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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8화]

누군가 먼저 물었다

작성: 2026.03.13 13:11 조회수: 46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이 콘텐츠는 보험을 소재로 한 창작물이며 실제 상품 추천이나 보장 판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셔터를 다시 올린 건 수요일 아침, 정확히 닷새 만이었다. 녹이 슨 손잡이를 잡자마자 어깨 아래 근육이 쿡쿡 쑤셨다. 반쯤 올라가다 턱 걸리는 셔터를 두 손으로 힘껏 밀어 올리고 나서야 이른 햇살이 가게 안쪽까지 비집고 들어왔다. 드라이클리닝 기계 위에 내려앉은 먼지가 빛줄기 속에서 반짝였다. 민주는 그 먼지를 한참 바라봤다. 닷새 동안 닫혀 있던 공간은 주인을 잊은 것처럼 냄새가 달라져 있었다. 세제 냄새 대신 축축한 콘크리트 냄새, 어디선가 올라오는 하수구 같은 기운이 먼저 코를 찔렀다. 환풍기를 틀고 앞치마를 매며 민주는 혼잣말했다.

"사람이 안 있으면 집도 금방 늙어."

가게 안은 여전히 눅눅했지만, 셔터를 올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숨통이 조금 트였다. 문제는 그대로인데, 닫아 둔 채 바라보는 것과 문을 열고 마주 보는 건 달랐다. 민주는 카운터 위에 서류를 펼쳐 놓고 한 장씩 다시 넘겼다. 계약자 이름은 박태식. 사망 일자 옆에는 연필로 희미한 메모가 남아 있었다.

'수손 특약 확인할 것.'

명자의 글씨도 아니고, 자기 글씨도 아니었다. 누군가 이미 이 서류를 들여다봤다는 뜻이었다.

전화를 건 건 오전 열 시였다. 보험사 안내 음성을 따라 1번, 3번, 다시 2번을 누르는 동안 민주의 시선은 자꾸 그 메모에 걸렸다. 연결음이 길어질수록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괜히 물었다가 더 복잡해지는 건 아닐까 싶다가도, 이번에는 미루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

"네, 확인해 드리겠습니다. 잠시만요."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이십 초쯤 지났을까. 상담원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달라졌다.

"고객님, 혹시 이 계약 건으로 최근에 다른 분이 문의하신 적 있으신가요?"

민주의 손가락이 카운터 위에서 멈췄다.

"다른 분이요?"

"네, 약 열흘 전쯤 같은 계약 번호로 보상 청구 가능 여부를 물어보신 분이 계시는데요. 개인정보라 성함을 말씀드리긴 어렵고요."

심장이 한 박자 빨라졌다. 가족은 자기와 준수뿐이었다. 그리고 이 보험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명자밖에 없었다. 민주는 수화기를 귀에 더 바짝 붙였다.

"저 말고 다른 사람이 이 보험에 대해 물어봤다고요?"

"네, 맞습니다. 혹시 가족분이실 수도 있어서요."

가족은 아니었다. 적어도 민주는 그렇게 확신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가게 안 환풍기 소리만 유난히 크게 들렸다. 닷새 만에 올린 셔터보다, 열흘 전에 먼저 걸려 온 전화 한 통이 더 불길했다.

점심 직전, 민주는 명자의 부동산 사무실 문을 열었다. 명자는 선풍기 앞에서 수박을 먹고 있었고, 에어컨은 꺼져 있었다. 사무실 안에는 부동산 전단지 냄새와 수박 단내가 뒤섞여 있었다.

"언니, 에어컨 왜 안 틀어."

"전기세가 사람을 잡아. 선풍기면 되지, 뭘."

민주는 맞은편 의자에 앉으며 수박 한 조각을 집었다. 달았다. 닷새 만에 먹는 과일이라 그런지 더 달게 느껴졌다. 하지만 단맛은 오래가지 않았다. 수박을 반쯤 먹다가 민주는 바로 물었다.

"언니, 박태식 형부 이름으로 된 보험. 나 말고 누가 또 보험사에 전화했어?"

명자의 손이 잠깐 멈췄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민주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명자는 수박씨를 휴지에 뱉고 고개를 저었다.

"내가 왜. 나는 안 했어. 그 서류 너한테 줬잖아."

"그럼 누가 한 거야. 열흘 전이래."

명자는 손가락에 묻은 수박즙을 앞치마에 닦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열흘 전이면… 그때 나 속초 갔다 왔잖아. 동창회."

그건 사실이었다. 명자가 속초에서 사 온 오징어가 아직 냉장고에 있었다. 민주는 괜히 의심부터 한 게 민망했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놓이지도 않았다.

