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부엌은 전날 손님들이 남긴 술 냄새와 장작불의 잔열이 뒤섞여 묘하게 텁텁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일은 서진해의 몫이었다. 솔잎을 밀어 넣고 부싯돌을 긁으면 연기가 먼저 눈을 찔렀고, 그다음에야 불길이 올랐다. 그 순서가 좋았다. 따뜻해지기 전에 먼저 아픈 것. 삭풍객잔에서 배운 이치 중 가장 솔직한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은 불을 지피면서도 손이 자꾸 멈추었다. 방 한쪽 구석, 기름때 묻은 이불 밑에 천으로 감싼 청락이 있었다. 쇠 냄새와 비린내가 이불 너머로도 스며드는 듯했다. 다섯 해 전 그 밤에도 이런 냄새가 났다. 청문파 연무장에 쏟아지던 빗소리, 타오르는 전각의 서까래, 사부의 등이 어둠 속으로 멀어지던 순간. 기억은 늘 눈보다 먼저 몸을 찔렀다. 서진해는 숨을 길게 눌러 삼킨 뒤 부엌일을 마치고 방으로 올라가 청락의 천을 한 겹만 벗겼다.
칼날 중단에 묻은 핏자국은 밤새 굳어 있었지만 가장자리는 아직 끈적했다. 오래된 피가 아니었다. 길어야 이삼 일. 사부는 오 년 전에 죽었다. 그렇다면 이 피는 사부의 것이 아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서늘해졌다. 청락은 사부의 검이다. 그 검이 최근에 다시 피를 보았다면, 누군가가 사부의 유물을 들고 강호를 돌아다녔다는 뜻이었다. 지키려 했는지, 훔쳐 썼는지, 아니면 멸문의 밤에 사라진 누군가의 손에 넘어갔는지. 어느 쪽이든 편한 답은 없었다.
서진해는 품속에서 작은 약병을 꺼냈다. 청문파에서 배운 의술의 잔재, 상처를 씻는 백초수였다. 면포에 적셔 핏자국 가장자리를 살짝 문질렀다. 붉은빛이 번지며 면포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그 아래, 실오라기처럼 가느다란 검은 기운이 비쳤다.
독인가.
아니면 내공의 잔기인가.
서진해는 손끝에 잔화심결의 기운을 아주 미세하게 모아 면포 가까이 가져갔다. 검 끝에 직접 대지는 않았다. 그럴 용기는 없었다. 그러자 검은 기운이 마치 숨은 불씨처럼 미약하게 떨렸다. 우연이라 보기엔 너무 또렷했다. 잔화심결과 닿자 반응했다. 같은 결이었다.
순간, 손끝이 굳었다.
청문파의 내공과 같은 결의 기운이 왜 이 피에 남아 있는가.
동문인가. 적인가. 아니면 멸문의 밤에 사라진 누군가가 아직 살아 있다는 뜻인가.
한 번 더 기운을 밀어 넣었다가는 핏자국에 남은 흔적을 망칠 것 같아 멈추었다. 살아 있는 사람의 맥을 읽는 법은 배웠어도, 죽은 피에 남은 기운의 주인을 가려내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려면 다른 눈이 필요했다. 그 사실이 서진해의 자존심을 찔렀다. 다섯 해를 숨어 살며 버텨 손에 넣은 단서인데, 정작 자신 혼자서는 문 하나 제대로 열 수 없었다.
청락을 다시 천으로 감싸 이불 밑에 밀어 넣고 대청으로 내려갔다. 아직 닭이 울기 전이었다. 장작을 더 쪼개 넣는 손은 평소보다 둔했다. 잠을 못 잔 탓만은 아니었다. 어젯밤 버드나무 가지를 쥐었을 때와 청락의 자루를 잡았을 때, 손바닥에 남은 무게가 달랐다. 나뭇가지는 흉내를 받아 주지만, 검은 거짓을 용서하지 않는다. 사부는 늘 그렇게 말했다. 검을 쥔 손이 흔들리면 마음이 먼저 들킨다고.
"이놈아, 또 불 세게 넣었어."
막금산이 부엌 문을 열고 들어왔다. 투박한 손으로 솥뚜껑을 열어 김을 확인하더니 혀를 찼다. 서진해가 고개를 숙이는 사이, 막금산의 시선이 잠깐 그의 손에 머물렀다. 면포는 치웠다고 생각했는데 손톱 사이에 핏빛이 아주 조금 남아 있었다.
"닭 잡았나?"
"…아닙니다."
"손 다쳤으면 말을 해. 장작은 내가 할 테니."
