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거울 앞에서 넥타이 매듭을 세 번째 고쳐 맸다. 윈저 노트는 너무 격식 차려 보이고, 플레인 노트는 대충 산 것 같고. 결국 두 번째로 맨 매듭 그대로 두기로 했다. 도현우는 거울 속 자기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 준비는 됐다. 손바닥에 쥔 메모 카드가 축축하게 젖어 있다는 사실만 빼면. 세면대 위에 카드를 올려놓고 손을 바지에 훔쳤다. 형광등 아래서 자기 얼굴이 유난히 하얗게 보였다. 입꼬리를 올려봤다. 어색했다. 내려봤다. 그게 더 어색했다. 결국 아무 표정도 짓지 않기로 하고 화장실을 나섰다.
오전 아홉 시 이십 분. 지점 사무실은 아직 절반만 불이 켜져 있었다. 맞은편 책상의 한 대리가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노트북 화면을 스크롤하고 있었고, 창가 쪽 자리의 박 실장은 전화 통화 중이었다. "아 네, 그 건은 제가 다시 확인하고요—" 목소리가 벽에 부딪혀 낮게 울렸다. 복합기 옆에서 누군가 출력물을 뽑는 소리가 리듬처럼 반복됐다. 현우는 자기 자리에 앉아 서류 파일을 한 번 더 펼쳤다. 열한 시에 잡힌 상담. 고객 이름, 김정호. 나이 마흔여덟. 자영업. 카페에서 만나기로 한 건 고객 쪽 요청이었다. 파일 안에 끼워둔 보장 분석표를 꺼내 모서리를 가지런히 맞췄다. 종이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에어컨 바람 탓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현우 씨, 오늘 첫 타석이지?" 한 대리가 커피 잔을 들고 슬쩍 다가왔다. 현우는 파일을 덮으며 고개를 들었다. "네, 김정호 고객이요. 열한 시에요." 한 대리가 고개를 기울이며 웃었다. "첫 상담이 카페라, 나쁘지 않네. 사무실보다 분위기가 편하니까." 현우는 "그렇죠?" 하며 웃어 보였지만 속으로는 카페가 더 무서웠다. 사무실이면 최소한 배경이 '보험회사'라는 걸 말해주는데, 카페에서는 자기 자신밖에 내세울 게 없으니까. 한 대리가 돌아가며 덧붙였다.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 첫 번째는 얼굴 트는 거야."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미 가방 안에 메모 카드 세 장과 예상 질문 답변지까지 넣어둔 뒤였다.
열 시 십 분,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주머니 속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어머니였다. '오늘 뭐 중요한 거 있어? 점심 같이 먹을까.' 현우는 '오늘 좀 바빠요'라고만 치고 전송 버튼을 눌렀다. 바쁜 건 사실이었지만, 정확히는 바쁜 척하고 싶었다. 첫 상담이라는 말을 하면 어머니가 걱정할 것 같았고, 걱정받으면 자기도 걱정될 것 같았다. 가방을 들고 사무실을 나서는데, 서아라 선임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외근인 모양이었다. 아라의 책상 위에 포스트잇이 한 장 붙어 있었다. '3시 미팅 자료 출력'. 깔끔한 글씨. 현우는 괜히 그 글씨를 한 번 더 보고 현관으로 향했다.
열 시 사십오 분, 현우는 약속 장소인 지하철역 근처 카페에 도착했다. 일부러 십오 분 일찍 왔다. 창가 자리를 잡고 종이컵에 아메리카노를 받아 놓았다. 커피 위로 올라오는 김이 유리창에 닿아 작은 원을 만들었다가 사라졌다. 테이블 위에 파일을 펼치고, 메모 카드를 한 번 더 읽었다. '보장 분석표 먼저 보여드리고, 니즈 파악 질문 세 개, 그다음 추천 상품 설명.' 연수 때 배운 순서 그대로였다. 글씨가 반듯하게 적혀 있었다. 글씨만큼 상담도 반듯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카페 스피커에서 재즈 피아노가 흘러나왔다. 현우는 펜을 꺼내 파일 여백에 '자연스럽게'라고 적었다가 줄을 그어 지웠다. 적는다고 자연스러워지는 건 아니니까.
