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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7화]

의심의 여정

작성: 2026.03.27 07:38 조회수: 37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본 작품은 가상의 무협 세계를 배경으로 한 창작물입니다. 작중 등장하는 무술, 비급, 문파 체계 등은 모두 허구이며, 폭력 묘사는 장르적 관습 안에서 다루어집니다.

새벽 어스름이 채 걷히기 전, 한소령은 부엌 뒤 우물가에서 세수를 했다. 물은 뼛속까지 시릴 만큼 차가웠다. 손끝이 저릿한 것은 추위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젯밤 엿들은 팽노와 막리연의 대화가 귓속에 남아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그릇을 쥐여 줘라.'

분명 사부 도현진의 말이라 했다. 그런데 막리연은 그 뜻을 아는 사람처럼 받아넘겼다. 얼굴의 물기를 닦아 낸 소령은 손등에 박인 검 굳은살을 내려다보았다. 물어야 하나.

아니, 물어서 달라질 것이 있기는 한가.

부엌에 들어서자 팽노는 이미 솥 앞에 서 있었다. 사골 육수가 은근히 끓으며 김을 올리고 있었고, 노인은 국자를 천천히 저으면서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소령은 평소처럼 그릇을 꺼내 행주로 닦기 시작했다. 사기그릇이 맞부딪히는 맑은 소리가 고요한 부엌 안에 또렷하게 울렸다.

"현성까지 이틀이다."

팽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소령의 손이 잠시 멈췄다. 노인은 여전히 솥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람과 같이 가겠다는 거지."

그 사람. 팽노는 끝내 막리연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소령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솥에서 피어오른 김이 노인의 굽은 어깨를 희미하게 감쌌다.

"약재 살 게 있습니다. 담여화가 목록도 줬고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다만 절반만 진실이었다. 소령은 현성 약재시장에서 혈사문에 관한 소문을 직접 들을 생각이었다. 뱀 비늘 호완을 찬 사내가 객잔 근처를 맴돈 뒤로는, 가만히 숨어 있는 편이 오히려 더 위험해 보였다. 팽노 역시 그쯤은 짐작하고 있을 터였다.

"밥 먹고 가라."

팽노는 그 말만 남겼다. 국밥 한 그릇을 상 위에 밀어 놓고는 그대로 뒷문으로 나가 버렸다. 소령은 김이 오르는 그릇을 한참 바라보았다. 국물 위에 파가 한 줌 떠 있었다. 새벽부터 팽노가 손수 썰어 넣은 것이 분명했다.

숟가락을 드는 순간, 뒷마당에서 팽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낮고 짧았지만 무게는 분명했다.

"그 아이한테 가르칠 거면 끝까지 책임져."

막리연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소령은 말없이 국밥을 비웠다. 그릇 바닥에 밥알 하나 남기지 않았다. 따뜻한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자 이상하게도 가슴 한구석이 더 무거워졌다. 떠나는 길인데도, 돌아갈 자리를 확인받은 기분이 들었다.

해가 중천에 오르기 전, 소령과 막리연은 파서진 서문을 나섰다. 막리연은 검 하나를 등에 비스듬히 멘 채 입에 풀줄기를 물고 있었다. 어깨는 느슨하게 내려가 있었지만 걸음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힘을 감춘 무인의 보법이었다. 소령은 그보다 반 장쯤 뒤에서 걸었다. 가까워지지도, 더 멀어지지도 않는 거리. 의심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등을 맡기지는 않겠다는 뜻이었다.

"현성까지는 보통 하루 반이면 닿는다. 다만 마가령 고갯길이 성가셔서 이틀은 잡아야 해. 고개를 넘으면 폐촌 하나가 나오는데, 거기서 하룻밤 묵으면 된다."

막리연은 혼잣말처럼 설명했다. 소령은 대꾸하지 않았다. 길 양옆으로는 잡목이 빽빽했고, 이른 봄의 가지들은 아직 앙상했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마른 가지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쇠고리처럼 칼칼하게 울렸다. 소령은 무의식적으로 허리춤의 짧은 식도를 만졌다. 팽노가 부엌 식도 하나를 손잡이까지 새로 감아 건네준 것이었다. 검은 아니었지만, 손에 닿으면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어젯밤에 잠 못 잤지?"