막금산은 더 묻지 않았다. 그 침묵이 오히려 무거웠다. 어젯밤 노인이 들어올 때, 분명 주인장의 방 쪽에서 기침 소리가 났었다. 깨어 있었던 것인지, 잠결의 기침이었을 뿐인지 알 수 없었다. 물어볼 수는 더더욱 없었다. 묻는 순간 자신도 설명해야 할 것이 생기니까.
아침 객들이 하나둘 내려오기 시작했다. 삭풍객잔은 변방 사거리에 자리 잡아 장사꾼, 약장수, 간혹 강호인까지 뒤섞여 드나들었다. 서진해는 국밥을 퍼 나르고 빈 그릇을 거두어 설거지통 앞에 섰다. 기름기 낀 그릇을 박박 문지르는 동안, 대청 쪽에서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니, 이 처자가 사람 약값을 열 냥이나 불러? 돌팔이가 아니면 도적이지!"
덩치 큰 행상이 탁자를 내리쳤다. 맞은편에 앉은 젊은 여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찻잔을 들었다. 남색 두루마기에 허리춤에는 약낭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고, 머리는 높이 틀어 올려 묶었다. 나이는 서진해보다 한두 살 많아 보였다. 눈매는 가늘었지만 시선은 지나치게 또렷했다. 사람을 볼 때 살과 뼈를 함께 보는 눈이었다.
"열 냥이 비싸다고?"
여인이 코웃음을 쳤다.
"왼쪽 어깨 탈구가 삼 일은 넘었거든. 지금 안 맞추면 뼈가 어긋난 채로 굳어서 팔 못 쓰게 되는데, 그래도 비싸?"
행상이 벌떡 일어나 손을 뻗자, 여인은 의자 하나를 반 치 뒤로 밀며 몸을 비켰다. 보법이라 부르기엔 짧았지만 허투루 물러난 발이 아니었다. 상대의 중심이 앞으로 쏠리는 순간만 피한, 군더더기 없는 한 걸음이었다. 대청이 잠깐 조용해졌다. 행상도 그제야 자신이 여자를 겁주려다 체면만 구겼다는 걸 깨달은 듯 얼굴이 붉어졌다.
"허, 이런 괘씸한—"
"괘씸한 건 삼 일 동안 술로 버틴 아저씨 쪽이야. 내가 안 해 주면 읍내 의원까지 이틀은 걸어가야 할걸. 그 팔로 짐은 또 어떻게 들고?"
결국 다섯 냥에 합의가 이루어졌다. 여인은 그의 팔을 잡고 몸을 반 보 비틀어 힘의 방향을 바꾸었다. 먼저 아픈 쪽으로 살짝 밀어 경계를 풀고, 비명이 터지기 직전 반대로 꺾어 넣었다. 우직 하는 소리와 함께 어깨가 제자리로 돌아갔다. 행상은 욕을 삼키다 말고 멍한 얼굴이 되었다.
"사흘간 술 끊고, 왼팔 머리 위로 올리지 마. 안 지키면 다시 빠져. 그땐 스무 냥 받아."
대청에 웃음이 번졌다. 서진해는 설거지통 너머로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여인의 손가락이 행상의 어깨를 가리킬 때, 손끝의 각도가 정확히 탈구 방향을 짚고 있었다. 눈대중만으로 삼 일 된 상처를 읽어낸 것이다. 아마추어가 아니었다. 게다가 몸놀림엔 하체를 다진 흔적이 있었다. 약만 아는 사람이 아니라, 강호를 걸어 본 사람의 발이었다.
서진해는 그릇을 내려놓고 앞치마에 손을 닦았다. 위험한 줄 알면서도, 지금 이 객잔 안에서 청락의 흔적을 읽을 수 있을 만한 사람은 저 여인뿐이었다. 놓치면 다시 기회가 없을지 모른다. 다가가면 들킬 수 있다. 물러서면 단서는 식는다.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했다.
그는 결심하고 여인에게 다가갔다.
"…식사 갖다 드릴까예. 국밥이 괜찮습니더."
일부러 사투리를 섞었다. 객잔 잡역이 할 법한 말투였다. 여인은 고개를 돌려 서진해를 위아래로 훑었다. 앞치마의 기름때, 갈라진 손, 살짝 굽은 등. 그녀의 눈이 잠깐 그의 손목에 머물렀다. 장작 패는 사람의 손치고는 굳은살이 이상한 자리에 박여 있었다. 검을 오래 쥔 손에 생기는 자리였다. 서진해는 본능적으로 소매를 조금 더 내렸다.
"국밥 말고 면은 없어?"
"면은 점심부터 됩니더."
"에이, 짜증 나네. 그럼 국밥이라도 줘."
서진해는 국밥을 가져다주며 한마디를 더 붙였다.
