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오후 두 시, 세탁소는 잠깐 한숨을 돌리는 시간이었다. 오전 손님이 빠지고 저녁 손님이 오기 전, 드라이클리닝 기계가 마지막 사이클을 마치고 멈추면 가게 안이 조용해진다. 열기도 같이 가라앉는다. 강민주는 그 조용함을 좋아했다. 카운터에 팔을 얹고 창문 너머 골목을 내다보는 오 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오늘은 비가 살짝 뿌렸다 그쳤는지, 골목 바닥이 젖어 있었고 상가 쪽 공기가 눅눅하게 밀려들었다.
그 오 분 안에 한서영이 들어왔다.
"코트 찾으러 왔어요."
한서영은 인수증을 미리 꺼내 들고 있었다. 민주는 행거 쪽으로 걸어가면서 번호를 확인했다. 베이지색 더블 코트, 안감 그을음 부분은 최대한 살려 놓은 상태였다. 완전히 지울 수 없다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한서영도 그걸 알고 맡겼을 것이다.
"안감은 어느 정도 남아요. 말씀드렸던 대로."
민주가 코트를 카운터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한서영은 코트를 받아 안감 쪽을 한 번 들여다봤다. 그리고 아무 말이 없었다. 민주는 그 침묵이 불만인지 아닌지 잠깐 살폈는데, 한서영의 눈이 코트가 아니라 다른 어딘가를 보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창문 쪽이었다. 골목 방향.
"여기 오래됐어요?"
한서영이 물었다.
"저요? 한 십 년 됐죠, 이 자리에서."
민주가 답했다.
"그 전에는요, 이 자리에 뭐가 있었는지 아세요?"
민주는 잠깐 생각했다.
"부동산이요. 제가 들어오기 전에 부동산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왜요?"
한서영은 코트를 팔에 걸쳤다.
"저, 여기 살았거든요. 어릴 때."
목소리가 낮았다.
"이 건물 2층에요."
민주는 계산서를 내밀려다 손을 멈췄다.
"2층이요?"
민주가 되물었다.
"예.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요. 아버지가 이 건물에서 장사를 하셨어요. 그때 저희는 위에 살았고요."
한서영은 창문 쪽을 한 번 더 봤다.
"오래전 얘기예요. 그냥, 지나다니다 보니까 자꾸 생각이 나서."
말을 자르듯 마무리했다. 코트 깃을 한 번 매만지는 손이 잠깐 멈칫했다가 내려왔다.
민주는 계산서를 내밀었다. 손이 움직이는 동안 머릿속은 다른 데 가 있었다. 2층. 이 건물. 한서영 아버지의 가게. 그리고 안주머니에서 나왔던 전기 수리 영수증. 서일 전기설비. 2023년 11월 14일. 민주는 그 날짜를 아직도 기억했다.
"아버지 가게가 뭐였어요?"
민주는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한서영이 카드를 꺼내며 살짝 고개를 들었다.
"인테리어 자재 파셨어요. 지금 빈 점포 있잖아요, 그 안쪽 구석 자리."
대답이 짧고 담담했지만, 끝에 한 박자 공백이 있었다.
민주는 카드 단말기를 내밀면서 그 공백을 못 들은 척했다. 아니, 정확히는 못 들은 척하고 싶었는데 못 했다. 빈 점포. 안쪽 구석 자리. 분전반이 있는 쪽. 단말기가 삑 소리를 냈고, 한서영은 카드를 받아 지갑에 넣으면서 한 번 더 창문 너머를 봤다. 그 눈빛이 뭔가를 찾는 것인지, 아니면 뭔가를 확인하는 것인지, 민주는 구분할 수가 없었다.
한서영이 나간 뒤, 민주는 한동안 카운터 앞에 서 있었다. 드라이클리닝 기계는 멈춰 있었고, 가게 안은 다시 조용했다. 이번에는 그 조용함이 예전 같지 않았다. 민주는 카운터 서랍을 열었다. 최용배가 두고 간 낡은 도면이 있었다. 반으로 접힌 채로, 일주일째 그 자리에 있었다.
도면을 펼쳤다. 빈 점포 위치에 표시된 분전반. 그리고 2층 주거 공간으로 이어지는 배선. 민주는 도면과 한서영의 말을 머릿속에서 겹쳐 봤다. 한서영 아버지의 가게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리고 지금 그 자리의 배선이 문제가 있다면. 한서영이 왜 이 동네를 자꾸 기웃거리는지. 왜 코트 안주머니에 전기 수리 업체 영수증이 있었는지. 질문들이 한 줄로 서기 시작했는데, 아직 이어지지는 않았다. 민주는 도면 위에 손가락을 얹었다가 뗐다. 종이가 바스락거렸다.
