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 오기 전, 부엌 아궁이의 불씨가 먼저 깨어났다.
소령은 등에 밴 열기에 눈을 떴다. 정확히는 열기보다 통증에 가까웠다. 어젯밤 기맥이 뒤집히며 온몸을 훑고 지나간 자리마다 근육이 비틀린 듯 굳어 있었고, 등에 새겨진 검결 문양만은 아직도 달군 쇠처럼 뜨거웠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갈비뼈 안쪽이 바늘로 찌르듯 아렸다. 그는 이를 악물고 상체를 일으켰다. 몸 아래에는 가마솥 옆에 깔린 거적이 있었고, 어깨에는 낡은 담요가 덮여 있었다. 누가 자신을 여기까지 옮겼는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궁이 앞에는 팽노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부지깽이로 불씨를 뒤적이는 손이 느릿했지만 헛손질은 없었다. 굽은 등이 새벽 어스름 속에서 유난히 크게 보였다. 소령이 몸을 움직이자 팽노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
"일어났으면 물 떠 와라. 우물은 뒷마당이다."
걱정도, 위로도 없었다.
소령은 오히려 그 말이 편했다. 대답 대신 일어섰다. 무릎이 후들거렸지만 벽을 짚지는 않았다. 한 번 기대면 그대로 주저앉을 것 같았다.
뒷마당의 공기는 칼날처럼 차가웠다. 두레박을 내리는 팔에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아 밧줄이 두 번이나 손바닥에서 미끄러졌다. 거친 삼줄이 살을 벗겨 냈고, 손끝이 저릿하게 떨렸다. 세 번째에야 물동이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출렁인 물이 손등을 적셨고, 그 차가움이 등의 열기를 잠시 눌렀다. 삼 년째 되풀이한 동작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두레박 하나 건져 올리는 일조차 이렇게 버거웠다.
약하면 지키지 못한다.
짧고 날카로운 생각이 속을 긁었다. 손끝의 떨림보다 그 사실이 더 분했다.
부엌으로 돌아오니 팽노가 가마솥에 쌀을 씻어 넣고 있었다. 소령이 물동이를 내려놓자, 팽노가 처음으로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보았다. 주름 사이의 작은 눈이 뜻밖에도 날카로웠다.
"네 사부가 누구냐."
소령의 손이 멈췄다.
사부.
그 한마디가 가슴 한복판을 눌렀다. 대답할 수 있는 이름은 있었다. 그러나 그 이름을 입에 올리는 순간, 잿더미가 된 산문과 피 냄새 밴 돌계단, 끝내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까지 모조리 되살아날 것 같았다. 잊고 버텨 온 것이 아니라 겨우 덮어 두고 있었음을 인정해야 할 것만 같았다. 입술이 달싹였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아궁이에서 장작이 톡 하고 튀는 소리만 부엌을 메웠다.
팽노는 재촉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돌려 솥 안의 쌀을 저었다. 이내 선반에서 된장 단지를 내리고 무를 썰기 시작했다. 칼질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수십 년을 반복해 온 손놀림이었다. 그런데 소령은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이상한 위화감을 느꼈다. 요리칼이 도마를 두드리는 소리인데도 어쩐지 검집을 두드리는 소리처럼 들렸다. 칼끝이 멈추는 자리마다 망설임이 없었다. 밥 짓는 손이라기엔 너무 단정했다.
잠시 뒤, 팽노가 낮게 말했다.
"대답 안 해도 된다. 밥은 끓인다."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목을 조였다. 소령은 고개를 숙인 채 물동이를 솥 옆으로 옮겼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다.
