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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7화]

봉투를 열기 전의 침묵

작성: 2026.04.02 15:01 조회수: 80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이 콘텐츠는 보험을 소재로 한 창작물이며 실제 상품 추천이나 보장 판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월요일 오전, 탕비실 전기포트가 길게 끓는 소리를 냈다.

현우는 믹스커피 봉지를 뜯다가 손을 잘못 놀렸다. 커피 가루보다 설탕이 먼저 종이컵 안으로 우르르 쏟아졌다.

"하……"

작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는 잠깐 컵 안을 내려다보다가 그냥 뜨거운 물을 부었다. 너무 달면 물처럼 마시면 된다. 오늘은 그 정도 타협이면 충분했다.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아라가 모니터에서 눈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박은주 씨 연락 왔어?"

"아직요. 오전 중에 확인된다고는 했는데……"

"확인되면 바로 말해. 애매하게 넘기지 말고."

짧은 말이었는데 이상하게 귀에 오래 남았다.

애매하게 넘기지 말 것.

현우는 종이컵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너무 달았다. 생각보다 훨씬 더.

그런데 열한 시도 되기 전에 휴대폰이 진동했다.

박은주 씨였다.

[오늘 오전 잠깐 뵐 수 있을까요? 회사 근처 카페 괜찮으시면요.]

현우는 문자를 두 번 읽었다. 먼저 만나자고 한 건 처음이었다. 좋은 쪽인지, 불안한 쪽인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답장을 쓰던 손가락이 한 번 멈췄다.

[네, 가능합니다. 말씀하신 곳으로 가겠습니다.]

전송 버튼을 누르고 나서야 숨이 조금 나왔다.

카페는 박은주 씨 회사 건물 뒤편, 유리창이 넓은 작은 곳이었다. 점심시간 전이라 사람은 많지 않았고, 에어컨 바람에 원두 냄새가 옅게 섞여 있었다.

박은주 씨는 이미 와 있었다.

창가 자리.

아메리카노 두 잔.

그리고 테이블 한쪽에 놓인 얇은 서류 봉투.

그 봉투를 보는 순간 현우는 괜히 허리를 곧게 폈다. 계약서인가 싶었다. 아직 아무것도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서류가 먼저 올라와 있으면 사람 마음이 이상하게 급해졌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박은주 씨가 먼저 웃었다. 입가가 먼저 올라갔고, 눈은 조금 늦게 따라왔다.

"아닙니다. 먼저 와 계셨네요."

현우는 맞은편에 앉았다. 가방을 무릎 옆에 두면서도 시선이 자꾸 봉투로 갔다. 들킨 것 같아 괜히 커피 컵으로 손을 옮겼다.

박은주 씨가 컵 뚜껑 끝을 손끝으로 만지작거렸다.

"어머니 건 때문에요.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 말고, 제가 하나를 빠뜨린 게 있어서요."

현우는 바로 말을 잇지 않고 고개만 들었다.

"당뇨 말고, 혈압 약도 드세요. 작년 여름부터요."

담담하게 말했지만 마지막 어미가 조금 약해졌다.

"지난번에는…… 제가 그걸 말을 못 했어요. 숨기려던 건 아닌데, 어디까지 말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서요."

현우의 입안으로 익숙한 문장이 올라왔다.

괜찮습니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늘 하던 말이었다. 상대를 안심시키기에도 편했고, 자리를 빨리 정리하기에도 편했다. 그런데 오늘 그 말을 꺼내는 순간, 이 자리가 다시 얇아질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물만 한 모금 마셨다.

카페 안쪽에서 얼음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짧지 않은 침묵이 테이블 위에 내려앉았다.

박은주 씨는 그 침묵을 피하지 못하고 결국 시선을 내렸다.

"어머니는 이런 얘기 자체를 별로 안 좋아하세요. 병원 다니면 됐지, 뭘 그렇게까지 적고 확인하냐고 하시거든요."

그녀가 봉투 위에 손을 올렸다.

"근데 저는 자꾸 아버지 생각이 나요. 그때도 다들 별거 아니라고 했어요. 조금 쉬면 괜찮아진다고. 그래서 더 늦었고요."

현우는 그제야 알았다. 박은주 씨가 서두르는 이유가 병명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늦을까 봐 무서운 사람의 속도였다.

그는 수첩을 꺼냈다. 펜 끝이 종이 위에서 잠깐 멈췄다.

"혈압 약은 지금도 꾸준히 드시죠?"

"네."

"약 챙기는 건 박은주 씨가 하시고요?"

"제가 거의 해요. 어머니가 자꾸 빼먹으셔서요."

질문은 두 개뿐이었다. 설명은 붙이지 않았다.

박은주 씨가 그걸 눈치챈 듯 현우를 봤다.

