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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2화]

커피 자국 너머

작성: 2026.03.24 08:33 조회수: 54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이 콘텐츠는 보험을 소재로 한 창작물이며 실제 상품 추천이나 보장 판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현우는 휴대폰을 일곱 번쯤 확인했다. 메일함에는 광고와 사내 공지만 쌓여 있었다. 김정호 씨에게 보낸 정리 메일은 읽음 표시조차 뜨지 않았다. 화면을 끄고 가방에 넣었는데, 역 하나를 지나기도 전에 다시 꺼내 들었다. 여전히 읽음 없음. 현우는 숨을 길게 내쉬며 이어폰 줄을 손가락에 감았다 풀었다. 옆자리 승객이 자기 화면을 훔쳐본 것 같아 휴대폰을 뒤집어 놓고도 몇 초를 못 버티고 다시 켰다. 그 짧은 몇 초가 괜히 더 초조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탕비실 쪽에서 커피 내리는 소리가 났다. 신입 동기 민재가 종이컵 두 개를 들고 나오다 현우를 보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형, 서아라 선임 오늘 아침부터 상담실에 있어. 뭐 물어보려고 했는데 분위기가 좀… 냉장고야."

장난처럼 말했지만 현우는 웃지 못했다. 종이컵 가장자리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보자 어제 손등에 튄 뜨거운 감각이 먼저 떠올랐다. 민재가 한쪽 컵을 내밀었다.

"마실래? 오늘은 안 엎지르면 되지."

현우는 받으려다 손을 멈췄다.

"아냐. 지금은 물이 낫겠다."

민재가 눈치를 보며 컵을 거두자, 그 사소한 장면마저 괜히 민망했다.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켜자마자 메신저 알림이 떴다. 발신자는 서아라였다.

'현우 씨, 10시에 2번 상담실. 어제 메모 가져와.'

마침표까지 정확한 문장이었다. 현우는 키보드 위에 올린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느끼며 '네, 알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느낌표를 넣을까 잠깐 고민했지만 그냥 마침표로 끝냈다. 괜히 밝은 척했다가 더 초라해질 것 같았다.

10시 정각, 2번 상담실 문을 열었을 때 아라는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A4 한 장이 놓여 있었다. 현우가 어제 급하게 줄여 쓴 상담 메모를 아라가 다시 또박또박 풀어 적어 둔 종이였다. 현우가 의자를 빼며 입을 열었다.

"저, 어제 상담은 제가 좀 부족—"

아라가 손을 들어 말을 막았다.

"부족했다는 말은 나중에 하고."

그리고 첫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여기. 네가 김정호 씨한테 처음 꺼낸 말. '혹시 건강 쪽 걱정되시는 부분 있으세요?' 이 질문, 왜 했어?"

현우는 잠깐 멈칫했다.

"그게… 기본이니까요. 건강 상태 파악이 먼저라고 교육에서도—"

"교육이 시킨 거야, 네가 궁금한 거야?"

아라의 목소리에는 비난이 없었다. 그래서 더 아팠다. 현우는 대답 대신 볼펜 뚜껑을 눌렀다 뗐다.

딸깍, 딸깍.

상담실 벽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아라는 재촉하지 않았다. 그 침묵을 더 못 견딘 쪽은 결국 현우였다.

"솔직히… 교육 순서대로 한 거 맞습니다."

아라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다음 줄로 넘어갔다.

"김정호 씨가 '글쎄요'라고 했을 때, 네가 바로 보장 설명으로 넘어갔어."

현우도 그 순간을 기억했다.

'글쎄요'

뒤에 뭔가 더 붙을 것 같았는데, 침묵이 길어지는 게 무서워 자기가 먼저 말을 덮어 버렸던 순간. 아라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사람이 '글쎄요'라고 하면 대부분은 거절이 아니야. 생각 중인 거지. 그런데 너는 그 틈을 못 참았어."

이어서 세 번째 줄, 네 번째 줄도 차례로 짚었다. 커피를 엎지른 일은 굳이 꺼내지 않았다. 대신 당황한 뒤 현우가 급하게 쏟아낸 보장 항목들에 빨간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이 부분, 네가 1분 안에 보장을 여섯 개 말했더라."

현우가 머리를 긁적이며 낮게 웃었다.

"좀 빨랐죠?"

"빨랐다가 아니라, 듣는 사람이 따라올 수 없었어."

그 말에 현우는 웃음을 거뒀다. 속으로는 가만히 있는 것보단 낫지 않나 싶은 반발도 올라왔다. 하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더 초라해질 걸 알았다. 결국 그는 고개를 들고 물었다.

"그럼 저는 어제… 상담을 한 게 아니라 혼자 발표를 한 건가요?"

아라는 잠깐 현우를 바라보다 시선을 다시 종이로 내렸다.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대답이었다.

잠시 뒤 아라가 A4를 뒤집었다. 뒷면은 비어 있었다.

"김정호 씨 답장은 아직이야?"

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 올 수도 있어."

그 한마디에 상담실 공기가 달라졌다. 지금이라도 변명하고 싶었다. 어제는 첫 단독 상담이었고, 커피까지 엎질렀고, 너무 긴장해서 그랬다고. 그런데 그 말들은 전부 자기 편에서만 맞는 말이었다. 김정호 씨 쪽에서는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을 말들. 현우는 입술 안쪽을 한 번 깨물고 입을 다물었다. 아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A4를 현우 앞으로 밀어 놓았다.

