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곱 시 사십 분, 이겸이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강인호의 자리는 이미 불이 켜져 있었다.
예전 생에서 강인호는 늦게 오는 편이었다. 감사팀 팀장 자리가 주는 여유를 썼다. 자리 지키는 사람이 가장 늦게 오는 구조, 그게 이 팀의 오래된 공기였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이겸은 재킷을 걸면서 모니터 불빛을 봤다. 강인호가 뭔가를 열어두고 있었다. 화면이 너무 멀어 내용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마우스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읽는 게 아니라 보고 있는 거였다. 이겸은 커피잔을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그 불빛을 한 번 더 봤다.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게 문제였다.
이겸은 자리에 앉아 서랍을 열었다. 어젯밤 퇴근 전에 넣어둔 수첩이 그대로 있었다. 펼치지 않았다. 오늘 써야 할 것들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대신 화면을 켜고 어제 저장해둔 로그 파일 경로를 확인했다. TJ-0394. 퇴직자 계정. VPN 승인 없는 외부 접속. 숫자는 바뀌지 않았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사람이 거짓말을 한다.
해진은 여덟 시 오 분에 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이겸 쪽을 봤다. 이겸이 눈짓으로 프린터 옆을 가리켰다. 해진은 가방을 자리에 두지도 않고 그쪽으로 돌아갔다. 프린터 서랍 안에 접힌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어젯밤 이겸이 넣어둔 것이었다. 강인호의 오전 부재 시간대와 박재현 계정 마지막 접근 시각, 그리고 VPN 승인 로그 없이 생성된 외부 접속 기록. 숫자 세 줄이었다. 설명은 없었다. 설명이 있으면 종이가 증거가 된다. 숫자만 있으면 메모가 된다.
해진이 종이를 펼쳤다가 다시 접었다. 가방 안 파우치 속으로 밀어 넣는 손이 조금 빨랐다. 이겸은 그걸 보면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식어 있었다. 가져온 지 오래됐다는 걸 몰랐는데, 혀가 먼저 알았다. 해진이 자리로 돌아오다가 이겸 옆을 지나쳤다. 말은 없었다. 대신 파우치 지퍼를 한 번 더 잠그는 소리가 났다. 그걸로 충분했다.
"한 부장."
강인호의 목소리였다. 낮고 편안한 톤이었다. 화가 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게 오히려 이겸의 등 쪽을 조였다. 분노는 읽을 수 있다. 평온은 읽을 수 없다.
"잠깐 회의실 쓸 수 있어요? 나 오늘 오전 중에 확인할 게 있어서."
이겸은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잔이 책상에 닿는 소리가 작게 났다. 해진은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켰다. 눈을 화면에 고정한 채였다. 이겸은 그 자세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다. 듣고 있다는 것. 그리고 혼자 감당하지 않겠다는 것.
회의실은 사무실 안쪽 끝이었다. 창이 없었다. 형광등 두 개 중 하나가 깜빡이는 버릇이 있어서, 이겸은 이 방이 항상 조금 어둡다고 느꼈다. 강인호는 문을 열고 먼저 들어갔다. 이겸이 따라 들어가며 문을 닫았다. 닫히는 소리가 복도보다 두껍게 울렸다. 형광등이 한 번 깜빡였다가 안정됐다.
"앉아요."
강인호는 상석에 앉지 않았다. 옆자리였다. 그게 전략인지 습관인지 이겸은 아직 확정하지 못했다. 테이블 위에 노트가 하나 있었다. 펼쳐져 있지 않았다. 표지가 위를 향한 채 놓여 있었는데, 이겸은 그 노트를 본 적이 없었다. 예전 생에서도. 새것이었다.
"어제 저녁에 전략실에서 연락이 왔어요."
이겸은 대답하지 않았다.
"민가온 씨 보고서 건이에요. 제출이 하루 미뤄졌다고. 사유가 없어서 내가 물어봤더니, 감사팀 쪽 요청이 있었다는 거야."
강인호가 이겸을 봤다. 웃지 않았다. 화도 아니었다. 그냥 봤다. 그게 가장 읽기 어려운 표정이었다. 이겸은 그 시선을 정면으로 받으면서 손을 무릎 위에 얹었다. 주먹을 쥐지 않았다. 주먹을 쥐면 긴장이 보인다.
"한 부장이 한 거예요?"
이겸은 잠시 멈췄다. 멈춘 시간이 길지 않았다. 길면 안 됐다.
"네. 제가 요청했습니다."
"이유요?"
"보고서 안에 출처가 불분명한 접근 기록이 하나 있었습니다. 제출 전에 확인이 필요했고, 그 확인 주체가 저였습니다."
강인호가 테이블 위 노트를 손으로 짚었다. 펼치지는 않았다. 손가락이 표지 위에 가만히 있었다.
"어떤 기록이요?"
"TJ-0394 시스템 접근 로그입니다. 퇴직자 계정으로 외부 접속이 기록돼 있었습니다. VPN 승인 없이."
