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인 홈 목록 ☰
[S2-5화]

도면은 말이 없고 사람은 멈췄다

작성: 2026.04.23 17:40 조회수: 19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이 콘텐츠는 보험을 소재로 한 창작물이며 실제 상품 추천이나 보장 판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수요일 오전 열한 시, 세탁소는 드라이클리닝 기계가 두 번째 사이클을 도는 중이었다. 열기가 카운터 쪽까지 밀려오는 게 느껴졌다. 강민주는 인수증 묶음을 정리하면서 어제 황 사장 가게 문을 두드렸을 때의 장면을 다시 떠올렸다. 황 사장은 문을 반만 열고 서 있었다. 눈이 옆으로 자꾸 피했다. 민주가 박재원 얘기를 꺼내자 그는 기침을 한 번 하더니 "요즘 허리가 안 좋아서요" 하고 문을 닫았다. 허리. 그 말이 밤새 귓가에 남았다. 허리가 안 좋은 사람은 문을 그렇게 빠르게 닫지 않는다.

인수증 묶음을 고무줄로 묶으려는 순간 유리문 쪽에서 그림자 하나가 멈췄다. 민주는 눈을 들었다. 육십이 넘어 보이는 남자였다. 작업복 상의에 파란 줄이 들어간 것, 손에 낡은 서류 봉투를 쥔 것, 문을 밀지도 당기지도 않고 그냥 유리 너머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것. 낯선 사람이었다. 하지만 완전히 낯선 사람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민주는 "들어오세요" 하고 손을 흔들었다.

"저, 세탁 맡기러 온 건 아니고요."

남자는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먼저 그렇게 말했다. 세탁소 특유의 눅눅한 열기가 그의 작업복 어깨에 닿았다. 민주는 괜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세탁 맡기러 오는 사람들은 그 말을 먼저 하지 않는다.

"최용배라고 합니다. 오래전에 이 건물 전기 공사 했던 사람이에요."

민주의 손이 잠깐 멈췄다. 인수증 묶음 위에 고무줄이 느슨하게 걸쳐진 채로. 최용배는 카운터 앞에 서서 봉투를 내밀지도 않고 그냥 가슴 쪽으로 끌어안았다. 눈빛이 불안했다. 세탁소 안을 한 번 둘러보고, 문 쪽을 한 번 보고, 다시 민주를 봤다.

"혹시 박명자 씨 건물 여기 맞죠? 지금 건물주가 박명자 씨 맞고요?"

"네. 그런데 왜요?"

"명자 씨 연락처는 제가 없어서요. 원래는 그쪽으로 가야 하는데."

그가 서류 봉투를 잠깐 내려다봤다.

"사실 여기 들어오기 전에 골목을 두 바퀴 돌았어요. 괜한 짓 하는 건지 싶어서."

민주는 드라이클리닝 기계 소리가 갑자기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평소랑 같은 소리인데도.

"일단 앉으세요" 하고 카운터 쪽 의자를 손짓했다. 최용배는 의자를 한 번 보더니 앉지 않고 봉투를 탁자 위에 올렸다.

봉투 안에서 나온 건 도면이었다. A3 사이즈 복사지 여러 장을 접어 끼운 것으로, 가장자리가 누렇게 바랬고 접힌 선을 따라 찢어질 것 같았다. 민주가 펼치려 하자 최용배가 손을 얹었다.

"제가 설명할게요. 보는 것만으로는 뭔지 모르실 테니까."

그가 도면의 오른쪽 아래 모서리를 가리켰다. 숫자가 있었다. 2009, 그리고 그 옆에 건물 층별 배선 구획이 표시된 약도.

"이게 제가 공사할 때 그린 원본이에요. 당시에 이 건물, 3층에서 1층 상가까지 배선을 새로 깔았거든요. 근데 그때 빈 점포 자리, 그쪽 분전반 쪽이 문제가 있었어요. 제가 시공 후에 점검 요청을 두 번 냈는데."

그는 거기서 말을 멈췄다. 민주는 기다렸다. 최용배는 도면의 빈 점포 위치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손끝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

"두 번 점검 요청을 냈는데. 한 번은 그냥 접수 취소가 됐고, 한 번은 점검 완료로 처리가 됐는데 제가 나간 적이 없어요. 저 말고 다른 사람이 점검한 것도 아니고."

그가 민주를 똑바로 봤다.

"기록이 있는데, 실제 점검은 없었던 거예요."