막리연이 불쑥 물었다. 소령의 어깨가 미세하게 굳었다.

"걸음이 평소보다 반 치쯤 짧아. 잠이 모자라면 무릎 반응부터 느려지거든."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네가 길에서 쓰러지면 내가 업어야 하니까 그렇지."

막리연이 씨익 웃었다. 소령은 웃지 않았다. 대신 걸음을 조금 넓혔다. 막리연은 그 모습을 보고 고개만 한 번 끄덕였다. 놀리는 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소령의 경계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였다. 그 애매한 여유가 오히려 더 마음에 걸렸다.

마가령 고갯길에 접어들 무렵, 길가에 무너진 돌담이 눈에 들어왔다. 한때는 주막이었을 법한 자리였다. 기둥은 썩어 기울었고 지붕은 반쯤 내려앉아 있었지만, 벽 한쪽에는 아직도 선명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 소령의 발이 그 자리에서 멎었다.

세 줄기였다. 비스듬히 내리긋고, 이어 궤적을 틀어 다시 올려치는 흐름. 자국의 깊이는 일정했고 간격은 지나치게 정확했다. 홧김에 휘두른 칼이 남길 흔적이 아니었다. 소령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청명잔영검 이초식.

몸이 먼저 알아보았다.

"뭘 보나."

막리연이 뒤에서 다가왔다. 소령은 돌담 앞에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 막리연의 시선이 칼자국 위를 스치는 순간, 그의 눈빛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짧았지만 분명했다. 소령은 그 찰나를 놓치지 않았다.

"아는 검법입니까?"

이번에는 에둘러 묻지 않았다. 목소리는 낮았으나 끝이 단단했다.

막리연은 잠시 침묵하다가 풀줄기를 뱉었다.

"글쎄. 강호에 칼자국이야 널렸지."

가벼운 말투였다. 그러나 그의 오른손 검지가 허벅지 옆에서 한 번 미세하게 꿈틀했다. 소령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사부는 늘 말했다. 입은 속일 수 있어도 손끝은 기억을 숨기지 못한다고.

소령은 더 캐묻지 않았다. 그 대신 돌담 가까이 다가가 칼자국 옆에 낀 이끼를 손톱으로 긁어 보았다. 두께로 보아 적어도 삼 년은 지난 흔적이었다. 삼 년. 청명문이 불탄 바로 그해였다. 누군가 이 길에서 청명문의 검을 썼다. 도망치며 남긴 자국인지, 쫓아가며 새긴 자국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 길은 우연히 지나치는 길이 아니었다.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기운이 흘렀다. 소령은 잠시 숨을 고른 뒤 손을 거두었다. 여기서 막리연을 더 몰아붙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대답 대신 경계만 깊어질 터였다. 그는 묻는 대신 기억하기로 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분노가 아니라 끝까지 따라가 볼 인내였다. 그 선택이 목구멍을 긁는 가시처럼 불편했지만, 소령은 끝내 삼켰다.

폐촌에 닿았을 때는 해가 이미 산등성이에 걸려 있었다. 빈집 몇 채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기울어 있었고, 우물은 바닥이 드러난 채 메말라 있었다. 막리연은 그중 가장 멀쩡한 집을 골라 문을 밀었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먼지가 후드득 쏟아졌다.

"오늘은 국밥이 없으니 이걸로 버티자."

막리연이 보따리에서 건어포와 떡 몇 조각을 꺼냈다. 소령은 말없이 마당에서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 불을 피웠다. 불씨가 살아나자 막리연이 손을 내밀며 툭 던지듯 말했다.

"불 피우는 솜씨가 제법인데. 객잔에서 구른 보람이 있군."

"그릇 닦는 솜씨도 좋습니다."

무표정한 대꾸에 막리연이 피식 웃었다. 잠깐, 둘 사이의 공기가 느슨해졌다. 그러나 그 온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건어포를 씹는 동안에도 소령의 머릿속에서는 돌담의 칼자국과 막리연의 손끝, 팽노의 말이 끈질기게 맞물렸다. 청명문을 모른다던 사내가 어째서 그 자국 앞에서 눈빛을 바꾸었는가. 그 질문은 불씨 아래 숨은 숯처럼 꺼지지 않았다.

