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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6화]

빈칸의 무게

작성: 2026.03.12 21:13 조회수: 48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이 콘텐츠는 보험을 소재로 한 창작물이며 실제 상품 추천이나 보장 판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아침 일곱 시에 눈이 떠지는 건 몸이 기억하는 시간이었다.

민주는 눈을 뜨자마자 천장을 한 번 올려다봤다. 원래 같으면 벌써 세탁소 불을 켜고 있을 시간이었다. 셔터를 올리고, 동전통을 맞추고, 전날 맡긴 옷표를 다시 확인하고, 다림판 예열되는 소리를 들으면서 하루를 시작했을 시간. 그런데 오늘도 갈 곳이 닫혀 있다는 사실이 먼저 가슴 위에 올라앉았다. 일어나기도 전에 피곤했다.

부엌으로 나오자 싱크대 아래 깔아 둔 수건이 눈에 들어왔다. 사흘 전에는 물을 머금고 축 늘어져 있더니 이제는 반쯤 말라 있었다. 물은 멈췄는데 일은 아직 멈춘 채였다. 민주는 커피포트를 올려놓고 식탁 위 서류 봉투를 봤다. 노란 클리어파일, 보험 증권 사본, 임대차계약서, 관리인이 휘갈겨 쓴 메모. 어젯밤엔 덮어 두면 좀 나아질 줄 알았는데, 종이는 밤새 더 또렷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 밥 뭐 있어?"

준수가 잠옷 바람으로 나왔다. 머리 한쪽이 눌려 있었고, 목소리는 아직 잠이 덜 깬 사람 같았다. 그런데 식탁 위 서류를 보는 눈만큼은 잠이 다 깬 눈이었다. 민주는 냉장고를 열었다.

"계란이랑 두부. 불만 있으면 김치 더 꺼내 먹어."

"불만은 없고, 질문은 있어."

준수는 의자를 끌어당겨 앉더니 보험 증권을 다시 펼쳤다. 접힌 자리가 하얗게 일어나 있었다. 며칠 사이에 종이도 사람처럼 지쳐 보였다. 준수의 손가락이 한 줄에 멈췄다.

"여기 봐. 누수 피해 관련 특약. 빈칸이잖아. 체크가 안 돼 있어."

프라이팬 위에서 계란이 지글거렸다. 민주는 그 소리를 괜히 오래 들었다. 바로 대답하면 인정하는 것 같아서, 아니면 변명하는 것 같아서였다.

"내가 알아본다니까."

"알아보는 거랑 미루는 거랑, 엄마는 자꾸 비슷하게 말해."

민주의 손이 멈췄다. 계란 뒤집개가 프라이팬 가장자리를 툭 쳤다. 틀린 말이 아니라서 더 아팠다.

"아침부터 사람 말 예쁘게 한다."

"예쁘게 말하면 해결돼?"

말이 나간 뒤 준수도 아차 한 표정을 지었다. 식탁 위 공기가 잠깐 뻣뻣해졌다. 민주는 계란을 접시에 옮기고 두부를 썰었다. 칼이 도마를 치는 소리가 괜히 크게 났다. 한참 뒤에야 민주는 먼저 입을 열었다.

"네 말이 틀렸다는 건 아니야."

"근데 내가 겁나는 것도 사실이야. 전화해서 안 된다고 들으면, 그다음은 진짜 방법이 없는 것 같으니까."

준수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아들은 젓가락 끝으로 두부를 건드리며 말했다.

"안 물어보면 더 모르잖아. 그리고 건물 전체 보험도 있지 않아? 건물주가 드는 거. 엄마 가게 보험이랑 따로."

민주의 젓가락이 허공에서 멈췄다. 자기 보험만 붙들고 있었지, 건물 쪽 보험은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누수가 벽체나 배관 문제라면 건물 보험이 닿을 수도 있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속이 쓰렸다. 몰라서 못 한 게 아니라, 복잡할까 봐 안 본 것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명자 씨한테 물어봐야겠네."

"그러니까 물어보라고."

"쉽다, 너는."

