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곱 시, 민주는 습관처럼 현관문을 나섰다가 손에 들린 걸 보고 잠깐 멈췄다. 가게 열쇠가 아니라 편의점 봉투였다. 삼각김밥 두 개, 컵커피 하나, 물티슈. 세탁소 문을 열지 못하는 날의 아침은 이상하게 비어 있었다. 해야 할 일이 없어서 가벼운 게 아니라, 해야 할 일을 못 하고 있어서 붕 뜬 느낌이었다. 발은 골목을 향하는데 마음은 자꾸 집 쪽으로 돌아가려 했다.
골목 끝에 내려진 셔터가 보이자 걸음이 저절로 느려졌다. 나흘째 같은 풍경인데도, 매번 처음 보는 것처럼 속이 철렁했다. 셔터 아래로 비닐봉지 하나가 반쯤 끼워져 있었다. 민주는 허리를 굽혀 봉지를 꺼냈다. 안에는 접힌 종이 한 장과 와이셔츠 한 벌이 들어 있었다.
종이에는 익숙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민주 씨, 가게 열면 이거 다림질 부탁해요. 급하진 않아요. 건강하세요 — 3층 김 사장.’
민주는 와이셔츠를 펼쳐 봤다. 깃 부분에 볼펜 자국이 번져 있었다. 볼펜 자국은 다림질로 없어지지 않는데, 김 사장은 늘 그걸 잊었다. 잊고 맡기고, 맡기고 나서 미안하다고 웃고, 다음번에 또 잊는 사람. 민주는 봉지를 다시 접으며 피식 웃었다.
웃음이 가라앉자 코끝이 시큰해졌다. 가게 문은 닫혀 있는데도 단골은 자기 방식대로 일을 맡기고 갔다.
‘급하진 않아요’
라는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급하지 않다는 말은 기다리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게 더 사람을 약하게 만들었다.
집에 돌아오니 준수 방 문은 닫혀 있었고, 신발장 위에 운동화가 없었다. 또 나갔구나. 화요일 오전 수업이 없는 날, 운동화를 신고 일찍 나간다는 건 요즘 거의 같은 뜻이었다. 아르바이트. 민주는 그 사실을 모르는 척한 지 열흘이 넘었다. 몰라서가 아니라, 아는 척하는 순간 어디까지 물어야 할지 겁이 나서였다. 왜 말 안 했냐고 묻는 순간, 자기는 왜 먼저 묻지 않았냐는 대답이 돌아올 것 같았다.
식탁 위에 삼각김밥 하나를 올려두고 포스트잇을 붙였다.
‘냉장고에 넣지 말고 바로 먹어.’
적고 나니 잔소리 같아서 떼었다가, 다시 붙였다. 긴 말은 자꾸 부딪혔고 요즘 집에서는 이런 짧은 문장이 그나마 덜 다쳤다.
열한 시쯤 명자가 왔다. 초인종도 누르지 않고 현관문부터 두드렸다. 다급한 사람 특유의 리듬이었다. 민주는 문을 열자마자 알았다. 손에 든 갈색 서류 봉투가 오늘의 기분을 다 말해 주고 있었다.
“이거 찾느라 어젯밤에 장롱을 세 번 뒤집었어.”
“들어와서 숨부터 쉬어요.”
“숨은 쉬고 왔지. 대신 혈압이 좀 올랐고.”
명자는 실내화도 제대로 못 신은 채 식탁에 봉투를 탁 내려놨다. 민주가 커피포트를 올리며 물었다.
“그게 뭔데요?”
“건물 보험 서류. 내가 복잡하다고 했잖아. 진짜 복잡해. 읽다가 두 번 덮었어. 한 번은 화나서, 한 번은 겁나서.”
봉투 안에서는 서류 뭉치가 우르르 쏟아졌다. 클립이 세 군데 찍혀 있었고, 포스트잇이 군데군데 붙어 있었다. 명자 글씨로 ‘이거 뭐야?’, ‘확인’, ‘모르겠음’, ‘나중에 전화’가 적혀 있었다. 민주는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언니는 왜 아는 것보다 모르는 데 표시를 더 크게 해요?”
