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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1화]

깨진 그릇, 삼킨 피

작성: 2026.03.22 20:25 조회수: 46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본 작품은 가상의 무협 세계를 배경으로 한 창작물입니다. 작중 등장하는 무술, 비급, 문파 체계 등은 모두 허구이며, 폭력 묘사는 장르적 관습 안에서 다루어집니다.

사발이 깨지는 소리는 언제나 비슷했다.

맑고 짧게 한 번 울리고, 곧바로 바닥에서 둔탁하게 갈라졌다. 한소령은 엎질러진 국밥 위로 흩어진 사기 조각을 내려다보다가 말없이 무릎을 꿇었다. 손가락 사이로 미끈한 국물이 흘렀다. 뜨거웠지만 손을 떼지 않았다.

"또 깼냐."

부엌 안쪽에서 팽노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나무라기보다 확인에 가까운 말투였다.

"예."

짧게 답한 소령은 행주를 집어 들었다. 새벽부터 우물물을 길어 항아리 셋을 채우고, 탁자 여덟 개를 닦고, 장작을 패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국밥 서른두 그릇을 날랐다. 손목이 떨린 건 서른세 번째였다. 어젯밤 뒷산에서 무리한 탓이었다. 이유를 알면서도 입 밖에 낼 수는 없었다.

파서진의 취선객잔은 변방 읍내 끝자락에 붙은 허름한 객잔이었다. 이층에 방 넷, 일층에 탁자 여덟, 부엌에는 팽노와 소령 둘뿐이었다. 장날이 아니면 손님도 뜸했다. 그래도 국밥 맛만큼은 읍내에서 으뜸이었다. 팽노가 뼈를 고는 솜씨는 기이할 만큼 집요했다. 비결을 물으면 노인은 늘 같은 말만 했다.

"오래 끓이면 된다."

세 해 동안 그 말 말고는 더 들은 적이 없었다. 소령은 가끔 그 말이 국밥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람도, 원한도, 검도. 덜 익은 채 꺼내면 탈이 난다는 뜻처럼 들릴 때가 있었다.

깨진 사발 조각을 쓸어 담고 있을 때, 문밖에서 웃음소리가 터졌다. 장날이었다. 시장통의 소란이 객잔 앞길까지 번져 오는 날이면 공기부터 달라졌다. 소령은 빨래를 걷으러 마당으로 나갔다가 길 건너 약재상 앞에서 발을 멈췄다.

허리에 검을 찬 사내 셋이 좌판을 둘러싸고 있었다. 무인 자체는 드문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중 하나가 약재 보따리를 발로 걷어차고 있다는 점이었다. 마른 약재가 흙바닥에 쏟아지고, 갈색 먼지가 허공으로 피어올랐다.

"보호세가 밀렸다니까, 할멈. 세 냥이면 되는 걸 왜 매번 사람 성질을 긁어?"

좌판 뒤에 앉아 있던 건 담여화의 어머니였다. 허리가 굽은 여인은 아무 말 없이 약재를 주워 담고 있었다.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소령의 손도 떨렸다. 다만 이유가 달랐다.

세 걸음이면 닿는다.

사내들의 보법이 습관처럼 눈에 들어왔다. 앞발에 무게가 쏠린 놈이 둘, 뒤꿈치를 제대로 못 붙이는 놈이 하나. 오른쪽 놈은 칼집을 낮게 찼다. 손목부터 꺾으면 칼을 뽑기도 전에 엎어진다. 가운데 놈은 허세가 심해 상체가 먼저 나간다. 무릎을 쓸면 버티지 못한다. 왼쪽 놈은 눈빛이 빠르지만 간이 작다. 둘이 쓰러지는 걸 보면 먼저 물러설 것이다.

머릿속에서 수가 먼저 섰다. 몸은 이미 반 치 앞으로 나가 있었다.

그때였다.

"소령."

뒤에서 들린 팽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이상하게도 발목을 붙드는 힘이 있었다. 돌아보니 노인은 어느새 마당 끝에 서 있었다. 언제 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팽노는 길 건너 사내들이 아니라 소령의 어깨를 보고 있었다. 앞으로 기운 어깨,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듯 굳은 등줄기.

"빨래 걷어라."

그 한마디였다.

소령의 턱이 굳었다. 이빨 사이로 쇠 맛이 번졌다. 저 셋쯤은 눕힐 수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한 번 손을 쓰는 순간, 감춰 둔 것이 드러난다. 검을 쥐었던 손, 문파의 보법, 몸에 밴 기세. 세 해 동안 겨우 이어 붙인 삶이 그 자리에서 갈라질지 모른다.

