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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11화]

바뀐 냄새, 같은 자리

작성: 2026.03.13 15:13 조회수: 45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이 콘텐츠는 보험을 소재로 한 창작물이며 실제 상품 추천이나 보장 판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셔터가 올라가는 소리는 예전과 같았다. 끼이익, 레일을 타고 쇠가 접히는 금속음. 민주는 양손으로 손잡이를 쥐고 허리에 힘을 줬다. 어깨가 당겼고 왼쪽 팔꿈치 안쪽이 찌르르했다. 허리 높이쯤에서 셔터가 한 번 턱 걸렸다.

"아, 왜 또 이래."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예전엔 이런 적이 없었다. 손바닥으로 레일 옆을 톡톡 두드리고 다시 밀어 올리자 그제야 셔터가 천장까지 말려 올라갔다. 민주는 숨을 길게 한 번 내쉬었다. 겨우 셔터 하나 올렸을 뿐인데, 가게를 다시 여는 일이 몸으로 먼저 실감났다.

이른 아침 햇살이 바닥 타일 위로 비스듬히 깔렸다. 빛이 닿은 곳과 닿지 않은 곳의 경계가 칼로 그은 것처럼 또렷했다. 화재 복구 뒤 새로 칠한 페인트 냄새가 코끝에 걸렸다. 세제 냄새와 섞이니 민주가 알던 세탁소 냄새가 아니었다. 익숙해야 할 자리에 낯선 공기가 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카운터 위 플라스틱 바구니에는 수선 의뢰 메모지 세 장이 꽂혀 있었다. 어젯밤 준수가 정리해 둔 것이다. 3층 미용실 김 원장의 앞치마 단추 수선, 맞은편 부동산 사장의 와이셔츠 칼라 얼룩 제거, 세 번째는 글씨가 삐뚤어져 누구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목요일까지 찾아갈 거라고 함.'

민주는 메모지를 들여다보다가 혀를 찼다.

"이름을 써야지, 이름을. 목요일에 누가 오면 내가 점쟁이냐."

툴툴거리면서도 입가가 아주 조금 풀렸다. 준수답게 급하게 적은 흔적이었다.

스팀다리미에 전원을 넣었다. 기계가 웅웅거리며 예열을 시작하는 소리. 그걸 듣고서야 진짜로 실감이 났다. 다시 열었구나. 민주는 다리미판 옆에 서서 한동안 가게 안을 둘러봤다. 벽에 붙은 달력은 아직 2월에 멈춰 있었다. 셔터를 닫은 날 이후로 아무도 넘기지 않은 것이다. 3월 장을 넘기다가 22일 칸 옆에 연필로 작게 쓰인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금—장학'

준수의 글씨였다.

민주는 손끝으로 그 글자를 한 번 짚었다가, 누가 본 것도 아닌데 얼른 손을 뗐다. 괜히 먼저 입에 올렸다가 결과가 안 좋으면 어쩌나 싶었다. 반대로 잘돼도, 그 애가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알면서 먼저 캐묻는 엄마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 달력을 제자리에 걸어 두고 돌아서는데, 세탁소 앞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 진짜 열었네."

명자가 서 있었다. 한 손에는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고, 봉지 안에서는 팥 냄새가 올라왔다. 원래도 체구가 작은 사람인데 오늘은 유난히 더 작아 보였다. 아니면 민주 쪽이 며칠 새 이상하게 단단해진 건지도 몰랐다.

"떡은 왜요."

"개업떡이지, 뭐야. 팥시루떡."

명자는 봉지를 카운터 위에 탁 올려놓았다.

"상가 김밥집 할머니가 쪄 준 거야. 내가 부탁한 건 아니고, 할머니가 알아서. 소문은 빨라, 이런 데가."

가게 안을 천천히 둘러보던 명자가 코를 찡긋했다.

"페인트 냄새 아직 있네. 환기 좀 시켜. 손님 들어왔다가 머리 아프다 하면 어쩌려고."

민주는 대답 대신 뒷문을 열었다. 골목 쪽에서 들어온 바람이 페인트 냄새와 세제 냄새를 한꺼번에 흔들었다. 명자는 카운터 앞 간이의자에 걸터앉아 접시도 없이 비닐 위에 떡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 손놀림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남의 가게에 와 있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민주야, 월세 얘기 좀 하자."

