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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4화]

칼집 없는 계약

작성: 2026.04.04 23:29 조회수: 40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이 콘텐츠는 AI가 창작한 장기 연재소설입니다. 실제 인물이나 사건과 무관한 창작물입니다.

새벽 다섯 시의 성 안마당은 말똥과 젖은 짚 냄새로 가득했다. 세라의 부하 두 명이 이미 말에 안장을 얹고 있었고, 엘리안은 외투 끈을 묶으면서 마굿간 옆 두엄 더미를 비켜 섰다. 밟을 뻔했다. 하르트가 등잔을 들고 뒤따라 나오다가 그 광경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무거웠다.

"상인 하나가 유예 계약서를 들고 사라졌으면, 당신이 먼저 움직여야죠."

세라가 고삐를 건네며 말했다. 목소리에 어젯밤의 피로가 조금 남아 있었지만, 눈빛은 말끔하게 깨어 있었다.

"밀렌 마을까지 말로 두 시간. 제 부하 한 명이 어젯밤에 앞서 갔으니, 토르빈이 거기 멈췄는지는 도착하면 알겠습니다."

엘리안은 말 위에 올랐다. 성벽 위로 아직 별이 몇 개 남아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순순히 말해 줄 것 같습니까."

"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사람들을 말하게 만들죠."

세라는 이미 말머리를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당신은 지금 돈이 없으니까, 직함이라도 써야 할 겁니다. 로벨 영주라는 직함."

마지막 두 단어는 약간 눌러서 발음했다. 비꼬는 것인지 진담인지 경계가 흐릿했다.

루키안은 따라오지 않았다. 엘리안이 출발 전 창고 쪽을 돌아봤을 때, 그는 담요를 어깨에 걸치고 봉인 문양이 찍힌 계약서를 촛불 아래 다시 펼쳐 놓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루키안은 고개를 까딱했다.

'다녀오세요'

도 아니고 '잘 다녀오세요'도 아닌, 그냥 '나는 여기 있을 거다'는 의사 표시였다. 그걸로 충분했다.

밀렌 마을은 로벨 성에서 북동쪽으로 두 시간, 구릉 세 개를 넘어야 나오는 곳이었다. 봄이라고 하기엔 공기가 아직 겨울 끝자락 냄새를 품고 있었다. 길가에 녹다 만 눈이 굵은 돌 사이에 끼어 있었고, 말발굽이 진흙을 찰지게 밟을 때마다 소리가 났다. 세라의 부하는 마을 어귀 우물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름은 브린. 키가 작고 눈이 날카로운 여자였다.

"토르빈은 마을에 없습니다."

브린이 보고했다.

"어젯밤 여인숙에서 잠깐 들렀다가 새벽에 북쪽으로 떠났다고요. 말 한 필에 짐은 가볍게. 여인숙 주인이 마지막으로 봤을 때 행선지를 물었더니 '친척 집'이라고 했다는데, 이 동네 사람들은 토르빈한테 친척이 없다는 걸 다 압니다."

"북쪽."

엘리안이 중얼거렸다. 북쪽은 베도르 공작 영지 방향이었다. 어젯밤 루키안이 펼쳐 놓은 지도 위에서 그 방향이 이미 한 번 손가락으로 짚인 곳이었다.

세라가 브린에게 눈짓을 했다.

"여인숙 주인 말고 토르빈이랑 어젯밤에 붙어 있던 사람은?"

"식량 상인 베른입니다. 마을 동쪽 창고 쪽에 삽니다."

베른의 창고는 마을 끝에 있었다. 통나무를 덧댄 낮은 건물이었고, 문 앞에 소금 포대가 두 개 쌓여 있었다. 베른 자신은 문을 열고 나오다가 엘리안 일행과 딱 마주쳤다. 오십대 중반, 코가 크고 눈이 작은 남자였다. 로벨 영주의 외투 문장을 확인하는 데 걸린 시간이 반 박자 길었다. 그 반 박자 사이에 무언가를 결정한 표정이었다.

"토르빈이 어젯밤 무슨 얘기를 했습니까."

엘리안은 인사를 생략했다. 직함도 꺼내지 않았다. 베른이 먼저 로벨 문장을 봤으니 그쪽에서 먼저 움직여야 했다.

베른은 잠시 소금 포대를 내려다봤다가 말했다.

"계약 얘기를 했습니다. 유예 계약이 성사됐다고. 로벨 영지가 밀렌 상권을 다시 열기로 했다는 얘기요."

목소리는 평탄했지만 눈이 움직였다. 창고 문 안쪽 어딘가로.

"그 얘기를 하면서 봉인 문양 얘기도 잠깐 했습니다. 공식 인장이 아닌 거래상 봉인이라고. 자기가 그쪽 물건을 오래 취급해 왔다고요."

세라가 엘리안 옆에서 팔짱을 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어깨 각도가 달라졌다. 대화를 넘겨주는 게 아니라 지켜보는 자세였다. 엘리안은 그걸 눈 끝으로 확인하고 베른에게 다시 물었다.