“몰라야 크게 보이지. 아는 건 가만있어도 안 도망가.”
“모르는 건 도망가요?”
“응. 특히 돈 얘기 붙으면 제일 빨라.”
둘 다 잠깐 웃었다. 그 짧은 웃음이 지나가고 나서야 민주는 첫 장을 펼쳤다. 건물 화재보험 증권이었다. 계약자란에 적힌 이름을 보는 순간 손이 멈췄다.
“언니.”
“왜.”
“이 이름… 박태식?”
명자의 표정이 아주 조금 굳었다. 커피잔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우리 형부.”
짧고 빠른 대답이었다. 빨리 말하면 덜 아플 줄 아는 사람처럼.
“죽은 형부 이름이야.”
민주는 다시 서류를 봤다. 명자 이름이 아니었다. 돌아가신 형부 이름 아래 보험 기간, 특약, 납입 방식 같은 글자들이 빼곡했다. 살아 있는 사람들 일이 죽은 사람 이름 아래 매달려 있는 기분이 들었다.
명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원래 형부가 이런 건 다 했어. 보험, 관리비, 세금, 수리 연락. 나는 그냥 도장 찍으라면 찍고, 전화하라면 하고 그 정도였지. 그러다 사람이 갑자기 가고 나니까….”
말끝이 흐려졌다. 민주는 재촉하지 않았다. 명자가 말끝을 흐릴 때는 그다음이 진짜였다.
“장례 치르고, 건물 정리하고, 세입자들 월세 날짜 맞추고, 밀린 거 처리하고…. 솔직히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 명의 변경은 해야지, 해야지 하다가 미뤘고. 갱신도 그때 제대로 된 건지, 자동이체가 계속 나간 건지, 나도 지금 헷갈려.”
“그럼 언니도 확실히 모르는 거예요?”
“응. 부끄럽지만 그래.”
명자는 그 말을 하고 나서 괜히 포스트잇을 한 장 떼었다 붙였다 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민주는 그 손을 보다가 서류를 자기 쪽으로 더 끌어왔다. 누가 더 잘못했는지 따질 분위기가 아니었다. 둘 다 미뤘고, 둘 다 이제 와서 겁이 났다.
두 번째 장, 특약 목록. 화재, 폭발, 풍수재, 그리고 ‘급배수 설비 파손에 의한 수손’ 항목 옆에 체크 표시가 있었다. 민주의 손가락이 거기서 멈췄다. 자기 보험 증권에는 비어 있던 바로 그 칸이었다.
“언니, 여기 봐요. 수손 들어 있네요.”
“어디?”
명자가 몸을 바짝 기울였다. 민주가 짚은 줄을 따라 읽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형부가 꼼꼼하긴 했어. 쓸데없는 데는 짠데, 이런 건 또 하나도 안 빼먹었거든.”
“쓸데없는 데는 짰다고요?”
“커피숍 가면 제일 작은 거 시켰어. 근데 보험은 제일 긴 약관을 읽었지.”
“이상한 분이네.”
“이상했지. 근데 그런 사람이 집에서는 리모컨 배터리 갈아 끼우는 건 맨날 미뤘어.”
명자가 웃다가 금세 입술을 다물었다. 웃음 끝에 남는 표정이 더 쓸쓸했다. 민주는 그 얼굴을 보고 질문을 삼켰다. 왜 명의를 안 바꿨냐, 왜 지금까지 확인 안 했냐, 왜 아무도 제대로 몰랐냐. 다 맞는 질문인데, 지금 던지면 사람부터 상할 것 같았다.
대신 민주는 종이를 한 장 더 넘겼다. 작은 글씨들이 빼곡했다. 피보험자, 통보 의무, 변경 사항, 사고 접수 절차. 읽을수록 머리가 아팠다.
“언니, 이거 우리 둘이 읽어서는 안 되겠는데요.”