열한 시 정각, 카페 문이 열렸다. 회색 점퍼를 입은 남자가 들어왔다. 김정호 씨는 현우가 상상한 것보다 피곤한 얼굴이었다. 눈 밑에 그림자가 짙었고, 손에는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아마 근처 가게에서 뭘 사온 모양이었다. 현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도현우입니다.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소리가 한 톤 높게 나왔다. 긴장할 때 나오는 자기 목소리를 현우는 아직 잘 모른다. 김정호 씨가 가볍게 목례를 하며 앉았다. 의자를 당기는 소리가 바닥에 긁혔다. 현우도 앉았다. 둘 사이에 보장 분석표와 종이컵 두 개가 놓여 있었다.
김정호 씨는 맞은편에 앉으며 비닐봉지를 의자 옆에 내려놓았다. "아, 네. 뭐 복잡한 건 아니고, 지인이 한번 만나보라 해서." 말투가 건조했다. 현우는 준비한 대로 보장 분석표를 꺼냈다. "먼저 현재 가입하고 계신 보장 내역을 간단히 정리해봤는데요—" 파일을 펼치며 설명을 시작하려는 순간, 김정호 씨가 비닐봉지에서 약 봉투를 꺼내 테이블 한쪽에 올려놓았다. 작은 동작이었는데, 현우의 시선이 거기에 꽂혔다. 약 봉투. 병원 이름이 인쇄되어 있었다. 순간 머릿속에서 연수 때 배운 '기왕증 확인 절차'가 스쳤지만, 입 밖으로 나온 건 다른 말이었다.
"저, 혹시 편찮으신 데가 있으세요?" 물어보고 나서 바로 후회했다. 첫 만남에서 건강 상태를 묻는 건 순서가 아니었다. 김정호 씨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입술이 한 번 다물렸다가 열렸다. "아뇨, 그냥 감기약이에요." 짧은 대답. 현우는 "아, 그렇군요" 하며 웃었지만, 분위기가 한 박자 어긋난 걸 느꼈다. 김정호 씨의 손이 약 봉투 위를 한 번 쓸고 지나갔다. 무의식적인 동작 같았다. 테이블 위에 펼쳐둔 보장 분석표가 갑자기 과잉처럼 보였다.
현우는 궤도를 되찾으려 했다. "그러면 현재 보장 상황부터 말씀드릴게요. 이쪽이 기본적으로 가입하신 내역이고요, 이 부분이 좀 보완이 필요한 영역인데—" 설명하는 동안 김정호 씨는 고개를 약간 숙인 채 분석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듣고 있는 건지, 다른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현우의 말이 조금씩 빨라졌다. 침묵이 무서우면 말이 많아지는 게 현우의 오래된 습관이었다. 펜 끝으로 분석표의 항목을 짚으며 말했다. "여기 이 항목은 일반적으로 많이 놓치시는 부분이거든요, 특히 자영업 하시는 분들은 소득 보전이—" 펜 끝이 종이 위에서 미세하게 떨렸다. 현우는 그걸 감추려고 펜을 더 세게 쥐었다.
"그건 나중에 보고요." 김정호 씨가 고개를 들었다. 불쾌한 표정은 아니었다. 그냥 지친 사람의 무표정이었다. "솔직히 보험이 이것저것 많은데, 뭐가 뭔지 모르겠어서 온 거예요. 정리 좀 해달라는 거지, 새로 뭘 들으려고 온 건 아닌데." 현우는 손에 쥔 펜을 멈췄다. 카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피아노 소리가 그제야 귀에 들어왔다. 준비한 흐름이 통째로 빗나간 느낌이었다. 연수 교재에는 '고객의 니즈를 먼저 파악하라'고 적혀 있었지만, 정작 니즈를 말해주는데 그걸 듣지 못하고 설명부터 꺼낸 건 자기였다. 김정호 씨의 눈이 잠깐 창밖을 향했다. 그 시선을 따라가면 횡단보도 신호등이 빨간불에서 초록불로 바뀌고 있었다. 현우만 제자리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아, 네. 그럼 정리부터 도와드릴게요." 현우가 보장 분석표를 접으며 말했다. 그때 팔꿈치가 종이컵을 스쳤다. 아메리카노가 테이블 위로 쏟아졌다. 커피가 분석표 가장자리를 적시며 김정호 씨 쪽으로 흘렀다. 현우는 "죄송합니다!" 하며 냅킨을 움켜쥐고 닦기 시작했다. 김정호 씨는 약 봉투를 들어올리며 피했고, 얼굴에 짧은 한숨이 스쳤다. 카페 직원이 행주를 가져다줬다. 현우는 얼굴이 뜨거웠다. 커피 냄새가 코끝에 진하게 올라왔다. 이십팔 년 인생 중에 이 이십 초가 가장 길었다. 행주로 테이블을 닦는 동안 손끝이 차가운 커피에 젖었고, 그 감각이 이상하게 선명했다.
