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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11화]

첫 희생은 말보다 침묵이 먼저 결정했다

작성: 2026.04.21 13:41 조회수: 27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이 콘텐츠는 AI가 창작한 장기 연재소설입니다. 실제 인물이나 사건과 무관한 창작물입니다.

하린은 태블릿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화면이 꺼지지 않도록 손가락 한 마디를 화면 아래쪽에 걸쳐 놓았지만, 그 손가락은 아무것도 누르지 않았다. 응급실 비상등이 천장에서 노란 기름 같은 빛을 흘리고 있었다. 발전기 소리가 벽 너머에서 낮게 울렸다. 세온이 옆에 앉아서 물었다.

"뭐가 있어."

하린이 고개를 들지 않고 대답했다.

"외부 접속이요. 병원 내부망 우회 로그인데."

잠깐 멈췄다가 이었다.

"제가 한 게 아니에요."

세온은 태블릿 화면을 들여다봤다. 접속 시각은 오전 두 시 열칠 분. 이동조가 북쪽 비상계단으로 출발한 지 삼십 분쯤 지났을 때였다. 응급실에 남아 있던 사람은 윤호와 도혁, 그리고 환자들뿐이었다. 세온은 그 숫자를 다시 확인하고 화면에서 눈을 뗐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 있었다. 닦지 않았다.

도혁은 응급실 한켠 간이 침대에 누워 팔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자는 척이었다. 아까부터 옆구리가 규칙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윤호는 창고 쪽 벽을 등지고 앉아 종이를 무릎 위에 펼쳐 놓고 뭔가를 적고 있었다. 세온이 일어서자 윤호가 먼저 눈을 들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잠깐 겹쳤다가 윤호가 먼저 내렸다. 펜은 멈추지 않았다.

그때 4층에서 데려온 남자가 기침을 했다.

유리가 빠르게 다가가 손등으로 남자의 이마를 짚었다. 열은 없었다. 링거줄은 유리가 응급실로 데려오면서 새로 연결했고, 지금은 식염수 한 팩이 절반쯤 들어간 상태였다. 남자의 이름은 최병호. 나중에 직접 말했다. 사십대 초반, 내과 입원 환자였고 재난 첫날 병동이 봉쇄되면서 4층 비상계단 구석에 혼자 남겨졌다고 했다. 며칠을 거기서 버텼는지 그 자신도 정확히 몰랐다. 손등 피부가 갈라져 있었다. 말라붙은 핏자국이 손가락 마디마다 줄을 그었다.

"안전지대."

최병호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거기 아는 사람이 있어요. 연락이 됐었는데."

유리가 물 한 컵을 내밀었다. 최병호가 두 손으로 받아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사흘 전에 마지막 연락이 왔어요. 오늘 밤까지래요. 그 이후로는 게이트를 닫는다고."

응급실이 조용해졌다. 도혁의 팔이 눈 위에서 내려왔다. 윤호의 펜이 멈췄다. 비상등 아래 모두의 얼굴이 같은 방향을 향했다. 최병호는 그 시선들을 받으면서도 컵을 내려놓지 않았다. 손이 떨렸다.

세온이 최병호 앞에 쪼그려 앉았다.

"어디요. 위치."

"서쪽. 공단 쪽 방향으로 이 킬로미터 정도."

최병호가 목을 가다듬었다.

"병원 서쪽 출구에서 나가면 막혀 있을 텐데, 예전 버스 차고지 담 넘으면 루트가 나온다고 했어요. 연락한 사람이 거기 안에 있었는데."

태민이 지도를 펼쳤다. 메모판 아래 접혀 있던 병원 구역 약도였다. 손가락으로 서쪽 방향을 짚고 이 킬로미터 반경을 훑었다. 종이가 구겨진 자리마다 흙먼지가 끼어 있었다. 이동조가 북쪽 비상계단을 오가면서 묻혀 온 것이었다.

"버스 차고지."

태민이 중얼거렸다.

"공단 쪽이면 군 검문소 외곽이랑 겹쳐."

도혁이 그때 비로소 몸을 일으켜 앉았다. 자는 척을 포기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 안전지대, 나도 들은 데가 있어요. 민간 운영인데, 관리자가 선묵 씨라는 사람이래요."

윤호의 펜이 종이 위에서 완전히 멈췄다. 손가락이 펜대를 쥔 채 굳었다. 세온은 그 손을 봤다. 윤호는 펜을 내려놓고 무릎 위 종이를 반으로 접었다. 그 동작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이상했다. 준비된 반응처럼 보였다. 세온이 물었다.

"알아요?"

윤호가 잠깐 뜸을 들였다. 뜸 자체가 대답이었다.

"들어본 이름이에요."

"들어본 정도예요?"

