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터가 올라가는 소리는 예전과 같았다. 끼이익, 레일을 타며 쇠가 접히는 금속음. 민주는 양손으로 손잡이를 쥐고 허리에 힘을 주었다. 어깨가 당겼다. 왼쪽 팔꿈치 안쪽이 쑤셨다. 허리 높이쯤에서 셔터가 한 번 걸렸다. 예전엔 이런 적 없었는데. 손바닥으로 레일 옆을 톡톡 두드리고 다시 밀어 올리자, 그제야 셔터가 천장까지 말려 올라갔다.
이른 아침 햇살이 바닥 타일 위로 비스듬히 깔렸다. 빛이 닿은 곳과 닿지 않은 곳의 경계가 칼로 그은 것처럼 또렷했다. 화재 복구 뒤 새로 친 페인트 냄새가 코끝에 걸렸다. 세제와 섞이니 민주가 아는 세탁소 냄새가 아니었다.
카운터 위 플라스틱 바구니에 수선 의뢰 메모지 세 장이 꽂혀 있었다. 어젯밤 준수가 정리해둔 것이다. 3층 미용실 김 원장의 앞치마 단추 수선, 맞은편 부동산 사장의 와이셔츠 칼라 얼룩 제거, 세 번째는 글씨가 삐뚤어져서 누구 건지 알 수 없었다. 준수 글씨. '목요일까지 찾아갈 거라고 함'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민주는 메모지를 바구니에 도로 꽂으며 입안으로 중얼거렸다. 이름을 써야지, 이름을.
스팀다리미에 전원을 넣었다. 기계가 웅웅거리며 예열을 시작하는 소리. 그걸 듣고서야 실감이 왔다. 다시 열었구나. 민주는 다리미판 옆에 서서 한동안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벽에 붙은 달력이 아직 2월에 멈춰 있었다. 셔터를 닫은 날 이후로 아무도 넘기지 않은 것이다. 3월 장을 넘기다가, 22일 칸 옆에 연필로 작게 쓰인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금—장학'. 준수의 글씨였다. 민주는 손끝으로 그 글자를 한 번 짚었다가, 아무것도 안 본 것처럼 달력을 제자리에 걸었다.
"어머, 진짜 열었네."
명자가 세탁소 앞에 서 있었다. 한 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고, 봉지 안에서 팥 냄새가 올라왔다. 민주는 문 앞에 서서 명자를 올려다보았다. 원래 키가 크지 않은 사람인데 오늘은 왜인지 더 작아 보였다. 아니, 민주 쪽 눈높이가 달라진 건지도 모른다.
"떡은 왜요."
"개업떡이지, 뭐야. 팥시루떡." 명자는 봉지를 카운터 위에 탁 올려놓았다. "상가 김밥집 할머니가 쪄준 거야. 내가 부탁한 건 아니고, 할머니가 알아서." 가게 안을 천천히 훑더니 코를 찡긋했다. "페인트 냄새 아직 있네. 환기 좀 시켜. 손님들 머리 아프다고 할라."
민주는 대답 대신 뒷문을 열었다. 골목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페인트와 세제 냄새를 함께 밀어냈다. 명자는 카운터 앞 간이의자에 걸터앉아 봉지에서 떡을 꺼내기 시작했다. 접시도 없이 비닐 위에 떡을 늘어놓는 손놀림이 영락없이 이 상가의 주인이었다.
"민주야, 월세 얘기 좀 하자."
민주의 손이 다리미판 위에서 멈췄다.
명자는 떡을 자르면서, 마치 오늘 바람이 좀 불겠다는 식으로 말을 이었다. "밀린 두 달치, 내가 없던 걸로는 못 해. 솔직히 나도 그럴 형편 안 돼." 떡 한 조각을 민주 쪽으로 밀었다. "근데 한 달치는 유예를 줄게. 석 달 안에 나눠서 내면 되고. 나머지 한 달치는—" 말끝이 흐려졌다. 민주가 돌아보았다. 명자의 표정이 어제 '생각해볼 것'이라고 했을 때와 같은 얼굴이었다.
"나머지 한 달치는 뭐요."
"건물 보험 처리가 되면 거기서 빠지는 게 있을 수 있어." 명자는 떡을 씹으며 시선을 내렸다. "근데 보험사 쪽에서 연락이 안 와. 내가 괜히 된다고 했다가 안 되면 네가 더 힘들어지잖아. 그래서 아직 말을 못 한 거야."
민주는 떡을 받아들었지만 입에 넣지 않았다. 건물주 책임보험의 면책 여부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것, 명자가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 그 구멍을 파고드는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셔터를 올린 첫날, 명자가 떡을 들고 와서 월세를 유예해주겠다고 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상한 아침이었다.
