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우물가는 손이 저릴 만큼 차가웠다. 서리가 나무 두레박 위에 하얗게 내려앉아 있었고, 물이 손끝을 스칠 때마다 손가락 마디가 붉어졌다. 삭풍객잔의 아침은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 다만 어젯밤 느티나무 아래에서 발견된 학의 깃털이 서진해의 잠을 통째로 빼앗아 간 것만은 예외였다.
막금산이 부엌 쪽문을 열고 나왔다. 평소라면 “이놈아, 찬물에 손 담그면 손목 굳는다”는 잔소리가 먼저 나올 시각이었다. 그러나 그는 한 발짝 떨어진 곳에 선 채 서진해를 바라보기만 했다. 눈 밑에 그림자가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얼굴이었다.
“진해야.”
서진해의 손이 멈추었다. 그 호칭은 막금산이 진지한 이야기를 꺼낼 때만 쓰는 이름이었다. 평소에는 ‘이놈’ 아니면 ‘잡역’이었다.
“오늘부터 손님상은 내가 나른다. 너는 부엌 밖으로 나오지 마라. 밤에 마당에 나오는 것도 안 된다. 연무고 뭐고 없다.”
막금산의 눈은 우물 속 물처럼 깊고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지난번 낯선 손님 셋이 왔을 때보다 한층 더 무거운 긴장이 서려 있었다. 서진해는 두레박을 내려놓고 조용히 물었다.
“주인어른, 그 나뭇가지 때문입니까.”
“밥이나 먹어.”
대답 대신 등을 돌린 막금산의 어깨가 유난히 넓어 보였다. 부엌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고,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짚신 자국이 서리 위에 또렷하게 남았다. 서진해는 그 발자국을 한참 내려다보았다. 막금산이 저렇게 힘을 주고 걸을 때는, 몸 어딘가에 눌러 담은 것이 있다는 뜻이었다.
아침 준비를 마치고 부엌으로 돌아오니 담소령이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아 불을 쬐고 있었다. 서진해가 들어서자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담소령 역시 잠을 설친 모양이었다.
“야, 잡역. 여기 원래 이렇게 삭막해? 아침부터 주인어른 얼굴이 장례식장이던데.”
“원래 그러십니다.”
“거짓말. 내가 며칠 있었는데 오늘 처음 봐, 저 표정. 어제 그 나뭇가지 때문이지?”
서진해는 대답하지 않고 솥뚜껑을 열었다. 죽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국자를 들어 한 바퀴 젓자 담소령이 일어나 옆으로 다가섰다. 키가 서진해의 어깨쯤 오는 그녀가 고개를 비스듬히 들어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학 깃털이잖아. 나도 봤거든. 보통 새 깃털이 아니야. 저건 일부러 다듬어서 꽂은 거라고. 누가 표식을 남긴 거란 말이야.”
서진해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담소령의 관찰력이 날카롭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녀가 어디까지 알고 있느냐였다. 아는 척해서도 안 되었고, 모르는 척 허술하게 넘겨서도 안 되는 경계의 순간이었다.
“깃털은 바람에 날아오기도 합니다. 산 아래 못에 학이 서식하니까요.”
“에이, 바람에 날려온 깃털이 나뭇가지에 일자로 꽂혀? 내가 바보로 보여?”
서진해는 입을 다문 채 죽을 그릇에 담았다. 담소령이 한 발짝 더 다가섰다.
“나한테까지 숨길 거면 말고. 근데 한 가지만 물어볼게. 어제 내 약첩 봤지? 첫 장. 네가 눈 커진 거, 다 봤어.”
공기가 변했다. 아궁이 불이 탁 하고 장작을 씹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서진해는 죽 그릇을 내려놓았다. 부정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약첩 첫 장에 적힌 방풍과 갈근의 비율, 그 옆에 가늘게 달린 주석의 필체는 그가 열세 살 때 사부의 약방에서 수백 번 보았던 글씨와 너무나 닮아 있었다.
“그 약첩, 어디서 나신 겁니까.”
담소령의 눈이 가늘어졌다. 쾌활한 기색이 걷히고, 그 아래 차갑고 조심스러운 눈빛이 드러났다.