"괜찮아요, 괜찮아." 김정호 씨가 먼저 말했다. 위로라기보다는 상황을 끝내고 싶은 사람의 말투였다. 현우는 젖은 분석표를 접어 가방에 넣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 깨끗하게 정리해서 보내드릴게요." 김정호 씨는 시계를 한 번 봤다. "그래요. 그럼 메일로 보내줘요.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자리에서 일어나며 비닐봉지를 집어 들었다. 약 봉투가 비닐 안에서 바스락 소리를 냈다. 현우도 따라 일어났지만 할 말이 없었다. 아니, 할 말은 백 가지가 있었는데 어떤 것도 이 상황에 맞지 않았다. 김정호 씨가 카페 문을 열고 나가는 뒷모습을 현우는 서서 바라봤다. 유리문에 비친 자기 모습이 보였다. 넥타이는 여전히 반듯했다. 그게 더 민망했다.
지점으로 돌아온 건 오후 한 시쯤이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서아라 선임과 눈이 마주쳤다. 아라는 자기 자리에서 서류를 넘기고 있었는데, 현우를 보자 펜을 내려놓았다. "어땠어?" 단 두 글자. 현우는 가방을 자기 자리에 내려놓으며 "네, 뭐… 괜찮았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다는 걸 본인도 알았다. 아라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잠깐 현우의 손을 봤다. 손등에 커피 자국이 남아 있었다. 아라의 시선이 거기서 멈추는 걸 현우는 느꼈지만, 고개를 돌려 모니터를 켰다. 화면이 밝아지는 동안 자판 위에 올린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뭘 먼저 해야 하는지 몰라서가 아니라, 아까 카페의 공기가 아직 몸에 붙어 있는 것 같아서였다.
오후 내내 현우는 김정호 씨에게 보낼 메일을 작성했다. 보장 내역 정리 파일을 새로 만들고, 상단에 '정리용'이라는 태그를 달았다. 새로 가입을 권하는 문장은 한 줄도 넣지 않았다. 한 문장을 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또 지웠다. '추가로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면'이라는 문장을 세 번 고쳐 썼다. 보내기 버튼을 누르기 전에 한참을 멈췄다. 이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적표에는 아무 숫자도 찍히지 않을 테니까. 옆자리 한 대리가 전화로 "네, 그 상품이 지금 가장 좋은 조건입니다" 하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매끄러운 목소리였다. 현우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탕비실에서 종이컵에 물을 받다가 멍하니 서 있었다. 아까 카페에서도 종이컵이었다. 물이 종이컵 가장자리까지 차올랐다. 현우는 그제야 수도를 잠갔다. 뒤에서 발소리가 나더니 아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현우 씨, 첫 상담이 망하는 건 원래 그런 거야." 돌아보니 아라가 자기 컵을 들고 서 있었다. 탕비실의 형광등이 아라의 얼굴을 밋밋하게 비추고 있었다. "나도 첫 상담 때 고객 앞에서 프린트를 거꾸로 펼친 적 있어." 짧게 말하고 물을 받았다. 위로도 훈계도 아닌, 그냥 사실이었다. 현우는 "선임님도요?" 하고 물었지만 아라는 이미 탕비실을 나가고 있었다. 문틈으로 아라의 등이 보였고, 그 등이 아주 잠깐 멈추는 것 같았다. 아닌가, 착각이었을 수도 있다.
현우는 종이컵을 한 모금 마셨다. 미지근한 물이었다. 오늘 카페에서 김정호 씨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사실은 하나도 없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준비한 말은 많았지만, 하고 싶었던 말은 달랐다. 뭘 하고 싶었냐고 누가 물으면 아직 대답할 수 없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다음에 김정호 씨를 만나게 된다면, 파일을 펼치기 전에 먼저 물어보고 싶다. 오늘 괜찮으세요, 라고. 현우는 빈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고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이유는 몰랐다. 그냥 아직 버리기엔 이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