"고마워요, 사모님."
명자는 손을 내저었다. "고맙긴. 네가 여기서 나가면 이 자리 누가 들어와. 요즘 상가가 어떤데."
그때 세탁소 앞에 낯선 여자가 섰다. 서른 중반쯤, 민주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간판을 올려다보더니 안으로 들어왔다. 종이봉투를 들고 있었고, 봉투 입구로 옷자락이 삐져나와 있었다.
"여기 세탁도 되고 수선도 되나요?"
민주는 떡을 비닐 위에 내려놓고 카운터로 갔다. "네, 둘 다 돼요."
여자가 봉투에서 꺼낸 건 베이지색 울 코트였다. 왼쪽 소매 안감이 찢어져 있었고, 등 쪽에 검은 그을음 같은 얼룩이 번져 있었다. 민주의 시선이 얼룩 위에 멈췄다. 세탁소를 오래 하면 얼룩만 봐도 원인을 대충 안다. 이건 불에 탄 자국이 아니라, 누군가 억지로 문질러서 퍼뜨린 것이었다.
"이 얼룩은 어떻게 된 거예요?"
여자는 잠깐 망설이더니 웃었다. "아, 이사하다가 짐 사이에 끼었어요. 빠질까요?"
민주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더 묻지 않았다. "해볼게요. 울이라 시간이 좀 걸려요. 목요일쯤 오시면 돼요." 접수증을 쓰면서 이름을 물었다. 한서영. 연락처를 적고 여자가 나간 뒤, 명자가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저 사람 이 동네 사람 아닌데. 처음 보는 얼굴이야."
"손님이 오는 게 어디예요." 민주는 접수증을 정리하며 말했다. 하지만 코트의 그 얼룩이 자꾸 눈에 밟혔다. 이사 짐에 끼여서 생기는 종류가 아니었다.
점심 무렵, 준수가 편의점 봉지를 들고 세탁소에 왔다. 삼각김밥 두 개와 컵라면 하나.
"떡 있어. 명자 사모님이 가져왔어."
"팥시루떡?" 준수는 카운터 위의 떡을 보더니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었다. 우물우물 씹고는 삼각김밥을 민주 앞에 놓았다. "이건 엄마 거."
민주는 포장을 뜯으면서 물었다. "내일 뭐 있어?" 아무렇지 않게 물은 척했지만, 달력의 연필 글씨가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뭐가." 준수는 라면에 물을 붓고 뚜껑을 닫았다.
"아니, 그냥. 학교 안 가나 싶어서."
3분을 기다리는 동안 준수는 세탁소 안을 둘러보았다. 새로 칠한 벽, 아직 자리를 못 잡은 옷걸이들, 카운터 옆에 쌓인 비닐 포장지.
"엄마, 여기 좀 바뀌었다."
"뭐가."
"모르겠어. 냄새가 달라. 예전 세탁소 냄새가 아니야." 준수는 라면 뚜껑을 열며 말했다.
민주는 대꾸하지 않았다.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같은 자리에 같은 기계를 놓고 같은 간판을 달았지만, 셔터를 닫기 전의 그곳은 아니었다.
"괜찮아." 민주가 삼각김밥을 한 입 베어 물며 말했다. "냄새는 바뀌어도 되는 거야."
준수는 라면을 후루룩 먹으면서 카운터 위 접수증을 슬쩍 당겨 보았다. "한서영? 이 사람 누구야."
"오늘 처음 온 손님. 코트 맡기고 갔어."
"코트?" 준수가 고개를 기울였다. "3월인데?"
민주도 같은 생각을 했지만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김 원장의 앞치마를 꺼내 다리미판 위에 올렸다. 다리미가 천 위를 지나가는 소리가 세탁소 안에 고르게 퍼졌다. 그 소리 사이로 달력의 '금—장학' 두 글자가 떠올랐다. 내일이었다.
준수가 라면을 다 먹고 일어섰다. "나 도서관 갔다 올게."
민주는 고개만 끄덕였다. 준수가 문을 나서는 순간, 불렀다.
"준수야."
"응."
"내일—" 민주는 말을 멈췄다. 다리미에서 올라오는 김을 보다가 말을 바꿨다. "저녁은 집에서 먹자."
준수는 뒤도 안 돌아보고 손만 흔들었다. 그 손이 문밖으로 사라진 뒤에도 민주는 한참 동안 다리미를 천 위에 올린 채 서 있었다. 스팀이 앞치마 위로 피어올라 천장 쪽으로 흩어졌다. 따뜻한 김이었다. 낯설지만 싫지는 않은, 이 자리의 새 냄새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