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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3화]

장부 속의 이름

작성: 2026.04.03 11:03 조회수: 30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이 콘텐츠는 AI가 창작한 장기 연재소설입니다. 실제 인물이나 사건과 무관한 창작물입니다.

아침 공기는 성벽 돌 틈 사이로 들어왔다. 밤새 내린 이슬이 문설주에 맺혀 있었고, 창고 앞마당은 아직 어두운 쪽빛이었다. 엘리안은 외투 깃을 여미지 않은 채 걸었다. 추위를 느낄 여유가 없었다기보다, 느끼고 싶지 않았다.

하르트가 등잔을 들고 앞서 걸으며 짧게 말했다.

"이른 아침에 도로 꺼내 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눈이 더 밝아진다고 장부가 달라지진 않으니까요."

엘리안은 대꾸 없이 창고 안으로 들어섰다. 어젯밤 빈 선반이 그대로였다. 쥐 한 마리가 모퉁이에서 부스럭거리다 사라졌다. 탁자 위에 장부 세 권을 펼쳐 놓고 등잔을 바짝 당기자, 하르트가 문가에 서서 입을 다물었다. 오래된 집사의 방식이었다. 막으려 해도 소용없으면, 적어도 곁에 있는다.

루키안 베르트가 창고 문턱에 기대어 나타난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추방된 마도사는 언제나 소리 없이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반쯤 식은 사발이 들려 있었고, 외투 소매에는 마굿간 짚 냄새가 배어 있었다. 말 옆에서 밤을 지샌 것인지, 아니면 그냥 그런 방을 쓰는 것인지 엘리안은 묻지 않았다.

"부른 것도 아닌데 왜 여기 있소."

"창고 냄새가 제 방 냄새보다 낫더군요. 이 성에서 제 방은 마굿간 옆이라 말 냄새가 배어서."

루키안은 사발을 탁자 한 귀퉁이에 내려놓으며 장부를 내려다봤다.

"어제 놓친 부분을 다시 보는 거요?"

엘리안은 손가락으로 한 줄을 짚었다. 장부 세 번째 권, 아버지 서명이 든 담보 계약 항목이었다. 서명 옆 날짜는 3년 전 겨울이었는데, 그 아래 상대방 이름이 적혔을 자리가 긁혀 있었다. 어젯밤에도 봤지만 오늘 아침 등잔 각도를 달리하자 긁힌 자리 위에 희미한 흔적이 떠올랐다. 누군가 문질러 지운 뒤 그 위에 무언가를 눌러 찍어 놓은 것이었다. 잉크 자국이 아니라 압력의 흔적이었다. 봉인구를 꽤 세게 눌렀다는 뜻이기도 했다.

"봉인 문양."

루키안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는 엘리안 곁으로 다가서며 사발도 잊은 채 눈을 가늘게 떴다.

"마도회 공식 인장은 팔각형에 중심선이 두 줄입니다. 이건 사각형에 모서리만 눌러 찍었어요. 민간 마도구 거래상이 쓰는 약식 봉인이오."

엘리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민간 거래상. 공식 마도회 인장이 아니라는 것은 이 계약이 공개 기록 어디에도 올라가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는 손가락을 거두지 않은 채 생각했다. 누군가 이름을 지웠다. 그리고 지운 자리 위에 봉인을 찍었다. 감추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나중에 꺼내기 위해서인지.

"3년 전이면 아버지가 병상에 드러누우신 해입니다."

하르트가 문가에서 말했다.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그해 겨울에 주인어른이 서명을 직접 하셨는지 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확인을 못 한 것과 하지 않은 것은 다릅니다, 하르트 공."

엘리안은 장부를 덮지 않은 채 돌아봤다. 집사장의 얼굴에서 무언가가 잠깐 흔들렸다가 다시 굳었다. 오래된 군인의 얼굴이었다. 무언가를 알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기도 했다. 엘리안은 더 밀어붙이지 않았다. 지금은 아니었다. 몰아붙여서 얻는 대답과 스스로 내놓는 대답은 무게가 달랐다.

