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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2-3화]

숫자가 된 사람들

작성: 2026.04.23 11:34 조회수: 24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이 콘텐츠는 보험을 소재로 한 창작물이며 실제 상품 추천이나 보장 판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수요일 아침, 공지가 붙은 건 현우가 출근하고 나서 십오 분 뒤였다.

현우는 자켓을 옷걸이에 걸다가 손을 멈췄다. 화이트보드 옆 코르크 게시판에 A4 한 장이 새로 꽂혀 있었다.

'5월 소개 실적 경진—지점 전체 참여, 기간 2주, 1위 팀 시상.'

잉크가 아직 덜 마른 것처럼 반질거리는 글씨였다. 현우는 그 앞에 서서 한 번 읽었다. 한 번 더 읽었다. 그러고는 자리에 앉아 모니터 전원 버튼을 눌렀다. 화면이 켜지는 동안에도 시선이 게시판 쪽으로 한 번 더 갔다. 숫자가 목표가 되는 순간 사무실 공기가 달라진다는 걸, 현우는 이제 조금은 알았다.

"어, 진짜 한다."

옆 자리 박재원이 머그컵을 들고 지나가다 혼잣말처럼 읊었다.

"지난달에 지점장님이 넌지시 얘기하더라니. 도 씨, 소개 건 지금 몇 개 있어요?"

현우는 잠깐 머뭇거렸다.

"한 건요."

"한 건."

박재원은 딱히 놀라는 기색도 없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윤상철 씨 거 잘 됐어요? 정호 씨 매형이라고 했죠?"

"네, 일단 만났어요. 생각해보신다고 하셨는데."

현우가 모니터를 켜면서 대답했다. 말은 짧게 끝냈지만 속으로는 조금 더 길게 이어졌다. 생각해보신다는 말이 긍정인지 보류인지, 윤상철 씨의 표정을 다시 떠올려봐도 경계선이 흐릿했다.

박재원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대화는 거기서 끝났지만 현우는 화면을 보면서도 게시판 쪽이 자꾸 신경 쓰였다. 소개 실적 경진. 윤상철 씨가 계약을 하면 한 건 추가. 안 하면 그냥 상담. 머릿속에서 계산이 저절로 돌아가기 시작했는데, 그게 꼭 나쁜 생각 같지 않다는 게 더 이상했다.

오전 회의는 짧았다. 팀장 이수현이 "좋은 기회"라는 말을 두 번 했고, 입사 사 년 차 선배 최지영은 이미 수첩에 뭔가를 적고 있었다. 현우는 회의 내내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윤상철 씨가 지금 현우에게 갖고 있는 건 신뢰가 아니라 관망이었다. 그걸 2주 안에 계약으로 바꾸려고 서두르면 어떻게 되는지, 지난 시즌에 이미 한 번쯤 경험한 일이었다. 회의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오면서 현우는 메모지에 윤상철 씨 이름을 썼다가 지웠다. 쓸 이유가 없는데 쓴 것 같아서.

점심 직후, 아라가 자리로 돌아오면서 공지를 한 번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지나쳤다. 현우는 그 반응이 마음에 걸려서 탕비실로 따라 들어갔다. 믹스커피 봉지를 뜯는 소리가 작게 났다. 종이컵 안으로 커피 가루가 떨어지는 달고 인스턴트한 냄새가 퍼졌다. 이상하게 지금 이 순간에는 어울리는 냄새였다.

"선배, 이번 경진 어떻게 보세요?"

아라는 전기포트에 물을 받으면서 잠깐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보긴, 회사가 하는 거잖아."

"그렇긴 한데."

현우는 종이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말을 이었다.

"소개 건이 경쟁 항목이 되면 좀 이상하지 않아요? 소개는 원래 관계에서 나오는 건데."

아라가 포트를 내려놓으며 현우를 봤다. 말은 하지 않고 그냥 봤다. 탕비실 형광등이 미세하게 웅웅거렸다. 현우는 그 눈빛이 뭘 의미하는지 몰라서 한 박자 기다렸다.

