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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4화]

첫 선제수, 숨은 거래

작성: 2026.04.04 23:29 조회수: 37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이 콘텐츠는 AI가 창작한 장기 연재소설입니다. 실제 인물이나 사건과 무관한 창작물입니다.

월요일 오전 여덟 시 사십 분, 내부감사팀 사무실은 아직 절반만 차 있었다.

이겸은 자리에 앉기 전에 프린터 옆을 지나쳤다. 출력물 트레이에 종이 두 장이 걸쳐 있었다. 위쪽은 지난주 협력사 점검 일정표였고, 아래쪽은 누군가 반쯤 뽑다 멈춘 계열사 거래 현황 보고서였다. 종이 모서리가 롤러에 끼인 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겸은 손을 뻗어 두 장을 동시에 빼냈다. 보고서 하단의 숫자 세 자리를 눈으로 훑고,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서랍에 넣었다. 서랍을 닫는 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났다. 옆 자리 막내 사원이 고개를 들었다가 이겸과 눈이 마주치자 바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부장님, 오늘 오전 중으로 협력사 선정 보조 용역 재배정 공문 올려야 하는 거 맞죠?"

해진이 자기 자리에서 몸을 반쯤 돌린 채 물었다. 목소리는 또렷했지만 눈은 모니터를 향해 있었다. 이겸은 의자를 당겨 앉으면서 고개를 들었다.

"맞아. 근데 그 전에 내가 한 가지 확인할 게 있으니까, 공문은 오후에 올려."

해진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반응은 빨랐지만 따라오는 질문이 없었다. 예전 생이라면 이쯤에서 해진은 '무슨 확인이요?'라고 물었을 것이다. 그 물음이 없다는 게 오히려 이겸의 어깨를 조금 무겁게 눌렀다. 사람이 질문을 삼킬 때는 두 가지다. 이미 알거나, 아니면 더 이상 기대하지 않거나.

협력사 보조 용역 재배정. 태성그룹 내부감사팀이 분기마다 외부 전문 인력을 단기 계약으로 붙이는 절차였다. 이겸의 기억 속에서 이 건은 예전 생에서 아무 문제 없이 처리됐다. 전략실이 추천한 업체가 그대로 붙었고, 그 업체 소속 포렌식 분석가가 나중에 이겸의 뒤통수를 쳤다. 용역 계약서에 박힌 이름은 지금 이겸의 서랍 속 서류에 이미 적혀 있었다. 민가온. 문제는 민가온 자체가 아니었다. 예전 생에서 민가온은 전략실 라인으로 들어왔다. 그 경로가 문제였다. 이겸은 이번 생에서 그 경로를 자르고 싶었다. 민가온이 어떤 사람인지, 이미 무엇을 보고 있는지, 그것을 확인하기 전에 전략실이 먼저 그를 집어넣으면 판은 처음부터 기울어진 채 시작된다.

이겸은 오전 내내 서류를 움직였다. 협력사 데이터 포렌식 분야 용역 후보군을 세 곳으로 압축하고, 그중 두 곳의 이력서 첨부가 누락됐다는 이유로 검토 보류 처리했다. 남은 한 곳. 이겸이 직접 비교 견적을 요청한 업체였다. 그 업체 소속 분석가 명단 맨 위에도 민가온의 이름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추천 경로가 달랐다. 전략실이 아니라 감사팀 직권 검토. 작은 차이처럼 보였지만, 서류 위에서 권한의 무게는 달라진다. 도장 찍히는 칸이 달라지면 책임지는 사람도 달라지고,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어디서부터 실을 풀지도 달라진다. 이겸은 그걸 알고 있었다. 예전 생에서 그 실을 잘못 잡았기 때문에.

오전 열한 시가 조금 넘었을 때, 복도 쪽 유리문이 열렸다.

전략실 박 과장이었다. 이겸은 시선을 들지 않았다. 서류에 볼펜을 올린 채 숫자를 짚는 척했다. 박 과장은 감사팀 쪽으로 방향을 잡다가 이겸의 자리 앞 두 칸쯤에서 걸음을 멈추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인사도, 눈빛도 없었다. 복도 끝 화장실 방향으로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면서 이겸은 서류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어제도 그랬다. 그전에도. 박 과장은 원래 지나칠 때 한마디씩 붙이는 사람이었다. 날씨든 점심이든. 그게 멈췄다는 것은 위에서 신호가 내려갔다는 뜻이었다. 신호가 내려갔다는 건, 이겸이 이미 레이더에 찍혔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겸은 볼펜을 내려놓고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쓴맛이 혀 뒤로 천천히 퍼졌다. 창밖으로 흐린 하늘이 보였다. 비가 올 것 같았다. 예전 생에도 이날 비가 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이란 게 그렇다. 중요한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지워버린다. 문제는 무엇이 중요한지를 나중에야 알게 된다는 것이었다.

