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영지에 보급품이 도착한 것은 습격 이후 사흘째 되는 날 오후였다. 수레 세 대가 먼지를 일으키며 들어왔고, 그 뒤를 따라 상단 표식을 단 사람들이 내렸다. 카일은 천막 입구에서 그 광경을 봤다. 수레바퀴 자국이 습격 당했던 마차의 것보다 얕았다. 짐이 가벼웠다. 아니면 실은 것이 다른 종류였거나.
"카일!"
목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카일은 고개를 들었다. 미라가 수레 옆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먼지 묻은 외투에 머리카락이 흐트러진 모습이었지만, 웃는 얼굴은 여전했다. 카일은 천막 입구를 벗어나 걸어갔다. 손목이 욱신거렸다. 습격 이후로 낙인이 있는 쪽 손목이 계속 그랬다. 뜨겁지는 않았다. 그런데 뜨거운 것 같았다.
"여기까지 오다니. 위험하지 않았어?"
카일이 물었다. 미라는 어깨를 으쓱했다.
"상단 대표가 직접 와야 한다고 해서. 보급 관리는 내가 맡기로 했어. 아버지가 허락하셨어."
"그게 안심이 되는 소린 아닌데."
"네가 여기 있는 것보단 낫지."
미라가 웃으며 말했다. 카일은 대꾸하지 않았다. 미라의 말이 맞았다. 상단 일은 위험해도 검을 들지 않아도 됐다. 카일은 지난 사흘 동안 매일 아침 손목을 만졌다. 마차 안 아이들의 낙인이 자꾸 떠올랐다. 똑같아, 네 것이랑. 레오의 말이 귓가에 남아 있었다.
"베른 대위님께 인사드려야 해. 안내해 줄 수 있어?"
미라가 물었다. 카일은 고개를 끄덕이고 앞장섰다. 야영지는 습격 이후 경계가 두 배로 늘었다. 보초는 낮에도 네 방향에 서 있었고, 천막 배치도 달라졌다. 중앙에 지휘 천막, 그 주변에 보급 천막과 취사 천막, 가장자리에 병력 천막 순이었다. 카일은 미라를 지휘 천막 앞까지 데려갔다.
베른 대위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라를 받아들였다. 보급 관리 권한을 넘기는 절차는 간결했다. 장부 두 권과 인장 하나, 그리고 수레 목록 확인. 미라는 능숙하게 서류를 받아들고 대위에게 예를 갖췄다. 카일은 천막 입구 밖에서 그 과정을 지켜봤다. 미라의 손이 장부를 넘기는 속도가 빨랐다. 숫자를 세는 손가락이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상인의 딸이었다.
"보급 천막은 서쪽 끝에 있습니다. 후보생 하나 붙여드리겠습니다."
베른 대위가 말했다. 미라는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혼자서도 괜찮습니다."
"규칙입니다."
대위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미라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카일은 그 대화를 들으며 손목을 한 번 쥐었다. 규칙. 야영지에는 규칙이 많았다. 성벽 안보다 많았다. 그런데 성벽 안의 규칙은 글로 써 있었고, 이곳의 규칙은 말하지 않아도 알아야 했다.
저녁 취사가 끝난 뒤, 카일은 보급 천막으로 미라를 찾아갔다. 천막 안에는 횃불 하나가 걸려 있었고, 미라는 나무 상자 위에 장부를 펼쳐 놓고 있었다. 손가락이 줄을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 카일이 천막 입구를 열자 미라가 고개를 들었다.
"들어와. 마침 잘 왔어."
미라의 목소리가 낮았다. 카일은 천막 안으로 들어가 입구를 닫았다. 천막 안 공기는 바깥보다 따뜻했지만, 미라의 표정은 따뜻하지 않았다.
"이거 봐."
미라가 장부 한 쪽을 가리켰다. 카일은 상자 옆으로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장부에는 물품 목록이 적혀 있었다. 밀가루, 소금, 말 사료, 천 뭉치. 그 아래 작은 글씨로 적힌 항목이 있었다.
'기타 운송'. 그 옆에 숫자가 적혀 있었다. 다섯.
"기타 운송이 뭐야?"
카일이 물었다. 미라는 다른 장부를 펼쳤다.
"그게 문제야. 이건 출발지 상단 장부야. 여기엔 기타 운송 항목이 없어. 그런데 중간 경유지 장부에만 이게 생겼어."
미라의 손가락이 다른 페이지를 넘겼다. 카일은 숨을 참았다. 경유지. 그곳은 성 안쪽이었다. 다크스의 영지와 가까운 곳이었다.
"그리고 이것도 봐."
