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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9화]

조건은 사람 입으로 나와야 한다

작성: 2026.04.24 15:13 조회수: 22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이 콘텐츠는 AI가 창작한 장기 연재소설입니다. 실제 인물이나 사건과 무관한 창작물입니다.

윤태식이 전화를 한 건 오전 여덟 시 십 분이었다. 선우는 어머니 가게 뒤 좁은 창고에서 복사된 도면 묶음을 펼쳐놓고 있었고, 전화기가 진동하는 바람에 종이 한 장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발신자 이름은 저장되어 있지 않았다. 번호만 봤는데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나왔어요?"

선우가 먼저 물었다.

"저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습니다. 어제저녁에."

윤태식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낮았다.

"조건을 얘기하기 전에 직접 보는 게 낫겠어요. 오늘 오후 세 시, 은평역 2번 출구 앞 커피숍. 알죠?"

선우는 바닥에 떨어진 도면을 집어들면서 잠깐 멈췄다. 저쪽에서 연락이 왔다는 건 박도경 쪽인지, 아니면 조합 쪽인지. 둘 다일 수도 있었다. 어떤 경우든 윤태식이 그 연락을 받은 다음 날 아침에 선우에게 전화를 했다는 건, 적어도 아직은 어느 쪽 편도 아니라는 뜻이거나, 아니면 양쪽에 다 팔고 있다는 뜻이었다.

"가겠습니다."

선우는 짧게 답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서미라에게 문자를 넣었다.

'오늘 오후 윤태식 만납니다. 아시는 거 있으면 오전 중에 얘기해 주세요.'

보내고 나서 읽힘 알림을 기다렸다. 오 분이 지났다. 읽지 않음 상태였다. 서미라는 지금쯤 가게 앞 좌판을 펼치는 중일 것이었다.

골목은 오전 중에 가장 소란스러웠다. 두부 배달 트럭이 어제와 같은 자리에 서서 경적을 짧게 울렸고, 철물점 할아버지는 이미 입구 앞에 페인트 통을 두 개 꺼내놓고 있었다. 마틴의 수리 가게는 셔터가 반쯤 올라간 채였는데, 안에서 무언가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났다. 선우가 지나치다 잠깐 고개를 넣었다.

"뭐 봐요?"

선우가 물었다.

마틴이 고개를 들었다. 손에는 여러 장의 명단 사본이 들려 있었다.

"세입자 명부요. 상인회에서 구청에 제출한 거랑 조합 쪽에서 돌아다니는 거랑 이름 수가 다른 거 알아요?"

선우가 걸음을 멈췄다.

"얼마나?"

"네 명. 전부 한국어 이름 아닌 사람들이에요."

마틴이 명단 한 장을 선우 쪽으로 내밀었다. 손가락 끝으로 네 줄을 짚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조합 명부에 없어요. 그러면 보상 대상에서 빠지는 거 아닌가요?"

선우는 명단을 받아들었다. 네 이름. 전부 이 골목에서 임대 계약을 맺고 영업 중인 사람들이었다. 빠진 게 아니라 처음부터 안 넣은 것이었다. 선우가 말했다.

"조합 명부를 어디서 받았어요?"

"박도경 쪽 사람이 상인 한 명한테 개별 상담하러 왔을 때 두고 간 거예요. 그 사람이 나한테 보여줬고요."

마틴이 어깨를 으쓱했다.

"나보고 이런 거 신경 쓰지 말라고 했는데, 신경 안 쓰면 제가 사람이 아니잖아요."

선우는 명단을 두 번 훑었다. 이건 오늘 윤태식을 만나기 전에 서미라가 알아야 할 내용이었다. 다시 문자를 넣었다.

'급합니다. 세입자 명부 얘기예요. 전화 주세요.'

이번에는 삼 분 만에 읽혔다. 그러나 전화는 오지 않았다.

서미라의 가게 앞을 지나칠 때, 그녀는 좌판 위에 나물 단을 올리고 있었다. 선우가 발걸음을 늦추자 서미라가 먼저 말했다.

"문자 봤어요. 잠깐만요."

손을 앞치마에 닦고 선우 쪽을 봤다.

"어느 명부요?"

"조합 쪽에서 개별 상담 때 쓰는 거요. 마틴 씨가 확보했어요. 거기에 이름이 빠진 사람이 네 명이에요."

선우가 명단을 펼쳐 내밀었다.

"전부 이주 배경 세입자들이고, 현재 영업 중인 사람들이에요."

서미라가 명단을 보는 순간 표정이 굳었다. 단순한 놀람이 아니었다. 눈 밑 근육이 먼저 움직이는 그런 표정이었다. 선우는 그 얼굴을 보면서 물었다.

"이 이름 중에 아시는 분 있어요?"

"셋은 알아요."

서미라가 명단을 선우에게 돌려줬다.

"하나는 작년에 우리 골목 사람들이 송별회 해준 사람이에요. 이제 없는 사람이고."

말을 끊었다. "나머지 셋은 지금도 여기서 장사해요.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그럼 이 사람들이 빠진 걸 왜 몰랐어요?"

서미라가 잠깐 입을 다물었다. 나물 단 하나를 다시 고쳐 쌓았다.