"엄마가 어렵게 만드는 거지."

민주는 피식 웃을 뻔하다가 참았다. 얄미운데 맞는 말이었다. 식탁 위에는 서류가 펼쳐져 있고, 그 옆에서 계란프라이는 천천히 식어 갔다. 이상하게도 그 아침은 밥 냄새보다 종이 냄새가 더 진했다.

열 시가 조금 넘어 민주는 세탁소 앞으로 나갔다. 셔터는 여전히 내려와 있었고, 아래쪽 금속 틈에는 아직도 눅눅한 냄새가 남아 있었다. 셔터 앞 화분 옆에 비닐봉지가 하나 걸려 있었다. 단골 수선집 이모가 맡긴 블라우스였다. 봉지에 붙은 메모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민주야, 급한 거 아냐. 천천히 해. 몸부터 챙겨.'

민주는 메모를 떼어 주머니에 넣었다. 별말 아닌데 코끝이 잠깐 시큰했다. 닫힌 셔터 앞에 서 있으면 세상이 자기만 빼고 돌아가는 것 같다가도, 이런 글씨를 보면 생활은 이상하게 사람을 기다려 주기도 했다.

"민주 씨! 여기 있었네."

명자가 상가 모퉁이에서 나타났다. 손에 커피 두 잔이 들려 있었다. 하나를 내밀면서도 시선은 셔터에 가 있었다.

"안 사 오셔도 되는데요."

"내가 마시려고 두 잔 산 거야. 하나가 남았어."

둘 다 그 말이 거짓말인 걸 알았다. 민주는 말없이 커피를 받았다. 명자는 셔터를 올려다보며 혀를 찼다.

"관리인이 오늘 본다며?"

"오후에 다시 온대요. 내부 건조 확인하고 괜찮으면 열어도 된다고는 했는데…."

민주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열어도 바로 장사가 되겠어요? 냄새도 빠져야지, 손님 옷도 다시 봐야지."

"그러게. 셔터 올리는 것보다 그다음이 더 일이지."

명자가 먼저 그 말을 받아 주니 오히려 더 아팠다. 민주는 괜히 셔터 자물쇠를 만졌다. 차가운 금속이 손바닥에 달라붙었다.

"명자 씨, 하나만 여쭐게요."

"응, 말해 봐."

"건물 보험 서류, 오늘 좀 볼 수 있을까요? 제 보험은 누수 특약이 빈칸이라서요. 건물 쪽 담보라도 확인해야 할 것 같아요."

명자의 대답은 빨랐다.

"당연히 있지. 매년 내니까."

너무 빨라서 오히려 민주는 눈을 들었다. 명자는 커피 뚜껑을 엄지로 몇 번 눌렀다 폈다 하고 있었다.

"그럼 누수 담보나 배관 관련 특약이 들어 있는지도 같이 봐 주세요. 오늘 안에요."

이번엔 명자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삼켰다. 목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서류를 찾아봐야 해. 집 어딘가 있을 텐데."

"오늘 가능하세요?"

민주도 자기 목소리가 생각보다 단단해서 조금 놀랐다. 명자는 그제야 민주를 똑바로 봤다. 잠깐, 아주 잠깐 난처한 표정이 스쳤다가 사라졌다.

"찾아볼게. 오늘 안에."

민주는 그 자리에서 한 번 더 선택해야 했다. 여기서 또 '천천히 하세요' 하고 물러날지, 아니면 민망해도 끝까지 확인할지. 예전 같으면 웃으면서 넘겼을 것이다. 괜히 계산적인 사람처럼 보일까 봐, 상가 사람들 사이에서 유난 떠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하지만 셔터는 닫혀 있고, 매출은 멈췄고, 미안해하는 얼굴만으로는 수리비가 나오지 않았다.

민주는 커피컵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명자 씨, 저 이번엔 그냥 못 넘겨요. 오늘 안에 서류를 못 찾으시면, 보험회사 이름이랑 계약 번호라도 먼저 알려 주세요. 제가 직접 물어볼게요."