"해진 씨."

"네."

"오후에 용역 후보군 비교표 하나 만들어. 세 개 항목만. 포렌식 경력, 계열사 감사 참여 이력, 전담 가능 여부. 내가 추가로 보낼 업체 명단 기준으로."

해진이 이번엔 몸 전체를 돌려서 이겸을 봤다.

"기존 전략실 추천 업체는요?"

"비교 대상에서 빠져."

짧은 침묵이 왔다. 해진의 표정이 무언가를 정리하는 것처럼 잠깐 굳었다가 풀렸다. 이겸은 그 사이를 채우지 않았다. 설명을 덧붙이면 오히려 이상해진다. 지시에는 무게가 있어야 하고, 무게는 말수가 적을수록 커진다.

"알겠습니다."

대답은 깔끔했지만 이겸은 그 뒤에 오는 소리를 들었다. 해진이 의자를 돌리는 소리가 평소보다 약간 빨랐다.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하는 속도도. 화가 난 것과 집중하는 것은 손목의 각도가 비슷하다. 이겸은 그 차이를 오래 지켜봤기 때문에 알고 있었다. 지금 해진은 둘 다였다.

오후 두 시, 해진이 비교표를 가져왔다. A4 한 장. 항목은 세 개, 업체는 네 곳. 이겸이 보낸 명단에 없던 업체 하나가 끝에 추가돼 있었다. 각주에 작은 글씨로 '계열사 외 독립 감사 경력 보유'라고 적혀 있었다. 이겸은 그 칸을 한 번 더 읽었다.

"이거 어디서 찾았어?"

"공개 포럼 발표 자료요. 작년 하반기 데이터 포렌식 컨퍼런스 자료집이 공개돼 있더라고요. 거기에 나온 이름이에요."

해진의 목소리에는 보고하는 사람의 평평함이 있었다. 자랑도, 사과도 아니었다. 그냥 사실이었다. 이겸은 그 이름을 다시 봤다. 민가온. 이겸이 추가하려던 업체 명단에도 있었고, 해진이 독자적으로 찾아낸 경로에도 있었다. 같은 이름이 두 개의 다른 경로에서 동시에 올라왔다. 이겸은 그 사실을 얼굴에 내보내지 않았다.

이겸은 종이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생각보다 해진이 빨리 움직이고 있었다. 설명 없이 일을 맡겨도 스스로 경로를 찾는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이겸의 통제 바깥에서 해진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이기도 했다. 키우는 것과 놓아주는 것 사이에는 생각보다 좁은 선이 있다.

"잘 됐네. 이걸로 올려."

"네. 그런데 부장님."

해진이 종이를 가져가려다 멈췄다.

"전략실 쪽에 따로 연락은 안 해도 돼요?"

이겸은 잠깐 해진을 봤다. 눈이 똑바로 마주쳤다. 해진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질문이 아니라 확인이었다. 자기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를 이겸이 알아채길 바라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인지. 이겸은 그 경계를 아직 읽지 못했다.

"내가 할게."

해진이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이겸은 그 뒷모습을 보면서 볼펜을 다시 집었다. 전략실에 연락은 하지 않을 것이었다. 아직은. 공문이 올라가고 결재가 나면 그때 박 과장이 다시 복도를 걸어올 것이다. 그 걸음의 속도가 달라졌을 때, 이겸은 장승민이 어느 경로까지 신경 쓰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었다. 기다리는 것도 수였다. 먼저 움직이는 쪽이 먼저 보인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이겸의 휴대폰이 한 번 울렸다. 서초구 발신 번호였다. 이번에는 끊기지 않았다. 두 번 울리고 세 번 울리고. 이겸은 화면을 내려다보다가 네 번째 울림이 시작될 때 전화를 받았다. 사무실 안에 남아 있는 사람은 해진과 막내 사원뿐이었다. 이겸은 몸을 창 쪽으로 약간 틀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삼 초쯤 지났을 때 통화가 끊겼다.

이겸은 휴대폰을 책상에 내려놓았다. 손가락 끝이 화면 위에 잠깐 머물렀다가 떨어졌다. 프린터가 마지막 출력물을 뱉어 내는 소리가 사무실 끝에서 들려왔다. 오늘 두 번째 선제수는 끝났다. 하지만 서초구 번호의 주인은 이겸이 먼저 받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받는 순간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인지, 아직 알 수 없었다. 판을 움직이는 것과 판을 장악하는 것은 같지 않다. 이겸은 그 차이를 오늘 하루 내내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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