"조합 명부를 본 적이 없으니까요. 상인회 명부는 내가 만든 거고, 조합 거는 따로 돌아요. 누가 보여주질 않으니까."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그게 바로 문제잖아요."

선우는 그 말이 끝나는 걸 기다렸다. 그리고 말했다.

"오늘 오후 윤태식 만나요. 사진 이양 조건 얘기 나올 것 같아요."

서미라가 선우를 봤다.

"조건이 뭐래요?"

"아직 몰라요. 그래서 가는 거고요."

서미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좌판 위를 한 번 쓸듯이 훑고, 앞치마 끈을 다시 묶었다. 선우는 그녀가 뭔가 더 말할 것처럼 보인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서미라가 말했다.

"사진 속 사람 얘기는 윤태식이 꺼낼 것 같아요?"

"꺼낼 수도 있죠."

"그러면,"

서미라가 잠깐 눈을 내리깔았다.

"윤태식이 그 사람 이름을 먼저 대는지, 아닌지 봐요. 그게 중요해요."

선우는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고 돌아섰다. 서미라가 사진 속 인물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건 이제 거의 확실했다. 문제는 그녀가 그 이름을 왜 아직 말하지 않는가였다. 두려움인지, 아니면 무언가 더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는 건지. 그 구분이 아직 안 됐다.

오후 두 시 오십 분, 선우는 은평역 2번 출구 앞 커피숍에 먼저 와 있었다. 창가 자리. 윤태식은 정각 세 시에 들어왔다. 외투 안쪽에 서류 봉투 하나를 끼고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윤태식이 말했다.

"어제저녁에 조합 쪽에서 연락 왔어요. 사진 얘기는 없었고, 이번 주 안에 현장 투입 일정 확인하라는 거였어요."

"금요일 이후요?"

"그 전이에요."

윤태식이 선우를 봤다.

"목요일 오전으로 들어왔어요."

선우는 손 위에 올려놓은 종이컵을 내려다봤다. 목요일. 금요일 접수 전날이었다. 즉, 접수 자체를 막으려는 게 아니라 접수가 끝나기 전에 현장 선점을 해두겠다는 뜻이었다. 행정 절차가 완료되기 전에 물리적 사실을 만들어놓는 방식. 선우가 아는 가장 더러운 수였다.

"조건이 뭐예요."

선우가 말했다. 물음표가 없는 문장이었다.

윤태식이 서류 봉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봉투를 열지는 않았다.

"사진 원본을 넘기는 대신, 내가 이 구역 현장에서 완전히 빠질 수 있도록 해줘요. 조합 계약 해지, 위약금 없이. 당신이 그걸 만들어줄 수 있으면, 사진은 당신 거예요."

선우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밖으로 지하철 역 방향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퇴근 전 오후의 그 흐름. 계약 해지, 위약금 면제. 그건 조합 내부 서류를 건드려야 가능한 일이었다. 선우 혼자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었다.

"내가 직접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선우가 말했다.

"알아요."

윤태식이 봉투를 다시 외투 안쪽에 집어넣었다.

"그래서 조건이라는 거예요. 할 수 없으면 거래 없는 거고."

두 사람 사이에 잠깐 침묵이 흘렀다. 커피숍 안에서는 에스프레소 머신 소리가 한 차례 짧게 울렸다. 선우는 윤태식의 얼굴을 봤다. 협박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도움을 청하는 얼굴도 아니었다. 그냥 거래를 하고 싶다는 얼굴. 그게 더 다루기 어려웠다.

"시간을 주세요."

선우가 말했다.

"목요일 오전 전에는 답을 드릴게요."

윤태식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수요일 저녁까지요."

선우는 커피숍을 나와 역 방향으로 걸었다. 주머니 안에서 전화기가 진동했다. 장하늘이었다.

"나 방금 배지 확인했어요."

하늘의 목소리가 빨랐다.

"박도경 지지 모임 배지 맞아요. 그리고 은평 현장 날짜랑 박도경 일정표를 맞춰봤는데, 그날 공식 일정이 비어 있어요. 선우 씨, 이거 그냥 유사한 게 아니에요."

선우는 역 입구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머리 위로 지하철 도착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아직 수요일 저녁까지는 이틀이 있었다. 그 이틀 안에 조합 계약 구조를 건드릴 방법을 찾아야 했고, 서미라의 입을 열어야 했고, 하늘이 발굴한 배지 확인을 사진 원본 없이 기사화하는 걸 막아야 했다.

세 가지가 동시에 한 줄에 얹혀 있었다. 선우는 전화기를 귀에 댄 채 말했다.

"하늘 씨, 수요일까지만요. 이틀만요."

하늘이 잠깐 말이 없었다.

"이틀 안에 원본 들어와요?"

"들어오게 할 거예요."

전화가 끊겼다. 골목 쪽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어딘가에서 저녁 국물 냄새가 섞여 들어왔고, 철물점 쪽에서 셔터 내리는 금속 소리가 한 번 크게 울렸다. 선우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윤태식의 조건. 그게 이 골목 사람들한테 어디까지 닿아 있는지, 오늘 저녁 안에 서미라와 다시 앉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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