솥에서 김이 오르며 된장과 무가 섞인 구수한 냄새가 부엌을 채웠다. 빈속이 낮게 울렸다. 팽노가 뚝배기에 국밥을 퍼 담아 소령 앞에 밀어놓았다. 밥알이 국물 위에 도톰하게 떠 있었다. 소령은 숟가락을 들었다. 첫 술을 떠넣는 순간 뜨거운 국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속을 세게 건드렸다. 며칠째 제대로 먹지 못한 몸이었다. 두 번째, 세 번째 술이 이어지자 먹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팽노는 맞은편에 앉아 자기 그릇을 천천히 비우며 소령을 지켜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다그치는 말보다 더 무거웠다.
그때 마당 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가볍지만 흐트러짐 없는 보폭이었다. 막리연이 부엌 문턱에 서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새벽 찬 공기를 맞고 온 얼굴은 창백했고, 손에는 약초 보따리가 들려 있었다. 소령의 뚝배기를 보더니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밥은 먹을 수 있구나. 그럼 죽진 않겠다."
빈정거림처럼 들렸지만, 소령은 그 말 속에 묻은 안도까지 못 들을 만큼 둔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더 마음이 불편했다. 어젯밤 자신이 쓰러진 모습을 본 사람 앞에서 약한 꼴을 들킨 기분이 들었다.
막리연이 보따리를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 문양, 네가 원해서 새긴 건 아니지."
질문이라기보다 확인에 가까운 말이었다. 소령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국밥을 한 술 더 떴다. 입안으로 들어가는 뜨거운 국물보다 그 시선이 더 따갑게 느껴졌다.
막리연이 팽노를 보았다. 팽노는 그릇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사이에 소령이 알 수 없는 묵계가 스쳤다. 숟가락 자루가 손바닥에 파고들 만큼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네가 숨기고 싶은 건 알겠다."
막리연이 낮게 말했다.
"하지만 몸은 거짓말을 못 해. 어젯밤 네 보법은 반 박자 빨랐고, 검을 뻗을 때 어깨가 먼저 열렸다. 검결이 네 몸을 억지로 끌고 간 거지, 네가 검결을 쓴 게 아니다. 그 상태로 한 수만 더 이어 갔으면 혈사문 놈들보다 네가 먼저 쓰러졌을 거다."
소령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봤습니까."
"봤다."
짧은 대답이었다. 변명도, 에둘러 주는 말도 없었다. 소령은 이를 악물었다. 복면까지 쓰고 나갔는데도 결국 들켰다. 그것도 가장 들키고 싶지 않았던 사람에게.
하지만 그보다 더 거슬린 건 막리연의 다음 말이었다.
"무모했다."
숟가락이 뚝배기 가장자리에 부딪혀 딸깍 소리를 냈다.
"가만히 있었어야 합니까?"
소령의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
"약재상까지 손대는데? 담 누님이 다치고, 객잔까지 짓밟혀도 저는 숨어서 숨만 고르고 있으란 말입니까?"
부엌 안의 공기가 순간 무거워졌다. 팽노의 손이 설핏 멈췄다. 막리연은 소령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가만히 있으라는 뜻이 아니다. 살아남으라는 뜻이지. 죽으러 뛰어드는 건 의기가 아니라 낭비다."
그 말은 칼날처럼 정확해서 더 아팠다. 소령은 반박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어젯밤 자신이 쓰러진 순간을 떠올리자 어떤 말도 변명이 되지 않았다. 담여화의 약재상을 지키겠다고 나섰다가 정작 끝은 남에게 업혀 오는 꼴이었다.
막리연은 보따리를 풀어 약초를 하나씩 골라내며 말을 이었다.
"등에 검결이 새겨진 채로 기를 억지로 끌어쓰면 역류가 반복된다. 다음번엔 기절로 끝나지 않아. 경맥이 상하거나, 심하면 단전이 무너진다."
단전이 무너진다.
그 말의 무게를 모를 만큼 소령은 어리지 않았다. 검을 못 쥐는 정도가 아니었다. 사람으로서 온전히 설 수 없게 된다는 뜻이었다. 순간 목 안이 바짝 말랐지만, 그는 숟가락을 내려놓지 않았다. 내려놓는 순간 손의 떨림이 드러날 것 같았다.
