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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3화]

다시 열린 메일함, 이름 하나

작성: 2026.04.03 11:03 조회수: 38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이 콘텐츠는 AI가 창작한 장기 연재소설입니다. 실제 인물이나 사건과 무관한 창작물입니다.

프린터가 다섯 번째 용지를 뱉어 내는 소리와 함께 오전이 시작됐다. 한이겸은 커피를 들지 않았다. 컵은 어제 오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표면에는 이미 얇은 막이 앉아 있었다. 형광등 아래 서류 더미는 어젯밤 그대로였다. 그는 의자를 당겨 앉으며 모니터를 켰다.

메일함에는 새 수신이 없었다. 전략실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이겸은 그 공백을 오래 들여다봤다. 장승민이 직접 전화를 걸었다는 것, 그게 어제 남긴 가장 선명한 이상 신호였다. 예전 생에서 그 전화는 사흘 뒤였다. 하루가 아니라 사흘. 그 차이가 지금 이겸의 손끝을 조금씩 조이고 있었다. 메일을 쓰지 않고 전화를 택했다는 건 기록을 남기기 싫다는 뜻이다. 기록을 남기기 싫다는 건 이미 다음 수를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부장님, 외부 용역 서류 반납 기한이 오늘까지예요."

해진이 말하며 파일 하나를 책상 모서리에 내려놨다. 목소리는 또렷했지만 눈은 모니터 쪽을 향하지 않았다. 어제 오후 이겸이 재무팀 접촉을 막았을 때부터 유지되고 있는 각도였다. 이겸은 파일을 열었다. 종이 냄새가 났다. 복사 열기가 아직 가시지 않은 종이.

용역 업체 명단. 계열사 데이터 분석. 참여 인력 항목. 이겸의 시선이 중간쯤에서 멈췄다.

민가온. 포렌식 분석 담당. 참여 시작일: 두 달 전.

예전 생에서 이 이름이 이 서류에 들어온 건 다섯 달 뒤였다. 이겸은 손가락이 페이지를 누르고 있다는 걸 잠시 뒤에야 알아챘다. 눌린 자국이 종이에 남았다. 그는 손을 떼고 페이지를 다시 읽었다. 날짜가 바뀐 게 아니었다. 이름이 여기 있어서는 안 되는 시점이었다.

"해진 씨."

"네."

"이 용역, 계약 연장 이력 있어?"

해진이 돌아봤다. 표정은 아직 닫혀 있었지만 눈이 잠깐 날카로워졌다가 돌아왔다.

"확인해 볼게요. 왜요?"

이겸은 파일을 닫았다.

"그냥 확인."

그게 어제와 다른 점이었다. 어제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오늘은 물었다. 해진이 무언가를 결심하고 있다는 신호였고, 이겸은 그 신호를 받아 적을 수 없었다. 설명을 하면 해진이 움직인다. 해진이 움직이면 경로가 노출된다. 그 계산이 이겸을 입 다물게 했고, 그 침묵이 다시 해진의 눈을 차갑게 만들었다. 악순환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었다.

오전 내내 그는 세 건의 감사 보고서 초안을 검토했다. 숫자들은 맞았고, 문장들은 무난했다. 하지만 계열사 거래 항목 하나에서 이겸의 눈이 다시 걸렸다. 예전 생에서 이 항목은 삼 개월 뒤 비자금 장부의 첫 페이지와 맞닿아 있었다. 지금은 그냥 숫자처럼 보였다. 아무도 이 숫자를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시점이었다. 이겸은 해당 페이지를 빼내어 서랍 안쪽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다시 보고서를 닫았다. 장면은 자연스러웠다. 아무도 보지 않았다.

해진이 자리로 돌아와 모니터 앞에 앉았다. 키보드 소리가 규칙적으로 이어졌다. 이겸은 그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해진은 지금 무엇을 치고 있는가. 용역 계약 이력인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가. 물어볼 수 없었다. 물어보는 순간 이겸이 무엇을 의심하는지가 드러난다. 그래서 이겸은 자기 모니터를 봤다. 빈 메일함을. 움직이지 않는 받은 편지함을.