민주의 손이 다리미판 위에서 멈췄다. 막 올라오던 스팀 소리도 괜히 더 크게 들렸다. 명자는 떡을 자르면서, 마치 오늘 바람이 좀 세겠다는 말처럼 담담하게 이었다.

"밀린 두 달 치를 내가 없던 걸로는 못 해. 그건 나도 솔직히 안 돼."

민주는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알고 있던 말인데도 막상 입 밖으로 나오니 배가 서늘했다.

명자가 떡 한 조각을 민주 쪽으로 밀었다.

"근데 한 달 치는 유예해 줄게. 석 달 안에 나눠서 내. 숨통은 좀 트여야 할 거 아냐."

민주는 떡 대신 명자의 얼굴부터 봤다.

"나머지 한 달은요?"

명자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떡을 한 번 씹고, 물도 없이 삼키고 나서야 시선을 내렸다.

"건물 보험 처리 결과가 나오면 거기서 빠지는 게 있을 수도 있어."

"있을 수도요?"

민주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빨리 튀어나갔다. 따지려던 건 아니었는데, 그 '수도'라는 말이 사람을 제일 지치게 한다는 걸 요 며칠 뼈저리게 배웠다.

명자가 민망한 듯 입술을 눌렀다.

"보험사 쪽에서 아직 연락이 안 왔어. 적용이 되는지부터 본다더라. 내가 괜히 된다, 된다 했다가 안 되면 네가 더 힘들어지잖아. 그래서 확실해질 때까지 말 안 하려고 했는데..."

"근데 먼저 말한 거네요."

"네가 숫자 붙들고 밤새는 얼굴을 봤으니까 그렇지."

툭 던진 말에 민주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 어젯밤 식탁 위 계산기, 적금 해지 내역, 준수가 내민 통장 사본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창피한데 이상하게 덜 외로웠던 밤이었다.

명자가 헛기침을 했다.

"대신 나도 부탁 하나 있다. 보험 결과 나오기 전까지는 상가 사람들한테 내가 다 해결해 준 것처럼 말하지 마. 괜히 입 돌면 나도 곤란해."

민주는 그제야 떡을 집어 들었다.

"알겠어요. 저도 괜히 기대 크게 안 할게요."

"기대는 해도 돼. 크게만 하지 말라는 거지."

그 말이 우습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해서, 민주는 결국 짧게 웃었다. 명자도 따라 웃었다가 금세 표정을 거뒀다. 둘 다 지금은 웃음이 오래 못 간다는 걸 아는 얼굴이었다.

그때 세탁소 앞에 낯선 여자가 섰다. 서른 중반쯤, 민주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간판을 올려다보더니 안으로 들어왔다. 종이봉투를 들고 있었고, 봉투 입구로 옷자락이 삐져나와 있었다.

"여기 세탁도 되고 수선도 되나요?"

민주는 얼른 카운터 쪽으로 갔다.

"네, 둘 다 돼요. 어떤 거 맡기실까요?"

여자가 봉투에서 꺼낸 건 베이지색 울 코트였다. 왼쪽 소매 안감이 찢어져 있었고, 등 쪽에는 검은 얼룩이 넓게 번져 있었다. 가까이 보니 단순한 흙때는 아니었다. 불에 그을린 자국처럼 보이는데, 또 완전히 탄 흔적은 아니었다. 누가 젖은 걸 급하게 문질러 퍼뜨린 것 같은 얼룩이었다.

민주의 시선이 멈추자 여자가 먼저 웃었다. 웃는데 눈은 웃지 않았다.

"이사하다가 짐 사이에 끼였어요. 이런 거 빠질까요?"

민주는 코트를 손끝으로만 들어 봤다. 천 상태를 확인하는 척하면서 얼룩의 결을 살폈다.

"해 보긴 할게요. 근데 완전히 안 빠질 수도 있어요."

"괜찮아요. 입기만 하면 돼요."

그 말이 이상하게 귀에 남았다. 보통은 티만 덜 나면 된다거나 최대한 부탁드린다고 하지, 입기만 하면 된다고는 잘 하지 않는다. 민주는 접수증을 꺼냈다.