“나도 그 생각했어.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뭘 모르는지만 늘어나.”
“그래도 알아야죠.”
“알아야지. 근데 사람이 겁나면 글씨가 더 작아 보여.”
민주는 커피잔을 명자 앞으로 밀어줬다.
“같이 보면 돼요. 천천히.”
명자가 코를 훌쩍였다.
“어휴, 커피가 써.”
“설탕 드릴까요?”
“아니. 지금 단 거 먹으면 더 서러워.”
민주는 모른 척 고개만 끄덕였다. 이 동네에서 모른 척은 종종 가장 따뜻한 예의였다.
오후 세 시, 민주는 수리업체 전화를 받으려고 다시 세탁소 앞으로 나갔다. 집 안에서는 숫자가 더 무섭게 들릴 것 같았다. 기사 목소리는 친절했지만, 금액을 말하는 순간 귀가 멍해졌다.
“잠깐만요. 다시 한 번만 말씀해 주세요.”
민주는 메모장을 펴고 금액을 받아 적었다. 한 번, 두 번 확인했다. 적고 나니 숫자가 더 또렷해졌다. 나흘째 멈춘 매출 위에 앞으로 나갈 돈이 검은 글씨로 올라앉았다.
하루 매출이 보통 이십오만 원에서 삼십만 원. 나흘이면 백만 원이 넘었다. 거기에 수리비까지.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릴수록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냥 오늘은 덮고 내일 생각하자는 마음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덮어 봤자 숫자가 작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민주는 메모장 맨 위에 동그라미를 크게 쳤다.
‘내일 보험사 전화.’
기다릴지, 먼저 물을지. 이번에는 선택지가 오래가지 않았다. 먼저 묻는 쪽이 덜 무서웠다. 적어도 가만히 앉아 상상으로 망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때 골목 끝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드니 준수가 걸어오고 있었다. 검은 티셔츠에 앞치마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고, 손등에는 붉은 얼룩이 번져 있었다. 뜨거운 물에 데인 자국 같았다. 민주의 눈이 거기에 꽂혔다. 준수도 민주의 메모장을 봤다. 둘 다 바로 입을 열지 않았다.
준수는 셔터 앞에 놓인 봉지를 집어 들었다. 안에 든 와이셔츠와 메모를 꺼내 읽었다.
‘가게 열면 이거 다림질 부탁해요. 급하진 않아요.’
준수는 그 문장을 한 번 더 읽더니 조심스럽게 접어 다시 넣었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귀가 빨개져 있었다. 준수는 어릴 때부터 귀부터 빨개졌다. 울기 직전에도, 참을 때도, 민망할 때도 그랬다.
민주가 괜히 퉁명스럽게 말했다.
“감기 걸리겠다. 들어가.”
준수가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엄마는?”
“나도 들어가야지.”
준수는 잠깐 머뭇거리더니 셔터를 올려다봤다.
“손님들… 많이 물어봐?”
“물어보는 사람도 있고, 그냥 맡기고 가는 사람도 있고.”
“화내는 사람은?”
“아직은 없고.”
“다행이네.”
민주는 그 말이 손님 얘기인지, 가게 얘기인지, 자기 얘기인지 애매해서 바로 답하지 못했다. 준수도 더 묻지 않았다. 대신 봉지를 자기 쪽으로 들었다.
“이거 내가 들게.”
“됐다.”
“무겁지도 않은데.”
“그게 아니라….”
민주는 말을 멈췄다. 네 손이 왜 그러냐고 묻고 싶었다. 어디서 일하냐고도, 왜 숨기냐고도. 그런데 지금 꺼내면 또 서로 방어부터 할 것 같았다. 준수는 이미 엄마 표정을 읽고 있었다.
“엄마.”
“왜.”
“나, 그냥 친구 만나고 온 거 아니야.”
민주의 심장이 한 번 덜컥했다. 드디어 말하나 싶었는데, 준수는 거기서 입을 다물었다. 귀만 더 빨개졌다.
“알아.”
민주가 먼저 말했다.