"그 말이 맞는 건지, 아니면 그 말이 핑계인 건지는 2주 뒤에 결과로 알아."

아라는 그게 전부였다. 커피를 들고 탕비실을 나갔다. 현우는 뒤에 서서 빈 공간을 잠깐 바라봤다. 따뜻한 말도 아니고 차가운 말도 아닌, 딱 그 중간 어딘가를 겨냥하는 아라의 방식이었다. 현우는 종이컵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너무 뜨거워서 혀 끝이 살짝 데였다. 맞는 건지, 핑계인 건지. 그 질문이 입안에서 커피 맛과 함께 남았다.

자리로 돌아온 현우는 펜을 들고 메모지에 문자 초안을 적기 시작했다.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갱신 주기 관련해서 추가로 안내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한번 더 뵙고 싶은데 시간 되세요? 쓰고 나서 읽어봤다. 너무 많이 담겨 있었다. 두 줄을 그어 지웠다. 다시 썼다. 궁금하신 게 생기면 편하게 연락 주세요. 그게 다였다. 짧아서 부족한 것 같았지만, 지우고 나서야 처음 두 줄이 경진표를 보고 나서 쓴 문장이었다는 걸 알았다. 휴대폰을 들고 문자를 입력하면서 현우는 손가락이 한 박자 느렸다. 전송 버튼을 누르고 확인 표시가 뜨는 걸 보며 작게 숨을 내쉬었다. 이게 맞는 건지 핑계인 건지는 여전히 몰랐지만, 적어도 서두르는 쪽으로는 가지 않았다.

오후 세 시쯤, 팀장 이수현이 팀 단위 소개 건수 현황을 공유하겠다고 했다. 이름이 붙은 표였다. 누가 몇 건, 누가 몇 건. 현우는 자기 칸을 봤다. 진행 중 1건. 그 옆에 최지영은 진행 중 3건, 박재원은 2건이었다. 현우 아래 막내 김태완은 0건이었는데 그게 이번엔 위안이 되지 않았다. 지난달 실적판과 지금 이 표가 겹쳐 보이는 것 같아서 현우는 시선을 모니터로 옮겼다. 화면에는 아무것도 열려 있지 않았다.

표가 붙고 나서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지만 조용함의 온도가 달랐다. 현우는 그 조용함 속에서 자기가 뭘 하려고 했는지 잠깐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윤상철 씨를 만났을 때 받아 적은 메모가 책상 위에 있었다. 정호 말이 틀린 적이 없어서. 그 문장이 지금 이 표 위에 놓인다고 상상하니 어울리지 않았다.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좋은 신호인지 나쁜 신호인지도 몰랐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현우는 서랍 쪽으로 한 번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토요일 통화까지 사흘이 남아 있었다. 파일을 열어야 한다는 생각은 오늘도 머릿속에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특히 사무실 분위기가 경진표 쪽으로 쏠려 있어서, 그 안에서 혼자 서랍을 여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합리적인 이유가 아니라는 건 알았다. 손을 무릎 위로 내려놓으면서 현우는 그냥 오늘도 닫힌 채로 퇴근하게 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라는 코트를 집어 들면서 현우 쪽을 흘깃 봤다.

"도현우."

"네."

"소개 건은 2주짜리가 아니야."

그게 다였다. 아라는 그냥 나갔다.

현우는 그 말을 책상 위에 올려두듯 잠시 앉아 있다가 자켓을 들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경진표를 다시 한번 스쳐 봤다. 숫자들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그 숫자 하나하나 뒤에 이름이 있고, 그 이름 뒤에 사람이 있다는 걸 지금 이 게시판은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현우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면서 생각했다. 윤상철 씨는 아직 자기를 믿는 게 아니라 김정호를 믿고 있다. 그 차이를 숫자로 좁힐 수는 없다. 그리고 토요일이 오기 전에 서랍은 한 번 열어야 한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복도 불빛이 줄어들었다. 아라의 말이 아직 귓가에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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