말이 떨어지자 둘 사이 공기가 한 번 더 팽팽해졌다. 명자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서운한지, 놀란 건지, 둘 다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내가 안 보여 주겠다는 건 아니잖아."

"알아요. 근데 저도 더는 모른 척 못 하겠어요."

잠깐 침묵이 흘렀다. 상가 앞 도로로 택배 오토바이 한 대가 지나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지나가고 나서야 명자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알았어. 오늘 안에 연락할게. 괜히 기분 상한 건 아니고…."

명자가 커피컵을 만지작거리며 덧붙였다.

"서류가 좀 오래돼서 그래."

오래됐다는 말이 이상하게 귀에 걸렸다. 민주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속으로만 정했다. 오늘 안에 답이 안 오면 먼저 다시 묻자고. 이번에는 민망해서, 괜히 예민해 보일까 봐 물러서지 말자고.

오후 세 시, 집으로 돌아온 민주는 식탁에 다시 앉았다. 보험 증권을 펴고 빈칸을 한참 봤다. 수손 특약, 체크 없음. 오 년 전 여름, 세탁소 보증금을 맞추느라 보험료 천 원, 이천 원도 아끼겠다고 설계사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건 빼도 되죠?" 하고 물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때는 당장 다음 달 카드값이 더 무서웠다. 미래의 사고보다 이번 달 공과금이 더 컸다. 틀린 선택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그때의 자기는 그때의 형편으로 버틴 거니까. 그런데 그 천 원짜리 망설임이 지금은 이렇게 큰 빈칸으로 돌아와 있었다.

현관문이 열리고 준수가 들어왔다. 운동화에 흙이 묻어 있었다.

"어디 갔다 왔어?"

"도서관. 그리고 주민센터 앞."

준수는 가방에서 접은 메모지 한 장을 꺼냈다.

"보험 민원 상담 번호. 무료래. 누구 보험부터 봐야 하는지, 어디까지 보상되는지 알려준대."

민주는 메모지를 받았다. 숫자가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아들 글씨가 언제 이렇게 단정해졌는지 새삼스러웠다.

"네가 왜 이런 걸 찾아."

"엄마가 자꾸 혼자 끙끙대니까."

"혼자 끙끙댄 건 맞네."

준수는 예상 못 했는지 눈을 깜빡였다. 민주는 메모지를 보험 증권 옆에 나란히 놓았다.

"고맙다. 내일 오전에 바로 전화할게."

준수가 바로 말했다.

"지금 해."

"지금?"

"지금 안 하면 또 저녁 먹고 하자, 설거지하고 하자, 내일 하자 할 거잖아."

민주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 기가 막힌데 반박은 못 했다. 준수는 휴대폰을 민주 쪽으로 밀어 놓았다.

"스피커폰은 하지 말고. 엄마 체면도 있으니까. 대신 끝나고 뭐라 했는지 나한테 말해."

그 말에 민주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짧게, 그러나 오랜만에 제대로. 웃고 나니 조금 덜 무서웠다. 민주는 번호를 눌렀다. 연결음이 가는 동안 심장이 괜히 빨리 뛰었다. 끊을까 싶을 때 상담원이 받았다.

상담원은 생각보다 차분했다. 세입자 보험의 수손 특약 여부, 건물 보험 확인 필요, 누수 원인과 피해 사진 보관, 관리인 확인 내용 기록. 이미 알고 있었어야 할 말들이었는데, 남의 입으로 차례차례 들으니 이상하게 길이 생기는 기분이 들었다.

"그럼 제 보험에 특약이 없으면 끝인가요?"

민주가 묻자 상담원이 잠깐 숨을 고르고 말했다.

"끝이라고 단정하긴 어렵습니다. 누수 원인과 손해 범위에 따라 건물 보험이나 책임 소재 확인이 먼저일 수 있어요. 다만 계약자, 담보 내용, 갱신 여부는 꼭 확인하셔야 합니다."

계약자, 담보 내용, 갱신 여부.

세 단어가 유난히 또렷하게 귀에 남았다.

전화를 끊고 나자 준수가 방문에 기대 서 있었다.

"그래서?"

