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인시(寅時), 첫닭이 울기도 전에 소하는 눈을 떴다. 이불이라 부르기 민망한 얇은 포대자루를 걷어차고 일어서면, 부엌 뒤편 다락의 어둠이 먼저 그를 맞았다. 추위가 아니라 습관이었다. 3년 동안 같은 시각에 눈이 떠졌고, 첫 번째로 하는 일도 같았다. 나무 두레박을 어깨에 걸치고 객잔 뒤편 우물까지 마흔두 걸음. 오른발부터. 소하는 걸음 수까지 외우고 있었다.
두레박을 내릴 때 밧줄이 손바닥을 긁었다. 굳은살 위로 거친 삼줄이 지나가는 감촉은 이제 아무것도 아니었다. 처음 이 객잔에 왔을 때는 손바닥이 부르텄다. 검 자루를 쥐던 손이 두레박 줄에 적응하는 데 석 달이 걸렸다. 지금은 검 자루의 감촉이 더 아득했다. 물이 찬 두레박을 끌어올려 부엌 물항아리 세 개를 채우면 하늘이 겨우 잿빛으로 변했다. 그 사이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전날 밤 손님들이 남기고 간 그릇 서른두 개를 씻었다. 기름때가 눌어붙은 사발은 모래로 문질러야 했다. 소하는 그 단순한 반복 속에서 숨을 고르는 법을 알았다. 숨을 고르는 법은 사부가 가르쳐준 것이었다. 그릇 닦는 법은 아니었지만.
"소하! 장작 팬 거 어디 뒀어?"
묘련의 목소리가 부엌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문보다 목소리가 먼저 도착하는 것은 늘 그랬다. 열여섯 살 소녀가 내는 소리라기엔 지나치게 우렁찼다. 소하는 그릇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턱으로 아궁이 옆을 가리켰다.
"거기요."
"'거기요'가 어디야, 말을 해. 아 진짜, 입이 있으면 좀 쓰라고." 묘련이 장작 더미를 확인하고는 투덜거리며 솥을 올렸다. "오늘 죽은 팥죽이야. 어제 묵은 팥 안 쓰면 벌레 슬어. 네가 안 먹어도 끓일 거니까 괜히 사양하지 마."
소하는 대답 대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묘련은 그 묵묵함에 익숙한 듯 더 이상 잔소리를 하지 않고 솥 앞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소하는 알고 있었다. 팥이 묵었다는 건 핑계고, 어제 저녁 자기가 밥을 거른 걸 묘련이 봤다는 뜻이었다. 이 객잔에서 묘련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운교객잔은 황주 서문 밖 관도변에 자리한 이층짜리 건물로, 크다고 할 수도 작다고 할 수도 없는 규모였다. 묘련의 아버지 묘장귀가 이십 년 전 세운 곳이다. 한때는 나름 장사가 됐지만 지금은 빚이 벽처럼 쌓여 있었다. 잡역부를 따로 둘 형편이 못 되는데 소하가 먹을 것과 잘 곳만으로 일하겠다고 한 것이 3년 전이었다. 묘장귀는 얼굴이 반쯤 부은 열네 살 소년을 보고도 묻지 않았다. 묘련만이 소하의 등에 남은 화상 자국을 한 번 봤고, 그것에 대해서도 묻지 않았다. 대신 약초를 달여 등에 발라주었다. 그 빚은 아직 갚지 못했다.
아침 장사가 시작되면 소하의 입은 더 닫혔다. 황주 서문 밖은 강호인들의 왕래가 잦은 길목이라 운교객잔에도 별의별 손님이 들었다. 대부분은 검 하나 차고 호기롭게 술을 시키다가 계산할 때 얼굴이 빨개지는 부류였다. 소하는 그런 이들의 그릇을 치우고 바닥에 엎질러진 술을 닦으며, 그들의 허리춤에 찬 검의 품질을 무심히 가늠했다. 습관이었다. 사부가 늘 말했다. 검을 보면 그 주인의 수준을 알 수 있다고. 오늘 아침에 온 자칭 '태산검객'의 검은 날이 고르지 못했고 손잡이에 기름칠도 되어 있지 않았다. 3류라고 부르기도 아까운 수준.
"이봐, 잡역부! 술이 미지근하잖아. 내가 뭘 마시러 여기 왔는데!" 태산검객이 탁자를 내리치며 소리쳤다. 그의 옆에 앉은 동행 둘이 맞장구를 쳤다. 소하는 걸레를 어깨에 걸치고 다가가 찻주전자를 들었다.
"아침 술은 안 됩니다. 차를 드릴까요."
"뭐? 이 꼬맹이가—"
"아침에 술 파는 객잔은 황주에 없습니다." 소하의 목소리는 낮고 평평했다. 태산검객이 벌떡 일어서며 소하의 멱살을 잡으려 손을 뻗었다. 소하의 몸이 반 보(步) 물러섰다. 발끝이 마루 틈새를 정확히 밟았다. 의식하지 않은 움직임이었다. 사부가 가르친 보법의 잔재. 태산검객의 손이 허공을 잡았고, 균형을 잃은 그가 탁자에 부딪혔다. 찻잔이 엎어지며 그의 바지에 쏟아졌다.
"이, 이 자식이!"
"손님, 찻값은 안 받겠습니다." 소하는 엎어진 찻잔을 세우며 말했다. 묘련이 부엌에서 고개를 내밀며 눈을 부릅떴다. '또 사고 치려고?' 하는 눈빛이었다. 소하는 고개를 살짝 숙여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태산검객은 투덜거리며 동행들과 함께 객잔을 나갔다. 문이 닫히고 나서야 소하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가 풀렸다. 주먹이 먼저 나갈 뻔했다. 참았다. 참는 것도 3년 동안 배운 기술이었다.