“모르는 척한 거야. 나도.”
준수의 눈이 잠깐 커졌다.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셔터 앞에 서 있는 모자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골목으로 오토바이 한 대가 지나가며 바람을 일으켰다. 그제야 준수가 낮게 말했다.
“미안.”
짧은 한마디였는데, 민주는 괜히 더 화가 났다. 미안하다는 말이 너무 빨리 나오면 그 뒤에 있는 사정은 또 미뤄질 것 같아서였다.
“미안하면 끝이냐.”
말이 나가고 나서 바로 후회했다. 준수 어깨가 굳었다. 민주는 한숨을 삼켰다.
“아니, 그 뜻이 아니라….”
준수가 먼저 고개를 저었다.
“알아. 근데 지금은 집에 가자. 밖에서 얘기하기 싫어.”
그 말이 이상하게 어른 같아서 민주는 더 이상 다그치지 못했다. 두 사람은 집 쪽으로 걸었다. 사이에는 세 걸음 정도 거리가 있었지만, 아까보다 아주 조금 가까웠다.
집에 돌아와 민주는 명자가 두고 간 서류를 다시 펼쳤다. 특약 목록 아래 작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피보험자 변경 시 사전 통보 의무.’
그 옆에는 명자 글씨로 ‘이거 뭐야?’라고 적힌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민주는 새 포스트잇을 꺼내 그 옆에 붙였다.
‘같이 알아보자.’
적고 나니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해결된 건 하나도 없는데, 적어도 또 덮어 두지는 않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서류 첫 장의 ‘박태식’이라는 이름을 다시 봤다. 돌아가신 사람 이름 위에 보험이 걸려 있고, 그 보험 아래에 건물과 세입자와 수리비와 셔터와 생활이 줄줄이 매달려 있었다.
민주는 작게 중얼거렸다.
“형부, 꼼꼼하셨다면서요. 그럼 이것도 어디 적어 두셨겠죠.”
대답은 없었다. 대신 부엌에서 준수가 삼각김밥 포장을 뜯는 소리가 났다. 바로 먹으라고 했더니 진짜 바로 먹고 있었다. 그 사각거리는 소리가 이상하게 사람을 안심시켰다. 아직은 밥 먹는 소리가 나는 집이었다.
민주는 서류를 봉투에 다시 넣다가 맨 뒤에서 얇은 메모 한 장이 미끄러져 나오는 걸 봤다. 광고 전단 뒷면을 잘라 쓴 것 같은 종이였다. 계약 번호가 적혀 있었고, 그 아래 볼펜으로 짧게 한 줄이 적혀 있었다.
‘먼저 물어본 사람 있음.’
민주의 손끝이 서늘하게 식었다. 명자 글씨는 아니었다. 보험사 직원이 적어 둔 건지, 형부가 남긴 건지, 누가 언제 써 놓은 건지도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자신이 내일 처음 전화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누가, 왜, 이 계약 번호를 먼저 물었을까.
민주는 바로 명자에게 전화할까 하다가 멈췄다. 언니가 아니면 괜히 겁만 더 줄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내일까지 기다리자니 속이 타들어 갔다. 메모를 다시 들여다보던 순간, 서류 구석에 적힌 번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형부가 예전에 거래하던 설비업자 연락처였다. 이름 옆에 볼펜으로 ‘배관은 이 사람’이라고 적혀 있었다.
부엌에서 준수가 물을 따르는 소리가 났다. 식탁 위에는 형부 이름이 적힌 서류가 펼쳐져 있고, 손안에는 누군가 먼저 다녀간 흔적이 남아 있었다. 민주는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보험사에 먼저 확인할지, 이 번호로 먼저 물을지. 이번에도 미루면 또 누군가 한발 앞설 것 같았다.
잠깐 뒤, 부엌 문턱에 선 준수가 물었다.
“엄마, 누구한테 전화하려고?”
민주는 화면에 떠 있는 저장되지 않은 번호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그 순간, 이상하게도 내일보다 오늘 밤이 더 길어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