"그 거래상 이름을 들었습니까."

베른이 입을 열다가 닫았다. 그리고 다시 열었다.

"라이든이라고 했습니다. 성은 말 안 했고요."

짧은 침묵.

"저는 토르빈한테서 들은 것만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쪽 거래에 제가 끼어 있는 건 아닙니다."

마을을 나오는 길에 세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라이든. 들어본 이름입니까?"

"아니오."

엘리안은 고삐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가 풀었다.

"하지만 루키안은 알 수도 있습니다."

"그게 베도르 상단 사람이면?"

세라는 물음표를 붙였지만 목소리에 이미 결론이 들어 있었다.

"그러면 담보 계약서의 지워진 이름이 그쪽 이름이라는 뜻이겠죠."

말이 진흙을 밟았다. 찰박, 하는 소리가 두 번 났다.

"그리고 토르빈은 어젯밤 협상 내용을 이미 넘긴 겁니다. 계약서 원본이 아니라 내용을."

세라는 그 말을 받지 않았다. 받지 않는 것이 동의라는 걸 엘리안은 알고 있었다.

성으로 돌아왔을 때 루키안은 창고 입구 계단에 앉아 있었다. 손에는 종이 한 장이 들려 있었고, 무릎 위에는 빈 잔이 놓여 있었다. 엘리안이 말에서 내리자 루키안이 고개를 들었다.

"왔습니까. 저도 뭔가 찾았습니다."

"라이든이라는 이름을 압니까."

엘리안이 먼저 꺼냈다.

루키안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었다. 딱 반 박자. 베른의 눈이 움직이던 것과 같은 길이였다.

"라이든 거래상단. 베도르 공작가 납품 이력이 있는 민간 마도구 상단입니다. 공식 인장 대신 팔각이 아닌 육각 봉인을 씁니다."

그가 종이를 내밀었다.

"이게 그 봉인 문양의 재현 스케치입니다. 담보 계약서에 찍힌 것과 선 굵기까지 같습니다."

엘리안은 종이를 받아 들었다. 손이 차가웠다. 창고 안에서 몇 시간째 앉아 있었던 모양이었다.

"확신합니까."

"저는 비꼴 때만 틀립니다."

루키안이 빈 잔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지금은 비꼬는 게 아닙니다."

그날 밤, 세라가 엘리안을 찾아온 것은 저녁 식사가 끝나고 한참 뒤였다. 하르트가 물러나고 루키안도 자리를 비운 시간이었다. 세라는 문을 두드리지 않고 그냥 열었다. 엘리안은 뭐라고 말하려다가 그냥 뒀다.

"계약 조건을 다시 얘기해야 합니다."

세라는 의자를 당겨 앉으며 말했다.

"오늘 마을에서 확인한 것들 때문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빠진 항목이 있었습니다."

"말하세요."

"제 부하들이 이 영지에 뼈를 묻을 이유."

세라의 목소리는 낮았다. 직설적이었지만 날이 서 있지는 않았다.

"당신이 여기서 버티다 죽으면, 제 부하들 월급은 누가 챙깁니까. 군량이 떨어지면 누가 책임집니까. 계약서에 봉인을 찍는 것과 이 땅에 남는 것은 다릅니다."

엘리안은 잠시 촛불을 봤다. 촛농이 흘러 촛대 옆에 굳어 있었다.

"지금 이 영지가 줄 수 있는 것은 땅과 내 이름뿐입니다. 그 두 가지로 충분하냐고 물으신다면, 충분하지 않다는 걸 저도 압니다."

"그러면?"

"라이든 상단이 담보 계약서와 연결되어 있다면, 그 계약의 실제 상대방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순간 이 영지의 자산 일부가 어디로 갔는지 추적할 수 있습니다."

엘리안은 세라를 봤다.

"그것을 되찾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 과정에서 당신 부하들이 이 땅에 남을 이유가 생길 것인지, 그건 제가 아니라 그 과정이 증명해야 합니다."

세라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공평한 답입니다."

문 쪽으로 걸어가다가 돌아봤다.

"루키안이 라이든 상단 경로를 좁히면, 그다음 단계에서 제 부하 한 명이 더 움직여야 할 수 있습니다. 그때 성 안 병력이 얇아집니다. 그 반나절을 어떻게 메울 건지 미리 생각해 두십시오."

문이 닫혔다. 엘리안은 촛불 옆에 혼자 남았다. 촛농이 한 방울 더 흘렀다. 세라가 말한 반나절이라는 시간이 머릿속에서 자꾸 다른 무언가와 겹쳤다. 아버지의 병상 기간. 그 기간에 서명이 난 계약서. 하르트가 아직 가져오지 않은 기록. 그 기록이 만약 라이든이라는 이름 어딘가에 닿는다면, 이 영지의 문은 밖에서 부서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서류로 증명된다. 증명이 되면, 다음은 누구에게 그 서류를 들이밀 것인가의 문제였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계승전의 언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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