미라가 장부 뒷장을 펼쳤다. 거기에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정확히는 이름이 아니라 번호였다.
'ㄱ-12', 'ㄴ-8', 'ㄷ-3'. 다섯 개의 번호. 카일은 그 숫자를 보며 마차 안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다섯 명이었다.
"이건 사람이야."
미라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노예 운송 장부랑 형식이 똑같아. 우리 상단이 예전에 다른 영지 일 맡았을 때 본 적 있어. 이 번호 체계는 노예 매매상들이 쓰는 거야."
카일은 장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ㄱ-12'. 그 숫자가 한 사람의 이름을 대신하고 있었다. 마차 안에서 발목이 묶인 채 누워 있던 아이가 이 번호 중 하나였을 것이었다. 카일은 손목을 쥐었다. 낙인이 있는 쪽이었다. 뜨거웠다. 이번엔 진짜로 뜨거웠다.
"카일, 너 괜찮아?"
미라가 물었다. 카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이었다. 괜찮지 않았다. 그런데 괜찮다고 말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 장부는 누가 작성한 거야?"
"경유지 상단 관리인. 이름은 여기 적혀 있어."
미라가 장부 모서리를 가리켰다. 작은 도장이 찍혀 있었다. 카일은 그 도장을 봤다. 익숙한 문양이었다. 다크스 가문의 부속 상단 표식이었다. 카일은 이안의 천막에서 그 표식을 본 적이 있었다. 내통자가 들고 있던 서찰 봉인과 비슷한 형태였다.
"이거 위험해. 미라, 이 장부 아무한테도 보여주지 마."
카일이 말했다. 미라는 카일을 봤다.
"그럼 어떡해? 이대로 두면 안 되잖아."
"나도 알아. 그런데 지금은 안 돼. 일단 이안 선생님께 말씀드려야 해."
"이안 선생님이 믿을 만한 사람이야?"
미라의 질문이 날카로웠다. 카일은 대답하지 못했다. 이안을 믿었다. 그런데 이안이 마차 안 아이들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는 몰랐다. 베른 대위가 알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이 야영지에서 누가 알고 있고 누가 모르는지, 그 경계가 보이지 않았다.
"일단 장부는 숨겨 둬. 원본은 네가 갖고 있고, 베른 대위한테는 사본만 넘겨."
"사본에도 이 항목이 있는데?"
"그럼 그 페이지만 빼. 물품 목록 합계는 맞춰서."
미라는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런데 카일, 너 손목 왜 그래? 계속 만지고 있잖아."
카일은 손을 내렸다. 손목이 욱신거렸다. 낙인이 달궈진 쇠처럼 느껴졌다. 카일은 미라에게 말하지 않았다. 마차 안 아이들의 손목에도 똑같은 낙인이 있었다는 것을. 레오가 그것을 봤다는 것을. 그리고 그 낙인이 카일의 과거가 아니라 누군가의 조직적인 흔적일 수 있다는 것을.
"괜찮아. 훈련 후유증이야."
카일이 말했다. 미라는 믿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장부를 덮으며 말했다.
"조심해, 카일. 이 전쟁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복잡한 것 같아."
카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 그 단어가 이제는 검과 피만을 뜻하지 않았다. 장부 속 번호, 마차 안 아이들, 낙인, 그리고 다크스의 도장.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었다. 카일은 천막을 나서며 야영지를 둘러봤다. 횃불이 네 방향에서 타고 있었다. 그 불빛이 닿지 않는 곳에 무엇이 있는지, 카일은 이제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그날 밤 카일은 천막에 누워 잠들지 못했다. 장부 속 번호가 자꾸 떠올랐다.
'ㄱ-12'. 그것은 이름이 아니었다. 사람을 물건처럼 세는 방식이었다. 카일도 한때 그런 번호로 불렸다. 노예 시장에서. 그때의 기억이 손목을 타고 올라왔다. 달궈진 쇠가 살갗에 닿던 순간. 지워지지 않는 표식. 카일은 손목을 쥐었다. 이번엔 아프지 않았다. 그런데 아픈 것 같았다.
천막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보초가 교대하는 소리였다. 카일은 눈을 감았다. 미라가 찾아낸 장부는 단서였다. 그리고 그 단서는 카일이 지금까지 싸워온 것이 단순한 전투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다크스의 손은 성 안쪽에서부터 이 야영지까지, 그리고 아마도 그 너머까지 뻗어 있었다. 카일은 이안의 말을 떠올렸다. 맹세는 스스로 고르는 것이다. 카일은 아직 자신의 맹세를 고르지 못했다. 그런데 선택의 시간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