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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2-2화]

빌린 신뢰

작성: 2026.04.21 13:41 조회수: 25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이 콘텐츠는 보험을 소재로 한 창작물이며 실제 상품 추천이나 보장 판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화요일 오전 열 시 사십 분, 현우는 상담실 문 앞에서 넥타이를 한 번 고쳐 맸다. 그러고는 바로 손을 내렸다. 아라가 예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고쳐 매는 걸 보면 긴장한 거 다 티 난다.'

그래서 그냥 뒀다. 조금 삐뚤어진 채로.

상담실 안에는 아직 아무도 없었다. 현우는 테이블 위에 물 두 잔을 올려놓고 메모지와 펜을 가지런히 정렬했다. 그러다 스스로 멈췄다. 너무 가지런한 것도 티가 나는 법이었다. 펜을 살짝 비스듬하게 놓았다가 다시 바르게 놓았다. 결국 처음 자리로 돌아왔다. 준비를 많이 한 티가 났다. 그게 조금 민망했다. 상담실 공기는 에어컨 바람 탓인지 약간 건조했고, 복도 쪽에서 종이컵 커피 냄새가 희미하게 흘러들어왔다. 현우는 자기 컵을 한 모금 마셨다. 미지근했다. 그래도 마셨다. 뭔가를 하고 있어야 덜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대기실 쪽 유리문으로 남자 한 명이 들어오는 게 보였다. 사십 대 초중반, 짙은 네이비 재킷에 면 바지. 회사에서 바로 나온 듯한 차림새였다. 현우는 그가 접수 쪽 직원에게 성함을 말하는 걸 지켜봤다. 윤상철. 김정호 씨의 매형이었다. 직원이 이쪽을 가리키자 윤상철 씨의 시선이 현우 쪽으로 왔다. 현우는 반사적으로 미소를 지었다. 상대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게 전부였다. 미소를 돌려주지는 않았다.

"안녕하세요. 도현우 설계사입니다."

현우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윤상철 씨는 잠깐, 정말 한 박자 늦게 손을 내밀었다. 짧고 건조한 악수였다. 살갗이 닿는 시간이 채 1초가 안 됐다. 현우는 그 온도를 손바닥 안에서 느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은 나를 보러 온 게 아니다.

두 사람이 자리에 앉았다. 윤상철 씨는 의자에 기대기보다 앞에 손을 모은 자세였다. 어딘가 심사를 보러 온 사람 같았다. 현우는 물 잔을 한 번 밀어드리고 싶었지만 그냥 뒀다. 먼저 권하는 것도 어색할 것 같았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에어컨 소리가 그 사이를 채웠다.

"정호가 많이 얘기했어요?"

윤상철 씨가 먼저 물었다. 목소리는 낮고 평평했다.

"네, 간단하게요. 형부님이 시간이 되시면 한번 얘기 나눠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현우는 '형부님'이라는 호칭을 쓰면서 잠깐 어색함을 느꼈다. 김정호 씨가 문자에서 그렇게 소개했으니 맞는 말이었지만, 낯선 자리에서 처음 꺼내는 호칭은 항상 조금 어색했다. 윤상철 씨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호가 워낙 칭찬을 해서." 말이 거기서 잘렸다. 칭찬을 해서 왔다는 건지, 칭찬이 과해서 반신반의한다는 건지 알 수 없는 어미였다. 현우는 그 빈칸을 채우고 싶은 충동을 꾹 눌렀다.

"어떤 부분 때문에 오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현우가 먼저 질문을 꺼냈다. 아라가 했던 말이 또 머릿속에 스쳤다. 소개 고객은 소개한 사람의 신뢰를 잠깐 빌려온 거다. 그 사람의 기대치는 소개자 기준이야. 설명부터 시작하면 그냥 영업사원이 되는 거고. 현우는 그래서 입을 다물었다. 윤상철 씨가 잠깐 현우를 봤다. 뭔가를 가늠하는 눈빛이었다. 현우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피하면 더 이상했다.

"실은 보험을 정리하고 싶어서요. 이것저것 들어둔 게 있는데, 솔직히 내가 뭘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목소리가 처음보다 조금 낮아졌다.

