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버스 문이 열리자 냄새가 먼저 밀려들었다. 서울에서 맡던 지하철 환기구 냄새가 아니었다. 기름 냄새, 된장국 냄새, 젖은 시멘트 냄새. 오선우가 열다섯에 두고 떠난 동네는 사람보다 냄새가 먼저 기억을 붙잡았다.
하늘은 낮게 내려앉아 있었다. 비가 올 것 같다가 아니라, 이미 오고 있었다. 가늘게 시작한 빗줄기가 시장 입구 함석지붕을 두드렸다.
골목은 예전과 비슷했다. 지붕은 더 녹슬었고, 전선은 더 얽혔고, 사람들 표정은 더 빨리 굳었다. 비닐 차양 밑 상인들이 선우를 한 번씩 훑었다. 낯선 얼굴을 재는 눈이었다. 선우도 먼저 아는 척하지 않았다.
어머니 가게는 골목 안쪽, 계단 두 칸 내려가는 반지하였다. 간판에는 아직도 ‘선우 떡집’이 걸려 있었다. 어릴 때는 그게 괜히 자랑이었고, 서울에 올라간 뒤로는 이상하게 목에 걸렸다.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자 떡 썰던 칼 소리가 멈췄다. 편의점 냉장고 소리처럼 낮고 일정한 쇼케이스 모터음만 가게 안에 남았다.
“왔어?”
오복순이 물었다.
“응.”
그게 끝이었다. 반가운 척도, 서운한 척도 없었다. 오복순은 다시 칼을 들었고, 선우는 배낭을 내려놓다가 냉장 쇼케이스 모서리에 붙은 종이를 봤다.
흰 종이였다. 그런데 빨갛게 보였다. 아래쪽 도장이 먼저 눈에 들어와서였다.
선우는 가까이 가서 읽었다.
강제 수용 절차 대상 통보. 이의 신청 기한 2026년 4월 28일.
손가락으로 종이 모서리를 눌러 봤다. 테이프가 단단했다. 대충 붙인 게 아니었다. 누군가 아주 성의 있게, 떨어지지 말라고 붙여 놓은 것 같았다.
“언제 왔어?”
“그저께.”
“왜 이제 말했어.”
오복순은 떡을 썰며 대꾸했다.
“말하면 네가 당장 날아오냐.”
선우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 맞는 말이라 더 짜증이 났다.
휴대폰으로 공문을 찍었다. 발신 부서, 접수 날짜, 사업 시행자 명칭. 눈이 먼저 훑고 머리가 뒤늦게 따라갔다. 서울에서 하던 일이 몸에 남아 있었다. 이런 걸 빨리 읽는 능력은 사람을 살릴 때보다 대개 늦게 화나게 만들었다.
사업 시행자 명칭은 ‘동화4구역 재개발 정비사업 조합’.
선우는 그 이름을 한 번 더 봤다.
작년 11월 설립 인가.
이상했다. 너무 빨랐다.
“엄마, 상인회는 뭐 한대?”
“모여서 화내지. 뭘 하겠어.”
오복순이 칼을 탁 내려놨다.
“근데 화내는 것도 돈 있는 사람이 오래 하지. 장사해야지, 밥 벌어야지. 다들 입으로만 버티는 거야.”
그 말이 더 아팠다. 선우는 공문 사진을 저장하고 가게를 나섰다.
상인회 사무실은 시장 중앙 통로 끝에 있었다. 비는 더 굵어졌고, 차양 끝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줄처럼 보였다. 문은 열려 있었다. 안에서는 이미 언성이 오가고 있었다.
“이의 신청 내면 뭐가 달라지는데요?”
“안 내면 포기한 걸로 넘어간다니까요.”
“그걸 누가 믿어요.”
선우가 문 앞에 서자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돌아봤다. 그중 제일 앞에 서 있던 여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머리카락 끝이 비에 젖어 있었고, 팔짱 낀 자세가 단단했다.
“누구세요?”
“오선우요. 안쪽 선우 떡집 아들입니다.”
여자의 시선이 한 번 더 선우를 훑었다.
“떡집 아들이 갑자기 왜 여기까지 왔어요?”
선우는 한 박자 늦게 덧붙였다.
“서울에서 도시계획 관련 일 했고요.”
그 말이 떨어지자 방 안 공기가 미묘하게 식었다. 누군가는 헛기침했고, 누군가는 대놓고 얼굴을 찌푸렸다.
여자가 코웃음을 쳤다.
“도시계획 하는 사람이면 우리 반대편 아니에요?”
선우는 젖은 운동화 앞코를 내려다봤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저도 여기 사람입니다.”
“그 말은 제일 늦게 하네요.”
짧은 정적이 흘렀다. 벽걸이 에어컨이 윙윙거렸다.
여자가 팔짱을 풀었다.
“서미라예요. 상인회 대표.”
악수는 없었다. 이름만 오갔다. 그 정도면 첫날치고는 충분했다.
탁자 위에는 공문 사본과 손메모가 뒤섞여 있었다. 선우는 그중 한 장을 집어 들었다. 보상 단가가 적혀 있었다. 숫자를 보는 순간 미간이 저절로 좁아졌다.
