은 삼십 초도 안 걸려 왔다. '사진부터 확보하라고 해. 물 잠그는 거 먼저. 건물 관리실 연락. 그리고 서하야, 지금 거기 가려는 거 아니지?' 서하는 화면을 보며 잠시 멈칫했다. 다음 메시지가 바로 이어졌다. '네가 지금 가봤자 할 수 있는 건 없어. 감정만 쓰고 와.' 수진의 말은 늘 그랬다. 틀린 적이 없고, 그래서 더 듣기 불편했다.

서하는 민주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관리실 연락부터 하시라고, 물 잠그는 밸브 위치를 확인하시라고, 피해 상황을 사진으로 남겨두시라고. 한 문장씩 말할 때마다 민주는 '응, 응' 하고 짧게 대답했다. 서하가 네 번째 문장을 말하려다 멈춘 건, 민주의 '응' 뒤에 아주 짧은 침묵이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그 침묵이 무엇인지 서하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가슴 한쪽이 쿡 눌리는 느낌이었다.

"민주 씨, 내일 아침에 제가 전화드릴게요. 오늘은 일단 물부터 잡으시고요."

"고마워. 근데 서하 씨, 나 하나만 물어봐도 돼?" 민주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세탁물 — 고객 거 맡아둔 거, 이십벌 넘게 젖었거든. 이거 내가 다 물어줘야 하는 거야?"

서하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는 게 아니라 모르는 거였다. 원인이 위층 배관이면 건물 쪽 책임일 수도 있고, 민주의 시설 관리 문제일 수도 있고. 하지만 그 순간 서하의 머릿속을 채운 건 법적 구분이 아니었다. 이십 벌이 넘는 세탁물. 누군가의 양복, 누군가의 이불, 누군가의 교복. 민주는 그걸 맡아둔 사람이고, 그 사람들에게 전화를 해야 하고, 젖은 옷을 앞에 놓고 미안하다고 말해야 한다. 그 장면이 머릿속에 너무 선명하게 그려졌다.

"제가 정확히는 지금 말씀드리기 어려운데요." 서하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내일 확인해서 꼭 다시 연락드릴게요."

민주가 전화를 끊고 나서, 서하는 버스 정류장 벤치에 한참 앉아 있었다. 삼월 바람이 생각보다 차가웠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지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습관처럼, 별 이유 없이. '지우 선배, 혹시 세탁소 같은 소규모 자영업자 건물 누수 피해 건 처리해본 적 있어요?'

지우의 답장은 의외로 빨랐다. 그리고 의외로 길었다. '있지. 근데 그거 건물주 보험이랑 세입자 보험이랑 얽히면 진짜 머리 아파. 일단 누가 원인 제공자인지부터 잡아야 해. 왜? 민주 씨 건이야?' 서하가 '네'라고만 보내자, 지우가 음성 메시지를 보내왔다. 재생 버튼을 누르자 지우의 빠른 말투가 쏟아졌다.

"야 윤서하, 너 지금 감정이입 모드 들어간 거 아니야? 그거 위험해. 근데 — 음, 민주 씨는 좀 특수하긴 하지. 세탁소라는 게 맡긴 물건이 전부 남의 거잖아. 그 사람 입장에서는 자기 가게보다 남의 옷이 더 무서운 거야. 내일 나한테 한번 물어봐, 비슷한 건 찾아볼게."

서하는 음성 메시지를 두 번 들었다. '자기 가게보다 남의 옷이 더 무서운 거야.' 그 문장이 가슴에 콕 박혔다. 민주가 전화에서 세탁물 이야기를 먼저 꺼낸 이유를 그제야 이해했다. 기계가 망가진 것도, 바닥이 젖은 것도 무섭지만, 사람들에게 '죄송합니다' 하고 전화해야 하는 그 밤이 가장 길 것이다.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닫는 순간, 핸드폰에 카톡이 하나 더 떠 있었다. 아버지, 윤태훈. '저녁 먹었냐.' 마침표 없는 세 글자. 서하는 '네'라고 답장을 치다가 지웠다. '아직이요'라고 고쳐 치다가 또 지웠다. 결국 보낸 건 '곧 먹을게요'였다. 아버지에게서 답장은 오지 않았다. 원래 그랬다. 물음표를 보내고, 마침표는 받지 않는 관계.

서하는 냉장고에서 찬밥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리면서 생각했다. 민주의 세탁소 바닥은 지금쯤 얼마나 말랐을까. 고객 이십여 명에게 전화를 끝냈을까. 아들은 학원에서 돌아왔을까. 전자레인지가 '삐' 하고 울었다. 밥을 꺼내놓고 서하는 아무 반찬 없이 숟가락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노트북을 열었다. 검색창에 '건물 누수 세입자 피해 보상 절차'를 치려다 손을 멈추었다. 수진의 말이 떠올랐다. '감정만 쓰고 와.' 맞는 말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런데 왜 이렇게 밥이 넘어가지 않는 걸까. 서류 위의 이름이 아니라, 전화 너머의 숨소리가 귓가에 남아 있어서. 민주가 마지막에 한 말이 계속 맴돌았다.

'이십 벌이 넘게 젖었거든.'

서하는 밥 위에 김을 올리고 한 숟가락을 겨우 떠 넣었다. 씹는 동안 핸드폰 화면을 다시 켰다. 민주에게서 온 메시지가 하나 있었다. 사진 한 장. 세탁소 바닥에 물이 고여 있고, 행거에 걸린 비닐 포장 안으로 물방울이 맺혀 있는 사진이었다. 그 아래 한 줄. '증거 남겨두라고 했지? 이거 맞아?' 서하는 '네, 잘 하셨어요'라고 답장을 보내고, 화면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비닐 안에 갇힌 물방울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내일이었다.

그때 지우에게서 메시지가 하나 더 왔다. 텍스트가 아니라 링크였다. 열어보니 사내 시스템의 과거 처리 사례 검색 페이지였다. 지우가 덧붙인 말은 짧았다. '내일 출근하면 이거 먼저 봐. 그리고 도윤 선배한테는 아직 말하지 마. 사실관계 먼저 잡고 보고해.' 서하는 그 문장을 두 번 읽었다. '도윤 선배한테는 아직 말하지 마.' 왜? 라는 질문이 입 안에서 맴돌았지만, 지우에게 되묻지는 않았다. 이유가 있을 거라고 — 아니, 이유를 알게 되는 게 두려운 쪽이 더 컸다.

☰ 전체 회차 목록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