"정호한테 물어봤더니 도 설계사님이 설명을 잘 해준다고."

그러면서 덧붙였다. "정호 말이 틀린 적이 없어서."

현우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 어딘가가 살짝 오그라드는 걸 느꼈다. 기쁘기도 했지만 무겁기도 했다. 정호 말이 틀린 적이 없다는 건, 지금 현우가 그 말을 증명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 무게가 생각보다 컸다. 현우는 펜을 들고 메모지 위에 날짜를 적었다. 손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척했지만, 펜 끝이 잠깐 망설였다.

상담은 한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윤상철 씨가 갖고 있다는 보험 목록을 현우가 메모하는 방식으로 대화가 흘렀다. 질문을 먼저 하고, 대답을 듣고, 메모하고, 다시 질문하는 식. 현우는 설명을 최대한 아꼈다. 아라 말대로라면 오늘은 듣는 날이었다. 윤상철 씨는 처음보다 말이 조금씩 길어졌다. 갱신형인지 비갱신형인지도 모른다고 했고, 특약이 뭔지도 잘 모른다고 했다. 그 말들 사이에서 현우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짧게 되물었다. 설명하고 싶은 충동이 올라올 때마다 한 박자 참았다. 한 번은 입이 먼저 열릴 뻔했다. 그때 윤상철 씨가 알아서 다음 말을 이어갔다. 현우는 속으로 아, 이래서 참는 거구나 싶었다.

그런데 중간쯤, 윤상철 씨가 불쑥 이런 말을 했다.

"정호가 뭐 가입한 거 있잖아요, 작년에. 그게 어떻게 됐는지도 아직 잘 모르겠던데."

현우의 손이 잠깐 멈췄다. 펜 끝이 메모지 위에서 살짝 떴다. 우연히 꺼낸 말인지, 아니면 김정호 씨에게 뭔가를 들은 건지. 그 경계가 명확하지 않았다.

"아, 그 건은 따로 한 번 확인해서 안내드리겠습니다."

목소리는 평평하게 유지했다. 하지만 손바닥에 땀이 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윤상철 씨는 그냥 "그렇군요" 하고 넘어갔다. 더 묻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더 신경 쓰였다. 복도에서 누군가의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가 끊겼다. 상담실 안의 침묵이 그 소리 때문에 더 도드라졌다.

상담이 끝나고 윤상철 씨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좋았어요. 한번 더 보죠."

이번 악수는 아까보다 조금 달랐다. 손을 잡는 시간이 반 박자 더 길었다. 현우는 그 차이를 느꼈다. 아까 처음보다는 나아졌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완전히 풀린 건 아니었다. 윤상철 씨가 유리문 쪽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현우는 그 악수의 온도를 다시 한번 손바닥 안에서 떠올렸다. 빌린 신뢰는 이런 온도구나, 싶었다.

현우는 상담실 문을 닫고 나서 복도에 잠깐 서 있었다. 사무실 쪽에서 전화 받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메모지를 접어 주머니에 넣으면서 방금 윤상철 씨가 꺼낸 말을 다시 떠올렸다. 정호가 작년에 가입한 거. 그게 어떻게 됐는지. 그 말이 대화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인지, 아니면 어딘가에서 한 번 들은 말을 꺼낸 것인지. 현우는 그 차이를 아직 알 수 없었다. 모르는 채로 웃으면서 악수를 했다는 것도.

책상으로 돌아온 현우는 자리에 앉아 서랍 쪽을 봤다. 서랍은 닫혀 있었다. 그는 메모지를 펼쳐 오늘 받아 적은 것들을 다시 훑었다. 윤상철 씨가 말한 보험 목록, 갱신 여부, 생각해보겠다는 말들. 그것들보다 더 오래 눈에 남는 문장이 하나 있었다. 정호 말이 틀린 적이 없어서. 현우는 그 문장 위에 펜을 올려놓고 잠시 있었다. 그러다 서랍에 손을 뻗었다. 손잡이가 차가웠다. 한 번 잡았다가, 이번에도 놓았다. 아직은 아니라는 게 아니었다. 그냥 오늘 중으로는 열어야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두려움 쪽보다 조금 더 무거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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