세라 헬몬이 들어온 것은 그 침묵이 무거워지려던 참이었다. 창고 문을 거칠게 밀치며 들어섰고, 외투 소매에는 마당 흙이 묻어 있었다. 아침 점호를 끝내고 오는 길인 듯했다. 그의 부하 중 하나가 문 밖에서 잠깐 보이다 사라졌다.

"토르빈이 없어."

엘리안이 눈을 들었다. 세라는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밀렌 마을 상인. 어젯밤 유예 계약서를 받아 간 그 자. 내 부하가 오늘 이른 새벽에 동문 쪽으로 마차가 나가는 걸 봤는데, 확인해 보니 마을에도 없어요. 창고에 맡겨 놓은 짐도 없고."

루키안이 사발을 집어 들며 나직이 웃었다. 유쾌한 웃음이 아니었다.

"보리 십구 포대 유예 계약을 손에 쥐고 사라졌다면, 그 계약서를 누군가에게 가져가는 거겠죠. 아니면 이미 가져가라는 말을 들어서 갔거나."

그는 엘리안을 봤다.

"어젯밤 협상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이 이 성 밖에 있다는 뜻이오."

세라의 턱이 굳었다. 그는 엘리안에게 시선을 맞추지 않은 채 말했다.

"북쪽 고개 연기가 베도르 공작 영지 방향이라고 어제 말했지. 토르빈이 그쪽 상단에 납품한 전력이 있다는 것도. 지금 이 두 개가 겹치면 어떻게 들리는지, 본인이 더 잘 알 거야."

엘리안은 장부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손가락 끝이 지워진 이름 위에 닿았다. 아버지의 서명, 지워진 상대방, 약식 봉인, 병상 기간의 날짜. 그 모든 것이 하나로 이어지는 선을 그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아직 선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무작위가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토르빈이 계약서를 가지고 어디로 갔는지 확인할 수 있소?"

그가 세라에게 물었다.

"추적은 할 수 있어. 반나절이면 충분하고."

세라는 잠깐 멈췄다.

"대신, 내 부하가 움직이면 이 성의 병력이 더 얇아진다. 그 판단은 당신이 해."

엘리안은 루키안을 봤다. 루키안은 천장을 바라보며 사발을 기울이다 말고 말했다.

"저는 봉인 문양을 좀 더 들여다보겠소. 이 인장을 쓰는 상단이 어디인지 좁힐 수 있을 것 같으니."

"움직이시오."

엘리안이 세라를 향해 말했다. 짧고 또렷했다.

"병력이 얇아지는 반나절을 감수하는 게 모르는 채로 하루를 버티는 것보다 낫소."

세라는 대답 대신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돌아섰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바깥에서 발소리가 빠르게 멀어졌다. 엘리안은 그 소리를 들으며 하르트를 향해 한 박자 늦게 말했다.

"아버지 병상 기간 기록 남아 있으면 오늘 오후에 가져와 주십시오. 서명 날짜와 맞춰 볼 것이 있습니다."

집사장은 짧게 고개를 숙였다. 표정은 흔들리지 않았지만, 그 짧은 침묵 사이에서 엘리안은 뭔가를 느꼈다. 하르트가 이미 그 날짜를 알고 있다는 감각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지금껏 말하지 않았다는 것도. 발소리가 창고 밖으로 사라지자 루키안이 낮게 말했다.

"오래 모신 사람일수록 오래 입을 다물 수 있지요."

엘리안은 대꾸하지 않았다. 창고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 쥐는 이미 사라졌고, 빈 선반 위에 먼지만 남아 있었다. 그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지워진 이름 자리 위에 등잔 불빛이 흔들렸다. 누군가 그 이름을 지운 것은 숨기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지우고 나서 봉인까지 찍었다는 것은, 지운 사람도 이 계약이 언젠가 다시 꺼내질 것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봉인은 닫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증거이기도 하니까.

그 생각이 자리를 잡는 순간, 엘리안의 눈이 다시 서명 날짜로 돌아갔다. 3년 전 겨울. 아버지가 병상에 든 해. 그 겨울에 이 계약이 성사되었다면, 서명은 누가 쥐어 주었는가.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침묵해 온 사람이 이 성 안에 있다면, 로벨 영지의 문은 밖에서 부서진 것이 아니라 안에서 먼저 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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