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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1화]

다시 열린 메일함, 첫 조짐

작성: 2026.04.01 19:44 조회수: 36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이 콘텐츠는 AI가 창작한 장기 연재소설입니다. 실제 인물이나 사건과 무관한 창작물입니다.

모니터가 켜졌다.

한이겸은 숨부터 고르지 못한 채 화면 오른쪽 아래를 봤다. 날짜와 시간. 2019년 3월 4일 오전 11시 22분.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내려앉았다.

이날이었다.

사무실 공기는 낯설지 않았다. 프린터에서 막 나온 종이의 열기, 식어 가는 커피 냄새, 형광등 아래 오래 쌓인 서류에서 올라오는 마른 먼지 냄새. 그는 의자에서 몸을 반쯤 일으켰다가 다시 앉았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죽기 직전, 마지막까지 움켜쥐고 있던 장부의 거친 감촉이 아직 손바닥에 남아 있는 듯했다.

물론 지금 그의 손은 비어 있었다.

장부는 아직 없다. 7년 뒤에야 나타날 물건이었다.

"부장님, 오전에 팀장 회의 있으셨잖아요. 요약본 올려드릴까요?"

고개를 들자 윤해진이 서 있었다. 스물여덟. 눈 밑은 아직 깨끗했고, 어깨도 굽지 않았다. 이겸은 잠깐 말을 잃었다. 예전 생에서 해진이 사직서를 내밀던 얼굴이 너무 선명하게 겹쳐 올라왔기 때문이다. 책임을 뒤집어쓴 사람 특유의, 다 무너졌는데도 끝까지 버티는 표정.

그 표정이 지금은 없었다.

"아니. 괜찮아. 내가 직접 볼게."

짧게 말한 뒤, 이겸은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메일함이 열려 있었다.

수신함 맨 위. 읽지 않은 메일 한 통.

발신자는 태성지주 전략실.

제목은 '3월 감사 일정 협의 요청'이었다.

이겸의 시선이 그 제목 위에서 멈췄다. 예전 생에서는 별 의심 없이 회신했다. 협조 요청쯤으로 여겼다. 그 한 번의 답장이 감사팀 일정이 새는 첫 구멍이 됐다. 장승민은 그 틈으로 들어왔고, 감사팀이 어느 계열사를 언제 들여다보는지 미리 손에 넣었다.

사소한 메일 한 통이었다.

그래서 더 치명적이었다.

이겸은 메일을 열지 않았다. 마우스 커서만 제목 위에 올려 둔 채 가만히 있었다. 회신을 하지 않으면 전략실이 다른 경로를 찾을 것이다. 그렇다고 답을 보내면 예전과 같은 수순이 열린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왔다.

지금은 막아야 한다.

하지만 너무 빨리 막으면 상대도 눈치를 챈다.

"해진 씨."

자리로 돌아가던 해진이 멈췄다.

"네?"

"전략실에서 감사 일정 협의 요청 온 거, 알고 있어?"

해진이 눈을 한 번 깜빡였다.

"아, 어제 오후에 들어온 그 메일이요? 저도 참조로 받았습니다. 부장님 검토하신 다음에 답드리려고 기다렸고요."

이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회신 보류해요. 내가 직접 처리할 테니까. 지금은 건드리지 말고."

해진의 얼굴에 작은 의문이 스쳤다. 하지만 금방 사라졌다.

"알겠습니다."

그게 끝이었다.

예전 생에서도 해진은 많이 묻지 않았다. 믿어서 그랬다. 그 믿음은 고마운 동시에 무거웠다. 사람 하나를 살리겠다고 마음먹는 순간부터, 그 신뢰는 쇠사슬처럼 손목에 감겼다.

오후 두 시. 이겸은 사내 식당 대신 편의점 삼각김밥으로 점심을 때우고 자리로 돌아왔다. 서랍에서 수첩을 꺼냈다. 회색 표지의 새 수첩이었다. 아직 아무 흔적도 없는 종이 위에 그는 날짜를 먼저 적었다.

그리고 그 아래, 아주 작게 이름 두 개를 눌러 썼다.

장승민.

차준석.

잠시 멈춘 뒤, 그 옆에 물음표 하나를 더했다.