명자가 들어온 건 그때였다. 세탁소 문을 당기는 소리가 크게 나서 민주는 도면을 재빨리 접었다.
"야, 오늘 한서영 씨 왔다 갔지?"
명자는 들어서자마자 물었다. 손에는 편의점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아이스 음료 두 개가 봉지 안에서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봤어요?"
민주가 말했다.
"내가 복도에서 마주쳤잖아. 그 사람, 왜 이 건물을 그렇게 자주 오는 거야. 코트 찾으러 왔다고 치더라도, 아까 엘리베이터 앞에서 한참 서 있더라고. 버튼도 안 누르고."
명자는 음료를 카운터에 탁 내려놨다.
"이거 마셔. 오늘 덥더라."
민주는 음료를 받으면서 잠깐 망설였다. 한서영이 어릴 때 이 건물에 살았다는 얘기를 명자에게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명자는 이 동네에서 오십 년 가까이 살았다. 알고 있을 수도 있다.
"명자 씨, 이 건물 2층에 오래전에 살던 집 기억해요?"
민주가 조심스럽게 꺼냈다.
명자가 음료 빨대를 꽂다가 손을 멈췄다.
"2층? 2층은 한동안 주거로 썼었지. 건물주 가족이 살다가 나가고, 그다음에 임대를 줬을 거야. 인테리어 자재 하는 사람이 잠깐 살았던 것 같기도 하고."
잠깐 눈을 가늘게 떴다가 다시 빨대를 꽂았다.
"왜?"
"한서영 씨, 여기 살았대요. 어릴 때."
민주가 말했다.
명자는 음료를 한 모금 마시다가 천장을 올려다봤다.
"아."
짧은 감탄사였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민주는 명자의 그 침묵이 이상했다. 명자가 이야기를 듣고 아무 말도 안 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보통은 바로 어디서 들은 얘기를 꺼내거나, 아는 척을 하거나, 아니면 전혀 관계없는 얘기로 넘어가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음료 빨대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알고 있었어요?"
민주가 물었다.
명자는 음료를 카운터에 내려놨다.
"그냥, 그 시절 이 건물이 좀 복잡했어. 사람도 많이 드나들고, 공사도 자주 하고."
말이 짧게 끊겼다.
"별거 아니야. 옛날 얘기."
그러면서 손을 저었다. 그 손짓이 너무 빨랐다.
민주는 더 묻지 않았다. 명자가 '별거 아니야'라고 말할 때는, 별거인 경우가 더 많다는 걸 십 년 넘게 살면서 알고 있었으니까.
"그나저나 준수는 요즘 왜 그렇게 늦어?"
명자가 화제를 바꿨다.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갔다.
"어제도 밤 열한 시 넘어서 들어오던데. 내가 쓰레기 버리러 나갔다가 봤잖아."
"아르바이트 한다고요."
민주가 짧게 답했다.
"아르바이트를 어디서 해, 그 시간에."
명자가 혀를 찼다.
"공부는 하고 있는 거야? 장학금 유지해야 한다며."
"명자 씨, 저도 몰라요."
민주가 말했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낮게 나왔다. 명자가 잠깐 민주를 봤다가 음료를 한 모금 더 마셨다.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게 명자식 배려라는 걸 민주는 알고 있었다.
명자가 나간 뒤, 세탁소는 다시 조용해졌다. 민주는 서랍 안의 도면을 손바닥으로 눌렀다. 한서영이 이 건물에서 자랐고, 한서영 아버지의 가게가 지금 빈 점포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명자는 그 시절을 알고 있으면서 말을 짧게 잘랐다. 이 세 가지가 같은 선 위에 있는지, 아직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민주는 이제 이 건물의 이야기가 자기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오래되었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 도면 위에 인수증 묶음을 올려놓고 서랍을 닫았다. 닫히는 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났다.
저녁 무렵 준수에게서 문자가 왔다.
'늦어. 밥 먹고 가.'
민주는 답장을 치려다 멈췄다.
'언제 들어와' 라고 쓰려다 지우고, '알겠어'라고만 보냈다. 전송 버튼을 누르고 나서 잠깐 화면을 봤다. 두 글자. 그게 오늘 모자 사이에 오간 전부였다. 더 파고들기엔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고, 알고 싶은 것은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민주는 카운터 불을 낮추고 행거 쪽으로 걸어갔다. 내일 찾아갈 옷들을 순서대로 정리하는 손이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