세탁소 안이 잠깐 조용해졌다. 드라이클리닝 기계가 사이클을 끝내고 멈춘 것이었다. 그 침묵이 생각보다 무거웠다.

"그걸 누가 막은 건지는."

최용배가 봉투를 다시 집어 들었다.

"그건 저도 모릅니다. 알면 여기 안 왔죠. 그냥 이 도면이 제 손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저는 그냥 공사한 사람이에요. 거기까지예요."

그가 봉투를 도로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가지고 가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두고 가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자리에.

민주가 말을 고르는 사이 문이 열리고 박명자가 들어왔다. 두 손에 편의점 봉지를 들고, 목에 스카프를 두른 채로.

"어머, 손님이 있었네. 세탁 맡기러 오셨어요?"

최용배가 돌아보고 명자를 봤다. 명자도 최용배를 봤다. 2초쯤 지나서 명자의 눈이 가늘어졌다.

"최 사장님? 용배 씨?"

"명자 씨."

최용배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오래됐죠."

"아이고, 오래됐지, 오래됐어. 그나저나 얼굴은 더 늙었네."

명자가 봉지를 카운터에 올리며 웃었다. 그러다 탁자 위 도면에 눈이 갔다. 웃음기가 조용히 빠졌다.

"어쩐 일이에요, 갑자기."

최용배는 대답 대신 도면을 손끝으로 짚었다. 명자가 눈으로 따라가더니 잠깐 표정이 굳었다. 민주는 그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명자도 이게 뭔지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명자 씨도 알죠, 이거."

최용배가 조용히 말했다.

명자가 봉지 안에서 캔 음료를 꺼내는 척하면서 잠깐 뜸을 들였다.

"그때 얘기는 나도 다 아는 건 아니에요. 그냥 점검 신청이 왔다 갔다 했다는 건 들었고."

그리고 천천히 덧붙였다.

"근데 그게 왜 지금 나오는지는 나도 궁금하긴 해."

세 사람이 도면을 가운데 두고 잠깐 서 있었다. 세탁소 열기가 낮게 깔렸고, 봄 햇살이 유리문을 통해 도면 위로 비스듬히 들어왔다. 빈 점포 위치를 가리키는 손가락 자국이 도면 위에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때 골목 쪽에서 리어카 끄는 소리가 지나갔다. 고물상 할아버지였다. 유리문 너머로 느릿느릿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면서 민주는 이상하게 숨이 조금 내려앉았다. 저 골목도, 이 건물도, 다들 오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용배는 한 시간쯤 있다가 나갔다. 도면은 탁자 위에 남겨 두고. 봉투째로. 민주는 그를 문 밖까지 배웅하고 들어오면서 명자를 봤다.

"명자 씨, 그 점검 기록 막은 게 누구예요?"

명자가 캔 음료를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았다.

"나도 몰라. 진짜로."

그러더니 낮게 말했다.

"근데 용배 씨가 지금 이걸 들고 온 건, 박재원이 움직이는 거 봤기 때문일 거야. 용배 씨, 겁쟁이 아니거든. 근데 겁쟁이처럼 굴 때는 이유가 있어."

민주는 도면을 카운터 서랍 안에 넣었다. 서랍을 닫는 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났다. 명자는 그 소리를 듣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냥 캔 음료를 들고 뒷방 쪽으로 들어갔다. 민주는 서랍 손잡이 위에 손을 얹은 채로 잠깐 그대로 있었다.

저녁이 됐다. 세탁소 문을 닫고 2층으로 올라오니 현관이 조용했다. 준수는 오늘도 늦었다. 문자 한 줄. 늦어요. 민주는 답장을 쓰다가 지웠다. 언제 들어와, 라고 물으려다가. 그냥 밥 있다고만 했다. 전송하고 나서 핸드폰을 식탁 위에 엎어 놓았다.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며 민주는 도면의 빈 점포 위치를 다시 떠올렸다. 누군가 점검 기록을 막았다. 그리고 그 빈 점포 셔터는 낮에도 내려져 있다. 최용배는 알고 있으면서 끝내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두려운 건지, 아니면 두려운 척하는 건지도 아직 모른다. 다만 도면 한 장이 이 서랍 안에 있다는 사실은, 오늘부터 달라진 것이었다. 민주는 반찬 뚜껑을 열면서 생각했다. 준수가 들어오면 밥이라도 같이 먹어야겠다고. 그것만큼은 오늘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 전체 회차 목록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