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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2-7화]

소화기는 복도에 있었다

작성: 2026.04.25 13:56 조회수: 22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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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전 열 시였다. 세탁소 셔터를 올리자마자 박명자가 복도에 서 있었다. 손에는 종이 한 장을 들고 있었는데, 쓴 것이 아니라 뭔가를 직접 그린 것 같았다. 건물 층별 구조를 대충 그려놓고 소화기 위치에 동그라미를 쳐놓은 종이였다. 볼펜 선이 굵고 힘 있었다. 누군가를 설득하려고 그린 게 아니라 자기 머릿속을 정리하려고 그린 것처럼.

"야, 강 사장. 나 오늘 상가 사람들 다 모을 거야. 소화기 점검이라고. 열 시 반에 여기 앞에서."

민주는 셔터 잠금쇠를 걸면서 그 말을 두 번 들었다. 한 번은 귀로, 한 번은 속으로 다시 받아쳤다.

'여기 앞에서'

라는 말이 걸렸다. 세탁소 앞 복도가 집합 장소라는 뜻이었다. 준비한 것도 없고, 동의한 것도 없는데 이미 장소가 정해진 셈이었다.

"제가 뭘 준비해야 해요?"

"아니, 그냥 셔터만 열어놔. 사람들이 다 안 나오면 거기 행거 사이에라도 숨을 테니까 문 잠그지 마라."

명자는 그 말만 하고 이미 옆 가게 쪽으로 가고 있었다. 발걸음이 빠른 편이었는데 오늘은 특히 그랬다. 민주는 셔터 앞에 서서 명자의 뒷모습을 잠깐 봤다. 종이를 들고 가는 손이 단단해 보였다. 저 손이 이 건물에서 몇 번이나 뭔가를 들고 다녔을지, 민주는 그 생각을 잠깐 했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은 아직 기계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어제 마지막 세탁물을 돌리고 나서 환기를 충분히 못 했다. 눅눅하고 뜨거운 공기가 카운터 쪽에 낮게 깔려 있었다. 민주는 선풍기를 켜고 카운터 서랍을 열었다. 안쪽에 접힌 도면이 있었다. 손이 잠깐 그 위에 얹혔다가 그냥 닫았다. 오늘은 그게 아니었다.

열 시 이십 분쯤 황 사장이 먼저 나왔다. 국밥집 황 사장은 세탁소에서 세 칸 건너에 있었고, 민주와는 오가며 인사만 하는 사이였다. 그런데 오늘은 복도로 나오면서 민주 쪽을 먼저 봤다. 눈이 잠깐 마주쳤다. 황 사장이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민주도 끄덕였다. 그게 다였지만, 뭔가 달랐다. 지난번 동의서 건 이후로 황 사장이 먼저 눈을 맞춘 건 처음이었다.

열 시 삼십 분이 되자 복도에 다섯 명이 모였다. 황 사장, 문구점 아주머니, 이층 올라가는 계단 쪽 복사집 사장, 그리고 민주. 거기에 명자. 빈 점포 쪽은 아무도 없었다. 셔터는 오늘도 내려져 있었다. 복도 끝에서 그 셔터가 보였다. 아무도 그쪽을 오래 보지 않았지만, 아무도 등을 완전히 돌리지도 않았다.

명자가 종이를 펼쳐 들었다.

"좋아, 다 왔나? 오늘은 복잡하게 하지 말고 각자 가게 앞 소화기 위치 확인하고, 전열기구 콘센트 뭐 꽂혀 있는지 보는 거야. 간단하지?"

복사집 사장이 손을 들었다.

"저 소화기 어디 있는지도 몰라요."

명자가 그를 한 번 쳐다봤다. 말은 안 했지만 눈빛에 '그러니까 오늘 하는 거야'라는 말이 들어 있었다. 복사집 사장은 손을 슬그머니 내렸다. 문구점 아주머니가 작게 헛기침을 했다.

민주는 안으로 들어가 카운터 옆에 세워둔 소화기를 끌어냈다. 낡은 건 아니었지만 언제 마지막으로 확인했는지 기억이 안 났다. 압력 게이지를 보니 바늘이 초록 구간에 걸쳐 있었다. 그걸 들고 복도로 나오면서 민주는 생각했다. 이걸 마지막으로 들어올린 게 언제였더라. 기억이 없다는 게 답이었다. 있다는 걸 알면서 확인하지 않은 것과, 있는지조차 몰랐던 것은 다른 문제였다. 민주는 자기가 전자라는 게 조금 찔렸다.

"강 사장 건 멀쩡하네."

명자가 훑어보고 말했다.