"재난 전에 구청 쪽으로 운영 허가 문건이 올라온 적이 있어요. 제가 결재 라인에 있진 않았는데."

윤호가 눈을 내리깔았다.

"정확히는 몰라요."

거짓말은 아닐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전부도 아니었다. 세온은 더 묻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다른 데 있었다.

세온이 일어서서 응급실을 천천히 둘러봤다. 환자 여섯. 유리와 태민, 하린, 윤호, 도혁, 최병호. 발전기는 돌아가고 있었다. 새벽 네 시까지 연료가 버텼다. 지금 시각은 세 시 이십 분. 사십 분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안전지대 게이트가 오늘 밤 닫힌다.

유리가 세온 옆으로 다가와서 낮게 말했다.

"전원 이동 불가야. 환자 둘은 지금 못 움직여."

세온은 알고 있었다. 복부 수술 후 회복 중인 오십대 여성과, 봉쇄 첫날 계단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친 이십대 남성. 두 사람은 들것 없이는 움직일 수 없었다. 들것은 있었다. 그러나 서쪽으로 이 킬로미터를 들것 두 개를 끌고 사십 분 안에 통과하는 건 불가능했다. 유리는 그 계산을 이미 끝낸 얼굴이었다. 세온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두 사람은 잠깐 말이 없었다.

"남는 사람이 있어야 해."

유리가 말했다. 감정이 없는 목소리였다. 그래서 더 무거웠다.

태민이 입을 열었다.

"이동조 두 개로 나눠. 한 조는 선발로 안전지대 게이트 열어 놓고, 나머지는 환자 두 명 데리고 나중에 따라가."

"게이트가 닫힌다고 했잖아요."

하린이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오늘 밤 안으로."

태민이 하린을 봤다. 반박하려는 게 아니었다. 그냥 봤다. 그 침묵이 하린의 말을 받아들인다는 뜻이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비상등이 한 번 깜빡였다. 발전기가 마지막 숨을 고르는 소리가 들렸다.

세온은 최병호를 봤다.

"안에 연락 다시 할 수 있어요?"

최병호가 고개를 저었다.

"기계가 없어요. 여기 오면서 다 잃어버렸어요."

하린이 손을 들었다. 모두가 하린을 봤다. 하린이 태블릿을 들어 올렸다.

"외부 접속 로그, 이게 내부망 연결이에요. 누군가 이미 이 병원 시스템에 들어온 적이 있어요. 그쪽에서 우리 위치를 알고 있을 수도 있어요."

윤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눈이 하린의 태블릿을 보는 순간 무언가 지나갔다. 두려움인지, 안도인지, 세온은 구분할 수 없었다. 윤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이번엔 뜸이 아니었다. 뭔가를 삼키는 침묵이었다.

세온이 결정을 내리는 데 삼십 초가 걸렸다. 병원에서 보낸 사흘 동안 그 어떤 판단보다 짧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번 결정은 이전 것들과 달랐다. 이번엔 누군가를 두고 가는 선택이었다. 세온은 그 무게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그냥 입을 열었다.

"태민 씨는 도혁 씨랑 선발로 서쪽 루트 확인해요. 나는 유리 씨, 하린이랑 환자 두 명 데리고 뒤따를게요. 윤호 씨는."

세온이 윤호를 봤다.

"여기 남아서 최병호 씨 봐요."

윤호가 일어섰다.

"같이 가면 안 됩니까."

"누군가는 남아야 해요. 발전기가 꺼지면 여기 혼자 있는 사람이 없어야 하고."

윤호가 세온의 눈을 오래 봤다. 의심인지 항의인지 모를 눈빛이었다. 그러다 천천히 앉았다. 말은 하지 않았다. 접어 둔 종이를 다시 펼치지도 않았다.

도혁이 일어서면서 중얼거렸다.

"남겨진다는 게 제일 무서운 거 아니에요?"

아무에게도 하는 말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응급실 안 모두가 들었다. 태민이 도혁의 어깨를 한 번 밀었다. 말 대신이었다. 도혁은 그 손을 털어내지 않았다.

하린이 태블릿을 닫으면서 세온 쪽으로 한 발 다가왔다. 아무 말도 없었다. 그냥 한 발. 세온은 그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링거 스탠드가 바닥을 긁는 소리, 유리가 들것을 끌어당기는 소리, 도혁이 재킷 지퍼를 올리는 소리가 차례로 응급실을 채웠다. 작고 건조한 소리들이었다. 그러나 그 소리들이 모여 출발이 됐다.

비상등이 다시 한 번 깜빡였다. 이번엔 조금 더 길게. 발전기가 사십 분을 버텨 줄지, 세온은 돌아서면서도 확신할 수 없었다. 확신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이 선택은 끝났고, 다음 선택은 서쪽 이 킬로미터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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