“이거 누가 준 거예요?”
“구청 쪽에서 설명 나온 사람이요. 감정평가 기준가라던데.”
“권리금 시세는요?”
“알죠.”
서미라가 건조하게 답했다.
“그럼 이 숫자가 말이 안 되는 것도 아시겠네요.”
방 안이 조용해졌다. 누군가 의자를 끌다 멈췄다.
서미라가 선우를 똑바로 봤다.
“말이 안 되는 건 다 알아요. 근데 알아서 뭐 하냐고요.”
선우는 메모를 내려놓았다.
“적어도 모른 척당하진 않죠.”
“서울에서 그런 말 많이 배웠나 보네.”
“아뇨. 그런 말은 여기서 배웠어요. 모른 척당하면 끝이라는 거.”
서미라의 표정이 아주 조금 바뀌었다. 경계가 풀린 건 아니었다. 대신 계산이 들어왔다. 이 사람이 쓸모가 있는지, 아니면 더 위험한지 재는 눈이었다.
선우는 그 눈을 잘 알았다. 서울 회의실에서도 늘 그런 눈을 봤다. 다만 거긴 정장 차림이었고, 여긴 앞치마 차림일 뿐이었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골목 바닥에 빗물이 고이고 있었다. 전봇대 아래 오토바이 한 대가 서 있었다. 그 옆에 비옷 입은 남자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비를 맞으면서도 우산은 없었다.
선우는 그 남자를 한참 봤다. 남자의 시선은 사무실 쪽이 아니라 맞은편 벽, 공문 붙은 자리 근처를 맴돌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그 앞을 지나갈 때는 일부러 고개를 돌렸다. 안 보는 척하는 사람의 움직임이었다.
“저 사람 누구예요?”
선우가 턱으로 가리키자 서미라가 창밖을 힐끗 봤다.
“마틴 김. 안쪽에서 오토바이 수리해요.”
“원래 저렇게 서 있어요?”
“원래 별로 안 웃고, 원래 말도 없고.”
서미라가 한마디를 더 얹었다.
“근데 원래 안 보는 척은 더 잘해요.”
그 말이 이상하게 귀에 남았다.
잠시 뒤, 사무실에 있던 상인 하나가 툭 내뱉었다.
“비 와도 저 딱지는 안 떨어지네.”
아무도 웃지 않았다.
그때 서미라가 갑자기 선우 쪽으로 종이 뭉치를 밀었다.
“그럼 해봐요.”
“뭘요?”
“당신 말대로, 모른 척 안 당하는 거. 이의 신청서든 의견서든, 이름이 뭐가 됐든 써 보라고요.”
방 안 시선이 한꺼번에 선우에게 꽂혔다. 시험 보는 기분이 아니라 빚 독촉받는 기분에 가까웠다.
선우는 종이를 내려다봤다. 손이 쉽게 나가지 않았다. 재작년 여름, 서울에서 참석했던 자문 회의가 머리를 스쳤다. 그때 문서에는 이 골목 이름이 없었다. 적어도 선우는 그렇게 기억했다. 그런데 지금 손에 든 공문은 너무 매끈했다. 누군가 오래 준비한 문장 같았다.
선우는 결국 의자를 끌어 앉았다.
“좋아요. 대신 하나만 정하죠.”
“뭔데요?”
“오늘부터 누가 먼저 겁먹는지 경쟁하지 말고, 누가 먼저 자료 가져오는지 경쟁해요.”
순간 방 안에서 피식 웃는 소리가 났다. 긴장이 아주 조금 풀렸다. 서미라도 입꼬리를 미세하게 올렸다가 금방 지웠다.
“말은 잘하네.”
“일도 해요.”
선우가 답했다.
그날 밤, 선우는 가게 안쪽 작은 방에 누워 휴대폰 화면을 다시 켰다. 낮에 찍어 둔 공문 사진을 확대했다. 조합명, 인가일, 기한. 몇 번을 봐도 같은 문장이었다.
형광등이 한 번 깜빡였다.
빗소리가 함석지붕을 두드렸다가 멀어졌다. 오복순은 바깥에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장사 마감할 때 나는 그 소리는 이상하게 사람 마음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선우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이십칠 일. 길면 길고, 이런 일에는 짧았다.
내일 아침에는 서미라에게 먼저 연락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상인들 명단부터 정리하고, 공문 수령 날짜부터 맞춰 보고, 누가 설명회에 갔는지 확인해야 했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서미라였다.
선우는 바로 받았다.
“네.”
서미라 목소리는 낮고 짧았다.
“지금 나올 수 있어요?”
“무슨 일인데요?”
잠깐 침묵이 있었다. 빗소리 사이로, 서미라가 이를 한 번 악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마틴 김이 술 먹고 입 열었어요.”
선우는 몸을 일으켰다.
“뭐라고요?”
“딱지 붙인 사람이 구청 아니래요.”
방 안 공기가 갑자기 차가워졌다. 문밖 골목에서는 새벽 도로 냄새가 비에 젖어 밀려들었다.
서미라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리고 당신 이름, 그 사람도 아는 것 같아요. 빨리 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