"그럼 대체 누가?"

목소리가 조금 높아지자 명자가 수박을 내려놓고 민주를 똑바로 봤다. 평소처럼 수다를 던지는 얼굴이 아니었다.

"민주야, 태식이가 살아 있을 때 이 건물 관리하면서 같이 다닌 사람이 있었어. 설비 쪽. 이름이 뭐였더라, 최 뭐시기."

"설비?"

"배관하고 전기 쪽 봐주던 사람. 태식이가 워낙 꼼꼼했잖아. 시공 기록 같은 것도 그 사람 손을 많이 탔어. 근데 태식이 죽고 나서는 연락이 끊겼지."

열흘 전 보험사에 전화한 사람이 그 설비업자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전혀 다른 누군가일 수도 있었다. 질문은 더 늘어났는데, 답은 오히려 멀어졌다. 명자는 더 캐묻지 말라는 듯 새 수박 조각을 잘라 민주 앞으로 밀어놓았다. 그게 명자식 위로라는 걸 민주는 알았다.

오후 세 시, 세탁물 네 건을 처리하고 다리미질을 하고 있을 때 준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나 오늘 좀 늦어."

"왜?"

"학교에서 조 모임 있어서."

민주는 "응" 하고 끊으려다가 수화기 너머로 짧고 낮은 기계음을 들었다. 윙, 하고 돌아가는 소리. 도서관에는 없는 소리였다. 커피 머신이었다. 민주는 그걸 듣고도 바로 따지지 않았다.

"알았어. 밥은?"

"사 먹을게."

"많이 먹어."

전화를 끊고 나서야 민주는 다리미를 세웠다. 셔츠 위에 난 다리미 자국이 비뚤어져 있었다. 스팀을 뿌리며 다시 눌러 보다가, 결국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조 모임이 커피를 내리나."

저녁 아홉 시가 되어서야 준수가 들어왔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왼손을 주머니에 넣는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재킷을 벗는 순간 소매 사이로 흰 거즈가 삐져나왔다. 부엌에서 된장찌개를 저으며 그걸 본 민주의 손이 그대로 굳었다.

"손 왜 그래."

"아, 이거? 학교에서 넘어졌어."

"넘어져서 손에 붕대를 감아?"

"긁혔거든."

민주는 찌개를 한 번 더 젓고 불을 줄였다. 준수의 귀가 빨개지고 있었다. 지난번 앞치마 자국을 들켰을 때와 같은 색이었다. 이건 넘어진 게 아니었다. 모른 척 넘어가면 오늘도 또 지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고 나면 이 집에서는 계속 다들 아는 걸 모르는 척하게 될 것 같았다. 민주는 그 자리에서 마음을 정했다. 오늘은 묻기로.

식탁에 마주 앉았다. 밥, 된장찌개, 깍두기, 계란말이. 준수는 오른손으로만 숟가락을 들었고, 왼손은 무릎 위에 올려둔 채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민주는 준수가 밥을 반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카페에서 데인 거지."

준수의 숟가락이 찌개 위에서 멈췄다. 국물이 숟가락 끝에서 한 방울 떨어졌다. 짧은 침묵이 식탁 위에 내려앉았다.

"…엄마가 어떻게 알아."

"아까 전화할 때 커피 머신 소리 들렸어."

준수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민주도 따라 내려놓았다. 식탁 위 반찬들이 둘 사이에 놓여 있었지만, 진짜 거리는 그 너머에 있었다.

"언제부터야."

민주의 목소리는 낮았다. 화가 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차라리 화를 냈으면 쉬웠을 것이다. 이건 화보다 더 깊은, 안에서 조용히 무너지는 소리에 가까웠다.

"두 달… 됐어."

두 달이면 누수가 시작되기 전부터였다. 세탁소가 닫히기 전부터이기도 했다. 민주는 그 말을 한 번 더 속으로 되뇌었다.

"왜 말 안 했어."

"엄마가 힘든 거 알았으니까."

"그러니까 왜 말 안 했냐고."

끝내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준수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엄마의 눈이 붉어져 있었다. 이건 혼나는 자리가 아니라, 엄마가 아픈 자리라는 걸 그제야 준수도 알았다.

"손 봐."

준수는 잠깐 망설이다가 왼손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민주는 조심스럽게 거즈를 들춰봤다. 손등에서 손목까지 빨갛게 부어 있었고, 물집이 두 개 잡혀 있었다. 가장자리는 하얗게 일어나 있었다. 커피가 아니라 스팀이었다. 세탁소에서 스팀 화상을 수없이 입어 본 민주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병원은?"