"성함이요."

"한서영이요."

연락처를 적는 손도 조금 급해 보였다. 여자는 접수증을 받아 들고는 코트에서 눈을 빨리 떼지 못했다. 마치 맡기고 가면서도 마음이 남는 사람처럼. 그러다 문 쪽으로 돌아서며 한 번 더 말했다.

"혹시 안주머니 쪽은... 따로 건드리지 말아 주세요. 그냥 전체만 봐주시면 돼요."

민주의 손이 멈췄다.

"안주머니요?"

"아, 아니. 그냥 제가 예민해서요. 영수증 같은 게 있을 수도 있어서. 제가 깜빡 잘하거든요."

말을 덧붙이는 속도가 빨랐다.

"목요일쯤 다시 올게요."

한서영은 민주의 대답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나갔다.

문이 닫히자 명자가 바로 몸을 기울였다.

"봤지? 저 사람 말 이상하지 않았어?"

민주도 같은 생각이었지만, 일부러 무심한 척했다.

"손님 사정이 있겠죠."

"사정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래도 저건 좀..."

명자는 창밖으로 한서영의 뒷모습을 보다가 중얼거렸다.

"이 동네 사람은 아닌데. 처음 보는 얼굴이야."

민주는 접수증을 정리하며 코트를 다시 봤다. 이상한 건 얼룩만이 아니었다. 맡기고 가는 사람이 옷보다 안주머니를 더 신경 쓰는 건 흔치 않았다. 그래도 더 묻지 않았다. 세탁소는 남의 사정을 캐는 곳이 아니라, 묻지 않고도 티를 알아채는 곳에 가까웠으니까.

점심 무렵, 준수가 편의점 봉지를 들고 들어왔다. 삼각김밥 두 개와 컵라면 하나였다.

"떡 있어. 명자 아주머니가 가져왔어."

준수는 카운터 위 팥시루떡을 보더니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었다.

"오, 이거 맛있네. 개업떡 치고 너무 진심인데?"

"개업떡 치고가 뭐야. 떡이 떡이지."

"아니, 보통 이런 건 퍽퍽하잖아."

준수는 우물우물 씹으며 삼각김밥을 민주 앞에 놓았다.

"이건 엄마 거. 참치마요. 할인 붙은 거 아니고 제값 주고 샀어. 생색 좀 낼게."

민주는 피식 웃었다. 그 한마디에 오전 내내 뻣뻣하던 어깨가 조금 내려갔다.

"월세는?"

준수가 라면에 물을 붓다가 슬쩍 물었다.

민주는 포장을 뜯던 손을 멈췄다. 애가 모를 줄 알았는데, 역시 다 보고 있었다.

"한 달은 유예해 준대. 대신 보험 결과는 아직 안 나왔고."

준수는 뚜껑을 덮고 짧게 "아" 했다. 실망인지 안도인지 애매한 소리였다.

"그래도 다행이네."

"다행이지. 완전한 건 아니어도."

둘 사이에 잠깐 조용한 틈이 생겼다. 민주는 그 틈을 메우려는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내일 뭐 있어?"

준수는 바로 고개를 들었다.

"뭐가."

"아니, 그냥. 학교 일 있나 해서."

준수는 라면 뚜껑을 손가락으로 톡톡 눌렀다. 눈을 피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면으로 보는 것도 아닌 애매한 얼굴이었다.

"있으면 내가 말하겠지."

민주는 순간 뜨끔했다. 서운한 말은 아닌데, 그 안에 긴장이 들어 있었다. 내일 장학금 결과가 나온다는 걸 둘 다 알고 있는데, 먼저 입에 올리는 사람이 지는 것처럼 조심하는 분위기였다.

"그래. 말하고 싶을 때 해."

괜히 차갑게 들렸나 싶어 민주는 바로 덧붙였다.

"대신 저녁은 집에서 먹자. 내가 계란말이 할게."

준수는 그제야 웃는지 마는지 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장학금 붙은 사람 메뉴 아니야?"

"떨어진 사람은 계란말이 못 먹냐?"

"그건 아니지."