예전 생에서 자신을 죽인 건 장승민의 지시였다. 그건 안다. 하지만 장부를 넘긴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마지막까지 손에 닿지 않은 이름. 이번 생에서 가장 먼저 찾아야 할 구멍이었다.

수첩을 서랍 깊숙이 밀어 넣는 순간, 옆자리에서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났다. 이겸은 무심히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시선을 거뒀다. 민가온은 아직 팀에 없다. 지금은 외부 용역으로 태성 계열사 데이터 분석을 맡고 있을 시기였다. 정식 합류는 두 달 뒤였다.

접점은 아직 없다.

하지만 이겸은 알고 있었다. 그 두 달 사이, 가온이 뭔가를 봤다. 그리고 혼자 삼켰다.

오후 세 시 반이 조금 넘었을 때 전략실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메일이 아니라 내선 전화였다. 이겸은 수화기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부장님. 전략실 김 대리입니다. 일정 협의 메일 혹시 확인하셨을까요?"

"확인했습니다."

"아, 다행입니다. 전무님께서 이번 달 감사 일정을 미리 공유받고 싶다고 하셔서요. 협력 차원에서 부탁드리는 거라서요."

"전무님이 직접 요청하신 겁니까?"

수화기 너머가 잠깐 조용해졌다.

"…네. 그렇습니다."

짧은 침묵. 숨 고르는 소리까지 들릴 만큼 얇은 정적이었다.

이겸은 의자 등받이에 등을 붙였다. 낡은 의자가 작게 삐걱거렸다.

"알겠습니다. 검토 후 연락드리죠."

그는 더 듣지 않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장승민이 벌써 움직이고 있었다.

예전보다 하루 빨랐다.

고작 하루였다. 그런데 그 하루가 서늘했다. 알고 있는 흐름에서 한 치만 어긋나도 머릿속 지도가 통째로 쓸모없어질 수 있었다. 회귀는 기회였지만, 정답지는 아니었다.

퇴근 시간이 지나자 사무실은 금세 비었다. 형광등 불빛만 희게 남고, 프린터는 한 번 예열음을 냈다가 잠잠해졌다. 책상 위 커피는 이미 식어 있었다. 이겸은 내부 규정 파일을 다시 훑었다. 장부 반출, 감사 일정 공유, 열람 권한. 문장들은 건조했지만 그 안에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구멍이 숨어 있었다.

"부장님."

조용한 사무실에서 해진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울렸다.

"전략실 답장, 언제 보내실 겁니까?"

이겸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당분간 안 보냅니다."

"그럼 전무님 쪽에서 또 연락 오겠죠."

"올 거예요."

그는 그제야 파일을 닫았다.

"오면 내가 받습니다. 해진 씨는 그쪽 연락이 오면 바로 나한테 넘겨요. 직접 대응하지 말고."

해진의 손이 키보드 위에서 멈췄다.

"…무슨 일 있습니까?"

이겸은 대답 대신 커피잔을 들었다. 한 모금 넘기자 식은 쓴맛이 입안에 오래 남았다. 타이밍을 놓친 커피는 늘 그랬다. 예전에도, 지금도.

그는 잔을 내려놓았다.

"아직은 아무 일도 없어요. 그냥 순서대로 갑시다."

해진은 더 묻지 않았다. 그 침묵이 이겸을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믿는 사람은 쉽게 물러서고, 그래서 더 늦게 다친다. 해진을 판 밖에 두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퇴근길 엘리베이터 안에는 그 혼자뿐이었다. 문이 닫히자 금속 벽에 비친 자기 얼굴이 낯설게 보였다. 휴대전화 화면을 켰다가 다시 껐다. 수첩에 적은 이름들이 머릿속에서 천천히 떠올랐다.

장승민.

차준석.

그리고 아직 이름 없는 배신자 하나.

메일함은 7년 전에도 열려 있었다. 그때의 그는 그걸 그냥 지나쳤다. 아무것도 모른 채, 먼저 내민 손을 협조라고 믿었다.

이번에는 아니었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멈추고 문이 열렸다. 이겸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천천히 걸어 나갔다. 첫 수는 이미 뒀다.

하지만 상대도, 그가 모르는 자리에서 다음 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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