"이거 가지고 있어. 다음 상담 전에 다시 읽어."

문에 손을 대기 직전, 등을 돌린 채 덧붙였다.

"현우 씨, 네가 어제 엎지른 건 커피가 아니야."

문이 닫히고 복도에서 구두 소리가 멀어졌다. 현우는 한참 그 자리에 앉아 빈 A4 뒷면을 내려다봤다.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하얀 면이, 어제 자기가 놓친 것들을 더 선명하게 보여 주는 것 같았다. 혼난 건 분명한데 이상하게 억울함만 남지는 않았다. 아픈 말인데도 틀린 말이 아니라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그게 더 불편했다.

점심시간, 현우는 구내식당 대신 편의점 삼각김밥을 들고 계단 통로에 앉았다. 입맛은 없었다. 포장을 뜯다 말고 휴대폰을 꺼냈다. 메일함. 여전히 읽음 없음. 다시 넣었다. 삼각김밥 김이 손가락에 눅눅하게 달라붙었다. 한 입 베어 물었지만 무슨 맛인지도 잘 모르겠었다.

'엎지른 건 커피가 아니야.'

그럼 대체 뭘 엎지른 걸까. 아래층 문이 열릴 때마다 누가 올라오나 싶어 괜히 몸을 바로 세웠다가, 다른 부서 직원이 지나가면 다시 축 늘어졌다.

오후 내내 현우는 아라가 남긴 A4를 펼쳤다 접었다 했다. 옆자리 민재가 웃으며 말했다.

"그거 무슨 시험지야? 틀린 문제 해설집 같네."

현우는 따라 웃지 못했다.

"해설집이면 다행이지."

그렇게 중얼거리자 민재는 그제야 장난을 거두고 조용히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세 번째쯤 다시 읽을 때였다. 빨간 밑줄이 그어진 부분 말고, 오히려 밑줄이 없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현우가 "가족분들은 건강하시죠?"라고 물었을 때, 김정호 씨가 아주 잠깐 말을 멈추고 "네"라고 답한 대목이었다. 현우는 자기 메모 옆에 '정상 응답'이라고 적어 두었었다. 그런데 지금 다시 보니, 그 0.5초의 망설임을 정상이라고 단정한 건 김정호 씨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다. 김정호 씨는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고, 현우는 그 틈을 묻지도 않은 채 지나갔다.

그제야 아라의 말이 조금 다르게 들렸다. 어제 자기가 엎지른 건 커피가 아니라, 상대가 꺼낼 수도 있었던 말의 타이밍이었는지도 몰랐다. 현우는 메모 여백에 처음으로 자기 말이 아니라 질문을 적었다.

'그때 왜 멈추셨을까.'

적고 나니 이상하게 손끝이 조금 차분해졌다. 적어도 다음에는 자기가 아는 걸 먼저 쏟아내기보다 모르는 걸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 정말 올지 모른다는 거였다.

퇴근 30분 전,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메일 알림이었다. 발신자: 김정호. 현우의 심장이 가슴에서 목까지 치고 올라오는 것 같았다. 떨리는 손으로 메일을 열었다. 제목은 '지난번 상담 건으로'였다. 본문은 짧았다.

'도현우 설계사님, 보내주신 정리 자료 잘 받았습니다. 저 사실은 보험보다 여쭤보고 싶은 게 따로 있었는데, 지난번에 타이밍을 놓쳤습니다. 시간 되시면 다시 한번 뵐 수 있을까요.'

현우는 메일을 두 번 읽었다. 끝난 줄 알았던 상담이 다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먼저 밀려왔다. 그런데 세 번째 읽을 때, 그 안도감은 금세 다른 긴장으로 바뀌었다.

'보험보다 여쭤보고 싶은 게 따로 있었는데.'

그 한 문장이 목에 걸렸다. 어제 자신이 그렇게 급하게 덮어 버린 침묵 뒤에, 대체 무슨 말이 있었던 걸까.

현우는 고개를 들어 사무실 저편에 앉아 있는 아라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당장 달려가 메일을 보여 주고 싶었다. 다시 기회가 생겼다고 먼저 말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그게 오늘 현우가 내린 첫 번째 제대로 된 선택이었다. 그는 답장 창을 열어 놓고 한참 커서만 바라봤다. 설명부터 쓰지 말자. 약속부터 잡기 전에, 무엇을 물어야 할지부터 정하자. 손가락이 천천히 움직였다.

'김정호 고객님, 다시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번에는 제가 너무 서둘렀던 것 같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이번에는 제가 먼저 설명드리기보다, 고객님께서 여쭤보고 싶으셨던 이야기를 먼저 듣고 싶습니다.'

문장을 다 쓰고도 현우는 바로 보내지 못했다. 보내기 버튼 위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다시 만나는 건 기회이기도 했지만, 어제 자신이 덮어 버린 말을 정면으로 듣는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말이 보험보다 훨씬 무거운 이야기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김정호 씨가 '타이밍을 놓쳤다'고 쓴 건, 현우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그 놓친 타이밍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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