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부엌은 언제나 서진해의 것이었다. 장작을 쪼개고, 불을 지피고, 솥에 물을 올리는 일련의 동작이 끝나야 비로소 하루가 열렸다. 오늘도 다르지 않았다. 다만 장작을 쥔 손에 힘이 조금 더 들어갔을 뿐이다. 간밤에 본 막금산의 도가 눈앞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 도에는 이름이 없었다. 칼집도 없이 기름종이에 둘둘 감겨 마루 밑에 숨겨져 있던 것을, 노인은 달빛 아래서 꺼내 들었다. 한 번의 횡도가 마당의 공기를 두 쪽으로 갈랐고, 서진해는 처마 뒤에서 숨을 멈춰야 했다. 만리독행(萬里獨行). 삼십 년 전 강호를 종횡했다는 도객의 이름이 떠오른 것은 사부의 옛이야기 속에서였다.
‘그 사람의 도는 바람을 베는 게 아니라, 바람이 비켜 간다.’
녹담자는 그렇게 말했었다. 간밤의 막금산이 정확히 그랬다.
“밥 태운다, 이놈아.”
막금산이 부엌 문을 밀고 들어왔다. 서진해는 화들짝 놀라 솥뚜껑을 들었다. 죽이 바닥에 살짝 눌어붙어 있었다. 노인은 코를 킁킁거리더니 아무 말 없이 부뚜막에 걸터앉았다. 평소와 같은 아침이었고, 평소와 같은 침묵이었다. 그러나 서진해의 눈은 노인의 오른손을 훑었다. 손등에 잔잔한 근육의 떨림이 남아 있었다. 밤새 도를 잡았던 손의 잔상이었다.
“주인어른, 어젯밤에—”
“죽에 파를 더 넣어. 파가 적으면 맛이 묽다.”
말은 깔끔하게 잘렸다. 너무 익숙해서 더 묻기 어려운 방식이었다. 서진해는 파를 썰며 입을 다물었다. 물어야 할 것과 물을 수 있는 것 사이의 거리가, 이 객잔에서 보낸 오 년의 무게와 같았다.
아침 손님은 둘뿐이었다. 인근 마을에서 온 약재상과, 어제부터 구석방에 묵고 있는 담소령이었다. 약재상은 국밥을 말아 후루룩 먹고 나갔고, 담소령은 죽 한 그릇을 앞에 두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이거, 파 비율이 달라졌는데.”
담소령이 숟가락으로 한 모금 떠먹고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어제보다 파가 많고 불이 셌어. 죽 쑤는 사람 손이 흔들렸거든?”
의녀의 관찰력은 약재 배합뿐 아니라 사람의 상태까지 훑었다. 서진해는 행주를 짜며 무심한 척 대답했다.
“장작이 마른 게 들어와서 그렇지라. 불 조절이 좀 그랬습니더.”
사투리를 조금 더 두텁게 깔았다. 담소령은 그릇을 내려놓으며 서진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있잖아, 나 오늘 관도 쪽으로 나가 볼 생각이야. 어제 그 행상이 남긴 짐 말이야. 거기 있던 헝겊 문양이 자꾸 걸려서.”
서진해의 손이 멈추었다. 원 안에 갇힌 불꽃 문양, 잔화심결 첫째 초식의 내공 경로와 겹치던 그 표식이 다시 떠올랐다. 그 역시 밤새 그 헝겊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담소령이 먼저 움직이겠다고 하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관도는 위험합니더. 요즘 떠돌이 도적도 많고—”
“도적 정도는 약침 하나면 되거든? 걱정은 네 죽이나 해.”
담소령은 웃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러나 그 웃음 밑에 깔린 의지는 단단했다.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서진해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시선을 돌리자, 부엌 쪽 벽에 기대 선 막금산이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노인의 눈이 서진해와 마주쳤다. 거기에는 말없이도 분명한 뜻이 담겨 있었다. 가만두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관도의 말발굽은 담소령이 나서기도 전에 객잔까지 밀려왔다.
정오를 갓 넘긴 시각, 흙먼지를 일으키며 상단 호위 행렬 하나가 삭풍객잔 앞마당에 멈추었다. 말 여섯 필, 짐수레 두 대, 호위 무사 넷. 앞장선 자는 기름기 번지르르한 얼굴의 중년 상인이었고, 그 뒤에 반쯤 가려진 채 말 위에 앉은 사내가 하나 더 있었다. 삿갓을 눌러쓰고 왼팔에 묵직한 철완을 차고 있었다. 서진해는 마당 구석에서 빗자루를 쥔 채 그 사내를 한 번 훑었다. 앉은 자세만으로도 중심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짐을 내리는 호위 무사들과는 다른 종류의 무게였다.
막금산이 마당으로 나와 손을 닦으며 말했다.
“방은 셋밖에 안 남았소. 말은 뒤편 마구간에 매시오.”
상인은 공손하게 인사하며 방 둘을 잡았다. 호위 무사들은 말을 풀고 짐을 내렸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일 아닌 풍경이었다. 문제는 삿갓의 사내였다. 그가 말에서 내리며 마당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낮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
“막천류.”
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서진해의 귀에는 천둥처럼 들렸다. 막금산의 등이 순간 굳었다. 찰나였다. 노인은 곧바로 행주를 어깨에 걸치며 돌아보았고,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없었다.
“뭐라 했소?”
“삼십 년 됐나. 도를 내려놓으면 얼굴도 달라지는 법이지.”
삿갓의 사내가 천천히 갓을 올렸다. 왼쪽 눈 위로 길게 내려 그은 칼자국, 오른쪽 귓불이 반쯤 잘린 흉터. 서진해는 그 얼굴을 몰랐다. 그러나 막금산은 알았다. 노인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고, 행주를 쥔 손마디가 하얗게 섰다.