“어머니 유품이야. 왜 물어?”
“그 배합이 낯익어서 여쭙는 겁니다. 혹시 약첩을 쓰신 분이 어머니인지, 아니면 다른 분인지…….”
“어머니가 직접 쓴 거야. 근데 어머니도 누군가한테 배운 거라고 했어. 누군지는 안 알려줬고.”
서진해의 심장이 한 박자 느리게 뛰었다. 사부의 글씨, 사부에게 배운 누군가, 담소령의 어머니. 연결되어서는 안 되는 실들이 한 올씩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더 파고들면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 수 있었다. 그는 잠깐 숨을 고른 뒤, 끝내 거짓과 진실의 중간쯤 되는 말을 골랐다.
“별것 아닙니다. 예전에 약방에서 잠깐 심부름한 적이 있어서, 배합이 비슷한가 싶었을 뿐입니다.”
담소령이 팔짱을 꼈다. 믿지 않는 눈빛이었다. 그래도 더 밀어붙이지는 않았다. 대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약방 심부름한 놈이 방풍이랑 갈근 비율을 눈으로 잡아? 그것도 첫 장만 스치듯 보고?”
서진해는 대답하지 못한 채 부엌을 나섰다. 복도에서 발걸음을 멈추자 품속에 접어 넣은 잔화심결 두루마리의 무게가 갑자기 무거워진 것 같았다. 사부의 필체를 알아본 것은 무공이 아니라 그리움이었다. 그리고 그 그리움이 담소령이라는 낯선 여인을 통해 자신에게 되돌아오고 있었다.
점심이 지나고 해가 기울 무렵, 서진해가 헛간 앞을 지나는데 막금산이 관도 쪽에서 돌아오고 있었다. 평소에는 객잔 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 사람이었다.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지만 얼굴은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서진해가 인사를 건네려는데 막금산이 먼저 입을 열었다.
“관도 삼 리 밖 이정표에 칼자국이 있더라. 하나가 아니라 셋이야. 나란히.”
서진해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학의 깃털, 그리고 이정표의 칼자국 셋. 그것이 학영회의 전진 표식이라면, 추적 대상이 이 근방에 있다는 확인이자 곧 인원을 보내겠다는 예고였다. 아직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몸이 먼저 알아차렸다. 열세 살의 밤, 청문파 산문 기둥에도 같은 칼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셋이 아니라 다섯이었고, 그다음 날 불이 났다.
“주인어른.”
“말하지 마.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
막금산이 서진해의 어깨를 잡았다. 크고 거친 손이었다. 장작을 패고, 솥을 들고, 누군가를 지켜 온 손이었다. 그 손끝에 미세한 떨림이 실려 있었다. 서진해는 처음으로 막금산이 떠는 것을 보았다.
“주인어른, 손이…….”
“추워서 그래. 이놈아, 밥이나 먹어.”
막금산은 손을 거두고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서진해는 헛간 앞에 선 채 관도 쪽을 바라보았다. 겨울 해가 산등성이 뒤로 빠르게 기울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헛간 지붕의 갈대가 스르르 소리를 냈다. 아직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삭풍객잔을 향해 걸어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뼈를 훑고 지나갔다.
그 순간 서진해는 결심했다. 막금산이 아무리 막아도 오늘 밤만은 청락을 손 닿는 곳에 두겠다고. 숨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면, 적어도 당하는 쪽으로 남아 있지는 않겠다고.
저녁이 되자 서진해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며 귀를 세우고 있었다. 대청에서는 막금산이 혼자 술을 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잔이 탁자에 내려앉는 소리가 유독 조심스러웠다. 그 소리 사이로 담소령이 살금살금 부엌 안으로 들어왔다.
“야.”
“뭡니까.”
“주인어른이 술 마시면서 혼잣말하더라. ‘이번엔 다르다’라고. 무슨 뜻이야?”
서진해의 손에서 그릇이 미끄러져 물속에 풍덩 빠졌다. 이번엔 다르다. 그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이번’
이라는 말은 곧 ‘저번’이 있었다는 뜻이었다. 막금산에게 이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정말로, 막금산은 학영회를 알고 있는 것인가.