막리연이 다시 약초 줄기를 집어 들었다.
"검부터 배우고 싶겠지. 하지만 네 몸은 지금 검을 받을 그릇이 아니다. 기초 내공부터 다시 쌓아야 한다. 기맥을 바로 세우고, 검결이 요구하는 흐름을 버틸 바탕부터 만들어야 해. 순서를 건너뛰면 몸이 먼저 부서진다."
소령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빛에 어린 건 반발이었다. 검을 쥐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내공이니 기초니 하는 말은 멀고 답답하게 들렸다. 지금 강호는 기다려 주지 않는데 자신만 제자리걸음을 하라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럼 그동안 또 누가 다치면요?"
소령이 물었다.
"또 보고만 있습니까?"
이번에는 막리연이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이 오히려 가벼운 위로보다 진지했다.
"그래서 내가 있는 거다."
담담한 한마디였다. 허세도, 과장도 없었다. 하지만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부엌 안의 공기가 미세하게 달라졌다. 소령은 처음으로 막리연이 능청스러운 떠돌이 검객의 얼굴 뒤에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 어렴풋이 느꼈다. 저 사람은 정말로 칼을 대신 들어 줄 수 있다. 적어도 당장은.
그 사실이 이상하게 분했다. 안도와 분함이 한꺼번에 치밀었다. 남에게 기대야 한다는 현실이 자존심을 긁었다. 그래서 소령은 더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요. 왜 나를 살리고, 왜 가르치려 합니까?"
막리연은 잠시 소령을 바라보다가 약초 줄기를 꺾었다. 마른 줄기가 부러지는 소리가 작게 났다.
"빚이 있어서."
누구에게 진 빚인지, 어떤 빚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짧은 대답에는 농담이 없었다. 팽노가 빈 그릇을 들고 일어서며 등을 돌렸다. 그 등이 평소보다 더 굽어 보였다. 소령은 두 사람의 침묵 속에서 자신이 모르는 과거의 그림자를 보았다. 청명문이라는 이름과 이어진, 아직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은 무언가였다.
그는 뚝배기에 남은 국밥을 마지막 한 술까지 긁어먹었다. 빈 그릇을 내려놓는 손은 여전히 아팠지만, 아까처럼 흔들리지는 않았다. 아니, 흔들림을 억지로 눌러 버렸다.
도망치면 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편한 길로는 아무것도 되찾지 못한다.
소령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팽노가 설거지통 앞에서 고개를 돌렸고, 막리연도 약초 손질을 멈춘 채 그를 올려다보았다.
"수련을 가르쳐 주십시오."
목소리는 낮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부탁이면서도 선언에 가까웠다. 남이 내민 손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제 발로 한 걸음을 내딛겠다는 뜻이었다.
막리연은 대답 대신 손가락 두 개를 들어 탁자 위를 툭 쳤다.
"말로만은 안 된다."
소령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지금 여기서 정해라."
막리연의 시선이 똑바로 꽂혔다.
"첫째, 다시는 혼자 검을 뽑지 않는다. 둘째, 내가 멈추라 하면 멈춘다. 셋째, 수련이 고통스럽다고 도망치지 않는다. 셋 중 하나라도 못 지킬 것 같으면 지금 그릇 내려놓고 나가라. 네가 선택해라. 검결에 끌려다닐지, 네가 검결을 다스릴지."
부엌 안이 조용해졌다. 아궁이 불이 타들어 가는 소리만 작게 들렸다.
이것은 권유가 아니었다. 분명한 규율이었고, 동시에 시험이었다.