"아까 보니 의술이 대단하시더라예. 혹시… 핏자국 같은 걸 보고 뭔가 알 수 있습니까?"
담소령의 숟가락이 멈추었다.
국밥 위로 피어오르는 김 너머로 서진해를 올려보는 눈이 아까와 달랐다. 사람을 재는 눈이었다. 아니, 거짓말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찾는 눈이었다.
"핏자국? 누구 핏자국?"
"…그냥 궁금해서 여쭤본 겁니더."
"궁금해서?"
그녀가 피식 웃었다.
"객잔 종업원이 아침부터 핏자국 분석이 궁금하다고? 강호가 우습게 보이나."
서진해는 대답하지 못했다. 여기서 한마디만 잘못 얹으면 끝이었다. 청락을 보여줄 수도 없고, 사부 이야기를 꺼낼 수도 없었다. 담소령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팔짱을 꼈다.
"뭔진 모르겠지만 공짜는 없어. 수상한 사연은 더 비싸. 부탁하고 싶으면 값을 내든가, 사연을 내든가. 둘 다 못 내면 묻지도 마."
짧은 거절이었다. 그러나 그 말은 단순한 퇴짜가 아니었다. 네가 숨기고 있다는 걸 안다는 경고였다. 서진해의 속이 서늘하게 식었다. 다가선 것은 자신인데, 한 걸음도 더 나아갈 수 없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실례했습니더."
설거지통으로 돌아가려는 그의 등 뒤에서 담소령의 목소리가 다시 날아왔다.
"잠깐. 이 국밥에 넣은 약초, 방풍이랑 갈근이지? 누가 배합한 거야?"
서진해의 발이 멈추었다. 국밥에 약초를 넣은 것은 자신이었다. 겨울 삭풍이 거센 이 지역에서 손님들이 감기에 덜 시달리도록, 사부에게 배운 대로 방풍과 갈근을 미량 섞어 육수를 끓인 것이다. 막금산도 모르는, 서진해만의 습관이었다. 청문파에선 검만 가르치지 않았다. 사람을 살리는 법도 함께 가르쳤다. 사부는 늘 말했다. 검을 드는 자일수록 뜨거운 국 한 그릇의 값을 알아야 한다고.
"…주인장이 원래 그리 합니더."
거짓말이 입에서 나가는 순간, 담소령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믿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국물을 한 모금 더 마시고 미간을 찌푸렸다.
"배합 비율이 교묘하네. 일반 약재상이 할 수 있는 솜씨가 아닌데. 약성이 서로 안 부딪치게 눌러 놨어. 몸에 열이 뜨는 사람도, 찬 기운이 도는 사람도 무리 없이 먹게 만든 방식이야."
그 말이 서진해의 등을 찔렀다.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는 순간 표정을 감추지 못할 것 같았다. 그는 설거지통 앞에 서서 찬물에 손을 담갔다. 손끝이 시렸다. 조금 전까지 가슴속에서 들끓던 조급함은 이제 다른 모양으로 바뀌고 있었다. 도움을 청했다가 거절당한 답답함이 아니라, 정체를 들킬지 모른다는 경계였다.
대청 한쪽에서 막금산이 술잔을 닦고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것인지 아닌지, 그의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없었다. 다만 술잔을 닦는 손이 평소보다 조금 느렸다. 서진해는 그 느린 손을 외면했다. 지금 주인장의 눈과 마주치면 안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 객잔에는 말보다 오래 남는 침묵이 있었다. 그리고 막금산은 늘, 모르는 척할 때 더 많은 것을 보고 있었다.
담소령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국밥을 떠먹고 있었다. 하지만 숟가락을 드는 틈마다 시선이 한 번씩 서진해 쪽으로 흘렀다. 서진해는 등을 돌리고 있어 그것을 보지 못했다. 대신 막금산은 보았다. 술잔을 닦던 손이 아주 잠깐 멈추었다가 다시 움직였다.
객잔의 아침은 겉으로는 평소와 다르지 않게 흘러갔지만, 재 속에 묻혀 있던 것들은 이미 하나씩 숨을 쉬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숨소리를, 이제는 서진해 혼자만 듣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 담소령이 국밥 그릇을 내려놓으며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던졌다.
"이 배합, 예전에 청문 쪽에서 쓰던 방식이랑 닮았네."
서진해의 손이 물속에서 멎었다. 오 년 동안 누구도 입에 올리지 않던 문파의 이름이, 하필 이 객잔 한복판에서 너무도 가볍게 흘러나왔다. 담소령은 정말 우연히 짚은 것인가. 아니면 처음부터 그 이름을 알고 이곳에 들어온 것인가. 그리고 막금산은 왜, 그 말을 듣고도 고개조차 들지 않은 채 술잔만 닦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