"황 사장, 당신 건?"

황 사장이 가게에서 소화기를 들고 나왔는데 먼지가 묻어 있었다. 문구점 아주머니가 "어머" 하고 웃었다. 황 사장이 소매로 슬쩍 닦으면서 "그냥 구석에 있었어요" 하자 명자가 "구석에 있으면 뭐해, 바로 잡아야 쓰는 거지" 했다. 그 말이 웃기게 떨어졌는지 복사집 사장이 피식 했다. 민주도 입가가 잠깐 풀렸다. 황 사장이 멋쩍게 웃으면서 소화기를 복도 바닥에 내려놓는 모습이 영 어색해서, 그 어색함이 오히려 사람 냄새가 났다.

분위기가 조금 풀리자 사람들이 각자 가게 안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민주는 명자 옆에서 점검표를 들었다. 명자가 불러주는 항목을 적는 역할이 자연스럽게 넘어왔다. 소화기 위치, 유효기간, 콘센트 멀티탭 과부하 여부, 문 근처 가연성 물건 상태. 항목이 많지 않았지만 하나씩 부를 때마다 사람들이 자기 가게를 돌아보는 얼굴이 됐다. 문구점 아주머니는 카운터 아래에 박스가 쌓여 있다며 "이거 치워야 하는 거죠?" 하고 물었다. 명자가 "불 나면 제일 먼저 타는 게 박스야" 했다. 아주머니가 "아이고" 하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복사집 사장이 가게 안을 한 번 확인하고 나오면서 말했다.

"저 멀티탭에 프린터 두 개에 히터 꽂아 뒀거든요. 괜찮아요?"

명자가 민주를 봤다. 민주가 잠깐 생각하다 말했다.

"히터는 따로 콘센트 쓰는 게 맞아요. 프린터 두 개 돌릴 때 히터까지 같이 켜면 과부하 걸릴 수 있거든요."

복사집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 히터 빼야겠다."

그 말이 단순해서 오히려 좋았다. 민주는 점검표에 '콘센트 분리 필요'라고 적었다. 글씨를 쓰면서 손이 잠깐 멈췄다. 이 건물 배선이 오래됐다는 걸 민주는 알고 있었다. 도면에서 봤던 분전반 위치가 머릿속에 겹쳤다. 콘센트 하나 분리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 말을 꺼낼 자리는 아니었다.

점검이 다 끝나고 명자가 복도 가운데 서서 말했다.

"다음엔 이층도 같이 해야 해. 거기 세입자들한테도 얘기할 거야."

잠깐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

"빈 점포 쪽은... 내가 따로 알아볼게."

그 한 마디에 복도가 잠깐 조용해졌다. 민주는 손에 들고 있던 점검표에서 눈을 들었다. 황 사장도 명자를 봤다. 명자는 종이를 접으면서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따로'라는 말이 공기 중에 남았다. 그냥 따로가 아니었다. 저 셔터 안쪽에 대해 명자가 뭔가를 알고 있다는 느낌. 민주는 그걸 물어볼 타이밍을 놓쳤다. 아니, 정확히는 물어볼 말을 찾지 못했다.

사람들이 각자 가게로 돌아간 뒤 복도가 다시 조용해졌다. 민주는 소화기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으면서 잠깐 서 있었다. 카운터 아래 서랍에 도면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했다. 오늘 이 자리에서 건물 사람들이 처음으로 한 방향을 봤다. 그건 분명했다. 그런데 명자가 '따로 알아보겠다'고 한 빈 점포. 그 점포 안에 뭐가 있는지를 명자는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 아버지 가게 시절부터 이 건물에 있었던 명자가, 그 셔터 안쪽을 모를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는 척하는 것과 알고도 말 않는 것은 다른 무게였다.

저녁이 되어 준수에게서 문자가 왔다.

'오늘 늦어.'

민주는 화면을 보다가 '알겠어'라고 쳤다. 전송하고 잠깐 멈췄다가 한 줄 더 썼다. '밥은 먹었어?' 그게 오늘 더 한 말이었다. 준수는 엄지 이모티콘 하나를 보내왔다. 짧았지만 어제보다는 한 글자 더였다. 민주는 그걸 보면서 카운터 불을 내렸다. 오늘 복도에서 사람들이 소화기를 들고 나왔던 장면이 잠깐 지나갔다. 혼자 감당하던 것들을 꺼내놓는 일. 그게 오늘 그 복도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가게 안으로, 집 안으로. 그 둘이 같은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열리지 않은 셔터 하나가 남아 있었지만, 오늘 복도에 섰던 사람들의 얼굴이 있었다. 그걸로 오늘은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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