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밥 그릇 바닥에 눌어붙은 밥알은 손톱으로 긁어야 떨어졌다. 서진해는 찬물에 손을 담근 채 그릇 안쪽을 문질렀다. 손가락 끝이 얼얼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설거지통 위로 기울어진 처마 틈 사이로 늦가을 바람이 스며들었다. 삭풍객잔의 부엌은 이 시간이면 기름때와 숯 냄새가 뒤섞여 코끝이 텁텁했다. 그릇을 하나 더 집자 식은 국물 위로 하얗게 굳은 기름이 들러붙어 있었다. 그것을 긁어내며 서진해는 오늘 하루를 되짚었다. 점심에 들른 행상 넷, 저녁에 온 마부 둘, 술만 마시고 간 노인 하나. 일곱 명치고 그릇이 많은 건, 마부 하나가 국밥을 세 그릇이나 비운 탓이었다.
“진해야, 장작은 아직이냐.”
부엌 안쪽에서 막금산의 굵은 목소리가 울렸다. 서진해는 설거지통에서 손을 빼며 대답했다.
“그릇 세 개 남았습니다, 주인어른.”
“그릇은 내가 한다. 장작부터 패라. 내일 아침 손님 예약이 들어왔어. 산채비빔밥이라 불을 일찍 때야 한다.”
막금산이 부엌으로 들어서며 행주를 집었다. 오십이 넘은 사내치고는 손이 크고 빨랐다. 서진해가 반쯤 긁어 놓은 그릇을 받아 들더니 손바닥 한 번에 밥알을 떼어냈다. 서진해는 그 손을 잠깐 바라보았다. 행주를 쥔 손가락 마디마다 낡은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식칼을 오래 쥔 사람의 손은 아니었다. 더 무겁고 긴 것을 오래 쥐었던 손이었다. 그 의문은 오 년 전 이 객잔에 처음 왔을 때부터 있었지만, 서진해는 한 번도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것. 그것이 이곳에서 살아남는 법이었다.
뒷마당의 장작더미 앞에 서자 바람이 더 거세졌다. 서진해는 도끼를 들었다. 참나무 토막을 세우고 숨을 깊이 들이쉰 뒤 내리쳤다.
턱.
깔끔하게 갈라지며 두 쪽이 양옆으로 굴렀다. 다시 하나를 세웠다.
턱.
또 하나.
턱.
도끼를 내리칠 때마다 왼쪽 견갑골 아래에서 무언가가 당기는 느낌이 올라왔다. 오 년 전에 받은 검상이었다. 뼈까지 갈라졌던 상처는 막금산이 약을 발라 겨우 아물었지만, 힘을 쓸 때마다 피부 안쪽이 다시 찢어지는 듯한 감각이 되살아났다. 그 감각이 올라올 때마다 서진해는 눈을 감았다. 감으면 보였다. 불타는 대전, 쓰러지는 사형들, 그리고 자신을 밀어내던 사부의 손.
장작은 스무 토막쯤 패자 충분했다. 서진해는 도끼를 내려놓고 손바닥의 물집을 내려다보았다. 터진 물집 위로 나무 가루가 달라붙어 있었다. 그것을 툭툭 털어낸 뒤 우물가에서 손을 씻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반달이 구름 사이에 걸려 있었다. 달빛은 흐렸고, 객잔은 이미 잠든 뒤였다. 막금산의 방에서는 벌써 코 고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서진해는 뒷마당 구석, 장작더미 뒤편의 빈터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적당한 길이의 버드나무 가지가 한 줌 꽂혀 있었다. 매일 밤 하나씩 꺼내 쓰고, 닳으면 다시 꺾어다 세워 두는 것이었다. 그는 가지 하나를 뽑아 들었다. 길이는 삼 척이 조금 넘었다. 검이라 하기엔 가벼웠고, 막대라 하기엔 쥐는 법이 달랐다. 오른손으로 가지의 중간을 감싸 쥐고 왼발을 반 보 앞으로 뺐다. 자세를 낮추고 숨을 고르자 몸이 먼저 기억을 꺼냈다.