그렇다고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담여화의 어머니가 흙바닥에 흩어진 약재를 주우려 허리를 더 숙이는 순간, 사내 하나가 그녀의 손등을 발끝으로 툭 건드렸다. 장난처럼 가벼운 동작이었지만, 그 안에 깔린 모욕은 가볍지 않았다.

소령의 숨이 짧아졌다. 발끝에 힘이 실렸다.

지금 나가면 저 셋은 끝난다.

하지만 끝나는 건 저 셋만이 아니다.

객잔에 손님이 몰릴 것이고, 변방에 숨어 지내던 소년의 손놀림을 본 자들이 입을 놀릴 것이다. 누군가는 보법을 기억할 것이고, 누군가는 검을 배운 흔적을 읽어 낼 것이다. 강호는 넓지만, 피 냄새를 맡는 코는 늘 빠르다.

팽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지금 나가면, 저 셋만 끝나지 않는다."

소령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저 셋을 눕히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러나 강호의 일은 늘 꼬리를 문다. 어디 소속인지, 누구에게 배웠는지, 왜 이런 변방 객잔에 숨어 있는지. 한 번 시선이 꽂히면 끝이었다.

"그럼 보고만 있으란 말입니까."

입 밖으로 새어 나온 목소리는 낮았지만 거칠었다. 팽노는 잠시 소령을 보았다. 늙은 눈이었으나 흐리지 않았다.

"못 본 척하라는 게 아니다. 네가 감당할 수 있는 때를 보라는 거다."

"때를 보다 사람이 짓밟히면요?"

"분노로 뽑은 칼은 사람을 구하기 전에 제 주인을 드러낸다."

소령은 입술을 깨물었다. 저 말이 비겁하게 들려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가슴을 찔렀다. 사부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검을 세우되, 사람을 세우라고. 그때는 뜻을 몰랐다. 지금도 다 알지는 못했다. 다만 분한 건, 자신이 아직 그 말에 맞설 만큼 강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길 건너에서 동전 몇 닢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사내들이 비웃었다. 담여화의 어머니는 고개를 더 숙였다.

소령은 끝내 몸을 돌려 빨래줄의 수건을 하나씩 걷었다. 손은 여전히 떨렸다. 등 뒤에서는 비웃음, 억지로 삼키는 울음, 약재가 밟히는 바스락거림이 차례로 들렸다. 그는 수건을 접는 척하며 손아귀를 조였다. 천이 구겨졌다.

사내들이 떠난 뒤에야 팽노가 등을 보인 채 말했다.

"깨진 그릇은 버리면 그만이다."

잠시 뜸을 들인 뒤, 노인이 덧붙였다.

"깨진 사람이 칼을 쥐면, 먼저 제 손부터 베는 법이지."

소령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화가 났다. 저 말이 틀리지 않아서 더 화가 났다.

잠시 뒤 담여화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엄마!" 하고 외치며 흩어진 약재 사이에 주저앉는 모습을 보자, 소령은 광주리를 안고 안으로 들어갔다. 눈이 마주치면 안 됐다. 마주치면 말이 생기고, 말이 생기면 책임이 된다. 지금의 그는 책임질 힘이 없었다.

하지만 문턱을 넘는 순간, 등 뒤에서 담여화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 하나 말리는 사람도 없었어요?"

그 말은 시장통 사람들에게 한 것이었으나, 소령의 등에 먼저 꽂혔다. 그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멈춘 건 한순간이었는데, 비겁함은 오래 남았다.

해가 지고 객잔 문이 닫혔다. 탁자를 정리한 뒤 팽노가 남은 국밥을 소령 앞으로 밀었다. 둘은 말없이 밥을 먹었다. 소령은 국물을 끝까지 비우고 사발을 씻었다. 팽노는 더 묻지 않았고, 소령도 더 참지 못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침묵이 오히려 더 무거웠다.

밤이 깊자 소령은 뒷산으로 올랐다. 소나무 사이에 작은 터가 있었다. 삼 년 동안 같은 자리를 밟아 풀이 반들거렸다. 그는 떨어진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들었다. 검은 아니었지만, 쥐는 순간 손바닥의 굳은살이 정확히 맞물렸다.

일초식 잔월.

