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 시 십이 분이었다. 차유리는 동쪽 복도 끝 계단실 앞에 쪼그리고 앉아 균열 길이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어젯밤 확인했을 때보다 약 사 센티미터 길어졌다. 천장에서 내려오는 금이 아니었다. 벽에서 시작해서 천장 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게 더 나빴다. 천장이 버티는 게 아니라 벽이 밀리는 것이었다.
유리는 일어서면서 손바닥을 방진복 허벅지 쪽에 문질렀다. 회반죽 가루가 손가락 사이에 끼어 있었다. 계단실 안쪽에서 바람이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문 아래 틈으로 새어드는 바람이었는데, 어제보다 세기가 강했다. 구조물이 숨을 쉬고 있다는 뜻이고, 숨을 쉰다는 건 아직 안에 공간이 있다는 뜻이고, 공간이 있다는 건 곧 무너진다는 뜻이었다. 유리는 이 논리를 누구에게 설명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응급처치실 안으로 돌아왔을 때, 정윤호가 환자용 침대 옆 접이식 의자에 앉아 환자 명단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형광 스티커 펜으로 뭔가를 표시하는 중이었다. 유리가 들어오는 걸 보고 펜 뚜껑을 닫았다.
"계단 어때요."
"나빠졌어요."
윤호가 의자에서 일어서지 않고 명단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얼마나."
"오늘 안에 결정해야 할 것 같아요. 내일 아침까지 기다리면 동쪽 우회로 자체가 막힐 수 있어요."
유리는 명단 쪽으로 걸어갔다. 윤호가 들고 있던 종이를 자연스럽게 건네받았다. 형광 표시가 세 군데 있었다. 노란색 두 개, 주황색 하나.
"이게 뭐예요."
"이동 가능 기준으로 나눠 봤어요. 노란 건 부축하면 걸을 수 있고, 주황은 들것이 필요하고."
"붉은색은요."
윤호는 잠깐 멈췄다.
"없어요."
유리는 명단을 다시 훑었다. 환자 일곱 명. 노란 표시 셋, 주황 표시 둘, 아무 표시도 없는 이름 둘. 표시가 없는 이름 옆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이름만 있었다. 유리는 그 이름들을 천천히 읽었다. 박무성, 삼십팔 세. 이름 모름, 육십대 추정. 두 번째는 이름조차 없었다. 이름 모름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두 명은 왜 표시가 없어요."
윤호가 답하지 않았다. 유리는 고개를 들어 그를 봤다.
"이동 불가라는 뜻이에요?"
"그 기준을 저한테 묻는 건 맞지 않을 것 같아서요."
윤호가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차 씨가 결정해야 하는 거니까."
유리는 명단을 내려놓지 않았다. 손가락이 박무성이라는 이름 위에 걸려 있었다. 박무성은 어젯밤 폐 손상이 악화됐다. 산소 포화도가 여든둘. 자가호흡은 가능했지만 이동 중 체위 변화가 생기면 수치가 더 떨어질 수 있었다. 이름 모름은 더 나빴다. 의식이 간헐적으로 들어왔다 나갔다 했고, 들것으로 옮기는 것 자체가 위험이었다.
방 한쪽 구석에서 하린이 태블릿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벽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자는 건지 깨어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눈이 반쯤 감겨 있었지만 화면이 꺼지지 않도록 손가락이 화면 아래쪽에 얹혀 있었다. 유리는 그 손을 봤다. 세온에게 연락이 닿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화면이 꺼지면 무섭기 때문인지. 하린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릴레이 방식은 이렇게 할 거예요."
유리가 입을 열었다. 결정을 미루지 않기로 했다. 기다리면 계단실이 먼저 결정을 내릴 것 같았다.
"걸을 수 있는 사람 먼저, 두 명씩 끊어서 이동해요. 들것이 필요한 두 명은 그다음. 이동 전에 경로 한 번 더 확인하고, 저는 후미 맡을게요."
"그 두 명은요."
윤호가 명단을 가리켰다. 표시 없는 이름들.
