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파서진 저잣거리의 공기가 달랐다. 평소라면 해가 세 뼘쯤 올라야 문을 여는 포목점이 아직 널빤지를 내리지 않았고, 두부장수 곽씨 영감은 수레를 끌고 나왔다가 골목 어귀에서 발을 멈추더니 그대로 되돌아갔다. 소령은 물동이를 어깨에 올리다 말고 저잣거리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낯선 사내 셋이 느릿느릿 길을 걸어오고 있었다. 어깨가 넓고, 허리에 도를 찬 자가 둘. 나머지 하나는 빈손이었지만 걸음걸이가 가장 위험했다. 앞꿈치에 무게를 싣지 않고 발바닥 전체로 땅을 누르는 걸음―무공을 익힌 자의 보법이었다.
소령은 물동이를 내려놓지 않았다. 시선을 끌면 안 된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지만 발걸음은 일정하게 유지했다. 취선객잔 뒷문으로 돌아 들어오자 팽노가 부엌에서 무를 썰고 있었다. 칼날이 도마를 두드리는 소리가 묘하게 규칙적이었다.
"밖에 낯선 놈들 셋."
팽노의 손이 멈추지 않았다. 무가 일정한 두께로 잘려 나갔다.
"알아."
그 두 글자뿐이었다. 소령은 더 묻지 않았다. 팽노가 '알아'라고 했을 때의 목소리에는 두 종류가 있었다. 신경 쓸 것 없다는 뜻일 때와, 신경은 쓰되 움직이지 말라는 뜻일 때. 오늘은 후자였다. 칼날이 도마에 닿는 소리가 평소보다 반 박자 느렸다.
오전 내내 저잣거리에 소문이 돌았다. 혈사문이라는 이름은 변방 파서진에서조차 낯설지 않았다. 북쪽 회랑을 끼고 도적과 밀수를 관리하는 중소 문파. 멸문당한 청명문과 세력권이 겹치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소령은 그 이름을 들을 때마다 손톱이 살 속으로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혈사문 말단 셋은 점심때쯤 본색을 드러냈다. 포목점, 철물점, 곡물상을 차례로 돌며 '도로 사용 협조금'이라는 이름의 돈을 뜯었다. 거부하는 자에게는 도를 뽑지도 않았다. 그냥 진열대 위의 물건을 바닥에 쓸어 떨어뜨렸다. 저항할 수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았다.
담여화가 취선객잔에 뛰어든 것은 해가 기울 무렵이었다. 약재상 앞치마를 두른 채 숨이 차 있었고, 왼쪽 뺨에 붉은 손자국이 찍혀 있었다. 소령이 행주를 내려놓고 다가서자 여화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리지 마. 괜찮으니까."
"누가 때렸어."
"때린 게 아니라 밀친 거야. 약장이 넘어지면서 뺨을 스쳤을 뿐이야." 여화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손이 떨리고 있었다. 앞치마 주머니에서 쪽지 하나를 꺼냈다. 내일까지 은자 다섯 냥을 내놓으라는 내용이었다. 약재상 한 달 매출에 맞먹는 돈이었다.
소령은 쪽지를 읽고 접었다. 접은 쪽지를 다시 펴고, 다시 접었다. 그 반복 사이에 이를 갈았다.
"관아에 신고하면—"
"했어. 아버지가 오전에 갔다 왔어. 포졸이 뭐래는 줄 알아? '외지 무인과의 분쟁은 관할 밖'이래." 여화가 코웃음을 쳤지만 목소리 끝이 떨렸다. 소령은 그 떨림을 놓치지 않았다. 평소의 여화라면 욕 한 바가지를 쏟아냈을 것이다. 떨리는 것은 분노가 아니라 두려움이었다.
홀 구석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막리연이 한마디 던졌다. "혈사문이라, 요즘은 변방까지 손을 뻗나 보군." 혼잣말 같았지만 소령의 귀에 정확히 닿도록 조절된 음량이었다. 소령은 대꾸하지 않았다. 막리연의 시선이 등 뒤에 박히는 것을 느끼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밤이 깊었다. 객잔의 불이 꺼지고, 팽노의 코 고는 소리가 부엌 뒤편에서 낮게 울렸다. 소령은 이불 속에서 눈을 뜬 채 천장을 보았다. 여화의 뺨에 찍힌 손자국이 떠올랐다. 두부장수 곽씨 영감의 되돌아가던 뒷모습이 떠올랐다. 포목점 주인이 널빤지를 내리지 못한 채 서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참으면 된다. 나는 객잔 종업원이다. 한소령이라는 이름은 이미 죽었다.
그런데 몸이 먼저 움직였다.
소령은 부엌에서 가장 낡은 행주를 꺼내 얼굴 아래를 감았다. 눈만 남기고 동여맨 뒤, 뒷문으로 나섰다. 허리춤에는 팽노가 야채 다듬을 때 쓰는 부엌칼 대신, 장작 패는 데 쓰던 짧은 언월도―도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철붙이를 꽂았다. 아니, 그것도 내려놓았다. 뒷산 연습터에 숨겨둔 나뭇가지 하나를 들었다. 참나무 가지를 칼로 깎아 검 길이에 맞춘, 그의 유일한 무기.