“……주방상.”
막금산이 그 이름을 뱉었을 때, 목소리에는 반가움도 적의도 없었다. 오래 눌러 두었던 서랍을 억지로 여는 것 같은 소리였다. 서진해는 두 사람 사이의 공기를 읽었다. 적은 아니었다. 그러나 벗도 아니었다. 빚이 남은 사이였다.
주방상은 막금산을 스쳐 지나가며 낮게 중얼거렸다.
“삭풍진에 잔화의 냄새가 나더군. 오래된 냄새야.”
서진해의 심장이 한 박자 건너뛰었다. 잔화. 그 두 글자가 이 사내의 입에서 나왔다. 우물가에 남은 글자와 행상의 짐에서 나온 불꽃 문양, 그리고 지금 이 사내의 말이 하나의 선 위에 놓이는 느낌을 그는 떨쳐 내지 못했다. 우연이라 하기에는 선이 너무 곧았다.
그때 담소령이 마루에서 내려왔다. 짐을 챙겨 관도로 나가려던 참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주방상의 철완에 멈추었다. 의녀의 눈이 날카롭게 좁혀졌다.
“저 철완, 독을 막는 용도야.”
서진해의 곁으로 다가온 담소령이 낮게 속삭였다.
“독기를 다루는 사람이 팔을 보호하려고 쓰는 건데, 저건 정교해. 독문세가급 솜씨야. 저 사람, 단순한 상단 호위가 아니야.”
담소령의 목소리에는 경계보다 호기심이 더 짙게 섞여 있었다. 그 기색을 읽은 순간, 서진해는 선택해야 했다. 모른 척 물러설지, 아니면 정체가 흔들리더라도 막을지. 그는 망설임 끝에 담소령의 팔을 붙잡았다.
“나가지 마시오.”
짧은 한마디였다. 사투리도 반쯤 벗겨진 목소리였다. 담소령이 눈을 크게 떴다.
“……왜 갑자기 말투가 그래?”
서진해는 손을 놓으며 시선을 피했다. 실수였다. 격한 감정이 위장을 찢고 나온 순간이었다. 담소령은 제 팔목을 내려다보았다. 방금 자신을 붙든 손의 힘은 설거지통 앞에서 그릇을 문지르는 잡역의 것이 아니었다.
“……너, 진짜 뭐야.”
물음은 조용했지만, 장난기는 한 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서진해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당에서는 주방상이 방으로 들어가고 있었고, 막금산은 이미 부엌으로 몸을 돌린 뒤였다. 서진해는 빗자루를 벽에 세워 두고 곧장 그 뒤를 따랐다. 담소령의 시선이 등을 찔렀지만, 지금은 돌아볼 수 없었다.
막금산은 솥 앞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불은 이미 꺼져 있었다. 부엌 안 공기만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주인어른.”
“그 사람은 내 옛 동문이다.”
막금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서진해가 묻기도 전이었다. 노인의 목소리에서는 평소의 거친 투박함이 걷혀 있었고, 대신 삼십 년 묵은 돌 밑의 이끼 같은 축축한 무게가 깔려 있었다.
“같은 사부 밑에서 도를 배웠지. 오래전 일이야. 그놈이 여길 찾아온 건 우연이 아닐 거다.”
서진해는 낮게 물었다.
“……잔화라 했습니다. 그 사람이. 잔화의 냄새가 난다고.”
막금산의 눈이 서진해를 향했다. 그 안에는 처음 보는 빛이 있었다. 두려움이 아니라 결심이었다. 더는 숨길 수 없다는 사람의 눈빛이었다.
“진해야.”
‘이놈아’
도 아니고, ‘밥이나 먹어’도 아니었다. 서진해는 노인이 자신의 이름을 그렇게 부른 것이 오 년 만에 처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한마디에 가슴 어딘가가 무너져 내렸다. 경계하던 마음이 잠시 풀리고, 대신 오래 눌러 두었던 정이 쓰리게 올라왔다.
“이 객잔에 네가 얼마나 더 있을 수 있을지, 나도 이제 장담을 못 하겠다.”
부엌의 찬 공기 사이로 솥 밑 재가 바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서진해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오 년이라는 시간이 한꺼번에 목구멍을 막는 것 같았다. 떠나야 한다는 말은 이미 여러 번 들었다. 그런데 막금산의 입에서 나오자, 그것은 경고가 아니라 이별의 예고처럼 들렸다.
한편 마루 끝에 서서 부엌 쪽을 바라보던 담소령의 손에는 약첩이 들려 있었다. 방금 전 서진해의 말투와 손의 힘, 막금산의 숨겨진 이름, 주방상의 철완이 머릿속에서 뒤엉킨 탓에 그녀는 무심코 약첩을 다시 펼쳤다. 그리고 셋째 장,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처방의 여백에서 작은 글씨 하나가 오후의 햇살 아래 선명하게 떠올랐다.
“막천류에게 전하라.”
담소령의 눈빛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막금산이 숨겨 온 이름과 어머니의 유품이 한 줄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어머니는 이미 이 객잔을 알고 있었던 셈이다. 이 노인을, 그리고 어쩌면 이곳에 숨어 지내던 소년까지도.
담소령은 약첩을 품속 깊이 밀어 넣었다. 그때 주방상이 들어간 방 안에서 둔탁한 금속음이 한 번 울렸다.
탕.
철완이 탁자에 부딪히는 소리 같았지만, 이상하게도 신호처럼 들렸다. 담소령은 천천히 그 방문을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글씨가 막금산을 가리키고 있다면, 주방상은 무엇을 알고 이곳까지 찾아온 것일까. 그리고 그가 맡았다는 잔화의 냄새는, 대체 누구에게서 새어 나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