물속에 잠긴 그릇이 흔들리며 일렁이는 수면에 서진해의 얼굴이 비쳤다. 갈라지고 흔들리는 얼굴이었다. 담소령이 그 옆에서 수면을 들여다보다가 낮게 말했다.
“네가 숨기는 게 뭔지는 아직 모르겠어. 근데 한 가지는 알겠더라. 여기 있으면 위험한 건 나만이 아니야. 너도, 주인어른도.”
그 말은 뜻밖에도 추궁이 아니라 경고처럼 들렸다. 서진해는 잠시 담소령을 바라보았다. 아침부터 날을 세우던 얼굴이었는데, 지금 그녀의 눈빛에는 다른 결이 섞여 있었다. 의심은 그대로였지만, 그 밑에 얇은 걱정이 깔려 있었다. 서진해는 그 미묘한 변화가 낯설었다. 낯설어서 더 위험하게 느껴졌다.
“방에 들어가 계십시오.”
“명령이야?”
“부탁입니다.”
담소령은 잠깐 입술을 다물었다가, 끝내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코웃음을 한 번 치고 돌아섰다.
“부탁이면 좀 다르네, 잡역.”
그녀가 나간 뒤에도 서진해는 한동안 물속을 내려다보았다. 품속의 두루마리와 방 한쪽에 숨겨 둔 청락의 무게가 점점 이 객잔의 마루를 뚫고 내려앉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조금 전보다 숨이 덜 막혔다. 혼자만 알고 견뎌야 한다고 여겼던 긴장 속에, 아주 미약한 틈이 생긴 듯했다.
그날 밤, 서진해는 막금산의 말대로 방 안에 머물렀다. 다만 잠들 생각은 하지 않았다. 창호지 너머로 마당을 비추는 달빛이 가늘었다. 그는 이불 속에 손을 넣은 채 청락의 자루를 더듬었다. 차가운 감촉이 손바닥에 닿자, 오 년 동안 눌러 두었던 몸의 기억이 조용히 깨어났다. 발끝에 힘이 모이고, 호흡이 가라앉고, 단전에 가늘게 웅크린 내기가 실처럼 이어졌다.
바람결에 실려 오는 소리가 귓전을 스쳤다. 서진해는 몸을 일으켜 창호지 틈에 눈을 댔다. 막금산이 마당 한가운데 서 있었다. 무언가를 손에 쥐고 있었다. 달빛 아래에서 그것이 번뜩 빛났다. 길고 넓은 칼날, 도였다. 서진해가 오 년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막금산의 손에 들린 무기였다.
막금산은 도를 한 번 느리게 내리그었다. 허세도, 과장도 없는 동작이었다. 그런데 그 한 번에 바람의 결이 갈라졌다. 발은 반 보도 움직이지 않았는데 어깨와 허리, 손목이 한 줄로 이어지며 힘이 흘렀다. 오래 감춰 둔 사람이 아니고서는 나올 수 없는 칼길이었다. 이어 그는 도끝을 낮춘 채 관도 쪽을 오래 바라보았다.
서진해는 숨을 죽이고 그 등을 보았다. 아까 헛간 앞에서 떨던 손과는 달랐다. 지금의 막금산은 흔들리지 않았다. 두려움을 억누르는 사람이 아니라, 두려움을 알고도 물러서지 않기로 한 사람의 등이었다. 그 순간 서진해의 마음속에서 막연한 불안이 조금 다른 감정으로 바뀌었다. 경계와 의문은 여전했지만, 그 위에 설명하기 어려운 경외가 얹혔다. 이 사람은 단지 자신을 숨겨 준 객잔 주인이 아니었다.
주인어른은 대체 누구인가. 그리고 ‘이번엔 다르다’는 말에서, 저번에는 무엇이 같았던 것인가. 서진해는 이불을 움켜쥔 채 눈을 감았지만 잠은 끝내 오지 않았다. 먼 곳에서 바람이 불어왔고, 그 바람 끝에 아주 희미한 쇳소리가 섞여 있는 듯했다. 그때였다. 객잔 뒤편, 우물 쪽에서 돌에 무언가 스치는 듯한 마른 소리가 한 번 들렸다. 막금산도, 담소령도 아직 깨어 있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