소령은 턱을 굳혔다. 첫째는 자존심을 꺾는 일이었다. 둘째는 남의 명에 몸을 맡기는 일이었다. 셋째는 어쩌면 가장 어려웠다. 그는 지난 삼 년 동안 누구의 제자도 아니었고, 누구의 보호도 받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고 살아왔다. 그런데 지금 이 사내 앞에서 그 모든 버팀목을 스스로 내려놓으라니.
잠깐, 정말 잠깐만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스쳤다. 이 문을 나가면 된다. 아무에게도 기대지 않고, 아무에게도 약한 꼴을 보이지 않고, 다시 혼자 버티면 된다.
하지만 어젯밤 골목 바닥의 차가움이 떠올랐다. 손에서 검이 미끄러지던 감각, 시야가 뒤집히던 순간, 그리고 자신보다 먼저 담여화의 얼굴이 떠오르던 찰나까지.
혼자서는 안 된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 검에 베이는 것보다 더 쓰렸다.
소령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갈비뼈 안쪽이 욱신거렸다. 그래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지키겠습니다."
막리연은 아무 말이 없었다. 소령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혼자 검을 뽑지 않겠습니다. 멈추라 하면 멈추겠습니다. 도망치지도 않겠습니다."
말을 끝낸 뒤에야, 그것이 단순한 대답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박는 못이라는 걸 깨달았다. 되돌릴 수 없는 약속이었다.
그제야 막리연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해 뜨기 전부터 시작한다. 내공은 거짓말을 안 한다. 네가 버틴 만큼만 쌓이고, 속인 만큼만 무너진다."
팽노는 설거지통에 손을 담근 채 창밖을 보았다. 동이 트고 있었다. 객잔 마당 너머로 붉은 기운이 번지는 하늘 아래, 그의 입술이 소리 없이 한 번 움직였다. 아무도 듣지 못한 이름 하나가 새벽 공기 속에 흩어졌다. 그리고 물속에 잠긴 팽노의 손마디에는 부엌칼만 쥐어 온 사람에게는 남기 어려운 굳은살이 선명했다. 검자루를 오래 쥔 자의 굳은살이었다.
소령의 시선이 거기에 잠깐 머물렀다. 막리연의 눈빛도 아주 미세하게 가라앉았다. 마치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 다시 확인된 사람처럼.
소령은 문득 깨달았다. 이 객잔에는 자신만 숨은 것이 아니었다. 막리연도, 팽노도, 각자 다른 이름과 다른 상처를 감춘 채 같은 지붕 아래 버티고 있었다. 그렇다면 청명문이 무너진 그날의 잿더미는 아직 끝난 일이 아닐지도 몰랐다.
그때였다.
객잔 앞마당 쪽에서 문짝을 두드리는 소리가 세 번, 짧고 무겁게 울렸다.
쿵. 쿵. 쿵.
이른 시각에 찾아올 손님이 있을 리 없었다. 팽노의 손이 물속에서 멈췄고, 막리연은 고개를 들었다. 소령은 본능적으로 숨을 죽였다.
잠시 뒤, 닫힌 문 너머로 낯선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취선객잔 주인장. 청명문의 옛빚을 받으러 왔다."
부엌 안의 공기가 단숨에 얼어붙었다. 소령은 자신도 모르게 팽노의 등을 보았다. 굽어 있던 그 등이, 그 순간만큼은 조금도 굽어 있지 않았다. 늙은 객잔지기의 기세가 아니라 오래 칼을 접어 둔 무인의 기세가 새벽 공기를 밀어냈다.
막리연의 손끝도 조용히 멈췄다. 웃음기 없는 눈이 문 쪽으로 향했다. 소령은 방금 전 자신이 한 약속을 떠올렸다. 혼자 검을 뽑지 않는다. 멈추라 하면 멈춘다.
그런데 문밖에서 청명문의 이름을 입에 올린 자는 대체 누구인가. 죽은 줄 알았던 문파의 빚을 이제 와 누가 들고 온 것인가.
그리고 그 빚은, 정말 돈으로 갚을 수 있는 것이기나 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