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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4화]

잡히지 않는 시선

작성: 2026.03.28 09:46 조회수: 40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이 콘텐츠는 보험을 소재로 한 창작물이며 실제 상품 추천이나 보장 판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월요일 아침, 현우의 책상 위에는 빈 종이컵 두 개와 반쯤 접힌 포스트잇 하나가 놓여 있었다. 포스트잇에는 '김정호 님 - 첫 문장'이라고 적혀 있었고, 그 아래 문장 세 개가 쓰였다가 진하게 지워져 있었다.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밤까지, 현우는 그 첫 문장을 스물네 번 고쳤다. 설명으로 시작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을수록 손가락은 자꾸 보장 내용 쪽으로 미끄러졌다. 사과를 쓰면 변명 같았고, 제안을 쓰면 영업 같았다. 결국 남은 건 깜빡이는 커서뿐이었다.

출근하자마자 팀 채팅방에 새 공지가 떴다. 지점장 권태수 이름 옆에 빨간 느낌표가 선명했다.

'이번 주 금요일, 월간 실적 면담 개별 진행.'

현우는 화면을 끄려다 멈췄다. 머릿속에서 자기 실적표가 자동으로 펼쳐졌다. 계약 건수 칸은 비어 있었고, 상담 건수 숫자도 민망할 만큼 얇았다. 폰을 뒤집어 책상에 엎어놓는데, 옆자리 민재가 의자를 끌며 말했다.

"너도 봤지? 금요일."

"응."

"난 지난주에 자동차보험 하나 넣었거든. 뭐, 작은 거라도 숫자는 숫자잖아."

위로인지 자랑인지 애매한 말이었다. 현우는 어색하게 웃었다.

"축하한다."

"너도 하나 잡아. 면담 때 빈칸이 제일 무섭더라."

민재는 가볍게 말했지만, 그 말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빈칸이 제일 무섭다. 현우는 모니터를 켰다가 다시 껐다. 지금 무서운 게 실적표인지, 김정호 씨 대화창인지 잠깐 헷갈렸다.

오전 열 시 반, 업무용 폰이 짧게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안녕하세요. 지인 소개받았는데 보험 상담 가능할까요? 오늘 점심시간에 근처 카페에서 잠깐 뵐 수 있을까요.'

현우는 메시지를 세 번 읽었다.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실적 면담 전, 새 상담.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거의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동시에 김정호 씨 대화창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직 아무 말도 보내지 못한 사람과, 지금 막 손을 내민 사람. 두 개의 시간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손가락이 답장창 위에서 잠깐 멈췄다.

그러다 결국 움직였다.

'네, 가능합니다. 장소 알려주시면 맞춰 가겠습니다.'

전송 버튼을 누른 뒤에야 현우는 숨을 내쉬었다. 기회를 잡은 건지, 불편한 쪽에서 잠깐 시선을 돌린 건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일단 나가야 했다.

점심시간, 사무실에서 두 블록 떨어진 카페. 현우는 약속 시간보다 십오 분 먼저 도착했다. 창가 쪽 두 사람 자리에 앉아 태블릿을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화면을 먼저 켜는 순간 또 설명부터 쏟아낼 것 같았다. 그는 물컵을 한 번 들었다 놓고, 속으로 짧게 되뇌었다.

물어보자. 듣자. 오늘은 그 두 개만 하자.

문이 열리며 서른 초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들어왔다. 밝은 톤 블라우스에 토트백을 든 채, 현우를 보자마자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도현우 설계사님이시죠? 박은주예요. 와, 제가 늦을까 봐 뛰어왔는데 더 빨리 오셨네요."

말끝이 가볍고 웃음이 빨랐다. 현우도 따라 웃으며 자리에서 반쯤 일어났다.

"아닙니다. 편하게 앉으세요."

은주 씨는 자리에 앉자마자 메뉴판도 제대로 보지 않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그리고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사실 당장 가입하려는 건 아니고요. 그냥 궁금한 게 좀 있어서요. 주변에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소개를 부탁했거든요."

현우는 태블릿을 옆으로 밀었다. 이번에는 상품 화면을 먼저 꺼내지 않았다. 그 사실만으로도 조금 안도감이 들었다.

"어떤 부분이 궁금하셨어요?"

은주 씨는 기다렸다는 듯 질문을 쏟아냈다. 보험은 원래 어떤 구조인지, 실비는 정확히 뭘 보장하는지, 왜 가입할 때 건강 상태를 그렇게 자세히 묻는지. 현우는 최대한 짧게 답했다. 일부러 문장을 끊고, 아는 걸 다 말하고 싶은 충동을 눌렀다.

