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보상팀 사무실은 라면 냄새와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지우가 도윤의 커피에 설탕 세 알을 몰래 넣고 "심장 강화 프로젝트"라고 떠들었고, 서하는 배꼽을 잡고 웃다가 붕 뜬 의자에서 거의 미끄러질 뻔했다. 민수진은 눈썹 하나 까딱 안 했지만, 입가에 살짝 미소가 걸렸다. 서하는 그 순간, ‘이 사람들과라면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오후 2시, 민원인 응대 차례가 돌아왔다. 맨 앞에 선 할머니는 손에 연노란 우산을 꼭 쥐고 있었다. “딸아드려 쓰라구 사온 건데… 막상 쓰려니까 눈물이 나더라.” 할머니는 보험금 지급 기준에 안 된다는 말을 듣자, 아무렇지 않은 척 웃었지만 목소리는 조금 떨렸다. 서하는 대본처럼 외운 안내문을 읽던 도중, 문득 눈물이 핑 돌았다.
할머니는 딸이 간병 중인 병원에 가기 전까진 이 우산을 절대 안 펴겠다고 했다. “햇빛이 너무 강해서…… 그 아이 얼굴도 제대로 못 보겠더라.” 지우는 복도 끝에서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렸고, 민수진은 서류를 한참 동안 넘기지 않았다. 도윤은 그저 “처리 가능한 부분은 안내해드렸다”며 끝맺었지만, 자리로 돌아올 때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퇴근길, 서하는 회의실 창문에 비친 자신을 보았다. 막내라서 웃고, 막내라서 실수하고, 막내라서 처음 보는 슬픔에 멈춰 서 있었다. ‘나도 저 할머니 딸처럼, 아빠 병원에 갈 때마다 햇빛이 무서웠는데.’ 그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다. 아버지의 전화는 아직도 안 받고 있었다.
지우가 복도에서 손을 탁 탁 두드렸다. "신입아, 오늘 거기 완전 타살 맞아. 근데 네가 뭐 잘못한 건 아냐. 우리도 다 그랬고, 앞으로도 자주 그럴 거야." 서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손에 쥔 연노란 포장지를 놓지 못했다. 할머니가 두고 간 우산이었다.
그날 밤, 은별이 전화를 걸어왔다. "너 진짜 회사 적응 좀 되어가는 거야? 눈빛이 좀 덜 망설이던데." 서하는 대답 대신 웃었다. “근데 오늘, 웃는 사람한테서 슬픔이 왜 그렇게 무거운지 처음 알았어.” 은별은 잠시 숨을 멈춘 뒤, “그럼 이제 진짜 시작이야”라고 말했다.
다음 날 아침, 도윤의 책상 위에 연노란 우산이 놓여 있었다. 자물쇠처럼 단단히 닫힌 채. 도윤은 아무 말 없이 지나쳤지만, 정리된 서류 더미 사이로는 예전에 본 적 없는 병원 영수증 한 장이 살짝 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