파서진 남쪽 뒷골목. 혈사문 말단 셋이 묵고 있는 여관 앞이었다. 소령은 지붕 위에서 그들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사실 계획 같은 건 없었다. 셋이 동시에 덤비면 이길 확률은 없었다. 그래도 몸이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시각(時刻)이 자정을 넘겼을 때, 가장 덩치가 큰 놈이 여관 밖으로 나왔다. 뒷골목 담벼락에 기대 오줌을 누기 시작했다. 소령은 소리 없이 지붕에서 내려왔다. 청명잔영검 제1초식, 잔화(殘火). 참나무 가지가 사내의 뒷목을 정확히 찍었다. 기절. 소리 없이 쓰러졌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안에서 동료의 인기척이 끊긴 걸 눈치챈 둘이 동시에 문을 열고 나왔다. 한 놈은 도를 뽑았고, 다른 놈은 맨손이었지만 장풍의 기세가 실렸다. 내공을 다루는 자였다.
소령은 이를 악물고 나뭇가지를 세웠다. 제3초식 청영(靑影)으로 도를 흘리고, 제4초식 명잔(冥殘)으로 맨손 무인의 명치를 찔렀다. 동작은 정확했다. 1초식부터 6초식까지, 사부가 등에 새긴 검결 그대로. 문제는 속도였다. 두 명을 상대하면서 6초식을 연달아 쓰자 경맥 안쪽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7초식의 벽. 전반부 36초식 중 7초식부터는 내공 순환의 방향이 바뀌는데, 후반부 검결이 없으면 기맥을 되돌릴 수가 없었다.
도를 든 놈이 비틀거리면서도 횡으로 베어왔다. 소령은 피하면서 제5초식을 한 번 더 썼다. 나뭇가지가 사내의 손목을 때렸고, 도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나 그 순간 소령의 시야가 흔들렸다. 가슴 안쪽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기맥 역류. 입안에 피맛이 번졌다.
마지막 한 놈―맨손 무인이 일어나 주먹을 날렸다. 소령은 그 주먹을 나뭇가지로 틀어막았지만 충격이 팔 전체를 타고 올라왔고, 나뭇가지가 부러졌다. 부러진 끝이 사내의 어깨에 박혔다. 사내가 비명을 질렀다. 소령은 부러진 나머지 반쪽으로 사내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제2초식의 변형. 사부가 가르쳐준 적 없는, 실전에서 몸이 만들어낸 움직임이었다.
셋 모두 쓰러졌다. 그러나 소령도 서 있을 수 없었다. 무릎이 꺾이고, 입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복면이 젖었다. 기맥 역류는 가슴에서 등으로, 등에서 머리 뒤쪽으로 번지고 있었다. 시야가 좁아지고, 뒷골목의 어둠이 소령을 집어삼켰다.
의식이 끊기기 직전,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느릿하고 고른 보법. 앞꿈치에 무게를 싣지 않는, 그래서 소리가 거의 나지 않는 걸음이었다.
"……바보 같은 놈."
막리연이었다. 소령의 몸을 뒤집어 업었다. 그 순간 행주로 감은 복면이 흘러내렸고, 등 위의 옷깃이 벌어졌다. 막리연의 눈이 달빛 아래에서 멈추었다. 소령의 등, 왼쪽 견갑골에서 척추를 따라 내려가는 문양. 내공으로 새긴 듯 피부 밑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선들. 그것은 글자가 아니었다. 검결(劍訣)이었다. 초식의 궤적과 기맥의 흐름이 하나의 그림처럼 등 위에 펼쳐져 있었다.
막리연의 입술이 떨렸다. 그 문양을 본 적이 있었다. 오방맹 순찰사 시절, 청명문에 관한 기밀 문서에 첨부된 도해(圖解). 청명잔영검의 검결도. 그것이 이 소년의 등에 새겨져 있었다.
"……도현진." 막리연이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이런 짓을 했나, 당신이."
소령의 의식은 이미 없었다. 핏물이 입꼬리를 타고 목으로 흘러내렸고, 숨은 가늘었지만 끊이지 않았다. 막리연은 소령을 업은 채 뒷골목을 빠져나갔다. 쓰러진 혈사문 무인 셋 옆에 부러진 참나무 가지 반쪽이 남았다. 달빛이 그 위를 비추었고, 바닥에 떨어진 핏방울 몇 점이 검게 말라가고 있었다.
취선객잔 뒷문. 막리연이 소령을 눕히려는 순간, 부엌 안쪽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다. 팽노가 부뚜막 앞에 앉아 있었다. 칼도, 무도 없이. 빈손으로. 막리연과 눈이 마주쳤다.
"등을 봤나." 팽노가 물었다.
막리연이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팽노의 눈이 소령의 피 묻은 얼굴 위에 오래 머물렀다. 늙은 손이 소령의 이마 위를 한 번 쓸었다. 그리고 막리연을 향해 말했다.
"내일 아침, 국밥 먹고 이야기하지."
그 목소리에는 '거절할 수 없다'는 무게가 실려 있었다. 막리연은 대답 대신 소령의 옷깃을 여며 주었다. 등 위의 검결이 다시 옷 아래로 사라졌다. 그러나 본 것은 되돌릴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