"그건 제가 직접 상태 보고 결정해요."
"지금 결정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윤호의 목소리가 달라지지 않았다. 화가 난 것도 아니었고, 재촉하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사실을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이동하다가 결정하면 전체가 멈춰요."
유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윤호가 틀린 말을 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더 힘들었다. 맞는 말은 반박할 수가 없었다. 반박할 수 없는 말은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뜻이 아니었지만, 지금 이 공간에서는 달랐다.
"세 시 반까지만 기다려요."
하린이 말했다. 눈을 뜨지 않은 채였다. 태블릿 화면을 손가락으로 한 번 톡 건드리고, 그대로 있었다.
"언니가 그렇게 했잖아요."
방이 잠깐 조용해졌다. 유리는 시계를 봤다. 세 시 십오 분. 십오 분 남았다.
"알았어."
유리가 말했다. 십오 분. 그 안에 박무성의 산소 포화도를 한 번 더 재고, 이름 모름의 의식을 확인하고, 들것 두 개의 고정 줄 상태를 점검할 수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유리는 청진기를 들었다.
박무성의 산소 포화도는 여든하나였다. 전 시간보다 하나 더 떨어졌다. 유리는 수치를 메모하면서 그의 얼굴을 봤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미간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숨이 불편한 사람의 표정이었다. 유리는 산소 마스크를 살짝 고쳐 얹었다. 산소통은 이 마스크로 아직 두 시간 정도를 버틸 수 있었다. 이동 중에는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었다.
세 시 삼십 분이 됐다. 하린의 태블릿이 진동하지 않았다. 유리는 알람이 울리는지 확인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하린이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빨개져 있었다.
"없어요."
하린이 말했다.
유리는 잠시 눈을 감았다. 세온이 연락을 못 하는 이유가 뭔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었다. 안에 있는 건지, 막힌 건지, 아니면 다른 어떤 상황인지. 기다린다고 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계단실 균열은 기다리는 동안에도 자라고 있었다.
"출발해요."
유리가 말했다. 처음으로 자기 목소리가 완전히 평평하다고 느꼈다.
"걸을 수 있는 사람 셋 먼저. 윤호 씨, 앞에 서요."
윤호가 일어섰다. 명단을 접어서 방진복 주머니에 넣었다. 표시 없는 이름 두 개가 거기 들어 있었다. 유리는 그걸 보면서 박무성 쪽으로 걸어갔다. 그의 손을 잡았다. 차가웠다. 손가락이 조금 움직였다.
"저 움직일 수 있어요."
박무성이 말했다. 숨이 섞여서 말이 뭉개졌지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알아요."
유리가 말했다.
"같이 가요."
이름 모름은 의식이 없었다. 유리는 그의 맥을 짚었다. 약했지만 있었다. 들것을 끌고 올 수 없었다. 이 공간에서는 들것을 쓸 인원이 없었다. 유리 혼자였다. 윤호가 이동 인원을 데리고 먼저 나가면 유리 혼자 이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직 결정이 없었다. 유리는 그 사실을 마주했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뜨고, 하린을 봤다.
"하린아, 여기 있어 줄 수 있어?"
하린이 태블릿을 가슴에 안고 일어섰다. 고개를 끄덕였다. 묻지 않았다. 뭘 해야 하는지,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유리는 그 침묵이 고마웠고, 동시에 이 아이한테 이런 걸 맡기는 게 맞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동쪽 복도로 나가는 문이 열렸다. 윤호가 먼저 나갔다. 박무성이 유리의 팔을 잡고 천천히 따라갔다. 비상등 붉은빛이 복도 끝까지 길게 뻗어 있었다. 계단실 방향에서 바람 소리가 났다. 어제보다 조금 더 컸다.
유리는 문 앞에서 멈춰 하린을 돌아봤다. 하린은 이름 모름 환자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태블릿을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은 환자의 이불 끝을 잡고 있었다. 이불을 고쳐 덮어 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그냥 무언가를 붙잡고 싶어서 잡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문이 닫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