"오늘은…… 바로 뭐라고 안 하시네요."

현우는 순간 민망해졌다. 예전의 자신이라면 이미 노트북을 열고, 준비한 요약본을 꺼내고, 말의 빈칸을 설명으로 다 메우고 있었을 것이다.

"제가 너무 빨리 말하는 편이었나 봅니다."

박은주 씨가 작게 웃었다.

"조금요."

그 한마디가 생각보다 세게 들어왔다.

현우도 따라 웃었다. 안 그러면 더 민망해질 것 같아서였다.

"오늘은 덜 그러려고 왔습니다."

"그건 좀 보이네요."

짧은 농담이 오가자 테이블 위 공기가 아주 조금 풀렸다.

그제야 박은주 씨가 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계약서가 아니라 병원 영수증과 처방전 사본 몇 장이 들어 있었다.

현우는 속으로만 헛기침했다. 아까부터 혼자 너무 앞서갔다는 사실이 조금 부끄러웠다.

"참고로 보시라고 가져왔어요. 어머니는 이런 거 들고 다니는 것도 싫어하시는데, 제가 그냥 챙겼어요."

"잘하셨어요.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는 서류를 바로 넘기지 않고 날짜부터 천천히 봤다. 작년 여름. 그 뒤로 이어진 방문 기록. 띄엄띄엄이 아니라 생각보다 꾸준했다.

박은주 씨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많이 달라질까요?"

현우는 이번엔 피하지 않았다.

"지금 바로 단정해서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 대신 애매하게 괜찮다고 하진 않을게요. 확인되는 대로, 불리한 부분까지 포함해서 그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박은주 씨는 잠깐 말이 없었다.

현우는 속으로 아차 싶었다. 너무 딱딱했나 싶어서.

그런데 박은주 씨가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더 나아요."

그녀의 손이 커피 컵에서 떨어졌다. 아까부터 잔만 붙들고 있던 손이었다.

"저, 빨리 하고 싶은 건 맞는데요. 대충 듣고 나중에 다시 놀라는 건 더 싫어요. 기다릴 수 있어요."

그 말이 이상하게 크게 남았다.

기다릴 수 있어요.

현우는 그 문장을 수첩 어디에도 적지 못했다. 적으면 너무 노골적일 것 같아서였다. 대신 서류를 봉투에 다시 넣으며 고개를 숙였다.

"확인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그리고…… 지난번에 못 하신 말씀, 오늘 먼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은주 씨는 대답 대신 아주 짧게 웃었다. 이번에는 눈이 먼저 웃었다.

카페를 나와 버스에 올라탄 뒤에야 현우는 가방을 열어 봤다. 안쪽 파일철에 요약본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출발 전에 분명 챙겼는데, 끝내 꺼내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허전하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으로, 뭘 꺼내지 않았는데도 자리가 비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무실로 돌아오자 아라가 바로 물었다.

"어땠어?"

현우는 봉투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추가로 확인할 게 생겼어요. 당뇨 말고 혈압 약도 작년 여름부터 드셨대요. 지난번엔 못 꺼냈고요. 오늘 본인이 먼저 말씀하셨어요."

아라의 눈썹이 아주 조금 올라갔다.

"왜 지난번엔 안 나왔대?"

"말할 타이밍을 못 잡았던 것 같아요."

"넌?"

"이번엔 안 재촉했습니다."

아라는 몇 초쯤 현우를 봤다. 평소 같으면 한마디 비꼬거나 부족한 점을 먼저 짚었을 텐데, 오늘은 달랐다.

"잘했네."

짧은 말이었다.

그런데 현우는 그 한마디에 괜히 등을 폈다. 칭찬이라기보다, 겨우 통과했다는 도장 같았다.

그는 자리에 앉아 수첩을 펼쳤다. 적힌 건 질문 몇 줄과 날짜 메모뿐이었다. 전보다 훨씬 적었는데, 이상하게 오늘 들은 건 더 많았다.

펜을 들고 추가 메모를 하려던 순간, 휴대폰이 진동했다.

부르르.

화면 위에 저장되지 않은 번호가 떴다.

낯선 번호였다.

그런데 완전히 낯설지는 않았다.

현우의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멈췄다.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내려앉았다.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날 듯 말 듯한 번호. 피하고 싶었던 쪽의 감각이 먼저 왔다.

아라가 옆자리에서 서류를 넘기다 말고 흘끗 봤다.

"안 받아?"

현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진동이 한 번 더 울렸다.

부르르.

박은주 씨가 말한 문장이 아직 귀에 남아 있었다.

대충 듣고 나중에 다시 놀라는 건 더 싫어요.

현우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오늘 처음 알게 된 건, 말을 잘하는 것보다 먼저 버텨야 하는 침묵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침묵 뒤로 물러서지 않기로 했다.

그는 통화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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