일초식, 청류.
가지 끝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소리 없이, 물이 흐르듯.
이초식, 단영.
오른발이 지면을 차며 반 바퀴 돌았고, 가지가 사선으로 내려갔다. 거기까지는 매끄러웠다. 그러나 삼초식, 낙진에 이르자 어깨가 비명을 질렀다. 왼쪽 견갑골 아래에서 무언가가 뜯겨 나가는 듯한 통증이 치솟았다. 가지를 놓치지 않으려 이를 악물었지만 초식의 궤적은 흐트러졌고, 가지 끝은 떨리며 방향을 잃었다.
서진해는 천천히 가지를 내렸다. 셋째 초식의 벽은 오 년 동안 넘지 못하고 있었다. 어깨의 상처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낙진부터는 내공의 순환이 받쳐 줘야 했다. 잔화심결의 첫 단계조차 제대로 익히지 못한 지금, 초식의 겉모양만 따라 하는 것은 빈 그릇에 물을 따르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사부라면 뭐라 했을까.
‘검을 내려놓고 숨부터 다시 쉬어라.’
고요하고 단호한 목소리가 귓가에 되살아난 순간, 어깨에서 뜨거운 것이 흘렀다. 손을 대 보니 피였다. 검상이 다시 벌어진 것이었다.
서진해는 소매를 걷어 상처를 눌렀다. 뒷마당 한구석에 둔 약초 주머니에서 지혈초를 꺼내 씹어 상처에 붙였다. 쓴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사부가 검을 가르치기 전에 먼저 가르쳐 준 것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상처를 다루는 법, 피를 멎게 하는 법, 사람을 살리는 손의 쓰임. 검은 사람을 베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하던 사람.
“……사부.”
입안에서 흘러나온 두 글자는 소리라기보다 숨에 가까웠다. 서진해는 그 이름을 오 년 동안 밤에만 꺼냈다. 낮에는 부를 수 없었다. 낮의 그는 삭풍객잔의 잡역 소년이어야 했으니까.
지혈초를 누르고 있는데 객잔 앞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무거운 발이 아니었다. 느리고 조심스러운 걸음이었다. 서진해는 반사적으로 버드나무 가지를 장작더미 뒤에 숨기고 몸을 일으켰다. 뒷마당에서 부엌 쪽으로 돌아가자 객잔 정문 앞에 누군가 서 있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가늘고 차가운 비였다. 그 비를 맞으며 서 있는 노인의 형체가 처마 밑 등불에 어른거렸다.
삿갓을 눌러쓴 노인은 회색 도포가 물에 젖어 몸에 달라붙어 있었다. 등이 굽었는데도 어깨는 넓었다. 오른손에는 천으로 감싼 긴 물건이 들려 있었다. 길이로 보아 검이었다. 서진해는 그것을 보는 순간 심장이 한 박자 건너뛰는 것을 느꼈다.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었다. 다만 몸이 먼저 반응했다.
“손님, 이 시간엔 방이 없습지요. 내일 아침에 오시면…….”
일부러 사투리를 섞어 말했다. 오 년 동안 만든 가면이었다. 변방 촌놈의 말투, 고개를 살짝 숙이는 자세, 눈을 곧바로 마주치지 않는 습관. 그러나 노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삿갓 아래로 드러난 얼굴은 깊은 주름 사이로 핏기가 없었다. 노인은 서진해를 한참 내려다보더니 아무 말 없이 천으로 감싼 물건을 내밀었다.
서진해는 선뜻 손을 뻗지 못했다. 밤중에 검을 들고 찾아오는 손님은 강호에서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더구나 그 길이와 무게가 너무도 익숙했다. 받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무언가가 시작될 것만 같았다. 물러서면 오늘 밤은 넘길 수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그러면 평생 이 순간을 놓친 채 살아야 했다.