"막 형."

소령이 불을 바라본 채 입을 열었다. 막리연이 손에 든 건어포를 잠시 멈췄다. 소령이 그를 그렇게 부른 것은 처음이었다.

"사부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누군가에게 연락을 보낸 적이 있습니까?"

에둘렀지만 뜻은 분명했다. 당신은 사부를 알고 있었느냐. 막리연은 한동안 불꽃만 바라보았다. 타닥, 마른 나뭇가지가 터지는 소리가 침묵을 메웠다. 소령은 자신도 모르게 식도의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나는 네 사부를 만난 적 없다."

막리연의 목소리는 낮고 또렷했다. 흔들림이 없어서 오히려 더 읽기 어려웠다. 만난 적 없다는 말이 모른다는 뜻과 같지는 않았다. 소령은 그 차이를 놓치지 않았다. 동시에 이상하게도 가슴 한구석이 식었다. 분노가 치밀기보다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의심이 확신으로 바뀐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제는 이 사내를 믿고 싶은 마음과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경계가 한 몸 안에서 부딪히고 있었다.

불이 잦아들 무렵, 막리연은 먼저 몸을 눕혔다. 정말 잠든 것인지, 잠든 척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소령은 등을 벽에 기대고 앉아 품속에서 담여화가 건넨 쪽지를 꺼냈다. 떠나기 직전, 약재상 앞에서 그녀가 허겁지겁 달려와 손에 쥐여 준 것이었다.

'현성 남문 시장통에 혈사문 객경 셋이 열흘째 묵고 있대. 그중 하나는 검을 쓴다더라. 조심해, 바보야.'

소령은 쪽지를 천천히 접었다. 검을 쓰는 혈사문 객경. 그 한 줄이 가슴을 세게 눌렀다. 윤채의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분노가 먼저 치밀었지만, 그 아래에는 더 아픈 것이 있었다. 어린 날 처음 검 쥐는 법을 가르쳐 주던 손, 칭찬 한마디에 괜히 어깨를 폈던 기억. 원수의 얼굴 위로 사형의 그림자가 겹쳐졌다.

소령은 식도의 손잡이를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손가락 마디가 희게 질렸다. 돌담의 칼자국이 다시 떠올랐다. 이초식, 삼 년 전, 그리고 현성 남문.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는 듯했다. 누군가가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혈사문만이 아니었다. 청명문의 검을 아는 자도, 그 흔적을 숨기지 않은 자도 모두 현성 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내일이면 현성이다.

돌아갈 생각은 버려라.

짧고 날카로운 독백이 가슴속에서 내려앉았다. 소령은 그제야 자신이 무엇을 택했는지 분명히 알았다. 막리연을 끝까지 지켜본다. 혈사문의 그림자가 누구를 향하는지도 직접 확인한다. 의심을 품은 채 걷더라도,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는다. 두려움은 남아 있었지만, 그 위로 결심이 얇고 단단하게 덮였다.

밤바람이 빈집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왔다. 소령은 끝내 눈을 감지 못했다. 팽노가 밀어 준 국밥과 담여화의 삐뚤한 글씨가 번갈아 떠올랐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등을 떠미는 밤이었다.

그때였다. 바람 소리 사이로, 집 바깥 마른 흙을 밟는 발소리가 한 번 짧게 스쳤다. 소령의 눈빛이 즉시 날카로워졌다. 막리연이 정말 잠들어 있었다면 들었을 리 없는 미세한 기척이었다. 소령은 숨을 죽인 채 문틈 너머 어둠을 노려보았다.

사락.

잠시 뒤, 바람에 밀려온 것은 사람 그림자가 아니라 작은 종이 조각 하나였다. 문지방에 걸린 그것의 끝자락에는 달빛 아래 뱀 비늘처럼 번들거리는 검은 가루가 묻어 있었다. 그리고 방 안에 누워 있던 막리연의 호흡이, 그 순간 아주 미세하게 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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