낮 동안 소하는 장작을 패고, 마구간을 치우고, 장터에 나가 묘련이 적어준 목록대로 약재를 흥정했다. 약재상 노인은 소하를 보면 늘 같은 말을 했다. "이 녀석, 약재 보는 눈이 좋아. 누가 가르쳤어?" 소하는 "그냥 많이 사다 보니"라고 대답했다. 사실은 묘련이 가르쳐준 것이었다. 묘련은 약초에 대해서만은 놀라울 정도로 해박했다. 어디서 배운 건지 물은 적 없었다. 묻지 않는 것이 이 객잔의 규칙 같은 것이었으니까.
해가 서산에 걸렸을 때 객잔에 낯선 무리가 들어왔다. 네 명. 검은 옷에 허리띠만 붉은색. 소하는 그릇을 닦다가 손을 멈추었다. 검은 의(衣)에 붉은 대(帶). 본 적이 있었다. 멸문의 밤에. 사방이 불타는 와중에도 그 붉은 허리띠만은 선명했다. 심장이 한 박자 건너뛰었다. 소하는 고개를 숙이고 그릇에 시선을 박았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릇 안에 담긴 물이 흔들렸다.
"주인장, 방 두 개. 그리고 이 근처에 청문검파 출신을 본 사람이 있소?" 무리의 우두머리격 사내가 묘장귀에게 물었다. 묘장귀는 느릿하게 방값을 말하고, 두 번째 질문에는 고개를 저었다. "청문검파요? 3년 전에 멸문당한 그 문파? 이 근처에서 본 적 없소만." 사내가 은자 몇 냥을 탁자에 놓으며 다시 물었다. "열다섯에서 열일곱쯤 된 소년, 왼손에 검을 쥐는 버릇이 있는 놈이오. 혹시라도 보거든 흑풍채 곽 채주에게 알려주시오. 사례는 후하게 하겠소."
소하는 그릇을 닦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대신 왼손을 의식적으로 그릇 안에 넣었다. 왼손잡이. 그것까지 알고 있다. 곽진해의 이름이 사내의 입에서 흘러나왔을 때, 등의 화상 자국이 타는 듯 뜨거워졌다. 3년 전 그 밤의 열기가 등을 타고 올라오는 것 같았다. 소하는 이를 물었다. 사내 일행은 이층으로 올라갔고, 소하는 부엌 뒤로 빠져나왔다.
묘련이 부엌 문 앞에 서 있었다. 팔짱을 끼고, 말없이. 소하와 눈이 마주쳤다. 묘련의 입이 열렸다가 닫혔다. 묻지 않겠다는 뜻인지, 물어야 할 말을 찾지 못한 것인지. 소하가 먼저 말했다.
"……괜찮습니다."
"괜찮은 얼굴이 아닌데." 묘련이 낮게 말했다. 그리고 돌아섰다. 솥 위에 올려둔 팥죽이 넘치고 있었다.
밤이 깊었다. 객잔의 불이 모두 꺼지고, 이층에서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하는 다락에서 내려와 뒷마당으로 나갔다. 감나무 아래 마른 가지 하나를 주웠다. 길이는 한 자 반, 굵기는 엄지만 했다. 검이 아니었다. 하지만 손에 쥐는 순간 손목이 기억했다. 몸이 기억했다.
나뭇가지 끝이 어둠을 갈랐다. 첫 번째 식(式)—청문검법 기본 삼십육초 중 제일초 '개문(開門)'. 물 흐르듯 팔이 뻗었다가 되돌아왔다. 두 번째 식, 세 번째 식. 열두 번째 식까지 이어지다가 나뭇가지가 갈라지며 부러졌다. 소하는 부러진 가지를 내려다보았다. 내공이 부족했다. 3년 동안 그릇을 닦고 물을 길으며 근력은 유지했지만, 내공은 사부가 돌아가신 그 밤에 멈춰 있었다.
등이 욱신거렸다. 화상 자국이 밤기운에 차가워지면 오히려 아렸다. 소하는 등을 감나무에 기대었다. 눈을 감으면 사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하야, 검은 사람을 베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람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 말 끝에 불길이 치솟고, 사부의 손이 자기 등에 닿던 감촉. 타는 듯한 고통. 그리고 '살아라'라는 마지막 한마디.
소하는 눈을 떴다. 뒷마당 담 너머로 관도가 보였다. 달빛 아래 먼지 낀 길이 어디론가 이어져 있었다. 3년을 숨었다. 곽진해의 사람들이 여기까지 왔다. 더 숨을 수 있을까. 숨어야 하는 걸까.
주먹을 쥐었다. 왼손이었다. 부러진 나뭇가지를 쥔 채.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때까지. 그때 담 너머 관도에서 희미한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소하가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 달빛 아래 서 있었다. 넓은 삿갓에 긴 검집. 삿갓 아래로 보이는 입가에 낯익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소하야."
그 목소리를 3년 동안 잊은 적이 없었다. 소하의 입술이 떨렸다.
"……사, 사형?"
삿갓을 벗은 얼굴이 달빛에 드러났다. 노경천. 죽은 줄 알았던 사형이 운교객잔 뒷마당 담 너머에 서 있었다. 미소는 여전히 온화했다. 그러나 소하는 보았다. 그 온화한 미소 아래, 사형의 눈이 자신의 등을 훑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