그는 짧게 숨을 삼켰다.
그리고 손을 내밀기로 했다.
“……이게 뭡니까.”
그제야 노인이 입을 열었다. 아니, 속삭였다. 목이 상한 사람의 쉰 목소리였다.
“네가 받아야 할 것이다.”
천 위로 전해지는 무게와 균형이 손바닥에 닿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이 등줄기를 타고 올랐다. 손이 기억하는 무게였다. 서진해는 천을 풀었다. 비에 젖은 천이 한 겹, 두 겹 벗겨졌다. 세 번째 겹을 풀자 칼날이 빗물 아래서 번들거렸다.
청락이었다.
사부 녹담자의 검.
칼날에 새겨진 청문파의 파문이 등불 아래서 희미하게 빛났다. 서진해는 숨을 쉬지 못했다. 오 년 전, 불타는 대전에서 사부의 손에 들려 있던 바로 그 검이었다. 칼날 중간에 얇게 이가 나간 자리까지 똑같았다. 서진해가 열두 살 때 수련 중 실수로 바위에 부딪혀 만든 흠집이었다. 그때 사부는 화를 내지 않았다.
‘검에도 흉터가 생기는 법이다. 사람과 같지.’
그렇게 말하며 그의 머리를 쓸어넘기던 손길까지, 한순간에 되살아났다. 그리움은 번개처럼 먼저 왔다. 잊은 적 없는 목소리와 체온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것은 곧장 서늘한 두려움으로 뒤집혔다. 칼날에는 빗물에도 씻기지 않는 무언가가 남아 있었다. 칼등을 타고 번진 붉은 빛.
핏자국이었다.
마르지 않은 핏자국.
오래된 검이 아직 마르지 않은 피를 입고 있었다.
“이 피는…….”
서진해가 다급히 고개를 들었을 때 노인은 이미 없었다. 남은 것은 비뿐이었다. 처마 밑에 진흙 발자국 두어 개가 찍혀 있었지만, 그것마저 빗물에 씻겨 금세 흐려지고 있었다. 서진해는 검을 쥔 채 비 속에 서 있었다. 손이 떨렸다. 어깨의 상처에서 피가 다시 배어 나왔지만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칼날 위의 핏자국만이 눈에 박혀 있었다. 사부의 검이 누군가의 피를 묻힌 채 왜 지금, 왜 여기로 돌아왔는가.
부엌 안쪽에서 막금산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잠이 깬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깨어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서진해는 본능적으로 검을 다시 천으로 감쌌다. 손의 떨림이 멎지 않아 천을 두 번이나 더 둘렀다. 그리고 자신의 방, 부엌 옆 장작 창고를 개조한 좁은 칸으로 돌아갔다. 등을 벽에 기대고 앉아 검을 품에 안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녹담을 용서해라.’
사부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다시 귓가를 스쳤다. 서진해는 눈을 감았다. 그 뜻을 오 년 동안 이해하지 못했고, 오늘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사부의 검이 돌아왔다는 것은 재 속에 묻어 두었던 모든 것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숨어 지내던 다섯 해가 여기서 끝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서늘하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날이 새기도 전, 천에 밴 비린내 사이로 서진해는 아주 희미한 다른 냄새를 맡았다. 피 냄새 밑에 눌린, 타 버린 약초의 냄새였다. 청문파에서만 쓰던 약재의 결이었다. 그는 눈을 번쩍 떴다. 사부의 검에 왜 청문파의 약향이 새로 남아 있는가. 멸문한 문파의 흔적이 아직도 누군가의 손에서 살아 움직인다는 뜻인가. 새벽이 오기도 전에, 서진해는 처음으로 확신했다. 청락을 보낸 자는 끝난 과거를 돌려준 것이 아니라, 아직 드러나지 않은 무언가를 자신 앞에 던져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