손목을 비틀어 사선으로 긋는 단순한 궤적. 끝에서 내공이 한 올 실려야 비로소 검이 된다. 이초식 비화. 가지 끝이 바람을 갈랐다. 삼초식부터 육초식까지는 몸이 기억하는 대로 흘렀다. 검결은 눈으로 익힌 것이 아니라, 사부 도현진이 마지막 내공으로 그의 기맥에 새겨 넣은 것이었다. 그래서 더 잊을 수 없었고, 그래서 더 버릴 수 없었다.

문제는 늘 그다음이었다.

칠초식, 귀명.

소령은 숨을 가다듬고 발을 옮겼다. 낮에 참았던 분노를 억지로 눌러 단전 아래로 끌어내렸다. 힘으로 밀면 또 터진다. 이번에는 달리 가야 했다. 기세를 먼저 죽이고, 보법을 반 박자 늦춘 뒤, 오른팔이 아니라 허리에서부터 힘을 끌어올렸다. 수는 맞았다. 적어도 머릿속에서는.

그러나 몸은 냉정했다.

가지 끝이 허공을 찌르는 순간, 단전 아래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었다. 기맥이 어깨에서 갈라지며 오른팔과 등줄기를 동시에 태웠다. 소령은 이를 악물고 반원을 이어 보려 했다. 여기서 멈추면 또 제자리였다. 오늘도 물러서면, 낮에 발을 멈춘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억지로 한 치를 더 밀어붙인 순간, 목 안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감각이 왔다.

"큭!"

피가 솟구쳤다. 입을 틀어막았지만 손가락 사이로 검붉은 것이 새어 나왔다. 무릎이 꺾이고, 나뭇가지가 풀밭에 떨어졌다. 소령은 두 손으로 땅을 짚은 채 피를 뱉었다. 한 모금, 두 모금. 풀잎 위로 검은 얼룩이 번졌다.

"……또 일곱이냐."

석 달 전에도 일곱이었다. 반 년 전에도 일곱이었다. 전반부 삼십육 초식 가운데 온전히 닿는 건 여섯까지였다. 일곱 번째에 이르면 몸이 먼저 거부했다. 후반부 검결이 없으면 기맥의 순환이 완성되지 않아 경락이 역류한다는 사실을, 그는 제 몸으로 깨달았다. 쓰러지고, 피를 토하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한 끝에 얻은 결론이었다.

낮에는 손을 참았고, 밤에는 검이 막혔다. 참는 것도, 버티는 것도 모두 제자리걸음 같았다.

소령은 등을 소나무에 기대고 숨을 골랐다. 등가죽 아래에서 검결의 흔적이 열을 품은 듯 욱신거렸다. 문득 스쳐 간 생각이 있었다. 사부가 정말 이걸 자신에게 남기려 했던 걸까. 어쩌면 윤채 사형에게 전하려던 것을 마지막 순간 억지로 밀어 넣은 건 아닐까.

생각은 곧바로 되돌아왔다. 칼날처럼 차갑게.

아니다. 그런 의심은 비겁하다.

눈을 감자 불길이 보였다. 청명문의 대전이 타고 있었다. 대들보가 무너지며 불꽃이 치솟고, 연기 속에서 사형들의 비명이 뒤엉켰다. 열네 살의 그는 사부의 등에 업혀 있었다. 몸은 가벼웠고, 사부의 등은 뜨거웠다. 그 뜨거움이 피가 아니라 내공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소령은 울면서 외쳤다. 내려 달라고, 저 혼자 뛸 수 있다고.

그러나 도현진은 돌아보지 않았다. 산길을 달리며 딱 한마디만 남겼다.

"검을 세우되, 사람을 세워라."

그 뜻을 아직도 몰랐다. 복수를 하라는 건지, 복수에 삼켜지지 말라는 건지. 낮에 팽노가 발을 멈추게 했을 때 그 말이 겹쳐 떠올랐다. 사부도, 팽노도, 어쩌면 같은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게 더 두려웠다.

멈추는 것이 옳다면, 삼 년 동안 피를 삼키며 버틴 이유는 무엇이 되는가.

하지만 아무에게나 검을 겨누는 순간, 자신이 지키려는 것까지 함께 부서질지도 몰랐다.

소령은 눈을 떴다. 별빛이 차갑게 쏟아지고 있었다. 입가에 마른 피가 당겼다. 그는 소매로 대충 닦고 몸을 일으켰다. 떨어진 나뭇가지를 다시 집었다.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놓지 않았다.