점심은 구내식당이었다. 해진은 혼자 줄을 섰고, 이겸은 두 칸 뒤에서 트레이를 들었다. 둘 사이에 낯선 간격이 있었다. 어제까지는 없었던 간격이었다. 식판이 부딪히는 소리, 국자가 냄비를 긁는 소리, 사람들의 짧은 말소리. 이겸은 국그릇을 내려놓으며 먼저 말했다.

"용역 서류, 민가온이라는 이름 기억해 둬."

해진이 숟가락을 들다가 멈췄다.

"왜요?"

"나중에 필요할 수 있어."

해진은 잠시 이겸을 봤다. 밥알 하나가 숟가락에서 떨어졌다.

"나중이요. 또."

그 두 글자 안에 어제 오후의 침묵이 다 들어 있었다. 이겸은 반박하지 않았다. 반박할 말이 없었다. 해진은 숟가락을 다시 들었고, 두 사람은 밥을 먹었다. 말 없이. 식판 맞은편에 앉은 다른 팀 직원이 무언가 웃으며 떠들었지만 이겸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오후 세 시. 이겸은 회의실 냉기 속에서 혼자 노트북을 펼쳤다. 민가온의 참여 계약 날짜를 다시 계산했다. 두 달 전이면 이겸이 회귀하기 전, 예전 생 기준으로 이 시점에는 아직 접촉이 없었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그렇다면 민가온은 이겸의 기억 바깥에서 이미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이겸이 장부를 쥐기도 전에. 창밖에 낮게 깔린 구름이 움직이지 않았다. 회의실 유리창은 반쯤 흐릿했다. 이겸은 노트북을 닫고 잠깐 눈을 감았다. 기억의 지도는 정확했다. 하지만 지도 위의 길이 바뀌어 있었다.

회의실 문을 열고 나오는데 복도 끝에서 전략실 소속 박 과장이 걸어오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박 과장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지나쳤다. 아무 말도 없었다. 그게 더 이상했다. 예전 생에서 박 과장은 이 시기에 이겸에게 말을 걸었다. 사소한 안부. 식사 여부. 그런 종류의 말. 오늘은 없었다. 장승민이 뭔가를 지시했거나, 아니면 박 과장 스스로 거리를 두고 있거나. 이겸은 그 뒷모습을 잠깐 봤다가 시선을 거뒀다.

퇴근 이십 분 전, 진동이 왔다. 서초구 발신. 저장되지 않은 번호. 이겸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무 소리도 없었다. 잡음도 없었다. 이 초 뒤에 끊겼다. 이겸은 화면을 내려다봤다. 어제와 같은 번호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저장을 하지 않았고, 어제 번호는 기억에만 남아 있었다. 그는 다이얼을 눌러 다시 발신했다. 신호음이 두 번 울리고 끊겼다. 이번에는 자동 응답도 없었다.

해진이 코트를 걸치며 사무실을 나서다가 멈췄다.

"부장님, 저 먼저 갈게요."

"응."

해진은 더 말하지 않고 나갔다. 엘리베이터 버튼 누르는 소리가 복도 끝에서 들렸다. 이겸은 그 소리가 사라진 뒤에도 한동안 서 있었다.

사무실에 남은 건 이겸뿐이었다. 프린터 열기가 아직 가시지 않은 공기. 형광등 하나가 미세하게 깜빡이다 돌아왔다. 이겸은 서랍을 열어 오전에 넣어 둔 보고서 페이지를 꺼냈다. 숫자들은 그대로였다. 그는 수첩을 꺼내 날짜와 항목 번호를 적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민가온이라고 썼다. 볼펜 끝이 종이를 누르는 힘이 생각보다 강했다. 이겸은 힘을 풀었다. 수첩을 덮었다.

기억보다 빠른 판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겸이 알지 못하는 움직임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게 문제였다. 누군가 먼저 수를 두고 있었다. 그게 민가온인지, 서초구 번호의 주인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이름인지, 아직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해진의 짧은 두 글자가 사무실 공기에 아직 남아 있었다. 나중이요.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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