"아, 그렇구나."

"그건 몰랐네요."

"생각보다 복잡하네요."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잘 풀리는 것 같았다. 김정호 씨 상담 때처럼 표정이 굳어지는 일도 없었다. 현우는 속으로 조금씩 긴장을 풀었다. 이번엔 괜찮은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려던 순간이었다.

은주 씨가 빨대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그럼 기존에 아픈 데가 있으면 가입이 좀 어려워지나요?"

질문은 가볍게 던진 것처럼 들렸지만, 손끝 움직임은 그전보다 느렸다. 현우는 그 미세한 변화를 보면서도 그냥 원칙부터 꺼냈다.

"경우에 따라 달라요. 미리 알려주셔야 하는 내용이 있고, 심사 결과에 따라 조건이 달라질 수도 있고요."

"아, 그렇군요."

은주 씨는 금세 다시 웃었다. 너무 빨리 웃었다. 현우는 거기서 한 번 더 물어볼 수 있었다. 본인 이야기인지, 가족 이야기인지, 혹시 최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런데 그 짧은 틈에서 머릿속에 먼저 떠오른 건 다른 생각이었다. 괜히 깊게 들어갔다가 부담스러워하면 어쩌지. 오늘은 편하게 끝내는 게 낫지 않을까. 실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는데.

그 망설임은 길지 않았고, 그래서 더 나빴다.

현우는 결국 고개만 끄덕였다.

"네, 세부적으로는 상황을 봐야 합니다."

질문은 거기서 끝났다.

이십오 분쯤 지났을 때 은주 씨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정말 감사해요. 많이 도움이 됐어요. 생각해 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네, 편하게 연락 주세요."

현우도 같이 일어나 명함을 건넸다. 은주 씨는 웃으며 받았고, 카페 문 앞에서 한 번 더 가볍게 인사했다. 겉으로만 보면 무난한 상담이었다. 설명을 밀어붙이지도 않았고,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자리에 다시 앉아 남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이상한 감각이 뒤늦게 올라왔다. 현우는 컵을 든 채 멈췄다.

뭐가 걸렸지.

은주 씨 얼굴을 떠올렸다. 계속 웃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표정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웃음만 기억났다. 눈은 기억나지 않았다.

현우는 천천히 등을 의자에 기댔다. 상담 내내 은주 씨의 시선은 자꾸 다른 데로 흘렀다. 커피잔, 테이블 모서리, 토트백 손잡이, 창밖 지나가는 사람들. 생각해 보니 정면으로 눈이 마주친 순간이 거의 없었다. 현우는 그제야 목 뒤가 서늘해졌다. 잘 풀린 게 아니었다. 그냥 매끄럽게 지나간 척한 것뿐이었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걸음이 자꾸 느려졌다. 은주 씨는 밝았고 친절했다. 그래서 더 놓치기 쉬웠다. 돌아보니 이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질문은 많았는데 본인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나이도, 직업도, 가족도, 왜 갑자기 보험이 궁금해졌는지도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현우도 묻지 않았다. 질문에만 대답하겠다고 마음먹은 게 어느 순간 상대를 읽지 않겠다는 태도로 바뀌어 있었다. 설명을 덜 하는 것과, 사람을 덜 보는 건 전혀 다른데.

사무실 문을 열자 아라가 탕비실에서 머그컵을 들고 나오고 있었다. 아라는 현우를 한 번 훑어보더니 자기 자리로 걸어가며 물었다.

"상담 갔다 왔어?"

"네."

현우는 괜히 의자를 당기며 덧붙였다.

"이번엔 설명 안 밀어붙였어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자마자 스스로도 민망했다. 변명 같기도 하고, 칭찬을 구하는 말 같기도 했다. 아라는 모니터를 보던 채 짧게 물었다.

"그래서?"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은데요."

아라가 그제야 시선을 들었다.

"그 사람, 왜 보험이 궁금했대?"

현우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머릿속이 텅 비는 느낌이 들었다.

'그냥 궁금해서요'

라는 첫마디 말고는, 이유라고 부를 만한 걸 들은 적이 없었다. 아니, 들을 기회를 그냥 흘려보냈다.

침묵이 몇 초 흘렀다.

아라는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상담이 잘됐다고 느꼈으면, 적어도 그 사람이 뭘 피했는지는 보여야지."