오늘은 일곱에서 꺾였다. 내일도 그럴지 모른다. 그래도 손을 놓는 순간, 청명문에서 살아남은 마지막 이유까지 놓치게 될 것 같았다. 그는 다시 한 번 발을 디뎠다가, 끝내 검결을 잇지 못하고 가지를 내렸다. 무리하면 또 피를 토한다. 지금 필요한 건 억지가 아니라 버팀이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에도 힘이 들었다.

산을 내려오자 객잔 뒷문 앞에 사발 하나가 놓여 있었다. 국밥이 아니라 따뜻한 물이었다. 미지근한 걸 보니 한참 전에 떠다 놓은 것이었다. 팽노가 내려와 기다리고 있을 리는 없었다. 그 노인은 늘 그렇듯, 확인하지 않고도 알 뿐이었다.

소령은 사발을 들어 물을 마셨다. 목구멍에 남은 피 맛이 천천히 씻겨 내려갔다. 빈 사발을 내려놓는 순간, 낮에 보았던 사내들의 보법이 다시 떠올랐다. 그보다 먼저 떠오른 건 그 허술함을 한눈에 읽어 낸 자기 자신의 눈이었다.

삼 년 동안 숨기고 또 숨겼는데, 그 눈만은 숨겨지지 않았다.

누군가 그걸 먼저 알아본다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던 찰나, 객잔 담장 너머 어둠 속에서 마른 나뭇가지 밟히는 소리가 짧게 났다. 소령의 손이 저도 모르게 굳었다. 기척은 하나였지만, 숨결은 둘이었다. 하나는 가볍고 느긋했다. 다른 하나는 숨을 죽인 채 담장 밖에 바짝 붙어 있었다.

손님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소령은 사발을 내려놓으며 천천히 몸을 틀었다. 무공을 익힌 자의 기척은 감춰도 결이 남는다. 담장 밖의 첫 번째 숨결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억지로 죽인 기세가 아니라, 애초에 힘을 흘릴 줄 아는 자의 호흡이었다. 둘째는 그보다 아래였다. 숨을 죽이려 애쓰는 기색이 오히려 서툴렀다.

강호인이다.

그것도 시장통의 잡배와는 다른 부류.

그 순간, 담장 너머에서 낮게 웃는 소리가 흘러들었다.

"이 변방 객잔에, 생각보다 재미있는 놈이 숨어 있었군."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등골이 서늘해졌다. 말끝에 스민 기세가 시장통의 사내들과는 전혀 다른 결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령은 무심코 뒷문 곁에 세워 둔 장작더미를 보았다. 검은 없었다. 대신 손에 익은 길이의 막대는 있었다.

그는 막대를 집지 않았다. 먼저 움직이면 약점을 보인다. 대신 발끝을 반 보 옮겨 문과 담장을 함께 시야에 넣었다. 담을 넘는다면 왼쪽, 문을 밀고 들어온다면 정면. 둘 중 어느 쪽이든 첫 수는 막을 수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상대의 내공 깊이를 모른다. 자신의 기맥은 조금 전에도 피를 토했다.

싸우면 이길 수 있는가.

모른다.

숨길 수 있는가.

그것도 모른다.

담장 밖의 사내가, 마치 그의 망설임을 읽기라도 한 듯 다시 입을 열었다.

"문을 열어라. 아니면 내가 이름부터 부를까?"

소령의 심장이 한 번, 무겁게 내려앉았다. 손끝이 싸늘해졌다. 이름. 그 한마디가 칼보다 깊게 파고들었다. 한소령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그 이름 뒤에 붙은 문파와 사문의 그림자까지 알고 있다는 듯한 말투였다.

그는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도망칠 수도 있었다. 팽노를 깨우고 뒤산으로 몸을 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는 순간, 취선객잔은 더는 숨을 곳이 되지 못한다. 남아 막아야 하나, 물러서 지켜야 하나. 선택은 둘뿐인데 어느 쪽도 가볍지 않았다.

담장 밖에서는 더 이상 재촉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오히려 위협적이었다. 상대는 조급하지 않았다. 이미 잡은 먹잇감이 달아날 곳이 없다고 믿는 자의 여유였다.

소령의 시선이 뒷문 빗장과 장작더미 사이를 오갔다. 그리고 바로 그때, 담장 너머의 사내가 나직하게, 그러나 또렷이 세 글자를 흘렸다.

"청명문."

밤공기가 뚝, 식었다.

삼 년 동안 잿더미 속에 묻어 두었던 이름이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되살아났다. 소령은 끝내 장작막대를 움켜쥐었다. 문을 열어야 하는지, 부숴야 하는지, 그조차 정하지 못한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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