강인호의 손이 노트 위에서 한 번 움직였다. 아주 작게. 이겸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반응이 있다는 것. 그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
"그건 감사팀 공식 조사 안건이에요?"
"아직 아닙니다. 그래서 먼저 경위를 확인하려 했습니다."
"그러면 팀장한테 먼저 보고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말끝이 물음이었는데 물음이 아니었다. 이겸은 그 온도를 똑바로 받았다. 피하면 지는 게 아니라, 피하는 순간 상대가 다음 수를 얻는다.
"맞습니다. 순서가 잘못됐습니다. 사과드립니다."
강인호가 이겸을 다시 봤다. 이번엔 조금 더 길게. 이겸은 시선을 내리지 않았다. 형광등이 다시 한 번 깜빡였다. 방이 잠깐 더 어두워졌다가 돌아왔다.
"한 부장은 요즘 혼자 너무 많이 움직이는 것 같아요."
낮은 말이었다. 가볍지 않았다. 이겸은 그 문장이 경고인지 관찰인지 아직 구분하지 못했다. 둘 다일 수도 있었다.
"주의하겠습니다."
강인호가 노트를 들고 일어섰다. 이겸도 일어섰다. 강인호가 먼저 문을 열었다. 이겸이 나오자 문이 닫혔다. 강인호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 노트를 서랍에 넣었다. 잠그는 소리가 났다. 작고 단단한 소리였다. 이겸은 그 소리를 들으며 자리로 돌아왔다. 해진이 모니터에서 눈을 들지 않았다. 그래도 됐다.
오전 아홉 시 십오 분, 이겸은 민가온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사무실 밖 로비에서 십 분만 가능하냐고. 민가온의 답은 삼 분 뒤 왔다.
'지금 내려갈게요.'
세 글자였다. 망설임이 없었다.
로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이겸은 자판기 옆 기둥 뒤에 섰다. 공기가 사무실보다 차가웠다. 냉방이 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민가온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오늘은 노트북 가방을 들고 있지 않았다. 손이 가벼운 사람은 대개 결정을 이미 내린 상태였다. 이겸은 그 손을 한 번 봤다.
"보고서 오늘 오전에 올려야 해요."
민가온이 먼저 말했다. 이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올려요."
민가온이 이겸을 봤다. 기다리는 눈이었다.
"대신 수신처를 바꾸세요. 전략실 아니고 감사위원회 직통으로. 내가 서면 요청서 써드릴게요. 오늘 안에."
민가온의 눈이 가늘어졌다.
"전략실이 뭐라고 할 텐데요."
"전략실이 뭐라고 하면, 그게 왜 뭐라고 하는지가 다음 조사 대상이 됩니다."
침묵이 짧게 있었다. 자판기가 캔을 하나 뱉었다. 아무도 누른 게 없었는데. 민가온이 그쪽을 봤다가 이겸을 봤다. 이겸은 움직이지 않았다.
"서면 요청서, 오늘 점심 전에 주세요."
민가온이 돌아섰다. 이겸은 그 뒷모습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사라지는 걸 보며 수첩을 꺼냈다. 오늘 날짜 아래에 한 줄을 썼다.
'수신처 전환 완료. 강인호 반응 확인 필요.'
펜이 종이를 눌렀다. 글자가 눌린 자리에 작은 흔적이 남았다. 이겸은 수첩을 덮고 안주머니에 넣었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겸은 혼자였다. 문이 닫히고, 올라가는 감각이 발바닥에 실렸다. 강인호가 노트를 서랍에 잠갔다. 그 노트 안에 뭐가 있는지 이겸은 아직 몰랐다. 그게 이번 생에서 처음으로 모르는 것이었다. 예전 생에서도 그 노트는 없었다. 새로 생긴 것이었다. 이겸이 수를 뒀기 때문에 상대도 수를 뒀다는 뜻이었다. 그 무게가 발바닥에서 올라오는 감각과 섞였다.
문이 열렸다. 사무실 공기가 들어왔다. 프린터 열기, 형광등 윙 소리, 그리고 해진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 이겸은 자리에 앉았다. 강인호는 전화를 받고 있었다. 조용한 목소리였다. 수화기를 귀에 붙인 채 창 쪽을 보고 있었다. 이겸은 그 옆모습을 보다가 시선을 화면으로 내렸다.
오늘이 끝나기 전에 이겸은 한 가지를 더 해야 했다. 강인호가 어제 오전에 어디서 누구를 만났는지. 그 답이 없으면, 서면 요청서를 보내는 순간 상대가 먼저 움직인다. 이겸은 수첩을 서랍에 넣었다. 잠그지 않았다. 잠그면 이미 들킨 게 된다. 열어두면 아무것도 없는 척이 된다. 이겸은 그 차이를 오늘 처음으로 무기로 썼다. 그리고 강인호의 잠긴 서랍 소리가 아직 귀 안에 남아 있다는 걸 알았다. 예전 생의 장부보다 저 노트가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