"내 보험은 특약이 없을 가능성이 크고, 건물 보험 확인이 중요하대. 누수 원인 확인이랑 피해 사진도 더 챙겨 두래."

"그럼 이제 뭐 해야 하는지 알겠네."

단순한 말인데, 민주는 그게 위로처럼 들렸다. 모른다는 막막함보다, 할 일이 있다는 피곤함이 차라리 나았다. 안 되는 답을 듣는 게 무서워서 붙잡고 있던 시간이 오히려 더 사람을 지치게 했다는 것도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저녁을 대충 차려 먹고 설거지를 마쳤을 때까지도 명자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물기를 닦던 민주는 결국 행주를 싱크대에 내려놓았다. 기다리는 것도 습관이 되면 사람을 비겁하게 만든다 싶었다. 전화를 걸까, 문자만 보낼까, 또 괜히 재촉한다고 생각할까. 손가락이 휴대폰 위에서 맴돌았다.

그때 먼저 진동이 울렸다. 명자였다.

'민주 씨, 건물 보험 서류 찾았는데 내일 가게 앞에서 볼래? 좀 복잡해.'

민주는 바로 답장을 치려다가 멈췄다. 좀 복잡해. 낮에 명자가 커피 뚜껑을 만지작거리던 손이 떠올랐다. 그냥 특약이 없다는 뜻이면 저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민주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때 문자 아래에 작은 첨부 표시가 늦게 떴다.

사진 한 장.

흐릿한 서류 맨 위, 보험회사 로고 아래로 계약자 이름이 반쯤 잘려 있었다. 화면 밝기를 올리고 손가락으로 확대하는 순간, 민주의 손끝이 서늘하게 식었다. 익숙한 성의 첫 글자가 보였다. 명자가 예전에 몇 번이나 입에 올렸다가 삼키던, 이미 세상에 없는 형부의 성과 같았다.

민주는 다시 확대했다. 글자가 깨져 보였다. 눈이 침침한 건지, 손이 떨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명자에게서 문자가 하나 더 왔다.

'사진으로는 말하지 말자. 내일 보고 얘기해.'

사진으로는 말하지 말자.

그 짧은 문장이 이상하게 더 불안했다. 단순히 오래된 서류라서가 아니었다. 계약자 이름이 정말 그 사람이라면, 명의 변경은 왜 안 됐는지, 보험은 지금도 살아 있는 건지, 그동안 누구도 왜 확인하지 않았는지, 질문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누수 때문에 닫힌 셔터 앞에서 시작된 일이, 어느새 서로 미뤄 둔 시간의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준수가 물컵을 들고 나오다가 민주 표정을 보고 멈췄다.

"왜 그래? 누구야?"

민주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휴대폰 화면을 꺼도 방금 본 이름의 첫 글자가 눈앞에 남아 있었다.

"명자 씨가 내일 보자는데…."

민주는 마른 입술을 한 번 적셨다.

"건물 보험 계약자 이름이 좀 이상해."

"이상하다고?"

"돌아가신 분 이름 같아."

준수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싹 걷혔다. 물컵을 쥔 손이 멈췄다.

"그럼 보험이 지금 유효한 건지도 모르는 거야?"

그 말이 그대로 가슴에 박혔다. 민주는 대답 대신 휴대폰을 꽉 쥐었다. 내일은 건물 보험만 확인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어쩌면 내일 셔터 앞에서 열리게 될 건 서류가 아니라 명자와 자신이 같이 덮어 둔 이야기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 서류 맨 위에 적힌 이름이 정말 그 사람이라면, 이번 누수보다 더 곤란한 문제가 이미 오래전부터 이 건물 안에 남아 있었는지도 몰랐다.

셔터를 못 올린 사흘보다, 내일 서류를 펼치는 몇 분이 더 무서울 것 같았다. 누수 보상 여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누가 이 건물의 시간을 멈춘 채로 두었고, 왜 아무도 그 이름을 바꾸지 않았을까. 휴대폰 화면은 꺼졌는데도, 민주의 눈앞에는 아직도 그 성의 첫 글자만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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