"약국에서 연고 바르고 거즈 샀어."

"이걸 연고로 때워?"

민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구급함을 가져왔다. 화상 연고를 꺼내고 새 거즈를 준비하는 손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동작은 정확했다. 준수는 엄마가 연고를 바르는 동안 고개를 돌렸다. 눈이 시큰거렸지만 울지는 않았다. 대신 짧게 소리를 냈다.

"아."

민주의 손길은 단단했지만 조심스러웠다. 화가 난 사람의 손이 아니라, 다치게 한 세상 대신 대신 미안해하는 사람의 손 같았다. 준수는 그게 더 견디기 어려웠다.

"내일 병원 가."

민주의 말투는 명령에 가까웠다.

"아르바이트는 당분간 쉬어."

"엄마."

"쉬라고 했어."

이번에는 목소리가 더 단단했다. 쉬면 돈이 줄고, 돈이 줄면 이 식탁 위 반찬이 하나씩 사라질 수 있다는 걸 둘 다 알고 있었다. 그래도 민주는 아들의 물집 잡힌 손등을 보며 생각했다. 반찬이 사라지는 게 아들의 손이 망가지는 것보다는 나았다.

설거지는 민주가 했다. 준수는 방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다. 손에 접힌 종이 한 장을 들고 있었다.

"엄마, 이거."

고무장갑을 낀 채 돌아보자 준수가 종이를 내밀었다. 이번 달 카페 급여 명세서였다. 삼십이만 원. 준수는 괜히 시선을 싱크대 쪽으로 돌린 채 말했다.

"다음 달 거까지 합치면 칠십 정도 돼. 세탁소 닫은 동안 밀린 거 메꿀 수 있어."

민주는 급여 명세서를 한참 들여다봤다. 숫자 옆에 '이준수'라는 이름이 손글씨로 적혀 있었다. 이 아이가 언제 이렇게 자기 이름을 또박또박 쓰는 어른이 됐는지 문득 낯설었다. 서운함이 먼저 올라왔다가, 바로 그 뒤에 고마움이 따라붙었다. 마음이 그렇게 뒤늦게 방향을 바꾸는 순간이 있었다.

"고마워."

그 두 글자가 나오기까지 이를 악물어야 했다. 준수는 잠깐 입술을 깨물더니 짧게 대답했다.

"응."

문이 닫히고 나서야 민주는 고무장갑을 벗고 싱크대에 기댔다. 창밖으로 상가 골목의 가로등이 보였다. 명자의 부동산 간판 불은 이미 꺼져 있었다. 민주는 급여 명세서를 냉장고에 붙였다. 세탁소 거래처 전화번호, 준수의 수강 시간표, 누렇게 바랜 가족사진 옆에 그 종이가 나란히 붙었다. 그걸 보다가 혼잣말이 새어 나왔다.

"이 집은 냉장고 문짝이 가계부야."

웃으려 했지만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휴대폰을 꺼내 명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언니, 그 설비업자 이름 기억나면 알려줘. 최 뭐시기라고 했지.'

답장은 삼 분 만에 왔다. '최용배. 근데 민주야, 그 사람 찾으면 나도 같이 만나자. 나도 물어볼 게 있어.' 민주는 그 문자를 읽고 화면을 껐다. 명자도 모르는 게 있다는 뜻이었다. 자기 건물 일인데 명자조차 모르는 게 있다니, 그 사실이 더 이상했다.

불을 끄기 전, 민주는 준수의 방문 앞에 잠깐 섰다. 문 아래 틈으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노크는 하지 않았다. 대신 문고리에 손을 올렸다가 천천히 내렸다. 오늘은 서로에게 한 번씩 물었다. 그걸로도 밤은 어제보다 조금 나아진 셈이었다.

복도 끝 자기 방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휴대폰 화면이 다시 켜졌다. 명자에게서 추가 문자가 와 있었다.

'민주야, 방금 생각났는데 그 사람 예전에 도면도 들고 다녔어. 아직 갖고 있을지 몰라.'

민주는 문장 끝의 '도면' 두 글자를 오래 바라봤다. 누수보다 먼저, 누군가가 이미 이 건물 속을 훤히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용배가 정말 도면을 갖고 있다면, 열흘 전 보험사에 먼저 전화한 이유도 달라진다. 그 순간 민주는 내일 찾아가야 할 사람이 한 명 더 또렷해졌다는 사실보다, 왜 그 사람이 이제 와서 움직였는지가 더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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