둘 다 짧게 웃었다. 웃음이 크진 않았지만, 아까보다 숨 쉬기 편한 공기였다. 오전 내내 눌려 있던 마음이 그제야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준수는 라면을 먹다가 카운터 위 접수증을 슬쩍 당겨 봤다.

"한서영? 이 사람 누구야."

"오늘 처음 온 손님. 코트 맡기고 갔어."

"코트? 3월인데?"

"그러게."

준수는 접수증을 내려놓고 걸어 둔 코트를 한 번 봤다.

"얼룩도 이상하네."

민주는 무심한 척했지만 귀가 쫑긋했다.

"너도 그렇게 보여?"

"응. 이사하다 생긴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리고 저런 사람 있잖아. 옷 맡기면서 옷보다 딴 걸 더 걱정하는 사람."

민주는 삼각김밥을 내려놓았다. 자기가 느낀 걸 준수도 똑같이 집어낸 게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작은 불안은 혼자 느낄 때보다 둘이 동시에 느낄 때 더 선명해졌다.

"엄마, 괜히 건드리진 마. 나중에 또 일 커지면 피곤해."

그 말이 맞았다. 지금 민주에게 필요한 건 새 문제를 만드는 용기가 아니라, 있는 하루를 무사히 넘기는 힘이었다. 그런데도 시선은 자꾸 코트 쪽으로 갔다. 안주머니를 건드리지 말라던 말, 급하게 덧붙인 변명, 얼룩의 결이 자꾸만 마음을 붙들었다.

준수가 봉지를 정리하며 일어섰다.

"나 도서관 갔다 올게."

"준수야."

"응?"

민주는 잠깐 망설였다. 내일 결과, 괜찮냐고 묻고 싶었다. 긴장되면 긴장된다고 말해도 된다고, 엄마도 같이 떨고 있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끝내 다른 말을 골랐다.

"너무 늦지 말고. 저녁은 진짜 집에서 먹어."

준수는 뒤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알았어. 계란말이 타지 않게만 해."

문이 닫히고 나서도 민주는 한참 다리미를 들지 못했다. 말할 기회는 있었는데, 또 비켜 갔다. 그래도 예전 같으면 아예 부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 생각에 스스로를 조금만 봐주기로 했다.

민주는 김 원장의 앞치마를 다리미판 위에 올렸다. 스팀이 천 위로 퍼지며 잔주름을 눌렀다. 다리미가 지나간 자리만 반듯해졌다. 사람 사는 일도 저랬으면 좋겠다고, 눌러야 할 데만 정확히 눌리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시야 끝에서 베이지색 코트가 자꾸 걸렸다.

민주는 결국 다리미를 세워 두고 코트 앞으로 갔다. 손을 대지 말자, 그냥 보기만 하자, 속으로 몇 번을 되뇌었다. 가까이서 보니 안주머니 쪽이 아주 미세하게 불룩했다. 영수증 한 장이라기엔 각이 반듯했고, 휴지 뭉치라기엔 모양이 너무 납작했다. 코트를 옮기려 살짝 들어 올리는 순간, 안쪽에서 종이 스치는 소리가 났다.

민주의 손이 멈췄다.

지금 확인하면 손님 물건을 뒤지는 꼴이 된다. 그냥 두면 마음이 계속 걸릴 것이다. 오늘은 그냥 넘기자고 마음먹으면 편할 텐데, 이상하게 그 선택이 더 불편했다. 내일은 준수의 장학금 결과가 나오고, 오늘은 이 코트가 자꾸만 다른 이야기를 꺼내 보라고 등을 미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세탁소 문에 달린 종이 딸랑 울렸다. 민주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방금 나갔던 줄 알았던 한서영이 문밖에 다시 서 있었다. 숨이 조금 찬 얼굴로, 코트가 걸린 쪽을 곧장 바라보면서.

"저... 사장님."

한서영이 문턱을 넘지도 못한 채 말했다.

"제가 아까, 코트 안에 두고 온 게 있는데요."

잠깐의 침묵이 가게 안에 얇게 내려앉았다. 민주는 코트에서 손을 떼지도 못한 채 서 있었다.

"그거 아직... 안 보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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