그 말은 크게 하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 정곡이었다. 현우는 멍하니 서 있다가 겨우 자리에 앉았다. 뭘 피했는지. 은주 씨는 질문은 했지만 자기 얘기는 피했다. 시선도 피했다. 그런데 현우는 그걸 알아차리고도 붙잡지 못했다.

오후 내내 현우는 노트를 펴고 상담 내용을 복기했다. 은주 씨가 한 질문은 열 개가 넘었다. 보험 구조, 실비, 고지의무, 기존 병력, 심사. 그런데 현우가 은주 씨에게 한 질문은 사실상 하나뿐이었다.

'어떤 부분이 궁금하셨어요?'

그 뒤로는 전부 대답이었다. 김정호 씨 상담 때는 설명을 너무 많이 해서 문제였고, 이번에는 설명을 줄였다는 이유로 질문까지 멈춰 버렸다. 방향만 바뀌었을 뿐, 중심은 여전히 자기였다. 실수하지 않으려는 자기, 부담 주지 않으려는 자기, 실적을 놓치기 싫은 자기.

다섯 시 반쯤 민재가 가방을 메며 물었다.

"금요일 면담 준비해야 하는데, 뭐 쓸 거 생겼냐?"

현우는 실적표를 열었다. 계약 건수 칸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상담 건수 숫자 두 개가 오히려 더 초라해 보였다.

"아직."

"에이, 하나는 터지겠지."

민재는 가볍게 어깨를 두드리고 먼저 나갔다. 현우는 빈칸을 한참 바라보다가 모니터를 껐다. 오늘 상담이 실적이 될지 아닐지는 아직 몰랐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오늘도 사람을 놓쳤다는 사실이 더 선명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현우는 폰을 꺼내 김정호 씨 대화창을 열었다. 토요일부터 입력란에 커서만 깜빡이고 있었다. 포스트잇에 적었다 지운 문장들이 다시 떠올랐다.

'지난번에 제가 너무 앞서 나갔습니다.'

'혹시 아직 궁금하신 게 있으시면.'

둘 다 결국 자기 이야기였다. 내가 잘못했다, 내가 도와주겠다. 현우는 폰을 잠시 내려놓고 창밖 검은 터널을 봤다. 이번에는 급하게 보내서 자기 마음만 가볍게 하고 싶지 않았다. 상대가 말할 자리를 남겨 둔 문장이 필요했다.

집에 도착한 뒤에도 아라의 질문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사람, 왜 보험이 궁금했대?'

현우는 식탁에 앉아 노트를 다시 펼쳤다. 오늘 은주 씨가 한 질문을 순서대로 적었다. 실비의 구조, 건강 상태 확인, 기존 병력이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마지막 줄에서 펜이 멈췄다. 그 질문만 유독 종이 위에서 진하게 보였다.

기존에 아픈 데가 있으면.

본인 때문이었을까. 가족 때문이었을까. 이미 아픈 사람이 있는 걸까. 아니면 아직 아무 일도 없는데, 곧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겁이 난 걸까. 현우는 그때 은주 씨가 빨대를 만지작거리던 손을 떠올렸다. 웃고 있었지만 손끝은 웃지 않았다.

그는 폰을 다시 들어 김정호 씨 대화창을 열었다. 이번에는 사과도 제안도 아닌 문장 하나를 천천히 입력했다.

'김정호 님, 그때 말씀 못 다 하신 게 있으셨다면 편하실 때 알려주세요.'

엄지가 전송 버튼 위에 올라갔다가 멈췄다. 아직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보내지 못하는 이유가 겁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기다리는 법을 배우는 중이라는 걸, 아주 조금은.

그때 폰이 짧게 울렸다. 화면에 뜬 이름을 본 순간 현우의 등이 곧게 펴졌다.

박은주.

낮에 카페에서 헤어진 바로 그 번호였다. 진동이 한 번 더 손바닥을 울렸다. 현우는 액정을 내려다봤다. 밝게 웃던 얼굴, 끝내 마주치지 못한 시선, '기존에 아픈 데가 있으면' 하고 묻던 낮은 목소리가 한꺼번에 떠올랐다. 받으면 이번에는 그냥 대답만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받지 않으면, 또 놓칠지도 모른다.

세 번째 진동이 울리기 직전, 현우가 숨을 한번 삼켰다.

그리고 화면 위로 떠오른 통화 버튼을 천천히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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